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186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2)
“여기엔 지상 몹은 아예 없나?”
새 지역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몹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방패전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곳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장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계곡과 나무, 돌.
딱 그것밖에 없었다.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피로가 쌓이는 곳.
네임드로 추정되는 공중 몬스터에 떠밀리듯 낙하해서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진 후, 굴곡진 계곡을 타면서 단 한 번의 전투조차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산맥이 너무 가파르네. 시야가 너무 좁아. 애초에 지상에서 싸우라고 준비한 맵은 아닌 모양이다.”
한 발만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지와는 천지 차이다.
지금까지 겪었던 맵들은 대부분 넓고 몬스터가 사방에 퍼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놀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산에 등산을 온 사람처럼 가볍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떼는 여유가 생겼다.
이곳은 몬스터가 전혀 안 나왔으니까.
좀 길이 좁고 불편하긴 해도 지상 몬스터 자체가 하나도 없다.
“주변 풍경만 좀 더 좋다면 소풍 온 것 같은 느낌이 나겠습니다.”
어디를 가든 경계가 몸에 밴 방패전사가 저렇게 말할 정도니 뭐, 말 다 했다.
방패전사도 어느 정도 경계를 하다가 지쳤는지 이젠 그냥 미니맵만 바라보면서 길을 찾는 것에 열중했다.
미니맵이 있지만, 굴곡진 계곡이 대부분이라 제대로 전진하는 것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으니까.
“무조건 하늘로 가야 하나? 땅에서는 답이 없어 보이네.”
재중이 형이 결국 고개를 들어 주변에 솟아 있는 산맥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해서는 한숨 쉬는 일이 없는 재중이 형이 저러는 것은 맵이 정말 최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지상의 지형은 유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 같은 모습이다.
추측하자면 공중 탈것을 타고 지나가는 맵인 것 같은데, 엉뚱한 곳에 떨어진 탓에 완전히 길 잃은 미아가 되었다.
“한 마리라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네요.”
나 역시, 안개가 뿌옇게 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라도 있어야 테이밍을 해서라도 이 장소를 벗어날 텐데,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이라도 불편하지 않으면 그냥 달려서라도 벗어나 볼 텐데 경사가 너무 많이 져 있어서 어디로든 달리는 것도 힘드니 시간만 계속 흘러가는 중이다.
비유하자면 일직선으로 곧게 달릴 수 있는 길을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꼴이랄까?
다른 말로 하면 삽질.
그래, 우린 지금 삽질 중이다.
* * * * *
“어! 나타났다.”
그때, 뒤에서 걸어오던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가파른 산맥의 좁고 불편한 길을 걷다 듣기 좋은 목소리의 외침은 천상의 메아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었다.
“어디?”
그리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쁜소녀를 확 돌아보면서 물었다.
“어…… 어?”
시선이 몰린 탓이었을까, 이쁜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꺼번에 물어보면 좀 그렇지. 그래서 어디?”
재중이 형도 똑같네! 뭐.
이쁜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검지로 하늘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오! 있다.”
“있네. 저걸 어떻게 찾았어?”
방패전사와 나르샤도 눈을 가늘게 뜨며 감탄을 내뱉었다.
감탄을 한 이유는 안개가 뿌옇게 낀 하늘에서 뭔가가 옅은 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건 보기 힘들겠는데……?
“진짜 행운의 신이라도 붙어 있는 거냐?”
재중이 형이 어깨너머를 이리저리 살피는 척하자 부끄러운지 이쁜소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건 나도 못 찾았겠네.
정말 어떻게 찾았지.
문제는…….
“너무 높아요.”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높이에서 날아다니는데 지금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원래라면 안개 새와 같은 탈것을 타고 다니면서 잡아야 하는 높이인 것 같은데…….”
재중이 형도 오아시스를 발견했는데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인상을 찌푸렸다.
“최대한 가까이 가보는 건 어떻습니까? 가까이 가면 우릴 공격하지 않을까요?”
“음,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겠네. 자, 다들 가자.”
그렇게 다시 시작된 강행군.
가까운 곳처럼 보였지만, 막상 가려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곳을 내가 다시 오면 게임을 그냥 접는다. 어휴.”
재중이 형의 운영자에 대한 욕설과 비슷한 푸념을 들으며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멀리서 봤던 장소까지 도착했다.
확실히 공중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 아래로 오니 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전혀 안 덤비네요. 먹이라도 줘야 덤벼들까요?”
“글쎄다, 모르겠네.”
방패전사가 손도 휘저어보고 점프도 해봤지만 요지부동이다.
인식 범위가 먼 탓인지 공중 몬스터들은 우리에게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듯 했다.
“너무 높아요.”
이쁜소녀도 손을 저으며 점프를 해봤지만, 그냥 하늘만 날아다닐 뿐이다.
“그냥 마을로 귀환할까요?”
방패전사가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포기를 선언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가장 귀찮은 방법이었던, 마을로 귀환했다가 다시 이곳까지 오는 것인데 지금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뭐, 그것도 이제 고려해야지. 다시 계곡을 건너서 좀 더 테이밍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재중이 형도 거의 포기한 모양이다.
돌아가자는 소리를 웬만해서는 안 하는 편인데…….
“안개 새는 오늘은 테이밍할 수 없지 않아요?”
챠밍이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렇지! 그럼 저걸 무조건 테이밍해야 한다는 거잖아.”
종류가 같은 몹은 하루에 한 마리밖에 테이밍이 되지 않으니까.
갈아타면서 다니려면 다른 탈것이 필요하고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공중 몬스터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오빠, 전에 그거 하면 안 돼요?”
이쁜소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물었다.
뭔가 기대하는 그런 눈빛이다.
“응? 뭘?”
“연속으로 블링크 하는 방법이요.”
“으음, 블링크라…….”
그러고 보니 멀리 뛸 때는 블링크로 뛰었는데 왜 높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지?
그동안 너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만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무조건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가늠하니 어느 정도 견적은 나왔다.
“그래도 너무 높아.”
블링크를 두 번 연속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너무 높다.
단순히 블링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그리고 단순히 블링크를 연속으로 사용하기엔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남은 방패가 내가 기억하기로 방패전사가 가진 것 하나 뿐이라 스킬의 디딤돌로 점프할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까.
허공에서 바로 이동형 스킬이 써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것까지는 안 해주려는 모양이고.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안개 새가 있으면 이런 고민조차 안 해도 되는 데 정말 아쉽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이쁜소녀가 던켈을 몇 번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응?
아! 그래, 혼자 다 할 필요는 없지.
계곡을 넘어올 때, 도움을 받았다면 아마 그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성해야겠다.
내겐 좋은 동료들이 있으니까.
혼자서 씨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높아진 스탯 탓에 요새 너무 혼자 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그럼, 부탁해.”
내 말에 이쁜소녀가 해맑게 웃어 보였다.
일단 첫발은 이쁜소녀에게 맡기고, 이걸 시도하려면 가능한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챠밍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했다.
“잠시 나랑 실험 좀.”
“네, 뭐 도와드리면 돼요?”
“으음, 스킬 위에서…….”
나와 챠밍이 이것저것 연습을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거 또 일내겠네.”
“그렇죠? 우린 뭐 할 것 없답니까?”
방패전사도 궁금한지 보다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형들도 도와주셔야 해요. 블링크로는 절대 못 올라가니까요.”
어쩌다 보니 아주 큰 작전이 되어버렸다.
파티원 전원이 뛰어야 하는.
계획을 전달 받은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바로 혀를 내둘렀다.
“……가능은 하겠지만, 이러면 탈것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냐?”
“뭐, 잠시만 떠 있는 거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운영자가 보면 기절하겠군.”
그렇게 시작된 작전.
이쁜소녀와 방패전사가 같이 서고 나와 재중이 형이 반대편으로 멀리 걸어갔다.
【 헤이스트! 】
처음 써보는 스킬.
챠밍이 몇 번 연습 삼아 쓰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점검 끝나고 바로 온다고 잊고 있었던 스킬이다.
그간 케르베로스가 이속을 해결해 주었으니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좋다.
좋은 스킬은 맞다.
민첩이 무려 10이나 올라가니까.
고정은 아니고 내가 가진 체력과 마력에 비례하는 모양이다.
다만, 단점이 크다.
쓰는 동안 체력과 마력이 한꺼번에 깎여나간다.
그것도 퍼센트로.
오래 쓰면 상대방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는 말도 안 되는 스킬이기도 하다.
원래는 거의 3배의 속도,
이걸 쓴다면 4배까지 이속이 올라간다.
몇 번 몸을 움직여봤더니 빠르게 적응하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격차가 나타났다.
이거 연습 좀 해야겠는걸.
“준비됐어요?”
“됐어요!”
“이쪽도.”
이쁜소녀와 방패전사가 준비됐다고 하자 재중이 형이 먼저 반대편에서 이쁜소녀와 방패전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나도 자리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발을 뻗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평소보다 월등하게 빠른 속도에 놀라면서 이쁜소녀에게 달려가니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곤 바로 던켈을 강하게 휘둘렀다.
다행스럽게도 재중이 형이 먼저 방패전사가 휘두른 던켈을 밟고 하늘로 점프했다.
역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연습조차 안 했는데 금방 따라 하다니.
나도 이쁜소녀가 휘두른 던켈을 밟고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박차고 뛰어올랐다.
던켈의 회전력을 얻어 점프하니 평소라면 도달하지 못했을 높이까지 나와 재중이 형이 올라왔다.
그대로 재중이 형이 온몸을 비틀며 블랙 슈피스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렀다.
“가라!”
아래에서 빠르게 올라오는 창대의 끝을 밟은 뒤 다시 점프를 하니 재차 가속이 붙으며 하늘로 더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챠밍!”
“네! 가요!”
【 블링크! 】
지상에서 블링크를 사용해 순식간에 내 바로 밑에 나타난 챠밍이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 아쿠아 웨폰! 】
【 아쿠아 캐논! 】
이건 방패전사의 물의 방패로 그대로 막는다.
현재 밀어내는 스킬에서는 최강인 아쿠아 캐논을 방패로 막자 몸이 자동으로 하늘로 밀려올라갔다.
“부탁해요. 오빠.”
“맡겨둬. 저놈 잡아온다!”
그러면서 챠밍은 점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밑에서 팀원들이 받아줄 테니 챠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쿠아 캐논이 밀어내는 것이 끝나갈 무렵.
이제 마지막으로,
【 블링크! 】
목표했던 보다 높은 장소를 빠르게 지정하고 블링크를 쓰자 순간 내 몸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어, 뭐야?’
분명히 지금쯤 저 높이 날던 공중 몬스터 근처에 도달해 있어야 하는데?
느끼기에도 블링크를 쓰기 전과 후가 거의 다르지 않다.
대체 무슨 일이야?
《 지정하신 장소로 블링크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하!
블링크가 안 돼?
그동안 시스템 설명이 좀 불친절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안 된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공중으로 장소 지정이 가능했는데…….
실제로 이동은 안 되다니.
<불멸> 왜 그러고 있어?
<주호> 형!
<불멸> 왜?
<주호> 우리 망했어요!
블링크가 버그라니…….
망할 운영자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