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188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4)
보통 테이밍된 몬스터에겐 주로 출몰하는 지역이 친절하게 적혀 있다.
그간 테이밍 했던 트윈 헤드 헬하운드, 케르베로스, 거대 개구리, 레서 크라켄 모두 출몰하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안개 새는 말할 것 없이 안개 협곡이라고 나왔고.
즉, 출몰하는 서식지와 그 맵의 이름이 이제까지는 정확하게 동일했다.
하지만,
레서 와이번은 다르다.
“여기가 아냐?”
재중이 형의 물음에 다시 한 번 설명을 보고 난 뒤 대답을 했다.
확실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네, 여기가 안개 협곡이잖아요.”
“그렇지.”
“이 녀석은 서식지가 칼바람 둥지라고 되어 있는데요?”
“에? 뭐, 맵 이름이야 조금씩 바뀌니까. 아직 우리가 가지 못한 곳일 수 있고.”
“아니, 그게 큰 분류에서 칼바람 둥지라고 되어 있어요.”
미니맵은 지역과 구역 이름 별로 세세하게 나뉘어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자면, 하나의 지역은 여러 곳의 구역으로 구성이 된다.
“……아예 다른 지역에서 넘어왔다는 소리군.”
“네, 완전 다른 지역요.”
“이런 경우가 있나? 자기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아! 잠시만요.”
그 말에 방패전사가 업데이트했던 내역을 띄우더니 다시 한 번 공지를 확인하다가 뭔가를 찾아냈는지 우리에게 알려왔다.
“이거 보세요. 지역 네임드 외, 필드 네임드요.”
우리 팀이 모두 방패전사가 보여주는 공지의 한 부분을 바라보니 확실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보였다.
“필드 네임드는 고유 영역을 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리형 몬스터는 이동 가능하고.”
난감하네.
당시에 아무 생각 없이 넘긴 부분이었는데 막상 체감하니까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 네임드가 넘어와서 설칠 수 있다는 거네요?”
“아마 그렇겠지?”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잊고 있었는데 이 형도 사냥하는 걸 엄청 좋아했었지.
네임드가 두 마리.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네.
* * * * *
안개 새도 그렇지만 레서 와이번도 잘 올라탄다면 두 명이 어떻게 올라탈 수는 있다.
길이로 보면 레서 와이번도 충분히 가능은 하지만 문제는…….
“전부 다 비늘이라서 올라타기가 힘들지.”
레서 와이번의 단점.
기동력과 고도는 이미 확인을 해서 알겠는데 가장 중요한 탑승이 어렵다.
차로 치면 승차감이 안 좋다고 해야 하나?
분명 빠르겠지만 내부 서스펜션이나 쿠션은 최악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 타면 공격하기 힘들어요. 당장은.”
한 손 혹은 두 손 이상을 비늘을 잡고 집중해야 하는데 지금은 공격까지 시도하기엔 손이 좀 모자란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아마 익숙해지면 한 손으로도 얼마든지 비행과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개 새가 더 좋았어요.”
내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과 폭신폭신한 질감으로 승차감이 완전 최고였으니까.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지 비행에 익숙해지는데 안개 새만큼 좋은 것도 없다.
“으음, 역시 챠밍이 좋겠어요.”
“역시 그러냐?”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듣고 말했다.
“챠밍하고 같이 타. 확실히 그게 좋겠다.”
내가 운전을 하고, 원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뒤에 타는 것이 베스트다.
차선으로 나르샤가 꼽혔지만, 레서 와이번 위에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한 손으로 쏠 수 있는 석궁이 나오지 않으면 힘들다.
“나르샤 누나, 제작한다는 것은 어떻게 됐어요?”
“아, 석궁? 라미아 여왕을 좀 더 잡아야겠던데? 수량이 부족해서.”
“그랬어요?”
“새로 나온 템은 제작 재료 수량이 많이 들더라.”
접속하고 아이템을 만들러 갔던 이쁜소녀와 방패전사, 나르샤가 왜 그냥 왔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던가…….
“나중에 라미아 여왕 몇 번 더 잡으러 가요.”
오버가 아닌 라미아 여왕은 이제 충분히 잡을만하다.
사람들도 어지간해서는 일부러 오버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테니까.
당분간 드랍률이 떨어져도 그냥 자주 잡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할 것이 너무 많다.
라미아 여왕도 잡아야 하고 시간이 나면 케르베로스도 테이밍하러 다녀야 하니까.
거기다 새 맵도 뚫어야 하고 뭔지도 모를 네임드들도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앞으로의 강행군이 생각되는지 다들 눈 밑이 까맣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
방패전사의 말.
사실 저게 핵심이지.
거리가 너무 멀다.
섬에서부터 에띠앙, 거기다 이곳 안개 협곡까지.
로스트 스카이는 맵과 맵의 거리가 결코 짧지 않았다.
셋 다 챙기려면 이동 시간만 한 세월이다.
“어디 하나는 포기해야겠어요.”
챠밍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동 거리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셋 다 챙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하더니 칼 같이 선을 그었다.
“아쉽지만 케르베로스를 빼야겠지. 이젠 놓아주자.”
“그런가요. 사실 케르베로스가 제일 짭짤하기는 했는데.”
방패전사는 아쉬움이 남는지 포기를 못 하는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스칼렛이 말한 것이 실감이 나네.
우리가 다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벌써 거리의 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끔 생각날 때 가서 하고 오자. 매일 갈 수는 없고.”
최대한의 타협점인가.
저 정도는 괜찮다.
“그럼 일단 올라타.”
내가 먼저 레서 와이번의 등에 올라타서 목의 비늘을 잡고 챠밍을 불렀다.
챠밍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뒤에 올라타서 자세를 잡는 데 영 불편한 모습이다.
“으음, 좀 불편해요.”
등의 비늘을 잡으려는데 그게 쉬울 리가 있나.
“그냥 내 허리를 잡아.”
“아, 그러면…… 으음.”
빨리 가야 하는데 챠밍이 계속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왜?”
“아…… 으음, 네.”
뭔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를 내더니 바로 내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들어왔다.
아……!
으음…….
챠밍이 왜 자꾸 머뭇거렸는지 이제 알겠다.
등이…….
으음…….
접촉 시스템을 서로 풀지 않았다고 해도 완만한 굴곡은 그대로 느껴지니까 문제다.
“내리는 게 좋겠다.”
결국,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양심은 있는 놈이라.
너무 집중이 되니 제대로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챠밍의 귀가 더없이 빨개진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뇨…… 괜찮아요. 해도 돼요.”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휴…….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네.
“공중에 올라가면 더 할 건데?”
“……할 거예요.”
챠밍이 단호하게 말을 끊자 더 말릴 수 없게 됐다.
아, 나도 모르겠다.
“다녀올게요.”
“어, 그래. 한 마리씩 끌고 와. 우리도 타야 하니까.”
“네네, 그럼 갑니다.”
레서 와이번을 움직이자, 조금씩 날개를 펼치며 떠오를 준비를 하다 한순간 쫙, 펼치며 날아올랐다.
그 탓이었을까? 살짝 잡고 있던 챠밍이 바로 날 끌어안아 버렸다.
“꺅!”
…….
하……!
고난이다.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레서 와이번을 조심스럽게 몰았다.
어느 정도 고도가 되자 오히려 진동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비행이 가능했다.
“아까보다 나은 것 같아요.”
“그러게, 약간 활강하는 느낌도 들고 이건 안개 새보다 더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조금 더 고도를 높여서 올라가니 또 다른 레서 와이번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안개 새보다 고도가 훨씬 높아.”
“거의 두 배쯤 되어 보이네요.”
“챠밍, 저놈 공격할 수 있겠어?”
“네, 해볼게요. 맡겨주세요.”
레서 와이번은 원거리 공격 능력이 전무해 챠밍이 없으면 근접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아직 그것까지는 힘들다.
챠밍이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감고 다른 한 손으로 스태프를 들어 멀리서 날아다니는 레서 와이번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챠밍도 파워 글러브를 착용 중이라 한 손으로 무거운 스태프를 드는 데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다.
【 아이스 볼! 】
얼음 계열로 가는 건가?
확실히 결빙만 된다면 하늘에서 이것보다 좋은 것은 찾기 힘들지.
서로가 날아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챠밍의 아이스 볼이 아주 정확하게 날아가 퍼덕거리는 레서 와이번의 날개를 치고 지나갔다.
“나이스!”
확실히 감이 좋다.
유혜선 팀장이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하던데 정말 조만간 가봐야겠는걸.
서로의 거리와 빠른 움직임을 계산하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런 것은 전부 개인의 감이니까.
“결빙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보이네. 화난 것 같기도 하고.”
크어어!
멀리서도 확연히 들려오는 괴성을 지르면서 우리에게 빠른 속도로 레서 와이번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챠밍!”
“네! 가요!”
【 아쿠아 캐논! 】
내가 블랙 아쿠아 캐논을 쓰는 것도 고려했지만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빠지는 탈것의 특성상 자칫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챠밍을 데리고 온 것이고.
이번에는 거의 스치듯 아쿠아 캐논이 맞았는데 레서 와이번이 휘청거릴 뿐 그대로 우리에게 파고들었다.
“꽉 잡아!”
“네!”
이젠 부끄러움 같은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다.
챠밍이 내 허리를 꽉 잡자마자 최대한의 속도로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이대로 와서 들이받으면 우리 둘 다 무조건 떨어지니까.
“꺄악!”
최대한 하강을 하면서 좌측으로 빠르게 틀었더니 챠밍의 비명이 들려왔다.
지금도 이렇게 빠른데 나중엔 제어가 되려나…….
다행히 우리가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간 레서 와이번의 뒤를 다시 잡으면서 다시 한 번 챠밍이 공격을 했다.
【 라이트닝 애로우! 】
【 파이어 볼! 】
체력에 부담이 안 되는 애로우와 볼 계열의 마법을 연거푸 날렸지만, 약간의 경직과 꽁무니만 태우고 금방 마법이 사라져 버렸다.
맞추기는 정말 잘 맞추는 데 효과가 없네.
챠밍의 지력이 낮은 것도 아닌데…….
다른 서식지, 상위 개체라 그런지 더 먹히지 않는 것 같다.
레서 와이번이 날개를 활짝 펼쳐 한순간 속도를 줄이더니 오히려 속도가 붙어 있는 우리가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 오빠! 저희 뒤를 잡혔어요.”
챠밍이 뒤를 흘깃 바라보며 내게 이야기했다.
“와, 저게 무슨 전투기냐. 날개 저항을 걸어서 뒤로 빠지다니…….”
대체 이거 누가 만든 시스템이야?
쉽게 할 수 없는 기동을 레서 와이번이 해대기 시작했다.
그냥 노말 몬스터가 이래?
미친 거 아냐?
상위 지역에서 날아온 녀석이라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고.
엘리트 이상 가면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도 안 간다.
다행히 챠밍이 있어 끝없이 애로우와 볼 계열의 스킬을 남발하니 쉽게 달라붙지 못하고 우리 꽁무니에 붙어서 공격할 기회만 엿봤다.
공격의 반사적인 지능도 높고, 회피도 빠르다.
지금까지 봐온 것만 보면 공중에서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몬스터라고 생각된다.
이걸 타면 저 정도 기동을 할 수 있다는 소리겠다……?
정말 처절한 연습이 필요할 것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챠밍에게 바로 외쳤다.
“정말 꽉 잡아!”
내가 강조를 하면서 잡으라고 하자 챠밍이 한 치의 고민 없이 두 팔을 전부 내 허리에 감고 있는 힘껏 꽉 붙잡았다.
“간다!”
몬스터도 할 수 있는데 우리라고 못 하라는 법은 없지.
그대로 날개가 활짝 펴진 레서 와이번을 수직으로 세웠다.
“꺄아!”
몸과 날개가 공기 저항을 받으며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거의 멈추다시피 버티니 우리 옆을 레서 와이번이 그대로 지나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바로 원래대로 수평을 잡고 날개를 접으면서 속도를 타자 다시 뒤를 잡게 되었다.
“오빠, 진짜 대박. 딱 한 번 본 걸 그대로…….”
챠밍의 칭찬이 내 귓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어깨가 으쓱하는 기분이네.
“해보니 되네. 잘 버텼어.”
“네, 다시 쫓아가요!”
그 말과 함께 레서 와이번을 뒤쫓으면서 다시 추격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기초 마법으로는 뭔가 확실한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챠밍이 가진 마법 중 위력이 강한 것은 거의 다 땅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혹은 근접해서 써야 하는.
그 정도를 쓰면 확실히 먹히긴 할 거다.
지상이 아닌 것이 너무 아쉽네.
블랙 아쿠아 캐논을 날릴까?
확실히 효과는 있겠지만, 쓰고 나면 챠밍이나 나나 바로 내려가야 한다.
힐이 있어서 좀 더 버티긴 하겠지만.
어쩐다…….
한참을 그런 식으로 쫓고 쫓기는 레이스를 시작했다.
체력과 마력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데?
비교해보니 안개 새만큼 효율이 좋지 않다.
아마 이 등급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로 보였다.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는데 난감하네.
그때 챠밍이 내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빠, 지금 바로 끌어내릴 방법이 있는데.”
“응? 방법이 있어?”
“네! 우리가 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