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화 하르페 공성전 (9)
스파크 소드에 맞아 죽음의 빛으로 사라지는 화련.
화련을 바라보는 지배자 연합.
그 죽음을 확인하였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라만 볼 뿐.
빠르게 충격을 해소한 사람들은 일제히 스파크 소드가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개 숙여.”
재중이 형의 말에 우리 팀 모두 빠르게 창가에서 떨어져 벽으로 숨거나 고개를 숙였다.
“눈치챘네요.”
“그래, 얼른 튀자.”
재중이 형의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래 남아 있다간 지배자 연합의 끈질긴 추격과 포위에 당할지 모른다.
지금 저들과 붙을 것이 아니라, 무조건 멀리 피하는 것이 정답이다.
건물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케르베로스를 타고 최대한 지배자 연합이 쫓아올 수 없도록 전속력으로 도망쳐 나왔다.
“저건 회수 못 하겠지?”
방패전사가 내가 쏜 스파크 소드가 아까운지 입맛을 다셨다.
연습 때는 이쁜소녀와 재중이 형이 회수를 도와줬지만, 지금은 엄연히 내다 버린 거다.
그것도 적들이 바글바글한 적진 안에다가.
“하하, 무리죠.”
정말 비싼 무기였지만, 아까워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저 한 방으로 전세가 확 바뀔 거야. 그만한 값어치를 하길 빌자고. 분란이 일어날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변수가 생길지.”
재중이 형은 미련이 없는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모습이다.
“잡아!”
“거기 안 서?!”
“따라가!”
건물에서 빠져나와 도망치는 우리의 뒤로 지배자 연합이 따라붙었지만, 애초에 기동력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케르베로스라는 현재 로스트 스카이에 존재하는 최고의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데 반해 저쪽은 그렇지 못하니까.
점점 지배자 연합의 외침이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에서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따돌린 것 같네요.”
뒤를 한 번 돌아본 방패전사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자, 다른 사람들 역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놈을 따라올 수 없으니까. 고생한 보람이 있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은 했지만 필요한 만큼 확실히 준비를 잘 했다.
완전히 따돌린 것 같자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코스를 돌렸다.
지금쯤 그쪽도 준비가 다 됐을 것 같으니.
<주호> 1팀, 작전 완료.
<카이저> 진짜로 했구나.
<주호> 말씀드렸잖아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카이저> 아이고, 우리 복덩이.
<주호> 하하.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PC방에 있었다면 끌어안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그때가 오랜 일처럼 느껴지네…….
<카이저>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다. 지배자 진영이 어수선해서 혹시나 했는데.
<주호> 그렇게 빨리요?
<카이저> 귓말만 하면 바로 콜이지.
확실히 가상세계에선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지 귓말 하나면 다 연락이 된다.
우리도 이렇게 연락하고 있으니 뭐.
연락책을 끊는다든지 하는 전술은 아쉽게도 쓸 수가 없다.
아예 공성전 밖으로 보내지 않는 이상은.
화련도 그래서 죽인 거고.
공성전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지배자 연합을 진두지휘할 수 없으니까.
<주호> 상황은 어때요?
<카이저> 흠, 균형이 곧 깨질 것 같다. 일단, 빨리 복귀해. 상황이 묘하다.
<주호> 네, 금방 복귀할게요.
사장님과 이야기한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면서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새 우리 라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왔냐? 고생했다.”
“네, 변한 게 있어요?”
“의견 통일이 안 되는지 몇 라인이 따로 떨어져 행동하는구나.”
“역시…….”
예상했던 것과 거의 동일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분열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좀 더 내부적으로 미묘하게 협력이 안 되는 정도를 바랄 뿐.
우리 팀이 복귀하자 전설과 스칼렛, 아랑, 칼, 아로하가 우리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지?
저 시선은.
전설은 팔짱을 끼고 날 알 수 없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고, 아랑, 칼, 아로하는 궁금함을 가득 담은 눈빛이다.
결국, 참을 수 없었던 건지 스칼렛이 대표로 내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화련을 잡았어요?”
그러고 보니 재중이 형이 작전은 말해줬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말해준 적이 없다.
어떤 식으로 화련을 잡을 것인가.
음…… 궁금할 수도 있겠네.
저 사람들 입장이라면.
내가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나섰다.
“뭐, 비밀이라면 비밀인데, 어차피 지배자 라인 쪽에서 소문이 다 퍼질 거니까. 아마 공성전 끝나자마자 다 알려질 거다.”
“하긴, 그렇겠네요.”
나도 딱히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고 따라 할 수 있다면…….
재중이 형이 못 이기는 척 어떻게 화련을 잡았는지 알려주자 스칼렛의 표정이 어리둥절, 그 후엔 경악으로 바뀌었다.
“말이 돼요?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뭐, 난 알려줬다. 나중에 딴말 하지 말라고.”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돌아서자 스칼렛이 온갖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하아,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믿으면 제가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안 믿으면 설명이 안 되니…….”
나도 더 해줄 말이 없다.
“저기, 사람은 맞으시죠?”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봤던 질문인데?
언제였더라.
그러면서 넋이 나간 듯 계속 중얼거린다.
“화살도 아니고, 무기를 쏘다니……. 상식 밖이야. 다른 분들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우리 팀을 바라보면서 묻는데 이미 다 적응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하아, 당연하다는 그런 표정들은 뭐에요.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나중에 한 번 해보세요. 의외로 할 만해요.”
“당신…… 정말 이상한 것 알아요?”
“뭐, 그렇다고 하더군요.”
내가 웃어주자 스칼렛이 한숨을 내쉬고는 겨우 평정을 찾은 듯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감정을 잘 숨기던 스칼렛이 이 정도로 무너지다니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본데.
그리고 어느새 아로하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활을 하나 들고 한손검을 꺼내더니 시위를 메기고 활시위를 놓았다.
직접 해본다는 건가?
하지만 어느 정도 날아가다 확하고 떨어진 것에 실망한 얼굴로 변해 버렸다.
“무거워…….”
보통은 잘 안 날아가지.
아니, 높은 위치와 강한 힘, 좋은 활까지 준비해야 겨우 시작점이다.
그 이후로는 감각에 완전히 의존해야 하니까.
화살과 다르게 검은 깃도 없고, 검 끝을 잡는 각이나 시위를 놓는 방법까지 완벽해야 원하는 위치로 날아간다.
따라 할 수 있으면 따라 해 보라는 것도 이런 이유고.
전설이나 아랑의 눈치를 보니 나중에 다 해볼 것 같기는 하네.
뭐, 돈이 넘치면 한 번 해보라지.
“자! 그만! 지금 중요한 것이 그게 아니다.”
사장님이 어느새 길드원들을 이끌고 외치니 전설과 달 길드 사람들도 붕 뜬 분위기에서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녀석들이 움직였다.”
* * * * *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해야 하나?
화련이 죽으면서 지휘가 엉망이 되긴 했다.
그건 사장님이 확인해 주셔서 확실하다.
여기까진 우리가 원한 그림이다.
다만.
“완전 화약고에 불을 붙여 버렸네.”
“그러게요.”
누가 지휘권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화련이 죽기 전 지배자 연합과 죽고 난 뒤의 지배자 연합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원래 퍼스트클래스 연합의 세력이 줄어들자,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지금은 그냥 무대포다.
무조건 전진.
그러다 보니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분열도 됐고.
“유령이 있는 소수정예와 이슬두잔의 치맥 길드는 손을 뗀 것 같아요.”
스칼렛의 정보원들이 지배자 연합에서 소수정예와 치맥 길드가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해줬다.
“분열인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따로 떨어진 것을 보면 뻔하죠. 그렇다고 지배자 연합을 공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간부들끼리 언성이 높아졌다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떨어져 나갔으면 더 좋다.
지금 지배자 연합은 너무 덩치가 크니까.
“아! 그리고 지배자 길드 역시 떨어져 나갔어요. 지금은 지배자 연합의 지휘를 전혀 다른 사람이 하고 있어요. 이젠 지배자 연합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졌네요.”
“대체 누가요?”
“폭군요.”
폭군이라면 막피 길드의 길드장이다.
전에 전설이 밀려나면서 랭킹 3위를 먹은 유저이기도 하고.
이 사람도 무시 못 하지.
로스트 스카이가 시작되고부터 지금까지 랭킹에서 한 번도 떨어져 나간 적이 없는 강호다.
“배신인가?”
재중이 형이 짚이는 것이 있는지 바로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화련이 사라지자 아예 자신이 하르페를 먹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지배자 길드와 소수정예, 치맥 길드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아요.”
“흐음, 아니면 애초에 화련에게 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랭킹 3위를 유지하려면 들어가는 돈도 무시 못 해. 자금 없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확률은 반반이지만 화련이 없는 이상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겠네.”
이제 막피 연합이라고 불러야 하나?
폭군이 지휘하는 막피 연합과 퍼스트클래스 연합이 메인 크리스털이 있는 광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완전한 전면전.
더 이상 시간 끌기 아깝다는 듯 폭군의 막피 연합이 사방에서 몰아치면서 퍼스트클래스 연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폭군과 상위 길드들이 힘을 합쳐 밀어대니 퍼스트클래스 연합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물론, 일부 다른 길드들이 퍼스트클래스를 도와 같이 싸워주니까 확실하게 메인 크리스털까지 닿지는 못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끌린다면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막피 연합이 밀어붙일 것이 확실해 보였다.
재중이 형이 진중한 표정으로 두 연합이 붙고 있는 광장을 주시했다.
“어쩌죠?”
“애매한데? 지금 퍼스트클래스에 붙어 싸워도 되긴 해. 그럼, 분열된 막피 연합하고 거의 백중세쯤 되려나.”
“그럼, 치고 들어가요?”
“아니, 지금은 걸리는 것이 있어서.”
“걸리는 거라뇨?”
“지배자하고 소수정예, 치맥 길드.”
“그냥 떨어져나간 것 아니에요?”
“그게 의도를 알 수가 없으니까, 어쩌면 저쪽에서 장난치고 있는지도 모르지. 서로 싸우는 척하고 별도로 별동대를 꾸릴 수도 있고. 이런 상황에서 뒤통수 들어오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그냥 끝나.”
우리가 만든 변수가 엉뚱하게 튀어나가서 움직이기 힘들게 돼버렸나?
“정 안 된다 싶으면 그냥 들어간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퍼스트클래스가 더 밀리면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런 상황에서 사장님이 놀란 표정으로 누군가가 귓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으음, 이거 주호 네가 우리를 살렸구나.”
“네?”
“네가 화련을 죽인 덕분에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대체 무슨 소리지?
사장님이 급하게 전설과 스칼렛을 불러 모으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유령, 이슬두잔이 동맹을 제의해왔다.”
“어머? 그래요?”
“흠, 그건 흥미롭군요.”
스칼렛과 전설이 사장님 말에 이채를 보였다.
“다들 의견은?”
“지금은 나쁠 것 없죠.”
“나눌 것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아예 못 먹는 것하고는 또 다르니까. 반대하진 않겠습니다.”
둘 다 긍정적인 답변이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드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탐탁지 않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아예 못 먹는 것과 나눌 것이 있다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
《 소수 정예 길드가 최강 연합에 소속 됩니다. 》
《 치맥 길드가 최강 연합에 소속 됩니다. 》
결정할 시간도 아까워 바로 소수 정예와 치맥 길드를 연합에 받아들였다.
그러자 가까이에서 대기했는지 유령과 이슬두잔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령이라고 합니다. 구면이죠?”
“이슬두잔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유령은 전에 봤었고, 이슬두잔은 연녹색의 포니테일에 청초한 몸매가 잘빠진 여인이다.
이때까지 남자인 줄만 알았던 이슬두잔이 여성이라니…….
아이디하고 생김새하고 도저히 매치가 안 되네.
잠시 눈이 스쳤다가 유령이 하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집중했다.
“아, 이 썩을 새끼가 완전히 후려치려고 하잖아요. 남자 가오가 있지 진짜. 제가 참으면서 설렁설렁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하는 꼴이 맘에 안 들어서 나왔슴다.”
“……좀 대책 없긴 했어요. 화련하고 했던 약속을 전부 다 깨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엔 비전이 너무 없었거든요.”
둘 다 불만이 많았나 본데?
“그런데 이쪽 사장님은 맘에 드네요.”
그렇게 속삭이면서 이슬두잔이 사장님에게 눈웃음을 쳤다.
어이, 이 여자야.
그분 유부남이야.
애가 내년에 대학교 간다고.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슬두잔이 사장님께 미소 짓는 동안 유령이 말을 이었다.
“이쪽이 수가 적어도 비전이 있어 보였습니다. 우리가 들어와도 나눌 것도 많아 보이고. 사장님도 화끈하게 분배를 약속했으니까요.”
그 말에 모두 사장님을 바라봤다.
“일단 이기고 보자꾸나.”
“나쁘진 않네요.”
재중이 형도 괜찮다는 표정이다.
“이 정도 전력이면…… 우리도 전면전을 할 수 있지. 가자.”
그리고 눈을 빛내면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옆을 따라가면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꺼내자 재중이 형이 내게 따로 말을 했다.
“짧고 굵게 간다. 메인 크리스털. 바로 뛰어들어. 뒤는 우리가 커버한다.”
“……피해가 만만찮을 건데요?”
“어차피 길게 끌어봐야 똑같아. 이 정도 전력이 있을 때 단 번에 간다. 할 수 있지? 네가 화살이다. 크리스털을 부수는 역할.”
재중이 형이 날 굳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크리스털까지라……
까짓것 가보자.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강하게 쥐고 발을 옮겼다.
퍼스트클래스 연합과 막피 연합의 난전 속으로.
이 공성전의 끝을 낼 마지막 싸움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