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182화 안개 협곡 (3)
“어떻게요?”
이쁜소녀가 날 보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챠밍이나 나르샤도 마찬가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넘어갈 수 없는 곳을 건너겠다고 하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나도 좀 쫄리긴 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바닥이 안 보이거든.
떨어지면?
그냥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그런 높이다.
“하, 이거 넘어가면 내가 고기 쏜다.”
“오! 한우죠?”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자마자 바로 반사적으로 한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고기 익는 소리만 들어도 행복한 그런 순간이 있다.
그러다 보니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몰렸다.
“와, 대박. 전혀 안 그런 것처럼 보이는 애들이 한우 소리 듣자마자 눈이 돌아가잖아.”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돌릴 법했지만 방패전사의 외침에 그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한우! 한우! 한우!”
그리고 이쁜소녀도 눈을 반짝이면서 따라 했다.
“한우! 한우! 한우!”
거기다 재밌어하는 챠밍과 나르샤까지.
“나도 할래요. 한우!”
“한! 우! 한! 우!”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애들이 그러니 재중이 형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졌다는 표시네.
“너희 그러다 살찐다.”
“헹! 한우는 안 쪄요.”
이쁜소녀의 단호한 말.
“저 활동 안 해서 괜찮아요.”
챠밍의 역시 단호한 말.
그리고 나르샤도.
“운동하죠 뭐. 많이 먹어도 돼죠?”
재중이 형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셋을 둘러봤다.
그러다 한숨 쉬면서 말을 이었다.
“으, 정말 무서운 애들을 키우고 있었어.”
그 말에 모두 킥킥거리며 웃었다.
돈 좀 깨지시겠네.
난 정말 넘어갈 생각이거든.
***
【 오우거 하트! 】
힘이 몸 전체로 뻗어 나가며 터질 것 같은 힘을 뿜어냈다.
확실히 게임은 아이템이 전부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그리고.
이번이 처음인가.
점검 시간 등과 맞물려서 쓸 시간이 없었으니까.
잠시 마력을 회복했다가 바로 다음 기술을 썼다.
중복이 안 되면 난감한데 과연 어떻게 되려나.
【 라미아 하트! 】
몸속 가득 찌릿찌릿한 자극이 뻗어 나가면서 몸이 떨렸다.
효과가 참…….
전동 의자에 앉아 있는 기분이네.
자극과 효과가 잦아들자 마력이 지력으로 전환되며 지력이 한계 수치를 넘었다.
원래 있던 수치에서 거의 두 배가 넘는 수치.
챠밍이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아진다.
“이거 제가 쓰는 거지만 사기네요.”
이 말 말고는 다른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재 로스트 스카이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마법은 다 쓸 수가 있으니까.
내 스탯을 본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눈빛을 했다.
“이건 거의 마법사 스탯이잖아. 진짜 끝내주네.”
“뭐, 오우거 하트보다는 유지시간이 짧아서 관리는 좀 해야겠지만요.”
“그것만 해도 어디냐. 우리 다시 라미아 여왕 잡으러 갈까? 지금쯤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지금 잡아봐야 주는 것도 없을 거예요.”
“하긴, 그렇지. 그럼, 한 번 해봐라.”
재중이 형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협곡에서 먼 곳까지 케르베로스를 끌고 갔다.
“갑니다!”
떨어지면 바로 죽음.
그래도 지금은 이 수밖에 없다.
바로 케르베로스를 최대 속도로 질주시켰다.
가속이 점점 더 붙자 피부로 찬바람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가속이 최대로 붙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조심스럽게 케르베로스의 등에 올라섰다.
이건 달리는 말에 두 발로 올라타는 딱 그런 그림이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케르베로스의 흔들림이 발과 다리를 타고 무릎과 허리를 지나며 강하게 느껴지자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자세를 유지하면서 버텼다.
케르베로스가 절벽의 끝에 다다를 무렵, 등을 박차며 점프를 했다.
【 대쉬! 】
기존의 케르베로스의 질주 속도에 오우거 하트로 점프한 탄력, 그리고 대쉬로 가미된 가속이 더 붙으면서 뛰어오르던 자세와 상관없이 내 몸이 공중을 가르면서 날아갔다.
하나의 탄환처럼.
까마득한 허공에 발이 붕 떠 있는 기분이란…….
조금만 실수해도 낭떠러지다.
“밑에 보지 마!”
나르샤가 하이톤으로 내게 외치는 것이 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정말 밑은 나도 안 보고 싶다.
아찔하니까.
밑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인벤에 미리 준비한 값싼 방패를 꺼내 앞으로 던지며 망설이지 않고 방패의 넓은 면을 발로 밟았다.
그리고 몸을 뒤틀며,
【 백스탭! 】
처음은 힘과 가속, 이후엔 스킬과 아이템이다.
그렇게 떨어지려던 몸이 방패를 디딤돌 삼아 추진을 받으면서 허공을 가로지르며 쭉 뻗어 나갔다.
백스탭 같은 경우 노면의 받침이 없으면 시전이 안 되니 방패를 버리면서까지 이어갈 수밖에 없다.
날아가는 동안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기본이고.
절벽과 절벽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라미아 하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다시 꺼내 던진 방패를 밟고 스킬을 시전했다.
【 블링크! 】
높아진 지력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다양해진 것.
이것이 챠밍이 나에게 라미아 하트를 양보한 가장 큰 이유다.
허공에서 잠시 멈칫했던 내 몸이 한참이나 먼 곳에서 나타나면서 시야가 변했다.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반대편의 땅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몸에 붙었던 가속이 블링크의 시전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대로 있으면 추락이지.
자칫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방패 하나를 다시 던졌다.
그대로 이번엔 네믈리드에 있는 내장 기술을 시전했다.
【 블링크! 】
그렇게 다시 한 번 몸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면서 보이는 곳이…….
이런.
아직도 허공이야?
계산이 잘못됐나?
이 정도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방패도 여유 있게 준비했던 것이고.
하지만 블링크가 끝나면서 그 짧은 거리를 남겨두고 내 몸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꺅!”
“안 돼!”
챠밍과 이쁜소녀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나를 못 보겠는지 비명을 내뱉었다.
비명은 내가 더 지르고 싶다.
솔직히 미친 듯이 무섭다.
높이가 어느 정도라야 이성을 유지하지.
이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침착해자.
실수하면 죽는다.
그런 생각이 계속 내 머리를 휘감으면서 이전보다 더 없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나중.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 손으로 바로 인벤의 창을 띄우면서 아쿠아 블레이드와 밧줄을 꺼냈다.
그리고 검의 손잡이에 여러 번 매듭을 묶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끝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일정 수준을 넘어가니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집중을 유지했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매듭을 묶은 손잡이를 한 손으로 강하게 쥐고 빠르게 낙하하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까맣게 물든 아쿠아 블레이드를 몸을 쥐어짜듯 뒤틀면서 최대한의 힘으로 절벽으로 쏘아냈다.
【 검은 가시! 】
풀 차징은 필요 없다.
절벽을 파고들 수 있을 정도만!
그러자 쏜살같이 날아간 아쿠아 블레이드가 절벽에 거칠게 박혀 들어갔다.
휴…….
안 되면 어쩌나 했는데.
십년감수 했네.
이건 RTP가 백만이라도 소용이 없다.
검에 단단하게 매어진 밧줄을 강하게 쥔 채, 그대로 절벽의 면에 돌진하듯 움직였다.
두 다리를 뻗어 충격을 흡수하면서 몇 번 튕겨 나왔다 다시 착지하기를 반복하자 그제야 자세가 고정됐다.
아래가 시커멓게 보이는 절벽 중간에 혼자 있는 기분이란…….
정말 묘하게 겁이 나면서도 짜릿하고 신기한 기분이다.
인디아나 존스를 좀 더 잘 봐둘 걸 그랬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
위를 쳐다보니 정말 까마득하게 떨어져 내린 모양이다.
거기다 안개 때문에 하늘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솔직히 진짜 무섭다.
남들은 다 평범한 게임을 하는데 혼자 이런 사지에서 생고생이라니…….
누구도 해보기 힘든 경험을 하는 중이라 그런지 온몸이 저릿한 기분까지 들었다.
<챠밍> 괜찮아요?
<이쁜소녀> 다행이다. 귓말 가요!
역시 날 걱정해 주는 귓말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나르샤> 진짜 살아 있네?
<방패전사> 오! 아직 살아 있어!
<불멸> 아직 안 죽었냐?
아니, 이 사람들이…….
나를 반쯤은 시체로 생각해 버린 모양인데 어림없지.
나는 아직 살아 있다!
***
겨우 두 자루의 아쿠아 블레이드를 벽에 박아 넣으면서 차근차근 벽을 타고 올랐다.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로 해봤는데 아쿠아 웨폰을 쓴 아쿠아 블레이드가 아니면 원하는 만큼 박히지도 않았다.
【 아쿠아 웨폰! 】
【 마나 리커버리! 】
【 라이트! 】
지력이 높으니 한 번에 쓸 수 있는 스킬 개수도 많아져 챠밍이 기본적으로 쓰던 스킬까지 전부 배워서 쓰는 중이다.
마력이 높아 빠르게 차던 마나가 마나 리커버리를 사용하니 순간적으로 차오른다.
이건 앞으로 필수 스킬이 될 것 같다.
하이브리드로 스탯을 올리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완소 스킬이다.
라이트는 잘 보이지 않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니까 써야 하고.
한참을 팀원들과 귓말을 주고받으면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절벽을 끝까지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땅으로 올라가 평평한 바닥에 몸을 누이니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확 풀려 버렸다.
“다신 안 해…….”
RTP가 높고 낮고를 떠나서 이건 미친 짓이다.
내가 올라오자마자 반대편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도착했냐?”
“괜찮아요?”
“올라왔어요?”
재중이 형과 챠밍, 이쁜소녀의 외침이 동시에 메아리치면서 계속을 울리자 이제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신 양호!”
내 대답에 챠밍과 이쁜소녀의 환호가 들렸다.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네.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어서 일어나서 밧줄부터 묶기 시작했다.
적당한 나무에 묶고 화살에 연결해서 반대편으로 날려 우리 팀이 받아 묶으면 훌륭한 건널목이 완성된다.
비록 밧줄일 뿐이지만, 어떻게든 타고 넘어올 수가 있다.
이것을 위해 이 고생을 한 것이다.
반대편으로 보내기엔 밧줄 하나론 부족해 그 자리에 앉아 밧줄들의 끝과 끝을 매듭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긴 밧줄을 묶고 난 뒤, 여러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단단하고 큰 나무에 밧줄을 돌려 강하게 묶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최대한 강하게 묶었으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데스 위버를 들어 반대편의 우리 팀이 있는 곳을 향해 조준했다.
<주호> 지금 쏩니다.
<재중> 걱정 말고 쏴라. 제대로 받을 테니.
<주호> 그럼, 사양 않고 갑니다.
최대한의 힘으로 당겼던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밧줄을 달고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와 힘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도착하리라 생각이 든다.
집중하면 어떻게든 보이긴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연락이 와야 알 수 있다.
잠시 기다리자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중> 오케이, 제대로 왔다.
한 방에 성공이네.
<주호> 매듭 묶고 넘어오세요.
<재중> 흐, 이 거리를 줄 하나에 매달려서 넘어가야 한다니. 스릴 넘치겠다.
밧줄 하나 없이 넘어온 사람한테 스릴을 논하다니.
뭐,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줄을 타고 넘어오는 것도 스릴 넘치기는 하겠네.
거기다 넘어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챠밍이나 이쁜소녀가…….
정 안되면 밧줄을 더 날려야 하나?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하더니, 줄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혼자인가.
이제야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전보다 훨씬 짙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가 사방에 끼어 있어 시야를 방해했다.
사냥이 가능하려나 이정도면…….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키익!
안개 속에…….
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