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193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9)
우리도 이틀 동안 손 놓고 가만히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일단, 썬더 와이번을 각자 한 마리씩 탈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사장님과 스칼렛이 정찰을 대신 해줘서 찾는 수고 없이 손쉽게 테이밍할 수 있었다.
썬더 와이번을 경직시키는 것은 전과 동일하게 이쁜소녀가 하늘에서 내리꽂는 것으로 해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쁜소녀가 처리해 버렸다.
테이밍이 거듭될수록 이쁜소녀가 재미있다는 반응을 계속 보여 다른 사람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을 말린다고 혼났다.
정확한 위치를 보고 떨어지지 않으면 바로 추락이니까.
거기다 이쁜소녀가 새로 만들어온 아이템이 썬더 와이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데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전력을 더 올릴 방법을 찾는 도중 새로 업데이트된 아이템 중 쓸만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며칠간 라미아 여왕을 젠 시간마다 잡아 이쁜소녀의 무기를 새롭게 만들었다.
『 +4 블랙 랙스 / 출혈 10 (6+4) 타격 20 (16+4)
근력+2, 피해 전이 』
라지 해머.
배틀 엑스에 비해 손색없을 만큼 크고 웅장하며,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
순수하게 힘으로 찍어 누른다는 말이 어울리는 무기였다.
“이거 완전 타격용인데? 무시무시하구만.”
재중이 형이 외형에 한 번 놀라고 수치에 한 번 더 놀랐다.
블랙 슈피어와 달리 이건 출혈이 최소한으로 줄고 타격에 수치가 모두 집중된 무기다.
타격 수치가 1포인트만 올라도 타격 시 경직이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가는데, 이건 블랙 슈피어에 비해 6이나 높다.
다른 말로 하면 높은 사냥터에서도 타격 하나만큼은 먹힌다는 소리다.
“마음에 들어?”
“네! 정말 좋아요. 때릴 때마다 휘청거리니까 재밌어요.”
이쁜소녀가 어느 순간부터 던켈을 인벤에 넣고 블랙 랙스만 사용하는 중이다.
그만큼 손맛이 좋다는 말이겠지.
이쁜소녀는 예전부터 강하게 휘두르는 무기를 좋아했으니까.
PVP에서는 애매한 무기이기는 해도 중형 이상의 몬스터에게는 정말 특효약이다.
그리고 나르샤도 무기를 새로 맞췄다.
한 손으로도 쓸 수 있는 석궁으로.
『 +4 아쿠아 슈터 / 출혈 15 (11+4) 타격 15 (11+4)
민첩+2, 블랙 아쿠아 캐논 』
거기다 블랙 아쿠아 캐논이 내장되어 있기도 하고,
아쿠아가 붙은 무기는 전부 블랙 아쿠아 캐논이 내장된 모양이다.
재장전이 느리긴 해도 한 손으로 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선택지를 부여한다.
쏘는 자세부터 시작해 스몰 쉴드를 반대 손에 착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조 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좋다.
단점은 재료가 무식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
그것만 아니라면 공중전에서 국민 무기가 되어야할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
이제 나르샤도 공중에서 아쿠아 슈터를 쓰면서 공중에서 롤링해도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무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이제 진짜 갈 시간이다.
***
우리 팀 모두 썬더 와이번에 올라탄 채 안개 협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을 넘어가자 사장님이 길드원 몇 명을 데리고 반대편에서 대기하고 계셨다.
“준비 끝났다.”
사장님이 재중이 형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지막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이건 조금만 엇나가도 재미를 볼 수 없는 작전이니까.
운영자가 알면 지금 당장 나타나서 우리를 말리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어이없는 일을 벌이려는 중이다.
사장님과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그럼, 다녀올게요.”
이번엔 길드원 중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다.
어차피 같이 갈 수도 없다.
고도를 맞출 수 없어서 따라와 봐야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하고.
거기다 썬더 와이번을 각자 하나씩 준비한 오늘에서야 겨우 일정을 잡았으니까.
뒤에 한 사람씩 더 태우면 되겠지만 그럼 너무 느려진다.
이건 따라잡히면 끝나는 게임이라.
“가자!”
재중이 형이 앞장서자 모두 썬더 와이번을 조종해 고도를 높였다.
위치는 안개 계곡의 중앙, 남쪽에 있는 커다란 둥지.
그곳에 이 맵의 주인이 살고 있다.
전에 봤던 괴조.
미스트 윙.
항상 안개로 가려져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일단 크다.
거기다 알 수 없는 바람 계열의 스킬을 항상 달고 다닌다.
그리고 또 다른 네임드.
라이덴.
썬더 와이번보다 상위의 번개를 뿌리는 커다란 와이번.
사실 이쪽이 더 까다롭다.
아니,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
다른 지역에서 넘어왔다는 것만 보면 등급으로 봐선 한두 단계 위라고 생각이 되니까.
“둘 다 규격 외야, 방심하지 마.”
“알고 있어요.”
잘못하면 스킬 한 방에 사망이다.
이건 그냥 스탯 격차의 문제니까.
“다 왔다.”
스칼렛이 찾아준 위치에서 좀 더 이동하니 분위기부터 다르다.
마치 주변 안개가 스파크에 찢기듯 사라지고 있었다.
“……장난 아니네.”
방패전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경험 많은 방패전사가 긴장할 정도라…….
“단독으로 다니는 건 확실한 거죠?”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번 확인했지. 그게 아니라면 시작도 안 했을 거다. 주변에 호위하는 엘리트 몇 마리만 있어도 성립도 안 되는 게임이니까.”
“그럼, 가요.”
챠밍이 내 옆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다녀올게요. 다들 다음 지점에서 기다리세요.”
우리 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바로 출발했다.
“모처럼 긴장되네요.”
“잘 될 거야.”
“실수할까 봐 겁나요.”
“안 해야지. 실수.”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앞으로 라이덴이 이렇게 가까이 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안개 구역을 조금 타고 날아가니 그 속에 짙은 번개가 몰아치는 봉우리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최정상에 라이덴이 검은 광택을 내는 탄탄한 날개를 접은 채 앉아 있었다.
【 라미아 하트! 】
【 마나 리커버리! 】
【 오우거 하트! 】
쓰고 모자란 마력은 챠밍이 날려주는 마법을 반사하면서 빠르게 채웠다.
팀에서 이걸 도와줄 만한 사람은 챠밍 뿐이다.
그렇게 스탯을 최대한 뻥튀기 한 다음,
“시작은 제일 큰 걸로.”
바로 데스 위버를 꺼내서 활시위에 검을 걸었다.
이게 내가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빠르면서 가장 강한 기술이다.
시작은 거리를 최대한 벌린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 검은 가시! 】
검게 변한 한손검이 빠르게 안개를 뚫고 휴식 중이던 라이덴을 맞추자 사방으로 번개가 쏟아지면서 난리가 났다.
“튀자!”
챠밍이 놀라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나도 바로 자리를 떴다.
바로 무시무시한 녀석이 쫓아왔으니까.
***
<불멸> 할 만해?
<주호> 죽을 것 같……. 대답할 시간 없어요. 진짜 엄청나게 빠르네요.
<불멸> 최대한 버티고 가!
그 이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등 뒤에서 뇌전 수십 다발이 내 주변을 훑고 지나갔으니까.
미친 네임드네.
이걸 지금 상태로 상대할 수 있을까?
스피드가 워낙 빨라 처음에 벌어놓았던 거리가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챠밍, 넌 옆으로 빠져서 팀한테 가!”
“네! 조심해요. 이따가 봐요.”
괜히 옆에 있다간 챠밍이 죽을 것 같아 바로 빠지게 했다.
지금부터는 혼자만이 싸움이다.
최대한 집중한 감각으로 뒤에서 날아오는 뇌전을 모두 피해 가면서 목표 지점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 팀은 그 와중에 만날 수 있는 엘리트나 기타 몹의 처리를 맡았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면 원치 않더라도 다른 몹을 만나게 된다.
그걸 사방으로 치우는 것이 우리 팀이 맡은 임무다.
어그로를 끌든 그 자리에서 잡든 어떻게 해서는 내가 가는 길에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추가로 다른 몹이 붙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버티기 힘드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추격전.
거리가 좁아질 때마다 커다란 이빨을 들이대며 각종 번개 스킬을 쏘아대면서 쫓아오는데 처절할 정도로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거리를 벌리는 것에만 최대한 집중했다.
한 번씩 섬칫한 느낌이 들 때면 썬더 와이번을 급하게 좌우로 회피‧기동하면서 겨우 간격을 벌리며 도망갔다.
라이덴이 그나마 한 번씩 큰 마법을 쓸 때 멈춰줘서 따라잡히지 않았지 안 그랬으면 벌써 잡혀서 게임이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쁜소녀> 앞쪽 잡몹 클리어했어요!
<주호> 땡큐!
이쁜소녀가 라지 해머를 준비한 것도 그냥 바로 바닥으로 몹들을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날개를 분지르듯 꺾는 것이 지금 이쁜소녀에게는 가능하니까.
이쁜소녀가 없었다면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려서 시도했을 것이다.
그럼, 사람들과 분배 문제로 또 골치가 아팠을 것이고.
<나르샤> 쭉 들어가. 중앙 협곡 둥지로. 굿 럭!
<주호> 네, 이젠 운에 맡겨야죠.
나르샤도 석궁을 구하고부터는 공중전에서 몹 잡는 속도가 우리 중에서 월등히 빨라졌다.
거기다 회피‧기동까지…… 원거리 공격만 보면 지금 우리 중에서는 최고다.
공중 몹은 대체로 체력이 약한 편이다 보니 석궁을 들고 회피를 하면서 원거리에서 저격 가능한 나르샤는 지금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그 덕분에 길을 더 빠르게 열 수 있었다.
<챠밍> 힘내요!
<불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젠 잔몹들 무시하고 쭉 가!
재중이 형 말대로 중앙 협곡에 들어서자 지금까지와 다른 새들이 잔뜩 보이기 시작했다.
무려 엘리트 새들이 잔뜩 모여 있는 장소다.
그리고 저 속을 파고들면…….
원하는 그것이 있다.
내가 협곡 봉우리 사이로 파고들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색을 가진 안개 새 엘리트들이 내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몇몇은 오히려 내 뒤를 쫓고 있던 라이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불 속으로 나방이 달려들 듯 라이덴에게 지져지는 안개 새 엘리트들을 뒤로 하고 바로 더 깊은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역시, 안개 새 엘리트들보다 빠르다.
썬더 와이번을 구한 보람이 있다.
뒤를 쫓아오는데도 차마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계속 몹이 몰리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을 들어가서야 그놈을 발견했다.
미스트 윙.
짙은 안개 폭풍을 흩날리면서 사방으로 위압감을 뿜고 있는 괴조를 향해 그냥 직진했다.
미스트 윙 근처로 가자마자 썬더 와이번이 휘청거리며 더 들어가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대체 풍압이…….
그나마 썬더 와이번이니 이 정도지.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지만, 자기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미스트 윙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썬더 와이번을 급히 멈춘 뒤 그대로 롤링해서 뒤로 빠졌다.
그러자 미스트 윙이 완전히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래, 따라와라.
앞에는 엘리트 안개 새들에게 막혀서 잠시 묶여 있던 라이덴이 보였다.
과연…….
이게 되려나?
방패전사에게 잠시 빌려온 물의 방패를 꺼냈다.
이게 안 되면 망하는데…….
제발…….
되었으면.
라이덴이 사방으로 뻗어내는 뇌전 중 하나에 물의 방패를 완벽한 각도로 기울여 막았다.
【 리플렉션! 】
그러자 뇌전 한 줄기가 리플렉션을 시전한 물의 방패에 맞았다가 바로 방향을 꺾어서 날아갔다.
정확히 내가 원한 그 각도.
그대로 미스트 윙이 있는 방향으로 반사되어 나간 뇌전이 미스트 윙의 가슴을 치더니 크게 폭발해 사방으로 전기 폭풍이 일어났다.
키아악!
……!
제발……!
되라!
뇌전에 맞아 잠시 멈칫하던 미스트 윙이 날 보는가 싶더니 곧장 고개를 돌려 라이덴을 향해 날개를 크게 펴고 토네이도를 쏘아냈다.
됐다!!!!
그렇게 미스트 윙에게 토네이도를 맞은 라이덴의 눈빛이 붉게 변하면서 미스트 윙을 향해 뇌전 다발을 날려댔다.
그걸 빠르게 피한 미스트 윙이 괴음을 외쳤다.
그러자 그간 보이지 않았던 엘리트 안개 새들이 안개를 뚫고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안개 사이로 나온 엘리트 새들이 볼 것도 없이 미스트 윙을 도와 라이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미스트 윙의 둥지니까.
지원군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라이덴과 미스트 윙의 대전이 시작됐다.
라이덴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미스트 윙과 저 많은 엘리트 새들을 이길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주호> 와이번 아빠 작전 성공! 이제 꿀만 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