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184화 안개 협곡 (5)
다행스럽게도 계곡을 넘어가지 못한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유유히 안개 새를 타고 계속을 넘어가는데 반대편에선 밧줄을 타고 가느냐 마느냐로 한참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자칫 실수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건가?
더 가까이 날아가자 그제야 나를 발견한 듯 다들 날 바라봤다.
“어? 새다!”
“오빠?”
이쁜소녀와 챠밍이 깜짝 놀란 채 나를 바라봤다.
일부러 테이밍에 성공했다는 말을 하지 않아 저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대로 안개 새를 착지시켰더니 우리 팀 모두 안개 새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새에요!”
“테이밍 결국 하셨네요?”
“정말 되는구나. 공중 몹도.”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 모두 놀란 눈을 하고 안개 새를 이리저리 살폈다.
“깃털 색깔 너무 예쁘다…….”
“날개 끝에서 안개 나오는 거 봐. 정말 신기하네요.”
“배가 토실토실하네, 이런 새가 정말 날다니…… 같이 스샷 찍어둘까?”
누구 할 것 없이 셋 모두 안개 새 하나를 세워두고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하다 마지막으로 스샷을 찍었다.
확실히 안개 새가 귀엽기는 하다.
잡기 전만 해도 이빨을 바싹 세워 포악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온순하고 배가 불룩 나온 병아리 같은 모습이니까.
국민 탈것이 될려나?
아직 다른 공중 탈것은 확인을 못 해봐서 모르겠지만, 마음에는 쏙 드나 보다.
“오빠, 저도 하나 잡아주시면 안 돼요?”
이쁜소녀가 두 손을 모은 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날 바라보면서 말했다.
“넘어가면 많으니까 하나 잡아줄게.”
확실히 잡으려고 생각하면 고생은 좀 하겠지만 어렵지는 않지.
내 말에 나르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혼자 여러 마리 못 잡지 않아?”
“아! 맞다. 안 되죠…….”
이쁜소녀가 실망한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아,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같이 타고 잡아줄 수도 있고.”
케르베로스를 테이밍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둘이 타서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힘 스탯이 전보다 더 올라간 상태라 공중에서 같이 버티는 것이기는 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재중이 형 혼자 반대편에 두는 것도 위험하니까 한 명씩 넘어가죠.”
그 말을 하자마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날 바라보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좀처럼 내게 뭔가를 요구하는 일이 없는 나르샤도 이번에는 같이 동참해버렸다.
셋 다 귀여운 것은 참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마치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들 같은 눈빛으로 모두 날 바라보자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으음, 난감하네.
누굴 먼저 태우지?
***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내가 택한 것은 방패전사.
아직 어떤 몹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방패전사부터 태워 계곡을 건넌다고 하자 실망 혹은 안도의 한숨의 셋에게서 들렸지만 애써 외면해버렸다.
“후, 이것도 장난 아니네.”
방패전사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서 몸을 흠칫 떨었다.
“밑에 보지 마세요. 저도 어지간하면 안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진짜 그래야겠다. 빨리 가자.”
그러면서 내 허리를 두 팔로 꽉 감싸 안았다.
“윽, 숨 막혀요.”
“안전하게 가자!”
“전사 형이 뒤에서 앉으니 기분이 영 별로네요.”
“야, 나도 그래. 누군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근데 자동으로 이렇게 되네.”
그러면서 날 안은 손으로 배를 문질 거리자 소름이 확 솟구쳤다.
“아, 진짜! 장난치지 말죠? 나르샤 누나한테 이를 겁니다?”
“흐흐, 장난 좀 친 거 가지곤. 어여 가자.”
“한번만 더 하면 진짜 떨어뜨릴 겁니다.”
“항복!”
방패전사가 웃으면서 팔에 힘을 풀었다.
다음엔 방패전사는 뒤에 태우지 말아야겠어.
정말 빨리 가야겠다.
바로 안개 새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끌어올렸다.
반대편에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바로 재중이 형과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지켜보다가 비행시간이 차자 다시 계곡을 넘어갔다.
“누가 먼저?”
“일단, 내가 먼저.”
내가 없는 사이에 순서를 서로 정한 것 같네.
나르샤가 손을 살짝 들더니 바로 내게 다가와 안개 새에 올라탔다.
올라타고 안개 새가 계곡을 날기 시작하자 나르샤가 감탄을 흘렸다.
오롯이 자기의 힘만으로 하늘을 난다는 것.
현실에서는 레저 스포츠나 다이빙 정도가 아니면 하늘을 날아볼 기회가 거의 없다.
아니 그런 경험 자체를 못하고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놀이기구가 하늘을 난다고 표현하기는 힘들기도 하고.
엄청나게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져도 실제로 죽지 않는 안전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공중 펫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가상현실은 그 값어치가 충분히 있다.
이 패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로스트 스카이를 찾게 될까.
나르샤도 거기서 크게 다르지는 않아 주변을 가르는 바람과 끝없이 높은 하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계곡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다 좋은데,
흘깃 뒤를 바라보니 양손으로 등의 갈기를 꽉 잡고 있는 것이 꽤 위태로워 보였다.
저러면 떨어질 것 같은데.
“누나, 그냥 제 허리 잡으세요. 그러다 떨어져요.”
“안 떨어져 걱정 마.”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괜히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
순간 좌우로 안개 새를 흔들었더니 나르샤가 기겁을 하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꺅! 너! 장난치면 죽어!”
“하하, 네.”
참 나도 이게 왜 재밌는지 모르겠네.
챠밍이랑 이쁜소녀에게도 해볼까…….
***
“꺄아아아악!!”
내 허리를 꽉, 안으며 챠밍이 비명을 질러댔다.
윽, 귀가 아프네.
확실히 가수는 가수구나.
하이톤의 비명에 계곡이 무너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이거 장난 두 번 쳤다가는 목이 쉴지도 모르겠네.
한참 비명을 지르던 챠밍이 내 허리를 꽉 안은 채로 울먹이면서 말을 꺼냈다.
“진짜 하지 마요……!”
“응, 미안.”
그나저나 너무 무서워하는데?
이래서 공중 펫을 탈 수나 있으려나.
반대편 계곡에 착지하기 무섭게 챠밍이 훌쩍 내리더니 땅을 손으로 짚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밧줄을 타라고 했으면 절대 못 넘어왔겠네.
그리고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냐?”
“재밌지?”
“하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걸 다 들었으니…….
나르샤는 챠밍을 보고 날 한 번 스윽 보고 난 뒤 데스 위버를 꺼내 손으로 활시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하면 죽인다는 뜻인가?
장난도 못 치겠군.
남은 사람은 이제 이쁜소녀뿐이다.
다시 반대편으로 넘어가 얌전하게 태워 넘어오려고 했는데 이쁜소녀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전 안 해줘요?”
“응?”
“꺄악, 하는 거요.”
“아…… 그럴 사정이 있어.”
한 번 더 하면 진짜 나르샤에게 쫓겨 다닐 것 같아서 그렇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했다.
왠지 아쉬운 표정을 짓는 이쁜소녀를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반대편까지 데리고 오자 한바탕 전투가 있었는지 주변이 마법과 스킬이 사용된 자국이 가득했다.
“또 나타났어요?”
“어, 보다시피. 이 근처로 순찰하는 형태인 것 같다.”
재중이 형과 같이 바라본 곳엔 안개 새 몇 마리가 챠밍의 물의 가시에 잡혀 있었다.
용케도 저걸 물의 가시에 가뒀네.
내 시선을 느낀 챠밍이 말을 이었다.
“전사 오빠가 리플렉션 방패로 막아서 떨어뜨려 줬어요. 불멸 오빠는 창으로 검은 가시를 써서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고요.”
음, 그렇단 말이지.
리플렉션이 패치됐다고는 해도 이런 일반 몹에게는 재앙이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은 나 외에는 최고 수준이니 제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지금이 기회다.
“일단 한 마리씩 테이밍 해볼래요?”
내가 말을 꺼냈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이 형 외에는 이미 공중 펫을 타본 상태라 가지고 싶은 생각이 가득할 테니까.
바로 방패전사가 안개 새에 올라타고 테이밍을 시도했다.
“어? 이거 왜 이래?”
방패전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안개 새가 계속 고도를 높이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5층 높이까지는 올라가겠지.
난 이미 겪어 별 감흥은 없었지만, 우리 팀은 보면서 깜짝 놀란 모양이다.
“놀이기구 한 번 타는 셈 치고 다녀오세요.”
마중 나가듯 손을 흔드니 방패전사도 내게 손을 흔든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시구만.
하지만 저게 언제까지 유지될지.
그렇게 안개 새의 공중 쇼가 바로 시작됐다.
흔들고, 뒤집고, 낙하하고.
그리고 방패전사의 비명도 계곡을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저 모습에 여유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저도 저렇게 해야 해요?”
“……아마도?”
챠밍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방패전사를 보더니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클라이맥스는 역시 뒤집어서 터는 장면.
방패전사가 두 팔과 다리로 하늘에서 버티는 아찔한 장면에 다들 비명과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나만 당할 순 없지.
오늘 재밌겠구나.
***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은 나와 같은 개고생을 해가면서 겨우 테이밍에 성공했다.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챠밍도 이건 아닌지 나르샤와 이쁜소녀에게 순서를 양보해 나르샤가 먼저 안개 새에 올라탔다.
나르샤도 썩 내켜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언니라서 먼저 나선 것 같기도 하고.
“아, 잠시만요.”
“응? 왜?”
“혹시 이거 되나 해보려고요.”
혹시나 누가 건너올까 회수했던 밧줄을 안개 새의 목에 바로 감았다.
그리고,
【 오우거 하트! 】
나르샤를 태운 안개 새가 날아오르자 바로 밧줄을 팔에 감아강하게 잡아당겼다.
꾸엑—
조금 떠오르다가 내가 당기는 힘에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안개 새를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야, 이건 반칙이잖아.”
방패전사가 바로 날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게 있으면 아까 했어야지.”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
원망이 좀 담겨 있는 그런 눈빛이다.
“지금 생각이 나서요.”
반면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는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오빠 최고!”
“믿고 있었어요!”
“잘했어!”
특히 챠밍이 평소보다 더 격하게 최고를 외쳐댔다.
저렇게 좋아하던 때가 또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내가 밧줄로 잡아당기는 방법을 쓰니 너무 무난하게 모두 테이밍을 성공해 버렸다.
그리고 남아 있는 안개 새들 역시, 깔끔하게 정리했다.
애초에 공중으로 올라가지를 못하니까 공중재비고 뭐고 할 수가 없다.
그저 바닥에서 바둥거릴 뿐.
“고마워요.”
챠밍이 안개 새를 옆에 세워두고 부드러운 깃털에 얼굴을 파묻고 엄청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쁜소녀, 나르샤도 할 것 없이 모두.
일단, 기본적인 준비는 끝났나?
“형, 이제 다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옮겨 다녀볼까요?”
연습으로 근처를 조금씩 날아보더니 이제 다 익숙해졌는지 아까와 같은 공포감은 사라졌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챠밍은 어느 정도 곡예가 가능할 정도로 타는 실력이 향상됐다.
역시 다들 센스가 좋다.
“이 근처는 안개 새만 나오니까. 드랍 템도 전부 부리나 깃털 종류에 제작 템이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옮겨보자.”
공중 탈것에 대한 연습을 겸해 사냥을 하면서 이 근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얻었다.
“이거 장사해도 되려나요?”
방패전사가 안개 새와 낭떠러지를 가리키면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우리가 일일이 태워서 협곡으로 옮기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하루에 한 번, 한 마리씩 테이밍한 것을 파는 것도 그렇고 희소성은 있겠지만 큰돈을 벌긴 무리지.”
“둘 다 수익은 별로겠습니다.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방패전사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정하고 하루 종일 옮기면 뭐…… 그래 봐야 경쟁자들만 웃게 만드는 거니까. 굳이 다른 사람들을 지금 넘어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전혀 없지.
모두 같은 생각인지 그에 대해서 누구도 반론하지 않았다.
스칼렛이 정보 제공을 하긴 했지만, 굳이 이 이상 뭔가를 약속한 것도 아니니 지금 이 상태가 제일 좋다.
“그럼, 더 큰 뭔가를 위해서 움직여보자.”
재중이 형이 먼저 안개 새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오르자 우리 모두 비행을 시작했다.
최대 고도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이곳 지형 대부분 산지라 공중 탈것이 아니면 엄청난 난이도로 산을 계속 타야 할 것 같다.
“여긴, 절대 걸어서 못 다니겠습니다.”
방패전사가 아래를 보더니 혀를 찼다.
“그러니 탈것을 준비했겠지. 일단, 전부 산이니까. 다들 뭔가 보이면 바로 신호해.”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와 제일 앞.
중간은 챠밍, 나르샤가, 그리고 나와 이쁜소녀가 후방을 맡았다.
언제 뒤로 뭔가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너무 봐야 할 곳이 많아요…….”
이쁜소녀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계속 살폈다.
그리고 아래쪽과 위쪽도 한 번씩 바라보고.
“평지와 다르니까.”
평지면 사방만 잘 살피면 되는데 이건 위고 아래고 언제든 위험한 순간이 올 수 있으니 전부 다 살펴야 한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라 신경을 배는 더 쓰는 것 같다.
그때,
재중이 형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모두가 반드시 들을 수 있도록.
“다들 피해!”
뒤쪽을 살피다 재중이 형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전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의 안개 속에서 아주 거대하고 검은 물체가 쩍 벌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앞세워 안개를 뚫고 튀어나왔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를 앞세워서.
안개 새와 덩치부터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도저히 비슷한 종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대체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