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165화 하르페 공성전 (7)
전설 길드?
길드 마크를 붉은색 영문 레전드(Legend)로 사용하는 곳은 딱 하나.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 없는 길드를 꼽으라면 바로 그곳이다.
경쟁 심리.
우리도 그렇지만 전설도 어디 다른 길드에 가서 숙이고 들어갈 정도는 아니니까.
전설이 진한 금발을 휘날리면서 방패전사와 같은 라지쉴드를 들고 전설 길드를 이끌면서 굳건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띠면서 우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구면이라고 해야 하겠죠. 반갑습니다. 전설 길드 길마 전설입니다.”
“불멸입니다.”
나와 우리 팀은 딱히 나설 자리는 아닌 것 같아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악수하는 것을 바라봤다.
형은 표정을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장님이 내게 슬쩍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마지막까지 조율한다고 말이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야기를 안 꺼내고 있었다.”
“그런가요?”
딱히 상관은 없는데.
내게 이야기를 못한 것이 신경 쓰이는지 사장님이 살짝 언급만 하고 바로 다시 전설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리고 전설 뒤쪽에 양손검을 등에 차고 붉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소년이 날 계속 쳐다보는 중이다.
아랑이었던가?
대회에서 내게 밀려서 탈락했었지.
당시엔 꽤 재밌는 짓을 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뭐, 딱히 인사를 나눌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라 잠시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주변의 혼잡한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사장님과 전설도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누진 않고 바로 진형을 짰다.
길드 두 개의 인원이지만 길드원의 레벨이나 질로만 따지면 다른 길드 몇 개가 합쳐진 전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본 방패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하니 전설하고 힘을 합칠 줄이야.”
“그러네요. 생각도 못 했어요.”
“전설 쪽에서도 급했나봐?”
확실히 지금 이대로 분위기가 흘러가면 퍼스트클래스가 먹든지, 아니면 동쪽 성문을 열게 만든 모종의 길드 연합이 먹든지 우리가 결코 주연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 온다.
“일단 먹고 생각하자.”
그 말과 함께 재중이 형이 진형을 새롭게 편성했다.
전설 길드가 한쪽을 맡아주면 굳이 방어에 힘을 쏟을 필요는 없으니까.
반대쪽으로 좀 더 전력을 집중해도 된다.
“아직 한 팀이 더 있다.”
사장님의 말하기 무섭게 또 다른 길드가 골목을 통해 접근해왔다.
이번엔 아는 사람들이네.
“어머? 반가워요?”
달 길드 길마.
스칼렛.
그 뒤로 곧 다시 본다고 했던 칼이 스칼렛을 보좌하듯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아로하가 역시 은발을 길게 휘날리면서 걸어왔다.
점점 전력이 어벤저스로 변하는데?
대회 16강에 올랐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전설과 연결한 쪽이 스칼렛이라서.”
재중이 형이 스칼렛과 눈인사를 하더니 내게 와서 말해줬다.
그렇게 된 건가?
하긴, 아무런 끈도 없던 우리와 전설이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중간에 달 길드가 있었다면 무리가 없지.
달 길드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주 많으니까.
서로의 필요에 의한 만남인가?
“이제 더 없죠?”
“아아, 진짜 마지막. 이젠 정말 저걸 뚫어야 해.”
재중이 형이 눈짓으로 한창 전쟁 중인 광장 쪽을 가리켰다.
이 골목에서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아수라장으로 들어선다.
그때, 스칼렛이 옆으로 와서 진지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퍼스트클래스 연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저쪽은 수가 많을 뿐이죠.”
“그럼?”
재중이 형이 바로 물었다.
“화련이 길마인 지배자 길드와 상위 랭커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지배자 연합요. 현 랭킹 3위 폭군, 4위 유령, 5위 싸이클론, 6위 이슬두잔, 9위 혈검, 10위 소서리스까지 전부 손을 잡았어요. 거기다 100위권 안에 있는 다수의 길드도 합쳐졌고요.”
“……뭐?”
이 말에는 재중이 형도 깜짝 놀랐는지 바로 스칼렛을 쳐다봤다.
화련이면 전에 나에게 자기 길드로 넘어오라고 했던 그 여자인데.
저 정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다니.
수완이 장난이 아니다.
“동쪽 성문을 연 것도 저들이 한 짓이에요. 적당한 연합에게 내어주고 배신자를 이용해서 한 번에 뒤집는 작전. 보다시피 확실하게 성공한 모습이구요.”
동쪽 문을 연 세력이 궁금했는데…….
여기서 바로 듣게 되네.
우리만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길드들도 수면 아래서 자기들 나름대로 작전을 만들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 큰 흐름에 손쓸 틈 없이 휘말려 버렸고.
이거 잘못하다간 완전히 물리겠는데.
“퍼스트클래스는 먹음직스러운 미끼일 뿐이에요. 진짜는 아직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사장님도 골치가 아픈지 다시 전장을 바라봤다.
“어쩐지…… 연합 제의가 이상하게 오더라니.”
뭔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속사정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 말처럼 지금 한창 싸우고 있는 전장에 상위 랭커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시간을 재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러는 동안 퍼스트클래스는 전력이 점점 깎여나가는 중이고.
“만만해진다 싶을 때 병력 피해 없이 퍼스트클래스를 물어뜯을 거예요. 그리고 남은 짧은 시간 동안 수성에 성공하면 끝이죠. 지금 지배자 연합을 저지할 만한 큰 규모의 연합은 없어요.”
스칼렛이 단정하듯 이야기를 끝냈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다.
“용케 이쪽을 택했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칼렛이 이쪽을 택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저 정도로 많은 상위 길드가 연합했으면 우리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 그냥 정보만 넘기고 도와줄 필요는 없을 텐데도 이렇게 여기까지 나와 있다.
그것도 길드원들을 전부 이끌고.
거기다가 전설까지 붙여주면서까지 확실하게 우리를 밀어주고 있었다.
“여기가 감이 좋데요.”
응?
스칼렛이 전장을 멍하게 구경하던 아로하를 잠시 가리키다가 나를 바라봤다.
아로하가?
“뭐, 아무리 쟤가 그렇게 말했어도 이득이 없으면 안 움직였을 거예요. 충분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온 거니까 걱정 마세요.”
본인들 눈앞에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득을 이야기하다니 별나긴 별난 여자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나으려나?
그때 방패전사가 외쳤다.
“옵니다.”
지배자 연합이라는 것을 몰랐으면 그냥 우리가 먼저 치고 들어가 순식간에 뚫고 난 뒤에 하르페를 되찾았겠지만 지금 먼저 들어갔다가는 양쪽에서 샌드위치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잠시 버티고 있었더니 드디어 대규모의 지배자 연합이 광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퍼스트클래스 연합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타임아웃인가.”
약간의 한탄이 섞인 사장님의 목소리.
사장님이 시간을 계속 잰 것도 이런 이유다.
수가 적은 우리가 하르페를 다시 탈환하고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그걸 성공시키려면 조금 뒤에 들어가야 하는데 수가 많은 지배자 연합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저들은 수가 월등히 많으니 우리보단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
“너무 깔봤어. 저 정도로 연합해 오다니.”
재중이 형도 인상을 찌푸렸다.
소수정예도 좋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질만 좋다고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참전해요?”
원래 작전은 서로 싸우게 해서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 우리가 하르페를 꿀꺽하는 스토리였는데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 버렸다.
“그래, 기울어진 추를 새로 맞춰야겠다.”
결정 났네.
딱히 퍼스트클래스를 돕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지배자 연합을 깎아내려야 겨우 맞아 돌아간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아는지 퍼스트클래스를 치는 것을 멈추고 오히려 지배자 연합에게 칼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건가?
개판이네.
“아주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니네. 흐름을 탔어. 가자.”
다 어떻게든 하르페를 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전세가 순식간에 이리저리 넘어간다.
—전 길드원 지금부터 지배자 연합을 친다.
기호지세.
이제 뛰어내릴 곳은 없다.
사장님이 전설과 달 길드를 연합에 넣자 아이디 색이 붉은색에서 아군을 표시하는 파란색으로 변했다.
준비가 끝나자 전장 속으로 우리도 참전을 했다.
광장 중앙은 이미 포화 상태.
메인 크리스털 주변으로는 불덩어리가 떨어지고 얼음 기둥, 독무와 화살이 빗발쳤고 곳곳에선 와이드 힐로 회복을 반복하면서 밀고 밀리는 통에 틈을 맞춰 들어가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저런 곳에 들어가면 힐러들의 지원 없이는 힘들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부분에서 이길 수는 없다.
정확하게는 지배자 길드의 후방을 쳐서 퍼스트클래스 연합의 숨통을 열어준다.
주로 마법사들은 격수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후방에 빠져 있었는데 골목을 한참 돌아 들어가 후방에서 마법 지원을 하던 파괴 길드의 뒤를 잡았다.
전설 길드는 우리의 우측, 달 길드는 좌측을 돌면서 주변의 파괴 길드 사람과 부딪치기 시작했다.
저쪽은 저쪽대로 싸우고 큰 오더는 사장님에게서 따로 나간다.
—2팀, 길을 열고 길드원 보호와 보조.
—3팀, 4팀, 후방에 파괴 길드 마법진부터 잡는다.
“쓸어버려.”
사장님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골목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한참 싸움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따로 빠져나왔다.
—1팀은 건물 위 저격수 처리.
기동성이 제일 좋은 우리가 저격조를 맡았으니까.
2팀이 길을 열어주는 동안 저격수가 있는 건물 입구로 뛰어 2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자마자 우리에게 화살과 마법이 무더기로 쏘아졌다.
【 매직 애로우! 】
【 파이어 볼! 】
【 아이스 볼! 】
【 바인드! 】
【 파이어 월! 】
【 아이스 월! 】
예전에 주로 쓰던 기본적인 마법과.
【 아쿠아 캐논! 】
심지어 검은 호수에서 나오는 아쿠아 캐논까지 동시에 날아들었다.
호수 세트로 마법 방어를 한껏 끌어올린 방패전사는 광역 마법의 집중포화에서도 그대로 물의 방패를 들어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물의 방패가 환한 빛을 뿜어냈다.
【 리플렉션! 】
내가 생각하는 가장 까다로운 마법이 방패전사의 물의 방패로 시전되자 방패전사를 공격하던 마법들이 그대로 반사되면서 2층에 마음대로 튕겨 나가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으악! 뭐야 이게.”
“마법 그만 쏴!”
“악!”
눈먼 마법들이 제멋대로 튕기면서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적들에게 날아가자 순식간에 전열이 무너져 버렸다.
“전사 형 나이스!”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도 동시에 따라왔다.
일단 수를 줄여야 하니 시작부터 화끈하게 가볼까?
【 백스탭! 】
【 대쉬! 】
일단 대쉬를 쓰는 구간은 대미지 무효.
마지막 순간이 위험하지만 그때는 따로 콤보가 있다.
내가 순식간에 자기들 전열 안으로 파고들자 사방에 반사된 마법들을 피하던 궁수와 마법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지었다.
그리고,
【 어스 퀘이크! 】
건물 안이라 시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바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시전이 된다.
다만, 건물이 좀 흔들릴 뿐.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진 않는다.
전열 한가운데서 던켈로 바닥을 내려찍자 돌 폭풍이 일어나면서 주변의 궁수와 마법사들을 전부 날려 버렸다.
“으악!”
모두 벽에 튕겨 나간 뒤 정신을 못 차리자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올라와서 동시에 한 번 더 기술을 시전했다.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그러자 다시 벽에 처박힌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니 한꺼번에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방패전사가 모든 공격을 몸으로 때우고, 내가 파고들어 전열을 부수고, 이쁜소녀와 재중이 형이 마무리.
거기다 전부 호수 세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광역 마법이 남아 있음에도 그렇게까지 HP가 깎이는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게 처리하고 신호를 하자 나르샤와 챠밍이 바로 2층으로 올라왔다.
메인 크리스털이 가장 잘 보이는 경치 좋은 장소를 접수.
여기서부터는 맡겨야지.
“그럼, 여긴 나르샤 누나하고 챠밍이.”
“알았어.”
“맡겨두세요.”
곧장 2층 창문으로 다가간 챠밍과 나르샤가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전리품인 바닥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템들을 하나씩 수거했다.
싸움은 싸움이고 이건 부수입이니까.
챠밍과 나르샤를 보니 이제 스킬을 다 쓸 모양이다.
이제 딱히 아낄 필요도 없기도 하고.
2층에서 내려다보면서 챠밍이 범위를 지정한 후 바로 마법을 썼다.
【 아쿠아 웨폰! 】
【 아쿠아 토네이도! 】
라미아 여왕이 쓰던 아쿠아 토네이도보다는 열화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광역 마법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상위의 대미지가 나온다.
거기에 더해 모든 아쿠아 계열의 마법을 증폭시켜주는 아쿠아 웨폰과 함께 쓰자 아쿠아 토네이도가 마치 정말 여왕이 쓰는 것처럼 범위가 크게 변화했다.
그렇게 풀 차징된 아쿠아 토네이도가 거센 물의 태풍을 일으키며 지배자 연합군이 한가득 몰려있는 곳에 작렬했다.
“크악!”
“이게 무슨?”
“도망가. 뒤틀린다.”
“빠져나갈 수가 없어!”
안 그래도 서로 밀집되어 있는데 거기에 듣도 보도 못한 흡입력이 있는 광역기가 떨어지자 회복을 해야 하는 힐러들까지 같이 휘말리면서 지배자 길드의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가 되기 시작했다.
아쿠아 토네이도는 한 번 걸려들면 탈출기가 없는 이상은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까.
모르면 그냥 당하는 수밖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있다가 아쿠아 토네이도에 압착되어 죽어버리자 어느 정도 비등했던 전장이 한 번에 퍼스트클래스 연합으로 기울었다.
“지금이야! 쳐!”
“들어가! 기회다!”
“밀어붙여!”
한쪽 라인이 붕괴하자 바로 다른 쪽 라인을 맡던 힐러들이 도와주러 움직였는데 이번엔 나르샤가 움직였다.
【 검은 가시! 】
【 멀티 샷! 】
멀티 샷으로 여러 방으로 늘어난 검은 가시가 대기를 찢고 날아가 지원 오던 사람들을 관통하면서 그 뒤로 달려오던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꿰뚫고 지나가 빛으로 만들어 버렸다.
챠밍과 나르샤의 활약으로 한쪽 라인이 완전히 붕괴되자 퍼스트클래스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거칠게 몰아쳤다.
그와 반대로 우리 쪽 건물로 저쪽 편의 타격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려가 볼게요.”
“같이 가자.”
아무래도 2층으로 올라오면 곤란하지.
챠밍과 나르샤가 마음 놓고 프리 딜을 넣어야 하니까.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1층으로 내려가자 수십 명의 붉은색 아이디가 입구 근처에서 뛰어 들어왔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이젠 아낄 필요도 없고.
그대로 아쿠아 블레이드를 내려치자 입구로 뛰어들던 수십 명의 연합군이 한 마디도 하지 못 한 채 압축된 블랙 아쿠아 캐논에 쓸려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입구 밖에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런……!”
“대체 뭐냐.”
“다 녹았어!”
“야! 뒤에 밀지 마!”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으니 좀 놀랐으려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차마 입구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몇 명이 고개만 살짝 빼서 우리를 바라봤다.
얼굴에 완전히 질려 있는 표정이 가득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낮게 깔린 음성을 내뱉었다.
“뒤지고 싶은 놈들만 들어와라. 다 녹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