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190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6)
“엘리트!”
딱 봐도 노멀 형태의 레서 와이번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크기나 위압감.
그리고 이마에 길게 뻗어 있는 뿔에서 흐르는 뇌전까지.
이름은 썬더 와이번.
네임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고유의 명칭이 없기도 하고, 우리가 이미 네임드라고 생각하는 녀석을 봤기 때문이다.
“전부 흩어져!”
재중이 형이 급하게 외치며 찡그린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옆으로 뛰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우리 팀도 반사적으로 몸을 구르다시피 양옆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크르릉!
썬더 와이번의 뿔에서 엄청난 크기로 뇌전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번개가 내려치면서 땅을 길게 뒤엎고 지나갔다.
뇌전이 지나간 자리는 검게 그을려 뒤엎진 땅과 매캐한 연기가 뿜어졌다.
위력이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마법보다 강했다.
이건 거의 네임드 수준인데?
무슨 엘리트 수준에서 이런 것이 튀어나오지?
“위력이 미쳤네…….”
방패전사가 뇌전의 범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에 내뱉은 말이다.
지금 피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새카맣게 불탔을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저 공격에 맞을 생각하지 마. 자칫 잘못하면 한큐에 가겠다.
방패전사가 좀 전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부르르 떨며 썬더 와이번을 바라봤다.
하지만 방패전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적어도 저놈을 지상으로 끌어내리지 않는 이상.
놈을 어떻게 내리는 것이 좋을까, 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패전사의 주변으로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어? 전사 오빠?!”
바로 옆에 있던 이쁜소녀가 깜짝 놀란 듯 방패전사를 바라봤다.
방패전사가 지금 들고 있는 아이템을 자주 봤으니까.
아쿠아 블레이드.
오버된 라미아 여왕을 잡고 얻은 재료로 한 자루를 만든 모양이다.
구 네임드 아이템은 제작 재료가 많이 들지 않아 바로 제작한 듯했다.
차징이 끝났는지 썬더 와이번을 향해 곧장 아쿠아 블레이드를 올려쳤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확실히 지상이라면 블랙 아쿠아 캐논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체력과 마력이 빠져나가도 공중 탈것을 타고 있을 때처럼 부담이 심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세도 잡기 훨씬 수월하니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릴 수도 있다.
검은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썬더 와이번을 향하자 놈이 한쪽 날개만을 접은 채 그대로 롤링했다.
그러자 방패전사가 시전한 블랙 아쿠아 캐논이 허무하게 썬더 와이번의 몸을 스치듯 날아가 버렸다.
…….
미쳤네.
다른 팀원들 역시,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방패전사가.
“말도 안 돼…….”
열심히 준비한 회심의 카드였지만,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려 버렸으니 저런 표정이 이해가 간다.
블랙 아쿠아 캐논의 발사 속도가 절대 느린 것이 아닌데, 저 정도의 기동력을 보이며 회피한다라…….
정말 탐난다.
“저놈 가지고 싶어졌어요.”
“아아, 나도. 저건 죽이지 말고 사로잡자.”
재중이 형 역시 눈빛을 반짝거리며 내 의견에 동참했다.
하늘에서 탈것의 기동력에 대한 내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재중이 형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앞서 레서 와이번끼리의 접전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단순한 추격전에서는 거리를 계속 좁히지 못했다.
지상에선 민첩이 높은 내가 선수를 치고 들어가거나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서 공수교대를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었지만, 공중은 ‘탈것’ 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공중에서만큼은 탈것의 중요함이 그만큼 크다.
그 덕분에 저놈이 내 욕구를 아주 불을 지르다 못해 활활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우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겠네요.”
계속 내려오길 기다렸지만, 썬더 와이번이 원거리 공격만 날릴 뿐 도통 내려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방패전사도 어느새 무기를 데스 위버로 바꾸고 화살을 날리면서 어그로를 끄는 중이다.
확실히…….
임기응변이 좋다.
고육지책으로 나르샤에게 활을 빌려 공격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어야 하니까.
공격이 미세하게 스치며 HP가 출령거렸지만…….
다행은 확실하게 어그로가 방패전사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 레서 와이번 소환! 】
그 사이 재중이 형과 내가 동시에 레서 와이번을 소환하고 빠르게 올라탔다.
“챠밍!”
방패전사의 HP를 채워주던 챠밍이 내 외침에 멈칫하더니 나와 썬더 와이번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요!”
그리고 바로 달려와 레서 와이번에 올라탔다.
그렇게 올라탄 챠밍이 망설이던 것도 잠시 내 허리에 팔을 감기 시작했다.
은근히 허리를 감싸오는 팔의 움직임에 내 신경이 바싹 곤두서기 시작했다.
…….
내가 무슨 생각으로 챠밍을 불렀을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불렀는데.
부르고 나니 실수 같은 느낌이 든다.
“알아요. 저거 잡아야 하잖아요.”
“그래, 불편한 건 아는데 조금만 더 도와줘야겠어.”
“저 괜찮아요. 언제든지 도와드릴게요.”
챠밍이 날 보면서 환하게 웃는데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기분이 묘하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뭔가 살랑거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몇 초를 쳐다봤는데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마치 집중을 엄청나게 했을 때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런 기분이 든다.
“야! 빨리 날아. 저러다 전사 죽겠다.”
“아…… 네!”
재중이 형이 나에게 외치자마자 상념에서 깨어 나오면서 빠르게 레서 와이번을 상승시켰다.
이번엔 제대로 잡았는지 챠밍에게서 전의 그 비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재중이 형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봤는데 이쁜소녀가 재중이 형의 뒤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
대체 어떻게 하려고?
재중이 형도 이쁜소녀를 태우고 레서 와이번을 상승시키는데 전혀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여러 게임을 섭렵한 사람답게 공중에서의 조작 역시 나 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
감각으로 밀어붙여서 만들어내는 조작과 다양한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조작의 퀼리티 차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프로게이머는 프로게이머구나.
아마, 나 역시 좀 오래 타고 다니다 보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테지만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너 잠시만 시간 좀 끌어! 나 좀 더 올라간다!”
내게 그런 말을 하더니 레서 와이번을 썬더 와이번보다 훨씬 위로 몰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 형 대체 어쩌려고.
이제 조작이야 걱정되지 않지만 뭘 할지가 더 걱정이다.
“꼭 오빠 보는 것 같아요.”
“응?”
“오빠도 자주 저러는 걸요? 뭔가 번쩍 떠올라서 바로 하잖아요.”
“아…….”
뭐, 남들이 보기엔 내가 저래 보인다는 소리지?
거참, 나도 대책 없이 막 지르는 타입이었구나.
<주호> 형, 뭐하려고요?
<불멸> 소녀랑 둘이서 불꽃 쇼를 보여주마.
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신나 있는 것 같다.
공중 탈것을 얻어서 그런가?
“전사 형! 이제 제가 시선을 끌게요.”
“어! 그래. 나도 한계야. 저놈 공격이 너무 아프다.”
그러면서 방패전사가 빠르게 검과 방패를 꺼내더니 막는 것에만 집중했다.
나르샤는 공격을 하지 않고 계속 대기만 하는 중이다.
지금 어글이 넘어가면 감당하기 힘드니까.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뭔가 해줘야 할 텐데…….
일단, 시선만 끌면 되나.
“챠밍! 큰 걸로!”
“네!”
지상에 가까워서 여차하면 바로 내리면 되니까 이왕이면 큰 기술로 간다.
잘해서 떨어뜨리면 더 좋고.
【 소녀 라미아 소환! 】
……?
전에 봤던 아기자기한 소녀 모습의 라미아 여왕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챠밍의 허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엄청나게 귀여워 보였다.
“소환이 돼?”
내 어리둥절한 물음에 본인도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소환했는지 이제야 확신이 든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되네요? 공지에는 탈것과 같이 소환이 안 된다고 해서 해봤거든요. 아마 될 거라 생각했어요.”
…….
얘도 참,
운영자가 기겁할만한 것을 하네.
우리 팀은 어째 하나같이 비상한 애들 밖에 없는 것 같다.
전에 지력 상승과 마력 리프레쉬가 빠르다고 했었지.
“어때?”
“지금 지력이 10 올랐어요.”
“라미아 심장을 너한테 줬어야 했네…….”
라미아 여왕의 심장을 챠밍이 사용했다면 지금 지력이 최소 20은 올라간다는 말이니까.
정말 우주 행성 파괴급 위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고 심장을 쓰고 내려간 마력은 소녀 라미아가 빠르게 채워줬을 테고.
시너지 효과가 엄청났을 것이다.
소녀 라미아가 나올 줄 알았으면 내가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챠밍이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희 여기 넘어오지도 못했을걸요? 정말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이 쓴 거예요. 전 전혀 아깝지 않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러면서 다시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어야 한다는 듯.
저 미소에 순수함만이 느껴진다.
착하네. 정말.
“라미아 살찌워서 내가 꼭 하나 더 얻어준다. 진짜.”
“네, 다음에 부탁할게요. 그럼.”
일단 막 지르긴 했는데, 어떻게 살찌운다?
이건 또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그럼! 가요!”
챠밍의 말에 최대한 레서 와이번을 썬더 와이번 근처로 접근시켰다.
적어도 방패전사보다 가까이 가야지 성공 확률이 크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아마 지금 챠밍이라면 나와 근접한 대미지를 날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이 나가는 순간 레서 와이번이 블랙 아쿠아 캐논의 후폭풍에 밀려 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간 블랙 아쿠아 캐논이 녀석의 등과 꼬리를 스치긴 했지만, 단단한 비늘에 튕겨졌다.
“하…… 이걸 피해?”
이번엔 나도 어이가 없었다.
마법이 나가는 순간 썬더 와이번이 뭔가를 눈치챈 듯 상체를 하강시키면서 직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스쳤지만, 등의 비늘에 맞아 위력이 감소된 부분이 있었다.
저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수준의 회피 기동이다.
“실패…….”
챠밍이 소녀 라미아 덕분에 빠르게 오르는 마력으로 본인에게 자체 힐을 걸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으음, 저게 좀 규격 외네. 엘리트가 이 정도라니.”
다행히 시선은 끌었는지 썬더 와이번이 우리를 쳐다보고 공격을 시작했다.
“후아, 죽을 뻔했다고!”
방패전사의 외침에 그저 웃고 말았다.
뭐, 시선을 끌었으니 일단은 성공인가.
직격으로 맞아 지상으로 떨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녀석을 피해 최대한 근처에서만 날았다.
재중이 형이 뭘 할지 모르겠지만, 멀리 날아가라는 소리는 아니었을 테니.
【 리플렉션! 】
공격을 피하다 위험한 순간 챠밍이 마법을 반사했다.
그러자 반사된 번개가 그대로 되돌아가 썬더 와이번의 몸에 명중했다.
“이것도 안 돼요. 마법 저항도 꽤 높은 모양이에요.”
저 공격이 약한 것도 아닌데 맞아도 버틸 정도라…….
쉽지 않겠네.
“응? 좀 흔들리긴 해요.”
버티긴 했지만, 그래도 그 여파로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잠시.
“저것도 무적은 아니네.”
너무 잘 피해서 진짜 네임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리플렉션 쿨 되면 말해. 그건 좀 먹힌다.”
“네!”
그때,
<불멸> 지금 간다아!
<주호> 뭘요?
<불멸> 보면 알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위의 안개가 좌우로 확 밀려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그 사이로 이쁜소녀와 재중이 형이 탈것도 없는 맨몸으로 수직 하강을 하고 있었다.
두 손에 던켈을 강하게 쥐고.
미친…….
진짜 미쳤어.
둘 다.
대체 어디서부터 떨어져 내린 거야?
재중이 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쁜소녀까지 간이 제대로 부었네.
하늘에서 그냥 떨어져 내리다니…….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다.
“가즈아아!!”
“꺄!!!!!!!”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의 비명이 동시에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잠시 멈칫해 있던 썬더 와이번의 양쪽 날개로 떨어지는 힘을 그대로 싣고 정확하게 내려찍었다.
엄청난 높이와 중력 가속에 던켈의 공격력.
이 두 가지도 모자라,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저거, 써지나?
이런 내 우려와 다르게 광풍이 몰아치며 날개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그냥 내려찍어도 한 방에 보냈을지 모르는데 낙하하는 힘과 기술의 파워가 합쳐지니 세상에 둘도 없는 필살기가 완성됐다.
양쪽 날개가 모두 찢겨진 썬더 와이번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추락하는 이쁜소녀에게 최대한 빠르게 날아가 잡았다.
재중이 형이야…….
뭐, 알아서 잘 살아남겠지?
그렇게 믿고 있다.
일단은.
“오빠, 고마워요!”
“하아…… 진짜, 일단 내려가서 이야기하자.”
“네! 엄청 재밌었어요!”
…….
내가 이쁜소녀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이미 레서 와이번을 소환해서 올라타고 있었다.
진짜 재주도 좋지.
“난 안 살려주냐?”
“형, 저랑 미녀랑 둘이 떨어지면 누구부터 구할 건데요?”
재중이 형이 당연한 듯 날 보면서 말했다.
“미녀.”
“거 봐요.”
“으음, 와이번이나 잡자.”
그렇게 지상을 내려다보니 바닥에 형편없이 처박힌 썬더 와이번이 보였다.
이미 날개 찢긴 와이번일 뿐.
더 이상 위압감과 같은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형, 마무리 가죠?”
“아아, 그래. 이왕이면 테이밍으로.”
“또 한동안 붙어 있어야겠네요.”
그렇게 얼마나 올라타고 있었을까.
한 번 떨어진 썬더 와이번은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했다.
《 썬더 와이번의 테이밍 조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테이밍에 성공했습니다. 회수하시겠습니까? 》
드디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갔네.
이제 더 큰물에서 놀 수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