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177화 순환 시스템 (5)
—진짜 라미아 여왕 넘사벽이네.
—우리 연합도 포기. 레이드 시도한다고 손해가 장난 아님. 정도껏 강해야 계속 시도라도 하지. 템만 잔뜩 떨구고 왔다.
—손해만 나면 다행이게. 우리 해체했다. 서로 싸우다가.
—진짜 네임드 템이 뭐라고…….
—다들 욕심에 눈이 돌아간 거지.
—그래도 1서버는 세 번째 페이즈 가지 않았냐? 마지막이려나?
—나도 방송으로 봤음, 거기야 우리랑 다르게 호수 셋을 파니까. 조금 더 버티긴 하더라.
—우리도 호수 셋 팔았으면 또 모른다. 없으니 문제지.
—근데 그게 마지막인지도 모름 사실. 전멸해서.
—두 번째 페이즈도 사실 억지로 넘어간 거임. 사람들 목숨 담보 삼아서.
—사람만 많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았을까?
—에이, 어차피 세 번째 가면 사람 수 많아 봤자 소용없음. 바닥이 변하면서 도망갈 곳도 없는데 살겠다고 모여 있다가 사르르, 녹으니까 방법도 없지.
—처음보다 너무 세졌더라.
—맞아, 괜히 건드려서 이젠 손도 못 댐.
—우리 서버는 아예 검은 호수에선 라미아 여왕 피하기로 했다.
—우리도. 근처에서 사냥하다 보이면 바로 튀어야지 답 없어.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네.
사실, 좀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레벨 업을 하고 장비가 더 좋아지고, 경험도 더 쌓이면서 어떻게든 라미아 여왕을 상대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원래라면 말이지.
하지만 내가 게시판에 풀어버린 드랍 템 정보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진짜 사람들을 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았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재중이 형이 날 보더니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잘 키운 아이를 보는 것만 같은 그런 눈빛이네.
아니라고는 했지만 내 의도대로 사람들을 유도한 것은 맞다.
“잔머리 하나는 진짜 특출나네.”
한참 라미아 여왕 레이드를 위해 세팅 중이던 최종병기가 날 신기한 듯 쳐다봤다.
수호도 표정이 비슷하고.
“그냥 몇 가지를 노렸어요. 언제 에띠앙으로 라미아 여왕이 돌진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먹이로 던져줬다? 시간도 벌면서?”
“그렇게 되겠네요.”
“거기다 호수 셋을 비싸게 팔아먹고, 공성전 때 얻은 템들도 비싸게 처분하고?”
“뭐, 부수적인 수입이죠. 제일 원하던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요.”
“라미아 여왕을 살찌우는 것 말이지.”
“네. 사과가 익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있긴 했다.
사람들이 매달리는 그림까지 그려보려고 했는데 그건 아쉽게도 넘어갔다.
아마 우리 말고 누군가 에띠앙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으면 에띠앙을 살리기 위해 의뢰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거기다 누구도 잡지 못한 네임드를 다시 잡아내서 최고라는 이미지까지 만들겠다는 소리고. 이놈, 진짜 괴물인데?”
최종병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재중이 형을 봤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둔 한 수로 몇 가지 이득을 보는 것인지 일일이 나열하다 보니 끝도 없이 나온다.
최종병기가 질린다는 얼굴로 날 봤다.
이런 놈 처음 본다는 그런 표정인가?
머리 잘 쓰기로 유명한 프로게이머에게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너, 나중에 정치 같은 거 하지 마라. 진짜 나라 뒤집어 놓겠다.”
최종병기도 재중이 형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네.
“결과적으로 라미아 여왕을 잡아야 끝이 나는 문제죠.”
“뭐, 그렇겠네. 준비는?”
“필요한 것은 다 한 것 같아요.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이번엔 정말 소수만 데리고 왔다.
우리 팀, 그리고 프로게이머 형들.
정말 소수 정예다.
내가 생각한 컨트롤로 마지막까지 비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
그리고 물약 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어야 하고.
“정말 장기전이 될 거예요.”
내 말에 우리 팀과 프로 형들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개인의 퀼리티가 양을 이기는 첫 싸움이 될 예정이니까.
아마 성공하면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 라미아 여왕의 뿔 / 제작 재료 』
『 라미아 여왕의 가시 / 제작 재료 』
『 라미아 여왕의 비늘 / 제작 재료 』
원래는 길드원들이 경매로 사 갔던 제작 재료들이다.
그걸 이번에 전부 웃돈을 주고 길드원들에게 되샀다.
이유는 딱 하나.
필요하니까.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하면 바로 풀어야 한다.
길드원들은 이것으로 아이템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제작 재료에 들어가는 주요 템이 무려 다른 네임드가 드랍하는 눈물 조각이니까.
그것도 개수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손도 못 대고 있던 것을 우리가 다시 회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 +0 아쿠아 블레이드 / 출혈 10 타격 6
민첩+2, 블랙 아쿠아 캐논 』
『 +0 네믈리드 / 마법 증폭 11
지력+2, 마력 회복+2, 블링크 』
『 +0 물의 방패 / 방어력 12
체력+2, 리플렉션 』
재중이 형이 쓰는 창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번엔 필요하지가 않으니 패스.
“아쿠아 블레이드는 주호.”
재중이 형이 아쿠아 블레이드가 제작되자 내게 바로 건넸다.
“이걸로 퍼즐 조각을 더 맞췄네요.”
다른 사람이 들어도 되긴 하지만 이건 효율의 문제다.
라미아 여왕의 방어를 깨려면 무조건 내가 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들면 그저 그런 필살기가 될 뿐이지만 내가 들면 그 이상도 낼 수 있으니까.
이쯤 되면 양보하고 안 하고의 수준을 넘어섰다.
무조건 그냥 내가 써야 한다.
사람들도 거기에 대한 이견이 없는지 모두 찬성했다.
애초에 이 계획을 세운 것이 나니까.
재중이 형은 디테일을 도와줬고.
그리고 물의 방패는 수호가 들고 갔다.
3페이즈 때.
방패전사 혼자만으로는 힘들다.
수호가 같이 버텨주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우리 화력 담당인 챠밍에게 네믈리드를 건넸다.
그렇게 제작 템을 처리하고 완제로 샀던 네임드 템은 전부 내가 착용했다.
이름 : 주호
레벨 : 52
【근력 4+11】 【민첩 14+5】 【체력 10+1】
【지력 0+6】 【마력 1+17】
3 파워 글러브 / 방어력 6+3 / 근력+5
3 오우거 벨트 / 방어력 6+3 / 근력+5
3 검은 여왕의 로브 / 방어력 12 (9+3)
지력+2, 마력 회복+3 ◀ NEW
3 검은 여왕의 서클릿 / 방어력 8 (5+3)
지력+3 ◀ NEW
4 아쿠아 블레이드 / 출혈 14 (10+4) 타격 10 (6+4)
민첩+2, 블랙 아쿠아 캐논, 마력+5
4 아쿠아 블레이드 / 출혈 14 (10+4) 타격 10 (6+4)
민첩+2, 블랙 아쿠아 캐논, 마력+5 ◀ NEW
케르베로스 네클라스 / 올 스탯+1
고스트 링 마력+2 ◀ NEW
고스트 링 마력+2 ◀ NEW
고스트 브리슬렛 마력+2 ◀ NEW
5 블랙 비스트 헬멧 / 방어력 12 (7+5)
6 블랙 비스트 메일 / 방어력 16 (10+6)
6 블랙 비스트 팬츠 / 방어력 15 (9+6)
확실히 예전에 쓰던 블랙비스트 방어구보다는 방어력 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1 차이만 해도 들어오는 대미지가 몇 퍼센트씩 차이 나니까.
메일이 16, 팬츠가 15, 헬멧이 12.
단순 방어력만 생각하면 절대 검은 여왕의 방어구를 입으면 안 된다.
12와 8밖에 안 되니까.
스치기만 해도…….
정말 피곤한 상황이 올 것이다.
다만,
검은 여왕의 방어구로 지력을 올리면 악세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가 있게 된다.
예전에 방어전을 하면서 얻었던 마력 악세들로.
이렇게 세팅하면 기존 마력에서 6을 더 올릴 수가 있게 된다.
오우거 하트를 쓸 수 있는 내게는.
6이라는 힘이 더 올라간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방어력을 포기하고 딜에 모든 것을 건다.
“이번 레이드 핵심은 너다. 잘 해봐.”
그 말이 무겁게 들린다.
현재 네임드란 네임드 템은 전부 내게 몰빵했다.
레벨이 오른 라미아 여왕을 잡기 위해서.
“가보죠. 익은 사과를 따러.”
***
“원래 여성용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여왕의 로브이다 보니 디자인 자체가 여성용이다.
남자 몸에 쫙 붙는 검은색에 푸른 라인이 들어간 로브라니…….
머리에도 왕관이 있고.
호수 셋과 섞어 입으니 완전히 눈 테러다.
“코스튬 다시 입어요, 그건 안 되겠어요.”
챠밍이 보다 못해 다시 입으라고 할 정도로 미적으로 별로다.
이쁜소녀도 차마 날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 정도.
코스튬이 없었으면 진짜 개망신당할 뻔했다.
수정이 누나에게 감사해야 하나.
이번만 입고 처분해야겠네.
템 성능 외적인 부분까지 모두 처리한 후에 바로 에띠앙을 나섰다.
그때, 사장님에게서 바로 화상 영상이 들어왔다.
<카이저> 주호야, 지금 난리가 났다.
<주호> 네? 그게 무슨.
<카이저> 검은 호수 입구 쪽에 있는 상인촌. 거기를 라미아 여왕이 덮치고 있다는구나. 아주 쑥대밭이야.
<주호> 알았어요.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형, 봤어요?”
“그래, 일이 아주 재밌게 돌아가네.”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데 정말 재밌어하는 눈치다.
나도 뭐 다르진 않고.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부분까지 채워주네요.”
사람들이 우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환경을 찾아 라미아 여왕이 알아서 가줬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네.
아니나 다를까.
<스칼렛> 주호 님, 혹시 지금 라미아 여왕 좀 잡아주실 수 없어요?
<주호> 글쎄요. 준비가 덜 돼서 당장은 무리인데…….
<스칼렛> ……알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지금 이대로 가면 상인촌이 붕괴할 것 같거든요.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드릴게요.
<주호> 그럼,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세요.
<스칼렛> 고마워요. 이 일 잊지 않을게요.
일단 협상은 사장님의 몫.
우리는 잡는 것만 하면 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그 뒤에 사장님에게 들어보니 여러 연합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꽤 좋은 조건을 달고.
“슬슬 움직이죠.”
사장님에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상인촌 근처에 도착하니 이미 라미아 여왕이 한 번 휩쓸고 갔는지 좌판을 놓고 장사하던 사람들 대부분 도망가거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쑥대밭이네.
몇 개인지도 모를 연합이 라미아 여왕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공격을 하는데 그것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물의 가시에 걸려서 다시 라미아 여왕의 HP를 채워줬다.
“저건 못 잡겠네.”
재중이 형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봤다.
방어가 높아져서 딜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데 피는 쭉쭉 빨리고 있으니 완전 제자리걸음이라고 해야 하나.
어중이떠중이가 많으면 절대로 못 잡는다.
“슬슬 시작하죠.”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무기를 꺼내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미 검은 가시 라미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 죽어 여왕만 상대하면 된다.
“일단, 인사부터.”
【 오우거 하트! 】
전보다 마력이 훨씬 늘어나서 그런지 손아귀의 힘 역시 체감이 될 정도로 엄청 늘어났다.
무엇이든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며 바로 데스 위버를 꺼내서 활시위를 꺼냈다.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곳으로 들어가 봐야 나만 피곤해진다.
거기다 라미아 여왕을 다운시키지 않고 적절히 어글을 끌어올 수 있을 정도의 대미지만 줘야 한다.
남 좋은 일 시킬 수는 없으니까.
내가 멀리서 오우거 하트의 힘으로 계속 화살을 날리자 사람들이 스킬을 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한 방, 한 방에 라미아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라미아 여왕의 시선이 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주호다.”
“신화하고 최강.”
“드디어 나서네…….”
“아무리 너희라도 이건 못 잡아.”
“쟤들은 잡을걸?”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계속 활을 쏘아서 내게 어글을 맞췄다.
“어? 라미아가 따라간다.”
“그냥 활만 쏘는데 어글이 넘어가?”
“대체 대미지가 얼마나 나오길래…….”
“역시 랭킹 1위는 다르네.”
“따라가자!”
라미아 여왕이 내게 시선을 맞추고 움직이자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왔다.
그때, 데스 위버를 집어넣고 바로 네믈리드를 꺼냈다.
【 블링크! 】
무기에 내장된 기술이라 지력과 상관없이 시전이 됐다.
거리는 좀 다르게 나오겠지만.
뒤로 아주 먼 곳으로 블링크를 써서 사라졌다 나타나자 한순간에 보이는 시야가 변했다.
깜빡하고 눈을 뜨니 다른 곳이라고 해야 하나?
내 몸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이 꼭 로그인이나 로그아웃을 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블링크로 내가 시야에서 잠시 사라지자 어글이 풀렸는지 라미아 여왕이 제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따라와 한 몫 챙기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이 내가 블링크로 사라져 버리니 혼란에 빠졌다.
“으악! 어글 풀렸어.”
“야! 피해!”
“뭐야!”
어디 밥숟가락을 올리려고…….
난 남 좋은 일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저건 오직 우리가 잡는다.
“따라오지 마라. 한 놈이라도 따라오면 라미아 여왕을 그대로 가져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