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194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10)
라이덴과 미스트 윙, 그리고 엘리트 안개 새들이 생존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애초에 라이덴은 다른 지역에서 넘어온 몬스터다.
다시 말하면 난이도가 높은 곳의 몬스터라는 소리.
반대로 미스트 윙은 이곳의 네임드다.
그렇다면 라이덴과 미스트 윙이 붙는다고 가정하면 미스트 윙이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이 선다.
아무래도 급수 자체가 차이가 날 테니까.
미스트 윙만 오버가 됐다면 또 모르겠지만, 라이덴도 그동안 얌전히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거든.
라이덴이 맵 끝을 돌아다니면서 휩쓸고 다닌 것이나, 미스트 윙이 산 두 개 정도를 쓸어버리며 몹을 말려 버린 것이나 둘 다 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순정이나 오버나 비슷한 조건이면 라이덴이 이긴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둥지죠. 쫄까지 붙여야 평수를 이룰 테니까요.”
이러면 둘 중 하나는 쓰러지고 남은 한쪽은 완전히 넝마가 될 것이다.
일명 와이번 아빠 작전.
이이제이.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다스림.
지금 여기서 네임드로 또 다른 네임드를 다스린다.
***
거센 돌풍과 뇌전으로 초토화된 협곡에서 좀 떨어진 곳에 우리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전쟁터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관전 중이고.
“정말 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
재중이 형도 작전을 미리 듣고 오기는 했어도 반신반의했었던 터라 지금 모습을 꽤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억지로 네임드를 끌고 와서 네임드끼리 싸움을 붙인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이건 운영자조차 예상을 못 했을 것이다.
애초에 네임드의 공격에 죽지 않고 버티면서 어디론가 끌고 간다는 발상 자체가 어렵다.
반응 속도가 높은 나조차도 네임드를 여기까지 끌고 오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으니까.
다른 사람?
단언하건대 절대 못 한다.
“뭐, 하라면 못할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어요?”
내 판단은 불가능이다.
재중이 형이 날 보고 피식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을 희생해서 끌고 왔다 치자. 일단, 그 상황 자체로도 아주 큰 손해인데 네임드끼리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법을 알아도 다른 사람은 따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패치한다고 난리 나겠다. 엘리트 테이밍도 모자라 이러고 있으니…….”
하긴 몬스터 순환을 이렇게 역이용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내가 운영자였으면 벌써 니네 집 찾아갔다.”
“하하, 설마요.”
진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미스트 윙과 라이덴의 싸움에서 우리는 멀찌감치 떨어진 채 딱 우리에게 오는 몹만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잘 봐둬. 양쪽 네임드 페이즈를 확인하기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으니까.”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재중이 형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미스트 윙과 라이덴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간간히 시간까지 체크하면서 열중하고 있고, 방패전사 역시 어떤 식으로 자신이 대처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중이다.
공중전이라고 해도 방패전사의 역할은 확실하다.
몸으로 버텨주는 것.
탈것의 내구만 버텨준다면 아예 달라붙어서 근접전을 해도 되려나?
당장은 무리겠지만.
모두 두 네임드의 처절한 싸움을 계속 지켜봤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영화 같아요.”
“응? 영화?”
이쁜소녀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괴수 나오는 영화요.”
“아…… 뭐, 그렇겠네.”
정말 괴수 전쟁이다.
“저기, 그런데 저러면 라이덴이 더 유리한 것 아닐까요?”
챠밍이 갑자기 손을 들고 의문을 제기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재중이 형도 이번엔 이해를 못 했는지 바로 되물었다.
“으음, 라이덴이 주변의 엘리트 안개 새들을 조금씩 잡고 있잖아요. 그럼 레벨 업이 될 것 같아서요.”
“아, 그거? 아마 라이덴 저거 이미 오버된 상태일 거야. 더 이상 잡아봐야 이득을 보긴 힘들지. 그게 아니라면 뛰어들 생각조차 안 했겠어.”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챠밍 말대로 라이덴의 레벨이 올랐다면 이건 그냥 미스트 윙을 라이덴에게 바치는 것밖에 안 된다.
성장 한계.
운영자들이 설정한 한계가 있다.
검은 호수의 여왕이 엄청나게 오버되어 개판을 친 이후 급하게 패치한 내용이다.
사실 그걸 믿고 들이댄 것이다.
어느 정도 이상은 성장하지 못할 테니까.
“운영자에게 감사해야 하나…….”
“고맙죠 뭐. 아니었으면 정말 손도 못 댔을 겁니다.”
방패전사도 재중이 형 말에 긍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저격하려고 했던 패치를 오히려 하나씩 역으로 해 먹고 있는 중이다.
또 패치를 할지 모르겠네.
우리에 맞춰 패치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니까 아마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돌려서 내게 집중했다.
“템요. 이게 제일 중요하죠.”
사실 이것도 패치 내용에 있던 것이다.
어떻게라도 대미지를 입혀야 토글이 가능하도록 패치를 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둘이 치고받더라도 우리가 일정 대미지를 넣는다면 템을 수거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번 패치의 맹점.
그걸 제대로 파고든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천불이 나는 상황이려나?
패치하는 족족 역으로 해 먹고 있으니.
“물론, 막타 정도는 날려야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다시 전장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대미지를 넣지 않아서 템이 드랍되지 않으면 그것만큼 곤란한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각종 패턴과 페이즈를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확인하면서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둘 다 페이즈 넘어가는 속도가 비슷합니다.”
“보통 3페이즈 정도 예상하면…… 이거 손도 안 대고 코 풀겠네.”
방패전사의 말에 재중이 형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매우 만족한 그런 모습.
현재 둘의 파워 밸런스가 아주 잘 잡혀 있다는 말이다.
“판단할 만한 것이 이거밖에 없어. HP나 방어를 모르면. 아마 마지막에 가서 변화가 있을 거다. 그때를 잘 노려야 해.”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아! 미스트 윙이 달아나요.”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검지로 전장을 가리켰다.
마지막 페이즈까지는 어떻게 비슷하게 가는가 싶더니 결국, 급수의 차이가 변화를 불러왔다.
라이덴을 미스트 윙과 같이 치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인데 이미 미스트 윙이 도망가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네.
지금 미스트 윙을 잡아야 한다.
“빨리 따라가죠.”
【 가속의 바람! 】
아주 잠깐이지만, 썬더 와이번으로도 미스트 윙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긴 하다.
“무조건 쳐야 해!”
재중이 형도 몸이 달았는지 빠르게 달려들었다.
남은 엘리트 안개 새들이 라이덴을 막아주는 동안 가속의 바람을 사용해 미스트 윙을 따라잡았다.
미스트 윙과 라이덴 사이에 우리가 끼어들어 간 형국이라 해야 하나.
“형, 한 방에 가요?”
여기서 기술을 다 써버리면 라이덴을 상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빨리 잡지 못하면 잘못하다간 양쪽에 둘러싸일 수도 있고.
“다 쓰면 라이덴 못 잡는다. 이건 쌩으로 잡자.”
“수신 양호.”
최대한 기술을 봉인하고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어차피 HP가 얼마 안 남았을 테니…….
그대로 썬더 와이번을 미스트 윙의 위로 이동해 바로 아래로 떨어져 미스트 윙의 등 위로 올라탔다.
미스트 윙 주변으로 항상 바람이 몰아치는데 이게 내 몸을 지나가면서 HP를 지속적으로 줄어들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심하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지.
바로 블러디아를 두 자루 꺼내,
【 검은 가시! 】
그리곤 미스트 윙에게 빠르게 박아넣었다.
우선, 극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이제 그것은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P.
바람의 결계에 깎인 HP는 블러디아 두 자루가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고.
【 라이트 웨폰! 】
【 와이드 힐! 】
챠밍은 바로 옆을 날면서 내게 계속 힐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힐이 있으면 기술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르샤가 아쿠아 슈터로 꾸준히 딜을 넣자, 다들 데스 위버를 꺼내서 미스트 윙에게 화살을 계속 꽂아 넣었다.
계속 되는 공격에도 미스트 윙이 죽지 않자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형, 이거 왜 이렇게 안 죽어요!”
“……남은 HP도 상당한가 보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이덴이 남아 있던 엘리트 안개 새들을 모두 잡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빨리 좀 죽어라.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몇 번 더 블러디아를 내려찍자 미스트 윙이 날개를 뒤틀어 대다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썬더 와이번 소환! 】
떨어지지 않게 썬더 와이번을 소환해서 바로 올라탔다.
그러자 미스트 윙이 검은 잔상을 남기며 공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챠밍! 토글 좀 부탁해!”
“네!”
지금은 템이 뭔지 확인할 시간도 없다.
기뻐할 틈 없이 그대로 썬더 와이번을 돌려서 라이덴에게 날아갔다.
“스킬 아끼지 마! 전부 퍼부어!”
재중이 형의 오더를 받고 모두 스킬을 전부 꺼냈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방패전사가 전방에서 먼저 스킬을 날렸다.
【 검은 가시! 】
뒤이어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도 후방으로 스쳐 지나가듯 달려들면서 날개를 찢고 지나갔다.
【 멀티 샷! 】
【 검은 가시! 】
나르샤 역시 주변을 돌면서 스킬을 쏟아부었고.
캬아악!
계속 이어지는 강력한 공격에 라이덴이 온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기동력이 장점인 라이덴인데 미스트 윙을 친다고 너무 접근해서 그런지 우리 스킬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적중했다.
일단 몸체가 크니까 가까이에서는 어지간하면 못 맞출 일이 없지.
아마 거리가 있었다면 오히려 우리가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공격에 휘청거리는 녀석이 마지막 발악인지 입을 쩍 버리고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면서 강력한 한방을 준비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광경.
필살기인가?
“다들 피해!”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그렇게 녀석이 강력하게 압축된 뇌전의 기운을 채찍처럼 돌리며 뿜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라면 우리가 직격 코스 안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조건 직격이다.
“비켜!”
그때, 방패전사가 물의 방패를 정면으로 들고 터져 나오려는 뇌전 속으로 몸을 날렸다.
정확히 라이덴의 입 바로 앞으로.
……!
아무리 물의 방패가 있다지만 패치 내용대로 100% 공격을 막아주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방패전사가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뇌전을 고스란히 받으며 반사를 하자 입속의 뇌전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서 터져나가며 강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방패전사는?
워낙 환하게 터진 빛 때문에 순간 방패전사를 놓쳤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방패전사를 찾자 온몸이 뇌전에 그슬린 채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소녀!”
“네! 가고 있어요!”
이쁜소녀가 빠르게 하강해서 떨어지던 방패전사를 잡더니 손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얼핏 상태를 보니 빠르게 다시 복귀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 방패전사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전부 죽었을 것이다.
그런 방패전사의 희생을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토글을 끝낸 챠밍이 뒤에서 날아왔다.
그러더니 썬더 와이번의 소환을 풀고 내 탈 것으로 바로 올라탔다.
……?
【 소녀 라미아 소환! 】
아, 그렇군.
동시 소환은 안 되니까.
내 탈 것에 같이 올라탄 건가.
“오빠, 끝내요!”
“그래, 가자!”
라이덴이 반사된 자신의 뇌전에 맞아서 비틀거리는 동안 우리도 최대치의 차징을 걸었다.
챠밍은 소녀 라미아를 소환 후 네믈리드를 조준했고, 나도 아쿠아 블레이드를 두 자루 모두 꺼내 들고 준비했다.
그리고 차징이 한계에 도달하자 동시에 쏘아냈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 블랙 아쿠아 캐논! 】
【 블랙 아쿠아 캐논! 】
세 줄기의 강력한 블랙 아쿠아 캐논이 라이덴의 몸에 작렬하자 라이덴이 찢어질 것 같은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뒤틀었다.
“……안 죽네요.”
“이래도 안 죽어?”
큰 기술은 대부분 다 사용했는데…….
미치겠네.
아마 우리 팀의 기술은 다 끌어다 썼을 거다.
일반 공격으로 저 녀석을 잡을 자신이 아직 없는데 어쩐다…….
그때, 갑자기 챠밍에게 안겨 있던 소녀 라미아가 앙증맞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붉은빛이 도는 새침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소녀 라미아의 두 손에 생긴 마법진에서 우리가 쐈던 것과 같은 블랙 아쿠아 캐논이 날아가더니 라이덴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라이덴의 몸이 붕괴되면서 검은빛으로 환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우리 팀 모두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소녀 라미아를 쳐다봤다.
“……어라?”
챠밍도 깜짝 놀란 모양.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붉은 눈빛을 한 소녀 라미아가 여전히 새침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
공격도 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