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176화 순환 시스템 (4)
내 말에 우리 팀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재중이 형은 피식 웃으면서 말해보라는 듯 날 보고 있고, 챠밍, 이쁜소녀 역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일단, 전 피해가 더 커지길 바라고 있어요.”
“네? 그래도 돼요?”
챠밍이 놀랐는지 나를 바라본다.
“응, 뭐 라미아 여왕이 깽판 치고 다니는 거지, 우리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 문제없어.”
“그런 소리를 할 줄 알고 다 컸네.”
“사실이니까요. 우리와 아무 연관이 없는.”
그리고.
“전에 수정이 누나와 한 대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아요.”
“응? 무슨 이야기를 했지?”
재중이 형은 감이 안 잡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보통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하긴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다.
“가치요.”
“가치?”
“네, 우리 노동에 대한 값이라고 하면 말이 될까요? 전 거기에 수정이 누나 회사처럼 등급을 주고 싶었어요.”
“아……! 알겠어요.”
챠밍이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자주 지켜보니까 바로 아는 건가?
“그러니까 지금은 덜 익은 사과라는 말이잖아요.”
“빙고.”
똑똑하네.
그 말에 이제 모두가 알았다는 듯 긍정을 표했다.
“우리 값어치를 최대로 올리자?”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고.
“네, 어차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면, 굳이 우리가 나서서 잡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좀 더 애를 타게 만들겠다, 이거냐?”
“뭐, 그렇죠.”
사과가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무럭무럭 클 때까지.
사람들이 안달이 나서 우리에게 매달리는 그때까지.
우리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이 많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값어치가 올라가다니.
“다만, 문제는.”
“에띠앙이겠지.”
“네. 에띠앙으로 들어갈 것 같으면 그냥 처리해야죠.”
딱 그렇게 되기 전까지.
와인을 숙성시키듯.
라미아 여왕을 키워야 한다.
재중이 형이 날 보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드랍률.”
“네, 드랍률요.”
이번에 거대 개구리를 잡으면서 좀 더 드랍률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말은 안했지만 저번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준 아이템이 좀 아까웠거든요.”
그러면서 챠밍을 바라봤다.
솔직히 챠밍에게 필요한 아이템들이었다.
지팡이, 로브, 서클렛만 해도 합치면 지력이 거의 십에 가깝게 올라간다.
챠밍의 마법을 필살기급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수치다.
거기다가 무기 재료템까지 포함해 다른 스킬까지.
아깝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전처럼 길드가 쪼개질 우려가 있어서 최대한 참은 거다.
경매에 참여했으면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템들을 다 쓸어올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이번에 생각난 건데 저 생각보다 욕심이 많나 봐요. 아이템이 아깝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보긴 처음이라.”
“그게 정상이야, 보통은 다 그렇지. 사람이.”
“그래서 이번엔 다 먹을 생각이에요. 전부.”
“호오? 무슨 수로?”
“이번엔 형이 수고 좀 해줘야겠어요.”
***
《긴급 입수, 라미아 여왕 드랍 목록 Ver. 001》
『 블링크 』
『 아이스 월 』
『 배리어 』
『 아쿠아 토네이도 』
『 물의 가시 』
『 블랙 아쿠아 캐논 』
『 헤이스트 』
『 대쉬 』
『 백스탭 』
『 리플렉션 』
『 아쿠아 웨이브 』
『 +0 아쿠아 블레이드 / 출혈 10 타격 6
민첩+2, 블랙 아쿠아 캐논 』
『 +0 블랙 슈피스 / 출혈 12 타격 10
민첩+2, 피해 전이 』
『 +0 네믈리드 / 마법 증폭 11
지력+2, 마력 회복+2, 블링크 』
『 +0 물의 방패 / 방어력 12
체력+2, 리플렉션 』
『 +0 검은 여왕의 로브 / 방어력 9
지력+2, 마력 회복+3 』
『 +0 검은 여왕의 서클릿 / 방어력 5
지력+3 』
『 라미아 여왕의 뿔 / 제작 재료 』
『 라미아 여왕의 가시 / 제작 재료 』
『 라미아 여왕의 비늘 / 제작 재료 』
—우와, 이게 다 뭐야?
—죽이네. 템 봐라. 다 지존 템이구만.
—최소 억대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닐 듯.
—뭐가 아님? 지금 나온 템 중에 최상급인데, 저거 주호가 쓰는 무기 아님? 그럼 억대네.
—블랙 아쿠아 캐논은 진짜긴 하더라. 사람들 한 줄로 녹는 거 보니까.
—다른 스킬도 넘사벽임. 챠밍이 쓰는 스킬들 봐라. 개인이 그 정도 스킬 들고 있는 것만 해도 이미 밸붕.
—블링크가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라미아 여왕이 주는 거였구나.
—블링크랑 헤이스트는 정말 탐나네.
—난 물의 방패. 라미아 여왕한테 리플렉션 당해봤으면 저거 절대 거부 못 한다. 진짜 완소템.
—법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잡아야겠네. 전부 법사용 장비임. 스킬도 그렇고.
—대쉬랑 백스탭도 다 있고, 진짜 잡아야 하는 네임드였구나.
게시판이 뒤집어졌다.
방패전사가 올린 글 하나 때문에.
이것도 내가 부탁을 해서 올린 것이다.
“오빠, 정말 이걸로 될까요?”
“응, 돼.”
아이템 목록을 전부 공개해 버리자 챠밍이 궁금함 반, 신기함 반의 표정으로 물어왔다.
보통은 이렇게 공개하진 않는다.
여러 팀이 잡더라도 어지간하면 서로 숨기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도 우리만 알고 있으니까 굳이 친절하게 알려줄 이유가 없었고.
이것은 정보가 새는 것과 마찬가지라 대부분의 길드가 꺼린다.
그런데 그런 룰을 정반대로 확 깨버렸다.
아예 게시판에 공개해 버리는 것으로.
“챠밍은 낚시해 본 적 있어?”
뜬금없이 낚시 이야기를 꺼내자 챠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대회 때 그거 말고는 해보지 않았어요. 기회도 없었구요.”
“나도 뭐 많이는 안 해봤는데, 보통은 낚시를 할 때 미끼를 끼우잖아.”
“네, 하는 건 많이 봤어요. 그건 왜요?”
“미끼는 사실 직접 낚아 올리기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충분히 고기가 모여들라고 떡밥을 잔뜩 뿌리거든.”
내 말에 챠밍이 눈을 반짝였다.
다 이해했구나.
“아! 그럼, 이게 떡밥이네요? 왜 공개했는지 계속 궁금했는데.”
“응, 좀 많이 몰려들라고. 지금은 좀 부족함 감이 있지.”
라미아 여왕이 얼마나 사람들을 먹어치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도달할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럼, 일단 많이 먹여놓고 보면 된다는 생각에 떡밥을 뿌리기로 했다.
거부할 수 없는 떡밥을.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거든.”
“으음, 정말 많이 모이겠네요.”
“우리가 보여준 것이 있으니까.”
그동안 보여준 퍼포먼스가 작진 않다.
남들을 압도하고 유저 수십을 녹여 버릴 수 있는 강력함.
거기다 네임드를 한 방에 처박을 수 있는 그런 힘을 매번 보여줬다.
어쩌면 라미아 여왕을 잡으면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이 템들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그러면 분명히 무리를 하게 될 것이고.
나락에 빠지는 거다.
아주 깊숙한 수렁 속으로.
“그리고 지금처럼 띄엄띄엄 상대하다가는 언제 라미아 여왕이 에띠앙으로 돌격할지도 모르니까.”
“아, 시간 간격을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거네요?”
“응, 짧고 굵게. 빠르게 살찌우고 우리는…….”
“슥!”
챠밍이 해맑게 미소 지으면서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너도 참, 우리한테 물이 너무 들었어.”
“그러게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것들. 같이 하면 재밌잖아요. 저만 점잔 빼고 그러긴 싫어요.”
의외로 참 털털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 못 보던 부분을 더 많이 발견하는 것 같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소리려나?
괜찮네.
***
떡밥이 좋았는지 사람이 욕심이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게시판을 타고 소문이 돌고 돌아 이젠 전 서버에서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드랍 목록이 되었다.
그만큼 관심이 폭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순식간에 공성전을 했던 연합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목적.
라미아 여왕 레이드를 위해.
서버마다 좀 잘나간다 싶은 연합이 압축 물약을 하도 많이 사들이다 보니 압축 물약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까지 가자 전 서버의 물약 값이 덩달아 폭등해 버리는 일까지 생길 정도가 됐다.
그리고 강화석도 미친 듯이 폭등했고.
시중에 널려 있던 강화석이 한순간에 씨가 말랐다.
무기와 방어구도 고강 위주로 가격이 맥스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와, 다 팔았다.”
이쁜소녀가 그간 가지고 있던 강화석을 순식간에 전부 팔아버리고 기뻐했다.
요즘 바쁘다 보니 시장에 갈 일이 잘 없었는데 사장님을 따라 나왔다가 돈이 될 만한 것을 전부 처분했다.
평소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 비싼 값에.
“음, 우리가 먹은 고강들 벌써 다 팔렸다.”
“진짜요?”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양이 꽤 많았으니까 놀랄 만도 하다.
나도 놀랐으니.
“허허, 아주 그냥 팔아만 달라고 난리구나.”
라미아 여왕 하나가 시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논문 하나 써야 하나?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클 줄은.
전 서버가 들썩거리는 중이다.
무기와 방어구를 거의 1.5배 값에 전부 넘기고 나니 다시 통장이 두둑하게 변했다.
그렇게 억대를 넘어가는 돈을 풀어서 다시 호수 셋을 만들 제작 재료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저들과 다른 준비를.
당장 사용할 곳이 없어 가격이 낮은 재료 템들이라 정말 원 없이 사들일 수 있었다.
물론, 스칼렛이 한 번 다녀간 탓에 다소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스칼렛도 바보가 아니라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만 사들였다.
한 번에 다 사들여 버리면 그다음에는 가격이 폭등하니까.
“그런데 정말 깨버리면 어떻게 해요?”
이쁜소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날 보면 물었다.
그 말에 내가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장담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걱정하지 마.”
방패전사라도 도와주면 또 모르겠네.
1페이즈, 2페이즈를 어떻게 넘어가도 3페이즈에선 전멸이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라 라미아 여왕을 잡고 난 뒤다.
다음 사냥터.
혹은 나는 탈 것들.
귀걸이 악세 등.
사람들이 라미아 여왕에게 관심이 집중된 지금 우리는 더 앞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
<주호> 스칼렛 님, 최대한 비싸게 호수 셋 시중에 풀어주세요.
<스칼렛> 그래도 될까요? 일부러 올 스탑 시켜놨는데.
<주호> 지금 사람들 눈이 뒤집혔을 때 팔아주세요. 마법형 네임드라 절실하게 필요할 겁니다.
<스칼렛> 네, 그래서요. 혹시나 잡아버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건데…….
<주호> 뭐,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그럼, 진행해 주세요. 자금이 좀 많이 필요해서.
<스칼렛> 확실히 지금 팔면 부르는 것이 가격일 정도라. 원하시는 가격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어차피 얼마 뒤 우리가 여왕을 잡아버리면 조만간 에띠앙에도 사람들 들어서기 시작할 것이다.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지금 가격은 절대 못 받지.
그러기 전,
가장 비쌀 때 확실하게 먹고 간다.
***
예상보다 훨씬 많은 호수 셋이 팔리면서 순식간에 자금을 확실하게 불렸다.
스칼렛이 만세를 부를 정도로 많이 팔렸으니.
라미아 여왕을 잡기 위해선 필수품이라나 뭐라나.
사장님과 재중이 형도 이 정도로 화끈하게 팔릴 줄 예상하지 못해 제작 재료를 박박 긁어모은다고 시중에 재료가 씨가 말라버렸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연합들의 레이드가 시작됐다.
서로 먼저 잡아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는지 자기들끼리 순번을 사고파는 진풍경도 생겨났다.
거기다 레이드 방송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과시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개인적으로 돈을 버는 목적이었을까.
어찌 됐든 우리는 개인 방송을 하는 채널을 통해서 그 과정을 전부 편안하게 구경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공략 방법이 나왔지만, 대부분의 연합이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렇게 라미아 여왕이 강해져 버렸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십 개의 연합을 먹어 치우고.
연이은 실패에도 자존심이 있었던 것인지 욕심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잡아달라며 요청하는 곳은 없었다.
레이드를 할 때마다 더 강해지는 라미아 여왕을 어쩌지 못하고 레이드가 시작 된 지 4일째 되는 날.
대부분의 길드가 길바닥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뿌리고 잠정 포기를 선언했다.
슬슬 때가 된 건가?
“형, 준비는요?”
“아, 좀처럼 안 되더라고. 그래서 그냥 사들였다. 돈이야 호수 셋을 팔아서 많이 남겼으니까.”
“네, 고마워요. 이런 쪽은 약해서.”
“이걸로 되겠냐?”
“해봐야죠. 잡으러 가요. 라미아 여왕. 이제 살이 잔뜩 올랐으니까.”
그렇게 형이 넘겨준 아이템들.
네믈리드,
검은 여왕의 로브,
검은 여왕의 서클릿,
라미아 여왕의 뿔,
라미아 여왕의 가시,
라미아 여왕의 비늘까지 모두.
돈을 발라서 되찾아 왔다.
라미아 여왕을 잡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