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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03화 (203/1,404)

# 203

#203화 얘 대체 뭐지? (1)

아, 전에 수정이 누나가 이야기했었지…….

안개 협곡에서 사냥한다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르블’이라고 했던가?

“너 완전히 까먹고 있었지?”

“네…….”

솔직하게 내 관심사가 아닌 데다가 상황도 바쁘게 돌아갔으니까.

“그럴 줄 알았다.”

내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어떻게 진행돼요?”

“계약이야 나 이상의 조건으로 뽑아줄 거고, 포토 작업은 가상현실 내에서 할 거니까 딱히 할 것은 없어. 그냥 가서 폼 좀 잡다가 오면 돼.”

“……생각보다 쉽네요.”

“밖에서라면 수십, 수백 장 넘게 찍으면 먼저 진이 나가서 지치겠지만...”

“뭐, 여기서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만 않으면 몸이 먼저 지치진 않겠죠.”

“가상현실의 좋은 점이 그런 거지. 신체를 운용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고 쉽다는 것. 거기다가 거리의 제약마저도 단번에 해결돼. 예를 들면 부산 살던 사람이 접속만 하면 바로 서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회의 같은 것을 할 때는 정말 좋겠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닌가?

“보안상 그건 힘들겠지. 보안이 중요한 사안 같은 경우는 유출되면 문제가 생기니 가상현실에서 어지간하면 승인을 안 해줘. 보상 체계 자체나 보험 같은 것도 없고, 학교 수업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그렇네요.”

평소에 잘 생각 안 하고 살던 것을 매번 재중이 형에게 배우는 것 같다.

“결론은 편안하게 몸만 갔다 오자는 거다.”

“아, 형도?”

“이게 이제 크니까 형을 아래로 보네. 내가 메인 모델이다.”

“하하…….”

재중이 형이 같이한다니 좀 다행이다.

“사실, 혼자 모델 일을 하라고 했으면 좀 불편했을 것 같아요.”

“너도 이것저것 좀 더 해봐야지. 아직 물이 한참 덜 들었어.”

그러면서 내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놓으면서 웃어 보였다.

나쁘지 않은 기분.

그냥, 이것이 편하네.

항상 손만 내밀면 도움받을 수 있는 형이 있다는 것이 좋다.

“아, 그런데 챠밍은요?”

“챠밍?”

“원래 여성 쪽 모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으음, 그건 좀 복잡하다고 하던데…….”

복잡해?

메인 급 모델이면 그냥 가서 같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재중이 형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원소속이 따로 있는 것은 알지? 초상권 같은 문제나 계약 문제는 해당 소속사와 상의를 해야 해서 마음대로 진행을 못 해. 특히 가상현실은 관련 법규가 완전히 달라.”

“이야기가 다 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요?”

“제대로 하려면 챠밍이 원래 모습으로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데…….”

“……확실히 모습이 다르네요.”

“그래, 이중 계약으로 걸려 넘어갈 수도 있고,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에게 이런 문제는 치명적이야. 원래 계약이 수정이 회사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의류 사업에서 본인 말고 다른 얼굴로 모델을 한다?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아. 현재 조율 중이라고는 하던데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나도 모르겠다.”

“챠밍은 따로 말을 안 하던데요?”

“너 신경 쓸까 봐 그랬겠지. 너 은근히 그런 것 신경 많이 쓰잖아. 심리 상태에 따라서 RTP도 출렁거리고. 너 아직 집중 상태로 안 들어가면 최대 RTP 못 내지?”

“……지적해 줘서 연습은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쉽지는 않네요.”

4세대 VRS가 최대 500의 RTP를 지원하기는 하는데 재중이 형 말로는 내가 너무 들쑥날쑥해 어떤 때는 최고치를 훌쩍 넘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낮다고 한다.

유혜선 팀장이 측정한 수치들은 실험실용 데이터고 실전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차이가 난다.

“물론, 포텐셜로 따지면 네가 으뜸이다. 지금까지 봐온 누구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다만 시간과 연습이 필요해. 프로게이머들은 평균적으로 일정한 RTP를 계속 낼 수 있도록 훈련을 받거든.”

“역시 따로 훈련을 해야 하나 보네요.”

“넌 그냥 천성적으로 매우 높게 RTP가 형성되어 있어서 굳이 할 필요가 있나 했는데, 앞으로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명상과 훈련을 함께 해서.”

“당장 필요할까요?”

“너, 수호랑 최종병기 이야기 못 들었어? 이제 조만간 현역 프로게이머들이 문을 두드릴 거라고. 우리가 했던 경매가 기폭제가 될 거다.”

“아…… 25억.”

“유적지 하나가 그런 가격에 나온 걸 보고 가만 있을 놈들이 아니지. 전에 상금 받은 것과는 또 다른 문제야. 대전 운도 따라야 하고 입상한 한두 명만 높은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이건 꾸준히 해먹을 수 있으니까.”

한 마디로 돈에 눈이 뒤집혔다는 소리다.

“어쩌면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길마가. 알음알음 알고 있던 비밀을 바깥으로 터뜨려 버렸으니까. 아주 성대하게.”

“네, 방송으로 말이죠.”

지금도 방송에 매번 그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여 길마가 페르타를 경매하는 그 장면이.

“너 RTP가 높을 때는 누구라도 씹어 먹겠지만 평균치로 치면 오히려 프로게이머들이 더 높을 수도 있어. 만약에 네가 낮은 상태에서 다수의 프로게이머가 작심하고 달려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으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물론, 그런 상황이 오게끔 내가 그냥 두지는 않겠지만.”

재중이 형이 장담하듯이 말은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은 모르니까.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명상이 제일 좋지. 거기다 긴장을 중간에 놓지 않는 것도 괜찮고. 그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 연습이 될 거다. 프로들은 늘 큰 대회에 승패를 걸고 대전을 하면서 그런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습이 돼. 너도 그런 독한 마음을 품고 붙을 수 있는 상황이 더 필요하기는 한데…….”

내가 진짜 독한 마음을 품고 대전을 할 수 있는 상대라…….

이건 고민을 좀 해봐야 하나.

그때, 재중이 형이 어디선가 온 연락을 받고 내게 말을 꺼냈다.

“아, 울 여친 접속했다. 빨리 가봐야겠네.”

***

“안녕? 여기선 처음이네?”

찰랑거리는 금발 웨이브를 휘날리며 한참을 촬영을 위한 세팅을 하던 수정이 누나가 우리를 돌아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역시 화려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외모다.

밖에서도 눈이 끌리는 사람인데 지금은 커스터마이징을 거쳐서 그런지 더더욱 정면에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당당함과 화려함이 더해졌다.

완숙한 커리어 우먼에 일류 모델을 합친 그런 포스인가?

어지간한 사람은 쫄려서 말도 못 붙여보겠는데?

“안녕하세요.”

뭐, 나야 주변에 항상 챠밍이나 이쁜소녀, 나르샤가 있으니 면역이 됐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지나가던 주변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남다른 분위기가 있다.

지금 있는 곳은 페르타의 한 공터.

주변이 온통 풀색으로 가득해서 배경으로는 나쁘진 않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괜찮을까요?”

“여기 아니면 에띠앙으로 갈래?”

그 말에 굳이 옮겨야 하나 싶어서 고개를 저었다.

“뭐, 괜찮겠죠.”

“거기도 가야 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재중이 형과 날 보면서 수정이 누나가 바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줬다.

“오늘 쭉 함께하자?”

싱긋 웃으면서 내게 그렇게 말을 건네는데 눈빛에서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네.”

대체 얼마나 찍으시려고…….

“그리고 이쪽은 인사해. TV서 몇 번 봤지?”

수정이 누나가 한쪽에 뚱한 표정으로 그늘 가에 앉아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얼핏 봐도 타오를 듯 진한 붉은 색 웨이브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가 내게 시선을 한 번 줬다가 그냥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지금 나 무시당한 거지?

왜 이렇게 요즘 붉은 머리하고 엮이는 일이 많지?

여 길마도 한바탕 하고 가더니.

이 여자도 한층 더 짙은 색이다.

내가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형은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형도 잘 모른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지.

그러면서 재밌어하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산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은데.

“하아, 쟤 또 저러네.”

수정이 누나가 바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 원래 좀 얘가 저래.”

“누군데 그래요?”

“몰라?”

“네, 모르는데요?”

“정말 몰라?”

“네, 그리고 굳이 제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아주 스치듯 잠시였지만 붉은 머리 소녀의 어깨가 들썩거렸다가 고개를 확 돌리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충격인가?

아니, 애초에 날 쳐다보고 무시한 쪽은 그쪽인데…….

수정이 누나가 한숨을 쉬더니 그 붉은 머리 소녀에게 다가가서 뭔가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하자 듣고 있던 소녀에게서 귀찮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왜 제가 땜…… 정말…….”

재중이 형이나 나나 감각이 워낙 높아 어지간히 멀리 있는 바람 소리까지 다 들린다.

제 딴엔 안 들리게 수정이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가상현실은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네.

이 정도 거리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로스트 스카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과도 같은 일이니까.

수정이 누나도 이번엔 피곤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사실, 사정이 좀 있었어. 원래는 은하가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약 건이 걸려서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까.”

“네, 얼핏 들었네요.”

“들었어?”

“네, 사실 다 들려요.”

“뭐? 저 거리에서 소리가 들려?”

수정이 누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아, 가상현실 안엔 괴물들만 사는구나.”

“누나도 스탯 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들릴걸요.”

아마, 지금 레벨이 1이겠지. 둘 다.

“다 들었다니 편하게 이야기할게. 쟤도 잘 나가는 탑 여배우인데 이렇게 누군가의 땜빵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모양새가 상하는 일이라 회사에서 정말 사정해서 데려왔거든. 이쪽도 일정이 빠듯해서. 거기다 배우도 아니고 일반인이 상대 모델이라고 하니까. 아주 제대로 뿔이 났어. 어떻게 데려오긴 데려왔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딱 봐도 알겠다.

“적당히 맞춰 달라 이거죠?”

“응, 그래 주면 좋겠네. 초면에 무리한 부탁하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다음에 한턱 제대로 쏠게? 부탁 좀 하자. 동생아. 이번에 여성 브랜드도 가상현실 쪽에서 새 이름으로 같이 런칭하는 거라 처음이 중요해. 일단 쟤만 찍고, 나중에 은하는 따로 들어오는 걸로 이야기가 되어 있어.”

수정이 누나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야…….

재중이 형은 뭐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다.

“재밌겠네.”

형도 참.

전 별로 재미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잘 보고 따라 해.”

재중이 형은 자주 해봤는지 자연스럽게 준비된 디자인의 옷을 스위칭해 바로 갈아입었다.

“휴, 이건 좋네. 밖에서 갈아입으려면 진땀을 빼야 하는데.”

매우 흡족한 표정.

밖에서 촬영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표정만 봐도 편하다는 것을 알겠다.

붉은 머리 소녀도 딱히 포즈를 잡는데 그렇게 어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고.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재중이 형과 함께 더 없이 어울리는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잡아갔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라는 건가?

붉은 머리 소녀도 좀 전의 뚱한 표정과는 다르게 막상 일을 시작하니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그렇게 몇 가지 사인만으로도 바로 화보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으음, 뭔가 임팩트 있는 것이 없을까? 동생?”

그런데 막상 화보를 찍고 있는 모습을 보던 수정이 누나가 나를 보면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임팩트요?”

“아무래도 가상현실인데 너무 무난한 장면만 나오는 것 같아서. 브랜드 이미지가 좀 공격적인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건데 지금은 너무 무난해.”

그러면서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촬영을 계속 지켜봤다.

“임팩트라…….”

잠시 생각하다가 좋은 것이 생각났는데, 이런 것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네.

“혹시 이런 것은 괜찮을까요?”

“응? 뭔데? 좋은 게 있어?”

내 말에 수정이 누나가 반색을 하면서 반기는 모습이다.

“보시면 알아요. 처음 보면 놀랄지 모르니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몰라도 뚱한 표정이었던 저 붉은 머리 소녀의 표정이 다르게 변하는 것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수정이 누나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원한다고 했으니까.

일반인이라 이거지…….

정말 이건 작은 내 심술일지도 모르겠다.

【 라이덴 소환! 】

흑색의 비늘로 가득 덥힌 사람보다 몇 배는 거대한 라이덴이 공터 한가운데 커다란 몸짓을 드러냈다.

그리고 붉은 머리 소녀를 쳐다보더니 양쪽 날개를 크게 펼치고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압도적이고 험악한 최상위 네임드가 눈앞에서 소환되자 붉은 머리 소녀가 얼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런…….

장난이 심했나?

막상 해놓고 보니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붉은 머리 소녀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귀,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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