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83화 (183/1,404)

# 183

#183화 안개 협곡 (4)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잠깐의 휴식으로 가라앉으려는 찰나 경고음을 계속 울렸다.

짙은 안개가 바람에 밀려나면서 만들어지는 흐름이 피부에 닿자 온몸을 울리는 감각에 아쿠아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들어 올렸다.

뭐지?

땅의 진동이 전혀 없어?

날카로워진 감각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몬스터들은 보통 고유한 발걸음이나 진동을 가지며 달려든다.

보통 돌진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 그런 것을 느끼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극도로 제한된 시야 때문에 월등히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안 걸려?

그러면…….

아래가 정답이 아니라면 무조건 위다.

보고 나서 반응하면 늦는다.

그리고 뭔가가 짙은 안개를 뚫고 나오며 지나치려는 순간 자세를 확 낮추면서 빠르게 아쿠아 블레이드를 올려쳤다.

까앙—

생물이 와서 부딪쳤는데 쇠와 쇠가 맞닿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낙하를 했는지 원래 이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오우거 하트를 쓰고 있는 내 손목이 저릿할 정도로 충격을 주고는 금세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새인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형태를 봐서는 새가 맞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빠른데……?

기본적으로 지금껏 봐온 지상에 있는 것은 이 정도의 이동 속도를 가지지 못했다.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낙하하는 그런 속도라고 해야 하나.

평범하게 저런 속도를 냈다면 이 녀석은 괴수 수준이고, 그냥 낙하해서 이 정도의 속도를 냈다면 어느 정도의 난이도로 타협의 여지가 있다.

그런 속도를 매번 낼 수는 없을 테니까.

다시 사방의 안개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감각을 끌어올리자 이번에는 몇 마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 포착됐다.

하나, 둘…….

아니…… 다섯인가?

보통 지상 몬스터도 무리로 다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니다.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안개 속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는 것을 아쿠아 블레이드로 부리와 발톱을 긁듯 쳐내고 난 뒤, 다시 자세를 잡았다.

확실히 한 번 공격하고 나면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이다.

처음 공격과 두 번째 공격의 간격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때,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

<주호> 형, 혹시 지금 건너오고 있어요?

<재중> 어, 내가 먼저 건너가는 중이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애들은 못 넘어오겠는데? 흔들다리도 이거보단 안전하겠다. 내가 무슨 특수 요원도 아니고.

나야 뛰어 넘어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밧줄 하나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밧줄을 더 넘기려고 했는데 새들이 난동을 부려 지금은 힘들어졌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주호> 형, 돌아가요. 지금 넘어오면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재중> 혹시 공중 몹이냐?

역시 말 안 해도 척이면 척이다.

<주호> 방금 공격당했어요. 저야 땅이라 괜찮은데 형은 지금 공격당하면 무조건 떨어질 거예요. 겨우 떨칠 정도로 빨라요.

<재중> 수신 양호. 지금 떨어지면 안 되지. 바로 튄다.

저쪽은 안심인가?

일단, 뭐라도 하려면 새들부터 전부 떨어뜨려야 할 텐데…….

시간차라…….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더 많은 새가 몰려들 수도 있다.

가뜩이나 시야도 좋지 않아 다른 몹도 더 달라붙을 수 있으니 빠르게 여기서 정리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던켈을 꺼냈다.

저 새들과 이 사냥터의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던켈은 한두 단계 위의 사냥터에서 나오는 무기다.

안 먹힌다는 우려는 하지 않는다.

다시 안개가 흩어지면서 새들이 날아올 조짐이 보이자 바로 바닥에 던켈을 내려꽂았다.

【 어스 퀘이크! 】

보통 공중에 떠 있으면 절대로 안 맞겠지만.

날 공격하려고 바닥에 가깝게 떨어지는 지금이라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짙은 안개를 뚫고 날아오던 새들이 어스 퀘이크의 돌 파편과 폭풍에 전신을 난자당하면서 바닥에 내다 꽂혔다.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어스 퀘이크의 돌 파편에 정면으로 얻어맞자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거기다가 가속으로 하강하던 속도로 바닥에 꼬라박다 보니 경직이 왔는지 쉽게 회복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꿈틀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더욱 몸을 비틀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인가…….

이름을 보니 안개 새라고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 깃털에 날개 쪽만 옅은 안개처럼 기운이 점점 흩어진다.

마치, 이 새가 만들어내는 것처럼 몸에서 안개가 점점 흘러나와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모두 노란색의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있고 몸집이 커서 둔해 보이지만, 실제로 날아다니면 또 모르겠다.

충분한 가속이 붙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저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지역 특색인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을 보면 스칼렛이 말한 엘리트는 아닌 모양이고…….

새로 생긴 지역이면 적어도 검은 호수보다 강하다는 소린데 이렇게 나가 떨어질리 없다.

흐음, 이걸 어쩐다.

분명히 탈것 업데이트를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주호> 일단 덤벼들던 다섯 마리 전부 바닥에 떨어뜨려 놨어요. 지금 건너오시면 될 것 같네요.

<재중> 수신 양호, 간다. 추가로 더 없고?

다른 몹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주호> 네, 지금은요. 나중에 사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바로 건너오세요.

<재중> 새들은 어떻게 하게?

<주호> 바로 죽일 생각입니다. 다시 날아오르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아서요.

그때,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 참여했다.

<챠밍> 혹시 탈 수 있어요?

<이쁜소녀> 타 보세요!

둘 다, 탈 것에 대한 로망이 있나?

귓말에서 느껴지는 열망이 장난이 아니다.

<주호> 그냥 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한 번 시도해 볼게. 한 마리만 남겨놓으면 될 것 같으니까.

아마 지형을 만들어놓고 천천히 탈 것을 풀 생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눈앞에 있는 건 타 보는 것이 인지상정.

<재중> 몇 방에 죽는지 확인하면서 죽여. 그래야 테이밍할 녀석을 어느 정도로 깎을지 답이 나오니까.

<주호> 알았어요. 그런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역시,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신다니까.

<주호> 근처에 새들은 제가 잡고 있으니 바로 넘어오세요.

<재중> 그래, 고생 좀 하고 있어. 혹시 다른 녀석들이 나올지 모르니까 나도 빨리 넘어가야겠다.

바로 아쿠아 블레이드에 아쿠아 웨폰과 라이트 웨폰을 입혀서 비월참으로 한 마리씩 정리했다.

블랙 아쿠아 캐논이나 검은 가시는 마력을 너무 잡아먹고 이런 잔챙이에게 쓰기는 아까우니까.

비월참에 맞고 아쿠아 블레이드에 푹푹 찔리면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지상에서는 별로 힘을 못 쓰는 모양이다.

다리 자체가 약해서 그런지 일어섰다가도 몇 번 공격당하니 바로 다운이 됐다.

생각 외네.

그간 너무 어렵게 플레이를 했더니 여기도 엄청나게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쉬어가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 마리는 빠르게 정리하고 남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몇 방에 죽는지 확인하면서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는 죽기 직전까지만 HP를 깎아놓고 그대로 올라탔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은 아는 것이 없다.

내가 등에 올라타자 갑자기 기운이 확 돌아온 듯 안개 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날개를 엄청난 속도로 퍼덕이면서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뭐야?

원래 이런 시스템인가?

바로 한 손으로 목의 털을 강하게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아쿠아 블레이드를 안개 새의 목에 가져다 댔다.

혹시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올라가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야 하니까.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아파트 4층인가 5층 높이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사실 5층쯤 넘어가면 그냥 다 무섭지.

아니나 다를까 안개 새가 날아오르더니 정확히 그 높이까지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거기다 양옆으로 얼마나 몸을 흔들면서 날 떨어뜨리려고 하는지…….

바로 아쿠아 블레이드를 집어넣고 양손으로 털만 붙잡고 버텨냈다.

힘 자체는 꽤 여유가 있지만, 혹시나 모를 회전에 떨어지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두 손을 이용해서 잡았다.

그 이후에도 사방으로 몸을 흔들면서 날 떨어뜨리려고 했다.

아마 이 이상으로 속도가 나는 새였으면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딱 마법사 정도의 힘만 있으면 일단 버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한 번씩 옆으로 막 흔들다가 수직으로 하강하기도 하고.

어지간한 놀이기구를 잘 타는 사람이라도 지금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겠는데.

지상에 거의 부딪칠 정도로 떨어지자 바로 내려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을 계속 만들어냈다.

거기다 안개 새가 몸을 180도 회전해서 뒤집었을 땐 두 팔의 힘만으로 매달려 있기도 했고.

이거 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뭔가 먹이를 안 줘서 그런 건가?

그런 오만 잡생각을 하면서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안개 새에서 테이밍에 성공한 듯 밝은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 안개 새의 테이밍 조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테이밍에 성공했습니다. 회수하시겠습니까? 》

바로 Yes를 눌러서 확인했다.

휴…….

다행히 이 방법이 먹히는 모양이다.

난이도로 치면 일반 테이밍 몹보다는 상위지만, 엘리트보다는 하위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힘이 어느 수준까지 있으면 대부분 버틸 수 있도록 고안된 모양이다.

다만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초기 나는 탈 것도 이 정도인데 나중엔 상상하기도 힘들네.

지상과 달리 하늘은 아주 넓고 높으니까.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다행히 이 근처는 다섯 마리가 전부였는지 딱히 공격 같은 것을 받지 않고 편하게 테이밍을 했다.

테이밍 도중에 공격을 받았으면 정말 난처한 상황에 이르렀을 지도.

원거리 공격 및 방어 능력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는 버티기가 힘드니까.

만약, 활을 쏘려고 두 팔을 그대로 놓았다가는 그냥 추락이다.

나중엔 주변 공격에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타고 있던 안개 새를 살펴봤다.

일단 스탯 상의 체력이나 공격력은 비슷하다.

전투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

특수 스킬이 있는가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안개 내뿜기라는 스킬이 있는데 아마 이 스킬이 주변에 안개를 뿌린 모양이다.

역시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은 아니다.

그냥 멋 내는 용도라면 괜찮을 것 같네.

사방에 안개를 내뿜으니까.

일단 확인된 유일한 용도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장점이 지금 확실하게 몸에 와 닿고 있다.

지금껏 테이밍을 한다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

하늘에 올라와야지만, 볼 수 있는 것이 발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로 안개가 깔린 협곡과 산과 구릉이 보이고, 멀리는 늪지대 독무 지역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내가 개고생을 하면서 넘어왔던 계곡과 절벽까지 모두.

그리고 그곳에 재중이 형이 밧줄 하나에 의지해 안간힘을 쓰면서 곡예를 부리듯 계곡을 넘어오고 있었다.

……도와줘야 하나?

***

도와줄까 말까 고민했던 것은 아쉽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도와줄 수가 없게 되었다.

안개 새의 비행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이 시간이면 가까운 거리를 한 번 정도 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타는 동안 체력과 마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단점에 들어갔다.

다른 탈것을 구해야 알겠지만, 효율 부분에선 정말 최악에 가깝다.

내 체력이 적은 것도 아닌데 잠깐 타고 있었음에도 벌써 절반이나 체력이 나가 버렸으니까.

이제 운영진이 뭘 원하는지 스탯이나 형태만 봐도 알 것 같다.

탈것을 타고 오랫동안 뭔가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초기라서 효율이 정말 안 좋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 되었든 지금은 내려가야 해서 바로 지상으로 착지했다.

내가 내리자 안개 새가 제 자리에서 배를 깔고 그대로 앉아버렸다.

휴식인가?

펫 스탯을 보니 회복을 하면서 사용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거 아무리 봐도 한 마리로는 뭘 해보지도 못할 것 같네.

몇 마리를 더 구해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회복을 위해서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재중이 형이 한껏 질린 얼굴을 하면서 밧줄을 타고 건너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가 왜 이렇게 반갑냐.”

“고생했어요.”

“바닥 한 번 바라봤다가 진짜 식겁했다. 군대에서도 이런 건 못 해봤구만. 장난 아냐.”

“저도 뭐, 아예 안 시켜서 못 해봤어요. 다른 사람들은요?”

“내가 넘어오면 연락해 주기로 했지. 아무래도 두 명 이상이 출렁거리는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넘어오긴 좀 불안하니까.”

흐음, 다른 사람들은 아직이라 이거지…….

“테이밍은 어떻게 됐어?”

“잘 안 되던데요.”

“아, 역시 쉽게 될 것 같지 않더라니. 어휴, 여자애들은 넘어오려면 학을 뗄 건데 어쩐다.”

“어쩌긴요. 마중 가야죠.”

그러면서 바로 안개 새를 소환했다.

내 앞에 하얀 깃털을 가진 안개 새가 나타나자 재중이 형의 눈이 놀라운 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다.

“태우러 다녀올게요. 밧줄 타고 온다고 고생했어요.”

“야! 빨리 말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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