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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85화 (185/1,404)

# 185

#185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끼어들면 (1)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함이다.

지상 몬스터와 달리 검붉고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펴져 있으니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안개에 가려진 나머지 꼬리를 비롯한 뒷부분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거기다 날개의 색보다 짙은 붉은 눈이 안광을 흩뿌릴 때마다 스사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뭐야 저게…….

여기 아직 시작 지점 아니었어?

‘안개 새’ 정도를 생각했는데, 저런 놈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외곽 지역이라는 것, 늪지대에서 넘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저놈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날개를 휘젓는 모션만으로도 파공성이 일며 사방의 안개를 밀어낼 정도다.

그리고 그 기류에 휘말려 우리가 타고 있던 안개 새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비약하자면 벌새와 매의 차이랄까?

크허어어!

아직 제대로 생각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는데 저런 하울링을 내뱉다니…….

이건 100% 경직 기술이다.

과거 오크 족장이 사용했던 기술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쿠아 블레이드를 꺼내 팔을 그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몸의 경직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꺅!”

“몸이……!”

“움직이지 않아!”

“이런…….”

주변을 둘러보자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 방패전사까지,

우리 팀 누구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안개 새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재중이 형만 제외하고.

역시 재중이 형이다.

내게 들었던 방법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바로 시도한 모양이다.

하지만,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다.

대체가 늦은 탓이다.

“형!”

“알아!”

형은 됐고,

급한 것은 눈앞의 거대한 괴수가 아니라 팀원이다.

지금과 같이 높은 고도에서 추락하는 것은 죽음을 특급으로 예약한 상태와 같으니까.

방패전사를 살리고 싶었지만, 전방에서 날아가다 보니 후방에 있던 나와 멀기도 했고, 지금은 경직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형! 나르샤 누나 좀 부탁해요!”

나보다 재중이 형의 낙하지점이 나르샤에게 훨씬 가깝다.

형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쪽은 이쁜소녀와 챠밍이 동시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괴물은?

무심코 위를 쳐다보니 안개 사이로 이미 몸체는 지나가고 꼬리 끝부분만 보이다가 사라졌다.

우리가 타켓이 아니었나?

다시 내려오려나?

내려오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곧장 인벤에서 과거 해적선에서 사용했던 갈고리를 꺼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라고 생각해 가지고 다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이것도 정말 잘 던져야 한다.

추락하는 사람의 가속도와 내가 던진 갈고리가 정확한 타이밍에 일치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그 한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조절해서 던지지 못하면 챠밍이나 이쁜소녀가…….

이쁜소녀는 내 후방에,

챠밍은 좀 먼 전방에.

둘의 거리가 제법 된다.

하지만 누굴 먼저 구할까, 라는 그런 고민은 찰나라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고민을 해.

그냥 둘 다 구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

그동안 쌓아온 스펙과 내 감각.

내 몸은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떠올리자, 이제까지와 다르게 더 없이 집중이 되었다.

거기서 집중을 좀 더 끌어올리자 주변의 흐름이 마치 느리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딱 한 지점.

그전까지와 전혀 다른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밀한 기계가 움직이듯 하체부터 허리까지 순차적으로 힘을 끌어올렸고, 어깨, 팔꿈치, 그리고 손목과 손가락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갈고리를 쏘아냈다.

쏘아져 나간 갈고리가 이쁜소녀의 허리 부근을 매섭게 지나쳤을 때, 잡고 있던 밧줄을 컨트롤하여 그대로 허리를 감아 잡아 당겼다.

그렇게 끌려온 이쁜소녀가 내 품에 강하게 부딪치며 안기더니 새된 비명이 터졌다.

“꺄악!”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받는다고 했지만, 공중에서 몸이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예상보다 낙하코스가 더 멀어져 버렸다.

시선을 돌려 챠밍을 보자 챠밍이 추락하는 동안에도 나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아직 끝이 아니니까.

【 블링크! 】

마지막 방패, 그것을 꺼내며 블링크를 사용했다.

대회를 준비할 때, 챠밍이 알려주었던 팁이 있었다.

블링크를 시전할 때, 신체가 붙어 있거나 잡고 있으면 한 명으로 인식해 블링크가 된다는 것.

그것이 챠밍을 구하게 될 줄이야.

“어라?”

“아…….”

이쁜소녀는 어리둥절하며 눈을 깜빡거렸고, 챠밍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기쁜 미소를 지으며.

“난 우리 팀을 버리지 않아.”

그 말과 함께 챠밍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수줍게 내미는 손을 꽉 잡아 내게로 끌어당겼다.

이제 둘 다 내 품에 데려오긴 했는데…….

뒤가 문제다.

이게 통했으면 좋겠다.

“이거 안 되면 같이 죽겠네요.”

“전 괜찮아요.”

“저도…….”

두 명이었다면 블링크로 바닥에 어떻게든 착지했을 것이다.

이젠 다른 방법을 써야지.

“잠시만 매달려!”

내게 매달려 있는 둘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아쿠아 블레이드 두 자루를 꺼냈다.

꺼내자마자 바로 기술을 차징하기 시작했다.

정말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기 전까지.

그리고,

【 블랙 아쿠아 캐논! 】

두 발을 동시에 써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큰 기술을 쓰면 후폭풍이 일어난다.

바닥에 기술이 적중하면서 생긴 폭발과 역풍에 내 몸과 챠밍, 이쁜소녀의 몸이 휘말리며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효과를 냈다.

물론, HP가 확 깎이긴 했지만.

바닥에 처박혀서 죽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 좋지.

거친 역풍에 휘말린 채 모두 지면에서 거칠게 나뒹굴었다.

“꺄아악!”

그렇게 셋 다 형편없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하, 살았네.”

내 말에 챠밍과 이쁜소녀가 바닥에서 겨우 자세를 바로 잡고 자신들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봤다.

살아있다는 안도의 표정인가?

경직은 일단 풀린 모양이다.

그리고 바로 날 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진짜 이번엔 죽는 줄 알았어요.”

“오빠 최고!”

두 사람 모두 내게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됐는지 궁금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재중이 형이 나르샤를 안고 바닥엔 창을 내리꽂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진짜 살렸네.

저 형도 참 능력자다.

우리가 무사한 것을 본 재중이 형이 십년감수 했다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여기서 죽으면 한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하니까.

그리고 일단 죽는 것 자체가 싫기도 하고.

내가 죽는 것도 싫지만 우리 팀이 죽는 것은 더 싫다.

“방패전사는?”

나르샤가 제일 먼저 방패전사를 찾는다.

티격태격 해도 챙길 때는 챙기는구나.

그렇게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다 상당히 먼 곳에 방패전사가 넝마가 되어 손가락만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릴 보자마자 결국 한 마디 했다.

“아이고, 허리야.”

***

“우리 팀은 버리지 않는다면서? 나 다 들었다?”

“하하…….”

그걸 또 들으셨네.

어느새 체력을 회복한 방패전사가 다시 쌩쌩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면서 말했다.

“섭섭해.”

“전사 형은 몸으로 때우셔도 살 것 같아서요.”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담엔 좀 살려주라. 허리 끊어질 뻔했다. 이 나이에 이러면 안 돼.”

그 장난스러운 말에 모두가 웃었다.

역시 성격이 좋다.

이러니 우리도 편하고.

방패전사까지 수습하고 난 뒤 탈것들을 확인하니 이미 다 죽어 역소환을 당했다.

“이거 난감하네.”

재중이 형이 꽤 난감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지상 탈것도 죽을 것을 대비해 여러 마리 가지고 다녔지만 공중 탈것은 여분이 없다.

“살리려면 마을로 가야 하니까 문제네요.”

방패전사가 말했듯 하르페까지 가야 펫을 살릴 수 있다.

탈것 전용 NPC에게.

사람들이 한참 죽은 펫들은 즉석에서 살릴 수 있도록 템을 업데이트해달라고 했는데, 아직 별다른 말이 없다.

이상하게 탈것에 대해서는 깐깐하단 말이지.

그리고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대체 그거 뭐야?”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을 꺼냈다.

“저도 모르죠.”

공중에서 봤을 때, 스칼렛이 언급한 엘리트 공중 몬스터가 아닌가 했는데 그러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크다.

마치…….

“케르베로스 같았죠?”

나르샤가 내가 생각했던 말을 그대로 말했다.

엘리트는 가질 수 없는 그런 압도적인 존재감, 외형 퀼리티, 몸의 크기까지.

엘리트와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지상에서의 분위기는 케르베로스 정도일까.

딱 생각나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쁜소녀도 두 손을 꽉 쥐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질리도록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다들 순간적으로 굳었으니까.

“네임드겠죠?”

내 질문에 재중이 형이 고민 없이 대답했다.

“아아, 백프로지.”

“네임드가 이런 외곽까지 나와 있다니…….”

내 중얼거림에 챠밍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외쳤다.

“몬스터 순환!”

“순환요!”

확실히 그게 아니면 네임드가 이곳까지 돌아다닐 수 없다.

“그래도 공격을 안 해서 살았어요.”

공중에서 우리가 얼마나 불리했는지 챠밍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 보는 네임드를 다른 곳도 아닌 하늘에서 만나고 살아 있다는 것만 해도 천운이다.

만약, 공격을 당했으면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공중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날개가 새로 생기지 않는 이상은.

“안개 새로는 안 돼. 절대 못 잡아. 피어 한 방에 나가떨어지면.”

재중이 형도 바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개 새로는 버틸 수가 없다.

거기다 속도 자체도 다르고, 기동력도 차이가 심하다.

실제로 피어가 없다고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안개 새부터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탈것이 필요해.”

공중 네임드에 비벼보려면 최소 엘리트, 혹은 같은 네임드를 테이밍 하는 것인데 지금 이건 불가능하지.

혹은 우리가 잘 싸울 수 있는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게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것은 엘리트네요.”

“사실 뭐, 그것도 피어에 완벽하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우리가 버틴다고 해도 탈것이 버티지 못하면 게임조차 성립하지 못한다.

그냥 공중에선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 불리함을 최소한으로 줄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엘리트라…….

어디서 구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당장 그것밖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외형이 너무 달랐습니다.”

갑자기 방패전사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외형이 다르긴 했었다.

한 눈에 차이가 날 정도로.

“보통은 그 지역 네임드와 비슷한 형태의 하위 몹이 사방에 있는데 아까 그 네임드는 거의 익룡에 가까웠지.”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

“반면에 안개 새는 조류에 가깝죠.”

방패전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가죽이 튼튼한 익룡.

그리고 깃털이 있는 조류.

이건 완전히 태생부터가 다르다.

나르샤가 듣고 있다가 결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결론은 이 지역에 두 종류의 완전히 다른 계열의 몹이 있다는 소리겠네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심각해진 얼굴로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최악의 경우…… 이 지역에 네임드가 두 마리 이상 있을 수 있다는 소리지.”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한 공간에 네임드가 두 마리라.

던전과 지역에 각각 한 마리씩 있는 경우는 있어도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나도 생각나는 것을 바로 이야기했다.

“아마, 공중 몹이라 던전은 없을 거예요. 그럼 둘 다 외곽을 돌아다닐 확률도 무시 못 하겠네요.”

내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챠밍이 뭔가 생각난 듯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대체 뭘 생각했기에 저런 표정이지?

챠밍이 말할까 말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저기 다른 계열 몬스터끼리는 서로 죽여서 성장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 몸이 굳었다.

설마……?

“어쩌면 둘 다 오버된 네임드일 수도 있겠…….”

저 말이 진짜라면.

어쩌면 우린.

지금 펄펄 끓고 있는 용암 구덩이 속으로 몸을 집어넣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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