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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78화 (178/1,404)
  • # 178

    #178화 순환 시스템 (6)

    내 외침에 사람들이 발끈하기 시작했다.

    “네가 침 발라놨냐?”

    “아무리 랭킹 1위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우리도 이때까지 딜 했는데 니들이 다 먹겠다고?”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오만 가지 잡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뭐. 그러시던지. 어디 니들끼리 잡아보시던가.”

    그러고는 그대로 뒤로 빠졌다.

    그렇게 다시 사람들과 라미아 여왕의 사투가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사투를 빙자한 학살에 가까웠지만.

    뭐, 싫다니까 열심히 싸워보라지.

    그리고 바로 연락이 왔다.

    <스칼렛> ……안 잡으세요?

    <주호> 보시다시피 방해꾼이 많네요.

    <스칼렛> 아! 진짜 저 새끼들이!

    <스칼렛> 어머? 말이 좀 셌네요.

    이 여자 성깔 있네.

    조심해야겠어.

    <주호> 솔직히 저렇게 많은 사람을 달고 싸우면 우리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거기다…… 먹튀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스칼렛>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제지할게요. 잠시만요.

    음, 이건 스칼렛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인가?

    과연 어느 정도려나.

    스칼렛과 연락을 끊은 후 잠시 싸움을 지켜보는데 신기한 광경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눈치를 보던 몇 개의 연합이 뒤로 빠지더니 한두 연합씩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 그 여자 인맥 죽여주네.”

    최종병기가 놀랍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감탄을 했다.

    대체 어디까지 선이 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수많은 연합을 뒤로 빠지게 할 수 있다니.

    내가 봐도 놀랍기는 놀랍다.

    그렇게 연합들이 빠져나가자 바로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며 점점 느슨하게 변해갔다.

    “금방 허물어지겠는데.”

    재중이 형도 팔짱을 끼고 창을 비스듬히 세운 채 구경하다가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 있던 연합들도 거의 다 뒤로 빠지고 처음에 내게 큰소리쳤던 몇몇 연합만 남아서 사투를 벌였다.

    반수가 넘는 인원이 죽고 난 뒤에야 안 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일제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윗대가리가 멍청하면 밑에만 고생이다.”

    수호가 한심하다는 듯이 전투 현장을 바라봤다.

    그 말대로 작전과 명령을 내리는 쪽에서 무리한 방식으로 진행을 하니 수행하는 사람만 죽어날 뿐이다.

    “이제 방해하는 사람은 없겠죠.”

    라미아 여왕이 사람들을 쫓아다니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지자 어그로를 따라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난동을 부렸다.

    “끌어와. 여기서는 안 되고 좀 끌고 나가자.”

    재중이 형이 신호를 보내고 바로 내가 나섰다.

    데스 위버를 다시 꺼내 몇 번 강하게 머리를 맞추자 라미아 여왕의 고개가 확 돌아가면서 날 바라봤다.

    “그래, 이쪽이다.”

    아까와 달리 라미아 여왕이 달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달라붙지 않고 그냥 가는 길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에도 따라온다면 한참을 그대로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학습 효과가 있는지 손을 대진 않았다.

    “먼저 끌고 갈게요. 따라와요.”

    여긴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 근처는 잡몹이라고 하지만 몹이 리젠이 된다.

    수가 적은 우리 근처에 몹이 리젠되어 걸리적거리기 시작하면 정말 피곤해진다.

    이러한 일 때문에 보통은 많은 길드원과 함께 레이드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엔 우리끼리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내 기동력을 살릴 수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

    몹이 리젠이 안 되는 곳까지 라미아 여왕을 달고 달리자 사방에서 멀리 떨어져 영상 촬영을 하는지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뭐, 저런 것까지는 어쩔 수 없나?

    아예 비공개로 싸울 것이 아니면 감수해야 할 문제다.

    다만.

    <주호> 사방에 바리게이드 쳐줄 수 있어요? 방해는 싫은데.

    <스칼렛> 이미 준비 중이에요.

    눈치가 빠른 여자네.

    <주호> 네, 그럼 좀 부탁할게요.

    스칼렛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이런 사소한 부탁은 곧잘 들어준다.

    이번엔 철저히 우리 팀만으로 하는 레이드다.

    저번 레이드처럼 길드원들을 전부 참여시킨다면 전에 했던 레이드의 재탕일 뿐이니.

    모든 패턴을 보고 깨보니까 어느 정도 견적이 나와서 정예로 가서 깰 수 있을 것 같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맞췄다.

    1페이즈는 사람이 많을수록 물의 가시가 많이 생성된다.

    일정 수준 스탯 이하의 사람들이 함께하면 누군가는 걸릴 수밖에 없고, 그럼 그 물의 가시를 깨기 위해서 많은 인원을 어쩔 수 없이 동원해야 하는 사태가 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라미아 여왕의 HP를 채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까.

    그리고 2페이즈 때도 블링크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라미아 여왕이 퍼져 있는 사람들 때문에 멀리서 나타나면 딜 로스가 그만큼 길어진다.

    한 번에 라미아 여왕을 다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들만 모여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엔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페이즈.

    검은 호수 바닥처럼 주변이 검게 변하면서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다 사라진다.

    그 순간,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딩할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전과 같은 인원이 필요가 없다.

    좀 더 강하고, 피가 많고, 방어가 높을 뿐이니까.

    다 알고 나서도 우리끼리 못 깨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라미아 여왕을 원하는 지점까지 유도했다.

    주변이 막혀 있는 구릉 사이의 공터, 전투하기에 충분히 넓고 몹 리젠이 없다.

    고유 영역이 없어져서인지 라미아 여왕을 한참 끌고 왔는데도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날 따라왔다.

    “시작하죠.”

    내가 신호를 하자, 나를 뒤따르던 방패전사가 먼저 라미아 여왕에게 달려들었다.

    【 하울링! 】

    방패전사가 달려들어 기술을 사용하자 자동적으로 그르릉거리는 울음이 들리며 주변으로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러자 나를 따라오던 라미아 여왕이 충격파에 잠시 경직이 되더니 바로 방패전사를 바라보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효과 좋고. 이제 좀 탱커 같네.”

    스킬의 효과에 만족하면서 방패전사가 달라붙자 바로 검은 가시가 시전 됐다.

    “오케이 확실히. 수가 적다.”

    원래라면 방패전사 주변으로 물의 가시가 몇 개씩 올라와서 괴롭혔겠지만 지금은 그 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기동력이 느린 방패전사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역시, 소수로 잡는 것은 정답이었나?

    그리고 재중이 형과 최종병기가 영상을 돌려보면서 한참 고심했던 것이 있다.

    【 리플렉션! 】

    방패전사가 올라오던 물의 가시에 물의 방패를 가져다대면서 리플렉션을 쓰자 물의 가시가 사라지더니 오히려 여왕의 아래에서 올라와 순식간에 감싸버렸다.

    “……크. 진짜 되잖아.”

    감탄하던 방패전사가 달라붙어 딜을 하자 여왕이 아쿠아 토네이도를 시전했다.

    그러자 방패전사 주변으로 공기가 압축되면서 방패전사가 토네이도 속으로 묻혀 버렸다.

    보통은 여기서 아웃.

    그런데 토네이도 속에서 방패전사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크! 진짜, 대박이네. HP가 하나도 안 달아.”

    마법 부가 효과 역전.

    재중이 형과 최종병기가 예상한 것 중 하나.

    물의 가시를 반사하면 어떻게 될까?

    라미아 여왕이 물의 가시에 걸리면 라미아 여왕의 HP를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

    “몇 개를 대조해 보니까 %로 깎이더라. HP가.”

    최종병기가 내 옆에서 활을 쏘면서 신나는 톤으로 말을 꺼냈다.

    “그럼, 라미아 여왕의 HP도 %로 깎을 수가 있을 거란 말이지.”

    우리가 소수로 뛰어든 것도 사실 이것 때문이다.

    원래라면 레벨 업을 이 정도로 한 라미아 여왕에게 덤벼드는 것은 자살 행위겠지만.

    최종병기가 자신의 이론이 맞았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외쳤다.

    “휘유! 대체 HP가 얼마나 되는 거야? 방패전사 HP가 줄어들지 않네.”

    그렇게 한참 동안 방패전사가 라미아 여왕의 HP를 깎아 먹었다.

    아쿠아 토네이도 한가운데 서서.

    그리고 어느새 지속 시간이 지나자 라미아 여왕에게 걸린 물의 가시가 풀렸다.

    기다렸다는 듯 이번엔 수호가 달려들어서 물의 가시를 반사했다.

    “저희 딜 안 해도 될까요?”

    “으음, 뭔가 날로 먹는 것 같아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그 광경을 한참 지켜보다 불편한 듯 날 보면서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우리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 놓고 구경 중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아껴둬. 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방패전사와 수호가 리플렉션으로 여왕을 계속 엿 먹이자 어느 순간 페이즈가 넘어갔다.

    수십 개 연합의 공격을 받고도 버티던 라미아 여왕의 HP를 방패전사와 수호, 단둘이서 통째로 깎아버렸다.

    꼼수의 달인들이 모이니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네.

    이건 나중에 패치되려나.

    그렇긴 해도, 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2페이즈다. 지금부턴 긴장해.”

    꼼수도 여기까지.

    페이즈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기술을 차징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전보다 더 높아져 지금은 차징을 한참 해야지 풀 차징이 되니까.

    “챠밍!”

    “네!”

    시작은 챠밍.

    어느 사이 블링크로 사라졌다가 공중에서 다시 나타난 라미아 여왕이 바닥으로 두 개의 검은 날을 내려찍었다.

    그리고,

    【 블링크! 】

    챠밍이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내려찍고 고개를 갸웃하는 라미아 여왕의 얼굴에 아쿠아 블레이드를 가져다 댔다.

    “잡았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그와 함께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캐논이 라미아 여왕의 얼굴에 적중하며 폭발했다.

    강력한 충격파가 뒤따르면서 라미아 여왕이 바닥에 긴 상흔을 남기고 처박히면서 수십 바퀴를 구르다 겨우 멈췄다.

    완전히 경직된 상태로.

    “공격!”

    그리고 각종 이펙트가 걸린 공격이 모두 쏟아졌다.

    사실 가장 HP가 낮은 사람을 알고 있다면 바로 답이 나온다.

    2페이즈에서 가장 먼저 공격당하는 사람일 것이니까.

    그래서 기다렸다.

    블링크로 사라졌다가 챠밍 곁에서 무방비로 나타나기를.

    바로 카스카라를 두 자루를 꺼내서 쓰러진 라미아 여왕의 몸에 사정없이 박아 넣었다.

    전에 재중이 형이 날 보고 했던 말.

    ‘이왕 마력 채울 거 두 자루가 낫지 않냐?’

    그래서 한 자루를 더 준비했다.

    마력 수치가 더 커져서 한 자루로는 바로 채울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급소 부위를 크리티컬로 찍으면서 정말 빠르게 마력을 채웠다.

    일어난 라미아 여왕이 다시 블링크로 사라졌다.

    이번엔 나르샤 옆에서 대기하다가 여왕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블랙 아쿠아 캐논을 날렸다.

    그렇게 라미아 여왕이 블랙 아쿠아 캐논 맞아 다시 바닥을 볼썽사납게 나뒹굴면서 쓰러졌다.

    두 발.

    아쿠아 블레이드의 쿨이 따로 도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이것 때문에 웃돈을 줘가면서 제작 재료를 다시 사 왔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또 한 번의 폭풍과도 같은 공격이 이어지고 이번엔 데스 위버를 꺼내 스파크 소드를 걸었다.

    이미 재중이 형과 최종병기가 만들어준 라미아 여왕의 공격 순서는 다 외워뒀다.

    남은 것은 다운시키는 일 뿐.

    【 검은 가시! 】

    블링크를 써서 나타난 라미아 여왕 바로 앞에 검은 스파크 소드가 강력하게 터지면서 또다시 라미아 여왕이 뒹굴었다.

    “크! 템빨이 좋긴 좋네.”

    재중이 형이 신나서 웃더니 바로 공격하러 갔다.

    그래, 이러려고 템을 모으는 것이 아니겠는가.

    템으로 해결되는 부분은 템으로 바르고 컨이 필요하면 컨으로 밀면 된다.

    “저 스킬 바닥났어요.”

    어스 퀘이크도 있지만 아마 이건 한방에 다운시키기에는 부족하겠지.

    라미아 여왕의 방어가 너무 높아지는 바람에 안 먹힐 확률이 훨씬 높다.

    같은 광역기라도 전방 집중과 사방으로 퍼지는 것의 위력은 다르니까.

    “이제부턴 몸으로 때워야지.”

    그렇게 말한 재중이 형이 라미아 여왕에게 달려들었다.

    여기까지가 계획으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매번 블링크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결국 직접 상대를 해야 했다.

    라미아 여왕이 팔을 늘어뜨리면서 사방으로 뛰어다니는데 그냥 보기에도 너무 빠르다.

    단순한 속도만으로 그 이상을 이동해 버리니까.

    거기다,

    나르샤를 보호하던 방패전사가 물의 방패 뒤에 숨다시피 몸을 낮추고 라미아 여왕의 연격을 막는데 방패 위로 펑펑 터지는 소리까지 들리면서 방패전사의 몸이 뒤로 확 날아갔다.

    근력, 민첩이 한계까지 올라간 네임드가 저런 모습인가?

    근접형 네임드가 아님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공격력과 스피드다.

    방패전사를 공격하던 라미아 여왕에게 가까이 있던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바로 붙었다.

    하지만 이쁜소녀는 단 몇 방 만에, 재중이 형도 공격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계속 밀려났다.

    저 재중이 형이…….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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