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69화 (169/1,404)

# 169

#169화 변화의 바람 (1)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빛기둥에 휩싸여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수성을 진행한다.

남은 시각은…….

[5:43]

[5:42]

[5….]

남은 공성전 시간을 체크하니, 이제 약 5분이 남아 있었다.

아슬아슬했구나.

지속적으로 체크하던 시간을 어느 순간부터 체크하지 못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모자랄 뻔했어요.”

“그러게. 퍼스트클래스에서 남쪽으로 좀 더 집중했으면 결과를 몰랐겠는데? 운도 많이 따랐어. 막피가 그런 식으로 대놓고 내려와 버리니까 오히려 우리가 쉽게 가져갔지.”

성동격서.

막피가 북쪽에서 잔뜩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가 치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는 소리다.

반대로 막피가 머뭇거리면서 간만 보는 식으로 진행을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나중에 폭군한테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나? 고맙다고.”

“아마…… 좋아하진 않을 거예요.”

“역시 그렇지?”

그런 말을 하면서 재중이 형과 마주 보면서 웃었다.

“일단, 전부 챙겨!”

그때, 사장님이 사방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마지막에 붙었던 격전으로 인해 주변에 떨어진 아이템이 적지 않다.

공성전에선 드랍률이 낮다고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니까.

이거 아이템 분배 때문에 더 바쁘겠는데?

사장님이 꽤 머리가 아플실 것 같다.

하나의 길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우리도 다섯 개의 길드가 모여 있으니 분배 문제부터 보상 문제까지 작업량이 엄청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겼으니까 망정이지. 졌으면 진짜 해산이야. 피해가 엄청났을 거다. 퍼스트클래스는 이번에 안 봐도 뻔하겠네.”

퍼스트클래스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길드들의 피해를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해산, 해체.

떠오르는 단어는 이것 밖에 없다.

“정말 이겨서 다행이네요. 이번엔 사장님이 제일 바쁘시겠어요. 길드장이시니까.”

내가 길드장을 안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한데…….

“너도 길드장이잖아.”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죠.”

젠장,

망했네.

* * * * *

5분이라는 시각.

길다면 길지만, 외곽에서 메인 크리스털까지 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라면 또 모를까.

성벽도 넘어야 하고, 건물 사이로 달려야 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 버렸다.

수성하는 우리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성벽, 건물 사이, 대로 등 그 어느 곳으로 와도 시간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끝나 버리니까.

《 하르페 공성전이 5초 남았습니다. 》

《 5. 》

《 4. 》

《 3. 》

《 2. 》

《 1. 》

《 현 시간부로 모든 지역의 공성전이 끝납니다. 》

《 최강 길드가 하르페의 소유권을 획득하였습니다. 》

《 승자에게 축복을! 》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인 크리스털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냈다!”

“우리가 이겼어!”

“꺄! 다들 수고했어요!”

사람들의 기뻐하는 외침에 감정이 같이 격양되어 한층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진짜 이겼구나 하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스칼렛이 사장님, 재중이 형, 전설, 유령, 이슬두잔에게 한 번씩 인사를 나누고 지나갔다.

“이쪽에 줄을 대는 것이 옳았군요.”

“도박이 성공하니 기분이 좋네요.”

유령과 이슬두잔도 마지막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다.

재중이 형이 조심하라고 했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키며 분전했다.

우리가 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네.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전설은 그냥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일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전설이다.

가장 같은 편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지금은 한 자리에서 같이 축배를 들고 있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대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기고 나니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희석된 것 같은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들도 피해가 있었으니 함께 싸운 동료라고 말하기에 부족하진 않다.

각자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하던가?

* * * * *

분배 때문에 우리 길드 건물로 각 길드의 길드장과 수행원이 한 명씩이 모여 꽤 오랜 시간 토론을 했다.

워낙 사람이 많기도 하고 템 문제부터 하르페에서 나올 세금 문제까지 이야기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기존에 생각했던 3팀 체제에서 5팀 체제로 변했기에 전체 분배 문제부터 다시 조정했다.

약속했던 부분에 대한 부분과 생각 외로 많이 드랍 된 아이템들의 배분을 조정하기 시작하자 열띤 긴장감 속에 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성과에 따른 분배, 역할에 따른 분배, 인원에 따른 분배.

듣고만 있어도 머리가 아픈 내용들을 서로 밀고 당기면서 하나라도 더 자기 길드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거의 네 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겨우 마무리 지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네요…….”

내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테이블에 엎어지니 방패전사도 목을 매만지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나도 피곤하네. 스칼렛 그 여자 진짜 꼼꼼하더라. 유령이나 이슬두잔이 쩔쩔매던데? 전설이 짜증내는 걸 처음 봤어.”

“확실히 그렇죠?”

신화 길드에서는 나와 방패전사가 대표로 참석했다.

실제로 회의는 방패전사가 참여했고 난 거의 구경만 했다.

이런 분배 문제는 나보다는 방패전사 쪽이 잘하기도 하고, 훨씬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방패전사는 회의를 재미있어 했다.

나와는 다르게.

네 시간 동안 가시방석처럼 느껴졌으니 다른 말을 해서 뭐하겠는가.

차라리 여왕을 한 번 더 상대하고 말지.

정말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느끼고 말았다.

“전사 형 아니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요. 정신적인 충격으로.”

“하하, 너도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다.”

“안 그러고 싶네요. 진짜.”

내 그런 모습에 방패전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더 볼 것이 없다는 듯 바로 돌아갔고, 유령과 이슬두잔은 사장님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돌아갔다.

아마,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의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스칼렛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던 내게 다가왔다.

“어머? 괜찮으세요?”

“보시다시피…… 썩 좋지는 않네요.”

누가 봐도 파김치인가 보네.

“무슨 일로?”

“나중에 따로 한 번 뵈었으면 해서요. 여긴 자리가 그렇게 좋지 않네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 같기는 한데…….

“스카우트 제의라면 안 들은 걸로 할게요.”

“들켰네요?”

정답인가.

내가 거절을 했음에도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치고 나가실 거죠?”

“……그냥 새로운 것을 즐기는 거죠.”

“제가 보기엔 좀 더 본인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를테면 경매라던가 하는 문제요.”

“흠, 무슨 말이죠?”

“쭉 지켜봤는데 가지고 계신 물건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창고에 너무 박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신경을 쓰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네임드 템 말인가?

그것 외에도 부속적인 제작 재료도 많다.

꺼려지는 것은 그것을 풀었을 때 다른 길드가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가 제일 크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대부분 우리 팀 선에서 가지고 더 이상 풀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호 님이 돈이 아쉽거나 하지는 않겠지만요. 그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에요.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템이겠죠? 로스트 스카이는 넓어요. 우리가 이제껏 경험했던 곳보다 훨씬요. 과연 몇몇 길드에서 그걸 다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뭐, 무리겠죠.”

사실상 힘들다.

우리도 당장 하르페 하나만 공성했을 뿐인데도 다른 길드와 힘을 합쳐서 겨우 먹었으니까.

숫자의 중요함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최고의 소수 정예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나중에 지역이 더 넓어지면 줄 곳은 줘야 하고 꼭 지켜야하는 곳만 선택적으로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라는 소리다.

“주호 님은 아마 최고의 템만을 고집하실 것 같아요. 로스트 스카이는 넓고 주호 님이 신경 쓰지 못하는 지역을 공략해서 나오는 템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는?”

“제가 중개를 맡고 싶어요. 이를테면 주호 님이 구하기 힘든. 혹은 경쟁자가 가지고 있는 희귀 템을 협상을 해서 구해다드린다던지 이런 방향이 되면 좋겠죠?”

“……그래서 제 템의 독점적인 중개권을 맡겨 달라 이런 이야기군요?”

“어머? 역시 이야기가 잘 통하시네요. 전 머리 좋은 사람이 좋아요. 물론 이것은 주호 님이 파실 의향이 있는 템을 제가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드린다는 뜻이에요.”

내 말에 스칼렛이 진한 바이올렛 롱 헤어를 찰랑거리면서 흔들었다.

저 헤어 색을 보고 있으려니 유혜선 팀장이 생각나네.

현실에서 저 헤어 색을 하고 다니는 유혜선 팀장이 훨씬 진기한 쪽이긴 하지.

“그러면 그쪽은 뭘 얻을 수 있죠?”

“으음, 실질적으로 약간의 수수료겠지만 이건 사실 없다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것 보다는 주호 님 쪽과의 인맥,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확실히 이 여자 보통 여자는 아니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딱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더 무섭고.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눠보고 말씀드리죠.”

“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결과 나오길 기대할게요.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 될 거예요.”

스칼렛이 이야기가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역시 길드 건물을 떠나갔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네.

다른 지역의 네임드에 준하는 아이템을 구해다 준다라…….

나쁘진 않겠네.

회의를 마무리 지으며 상당수의 템도 내 손에 떨어졌다.

“처분해서 줄까?”

사장님이 묻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제가 쓸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필요한 템이 없으니 길드 내에서 처분해서 바로 돈으로 받기로 했다.

처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신경 쏟을 것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편하다.

이번에 돈이 들어오면 그 돈을 전부 투자해 방어구를 싹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적응하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니까.

지금 방어구로는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다.

무기는 어쩔 수 없고.

네임드 무기는 물량이 적어 강화하다가 날리면 그때부터는 답도 안 보인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접속 시간이 거의 다 되기도 했고, 온종일 공성전을 한다고 피곤한 것도 있다.

“네, 오빠 들어가세요.”

“내일 봐요! 우리도 이제 나가요.”

“그래, 오늘 고생했어.”

챠밍과 이쁜소녀에게 인사를 하고 방패저사, 나르샤에게 나간다고 전한 뒤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 * * * *

아마, 거의 기절했었지?

씻고 잠시 쇼파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스마트폰을 보니 그사이에 문자가 와 있었다.

<유혜선> 오늘 검사받으러 오는 날이에요. 잊지 말고 와요.

흠, 가야겠지.

다른 것은 빠져도 이것은 안 된다.

유혜선 팀장이 말한 최소한의 검사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

간단히 끼니를 챙기고 바로 DS 본사로 갔다.

“오셨어요? 방송 잘 봤어요.”

“아, 공성전 말이죠? 정작 저는 아직 못 봤네요.”

“엄청 재밌었어요. 특히, 승호 씨 쪽이요. 매 장면이 영화였어요.”

“제가 방송에 많이 나왔어요?”

“네, 아예 따라다니면서 찍던데 몰랐어요?”

“뭐,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하나 체크를 시작했다.

언제 해도 묘한 느낌이네.

검사를 하다 무심결에 궁금한 부분이 떠올라 물어봤다.

“이쁜소녀, 아니 아라, 혹시 알고 있어요?”

“아, 회장님 손녀분요? 네, 모습은 커서 잘 몰랐는데 알긴 알아요. 제 전임이 잘린 이유이기도 하고.”

“네? 잘려요?”

“덕분에 제가 여기 들어왔으니 사람 일이 참 이상하게 돌아가죠? 저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전임 팀장하고 그다지 일면식도 없어서.”

“그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어요?”

“PV로 갔어요. 제가 알기로 거기서도 연구 팀장 한다고 하던데. 능력은 있었어요. 시기를 잘못 탔을 뿐이지만. 저도 뭐, 남 일이 아니라서 좋아하거나 그럴 수는 없네요.”

그 말과 함께 날 보는데 조금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아라 양 이야기는 해도 되려나? 뭐, 괜찮겠죠? 우리가 남도 아니고.”

그 말을 하면서 유혜선 팀장이 내 몸을 짓궂은 눈빛으로 한 번 슥 훑어봤다.

갑자기 오한이 드네.

무서운데?

“시간이 꽤 지났지만……. 금기였으니까 서로 말하기를 꺼렸거든요. 으음, 지금은 괜찮을 거예요. 이젠 더 이상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어서요.”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금기란 소리까지 나오는 걸까.

내 궁금해하는 표정을 보더니 유혜선 팀장이 마지못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라 양이 음…… 이렇게 이야기하면 알까요?”

무슨 이야기이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지.

“승호 씨하고 같아요.”

“네?”

“과몰입 증후군이라고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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