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62화 (162/1,404)

# 162

#162화 하르페 공성전 (4)

기선 제압이 효과가 있었다.

안 그래도 성벽에 먼저 달려들어서 피해를 보는 것에 민감하던 사람들이 한 방에 앞사람이 죽는 것을 보자 그런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었다.

검은 가시도 쿨타임이 있는데 너무 쫄았는데?

우리 길드 사람 모두 나만큼 위력을 낼 수 없지만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괜히 먼저 나서서 죽는 것만 신경 쓸 뿐.

부활해 다시 공성에 참여할 수 있으면 이런 방법은 전혀 안 먹힌다.

그냥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오면 되니까.

그리고 사실 죽어도 될 것 같았으면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테고.

거기다.

사망 시 드랍 시스템까지 동일하다.

평소보다 절반 수준의 확률이라고는 하지만 확률이 있는 것은 무섭다.

보상을 얻고 싶으면 그만큼 자신의 것을 걸고 싸우라는 소리지.

일단 참여하면 마음 놓고 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죽거나 피해를 보면 그때부터는 전력에서 빠져야 하니까 각 길드의 길마가 자제시키는 모양이네. 하긴, 한두 푼 들어가는 작업도 아니고.”

재중이 형이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우리야 하르 원석을 싸게 구했다지만 다른 길드는 또 그렇지는 않다.

공성전 막차에 하르 가격이 완전히 올라갔으니까.

“사실 하르 가격만 아니었으면 이것보다 더 많이 참여했을 거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뭐, 저기서 더 늘어나나 줄어드나 별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한 명이 죽긴 했지만, 그것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파에 경이로움까지 생긴다.

정말 많은 사람이 하는구나.

그리고 저 많은 사람을 언제까지 묶어둘 수는 없다.

지금도 서서히 전진하면서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거기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탈 것들도 우리 위를 날아다니는 중이다.

보이는 외양은 일단 새는 아니다.

슬라임에 날개가 달린 포동포동한 모양.

그 위로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올라타 영상을 찍고 있는 것 같다.

얼핏 보이는 아이디에 ‘방송 중’이라는 특수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이 환하게 보인다.

저거 잡을 수 있으려나?

데스 위버를 살짝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간격을 재기 시작했다.

“야야, 방송하려고 왔는데 그걸 잡아버리면 어떻게 하게.”

“신경 쓰여서요.”

“파괴 안 되는 종류일 거다.”

“아쉽네요. 근데 방송 나가면 우리 쪽에 사람이 없는 게 훤히 다 보이지 않아요?”

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방법.

방송을 통해 상대방이 뭐 하고 있는지 훤히 다 들여다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방송사랑 게임사가 뭐 바보는 아니니까. 이미 외부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은 다 틀어막았지. 저거 방송돼도 공성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절대 못 봐. 거기다 외부로 연락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그제야 데스 위버를 아래로 내렸다.

방송하는 저 여자는 알고 있으려나? 방금 전까지 조준되어 있었다는 걸.

“시청률 때문에 개인 방송 쪽도 틀어막았어. 자기네 방송만 보라는 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

한 마디로 생방송은 되고 있지만, 우리도 못 보고 저들도 못 본다는 소리다.

거기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다.

죽고 나면 볼 수 있겠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차라리 가드들 다 올리죠?”

내가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자 고개를 끄덕이신다.

“하긴 아낄 필요는 없지. 하르페가 넘어가면 그냥 다 날리는 전력이니까.”

—팀장들에게 알림. 가드들 전부 성벽 위로 올려.

이건 그냥 보여주기식이다.

병력을 좀 더 많이 보이게 해 잠시나마 진격을 늦추는 그런 용도.

실제로 붙으면 샤르르 녹아 사라질 그런 전력 밖에 안 된다.

“추가 무장은요?”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드의 추가 무장.

가드를 고용하는 것도 돈이지만, 추가 무장이 돈을 아예 잡아먹는다고 한다.

가드를 무장시키기 위해 기본 무장을 제외한 추가 무장을 시작하는 순간 한 명당 수백은 가볍게 넘어가 버리는 돈 먹는 괴물이 된단다.

가성비는 최악이라고 하고.

“하르페의 세금을 조정할 수 있으면 엄청나게 올려놓고 가드로 성벽을 도배해도 되겠지만, 지금 형편에서 그건 어렵지.”

사장님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활 하나씩만 가드들에게 추가해도 지금 억 단위로 빠져나가.”

“그러면 안 되죠.”

어차피 다 버릴 전력이다.

거기에 돈을 더 넣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지.

그동안 하르페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는다고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까 이제는 버려도 손해는 아니다.

가드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자 순식간에 숫자가 많아졌다.

“이젠 진짜 좀 있어 보이네요.”

성벽 위로 수십 명의 가드가 올라와 머릿수를 채우자 다시 사람들에게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많잖아?”

“성벽을 넘으려고 했는데 흠…….”

“저게 가드인가?”

“어설프게 달려갔다간 손해가 적지 않겠어.”

기본 무장만 되어 있는 깡통들이긴 해도.

단순히 숫자로 보면 많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 * * * *

소강상태.

딱 그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묶어둘 수는 없다.

<수호> 북쪽 성벽 진격합니다.

<슬이아빠> 남쪽 성벽도 밀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최종병기> 서쪽도 들어옵니다.

각 성벽 쪽에서 시차 없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기다린 쪽에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격을 시작해 버렸다.

나서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누군가 앞에 나서면 줄줄이 달려드는 것은 쉬우니까.

“우리는 아직이네요.”

나 때문인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중이다.

거리는 계속 좁혀오지만.

—일단 적당히 싸우다가 가드를 남겨두고 일제히 빠지도록. 절대 죽으면 안 된다. 그리고 물약은 최대한 세이프해서 작전 지점까지 도달하도록.

<수호> 2팀 접수.

<슬이아빠> 3팀도 접수했습니다.

<최종병기> 4팀도 접수.

성벽은 애초에 버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도 버려야 할지도 모르고.

“어? 사람들 움직여요.”

깜짝 놀란 이쁜소녀가 사람들을 보면서 외쳤다.

“칫, 다른 성문 쪽 사정을 들은 건가?”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외부로 연락이 안 되는 것뿐이지 동맹끼리 연락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도 최대한 버티다가 빠진다. 정말 불리해서 빠진다는 인상을 주도록 해. 그냥 빠지면 의아하게 생각할 테니까.”

사장님의 말씀이 이어지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 듣고는 옆에 있는 챠밍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여왕에게서 얻은 마법은 일단 쓰지 마.”

“네, 알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봉인하라는 거죠?”

“그래, 정말 필요할 때가 올 거야. 그때 부탁해. 다른 마법들로는 한계가 있겠지만...”

“네, 최대한 잘 해볼게요.”

우리 중 이번에 전력이 가장 많이 올라간 것은 챠밍이다.

챠밍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승패가 갈릴지도 모른다.

어느새 수천에 다다르는 사람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진격했다.

서로 달리다 부딪치면 그 자리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것도 종종 보인다.

“온다!”

사장님이 짧고 굵게 외친다.

그 말이 큰 울림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우르르 달려오는 진격 소리와 함께 가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수천이지만 각각 다른 소속의 적들이라…….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애도를.

【 검은 가시! 】

바로 데스 위버를 조준해 제일 앞에 달려오는 사내를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쏜살같이 날아간 검은 화살이 사내를 관통하자 바로 사내가 뒹굴면서 뒤로 달려오던 사람들과 물귀신처럼 떼로 엎어져서 진열이 엉망이 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사람들에게 사정없이 밟히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더니 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됐다.

《 주호 님이 빅심심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2 Kill. 》

심심하지 않게 같이 여러 명을 같이 보내 줬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빅심심이 죽인 걸로 나오려나? 아니면 밟은 사람들이 죽인 걸로 나오려나.

마력을 모두 소모하자 케르베로스의 영향으로 다시 바닥부터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쿨타임 때문에 다시 쓰려면 좀 기다려야 하고.

이제 원거리로 쓸만한 기술은 비월참 밖에 없지만, 지금 날려봐야 정말 호수에 물 한 바가지 붓는 정도밖에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활질이 더 나아 보인다.

【 아쿠아 웨폰! 】

데스 위버에 푸른 기운이 맴돌자 다시 화살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멀티샷도 받았었지.

공성전을 위해서.

마력이 어느 정도 차자 바로 기술을 스위칭했다.

【 멀티샷! 】

오직 우리만이 가진 이점.

검은 가시를 잡고 얻은 광역 스킬들.

그리고 성벽 위라서 사거리가 이쪽이 훨씬 좋다.

저쪽은 화살이 닿지 않지만 우리는 쏘면 닿는다.

거기다 낙하하는 대미지까지 추가되고.

가장 민첩이 낮은 방패전사까지 포함해서 길드원들이 활을 들고 일제히 멀티 샷을 날리자 수십 아니, 수백이 동시에 화살을 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늘을 수놓는 가지각색의 이펙트를 머금은 화살들의 향연에 앞질러 달려오던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뭐야?”

“뭐긴 뭐야. 멀티 샷이잖아!”

“피해!”

“옆으로 굴러!”

라지 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앞에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전 범위를 커버해 줄 수 없다 보니 날아가 박히는 화살들에 전열이 확 무너지면서 진형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마법도 성벽 위에서 쏘면 훨씬 먼 사거리를 가진다.

【 포이즌 클라우드! 】

【 파이어 월! 】

【 아이스 월! 】

독무가 퍼지고 불바다가 되고 얼음 기둥 솟아오르면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게 아주 안 아픈 건 아니니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따끔따끔하고 타오르는 것 같고 땡땡 얼어붙으면서 한기가 올라오면 느낌이 참 미묘하다.

그리고 마법 대미지는…….

마법 방어 아이템이 없는 이상은.

엄청나게 잘 들어간다.

“아악!”

“뭐해! 반격해!”

“여기서 안 닿아 멍청아!”

“젠장! 맞으면서 달려들어!”

“탱커들 뭐해!”

“우리도 간당간당해. 새끼들아.”

방패전사처럼 라이트 쉴드가 없으면 마법 방어는 거의 몸으로 때우는 것과 비슷하다.

괜히 렙업을 하자마자 체력을 올렸겠는가.

우리의 장점.

폭렙을 해서 레벨이 높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저들은 우리보다 레벨이 낮다.

자연스럽게 체력에 투자를 덜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광역기.

우리 길드에 광역기가 없는 사람을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두세 개를 동시에 들고 있는 사람도 많고.

나만 해도 쓸 수 있는 광역기란 광역기는 다 배워둔 상태다.

거기다 장비까지 우리 쪽이 월등하고.

이번에 템을 잔뜩 풀면서 공격력과 스탯이 전부 대폭 상승했으니까.

지금처럼 성벽에서 맞지 않고 우리만 두들길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이런 점들이 전부 시너지를 발휘해서 엄청난 화력으로 돌변했다.

심지어 케르베로스까지 타고 있어 쿨만 돌아오면 바로 광역기를 날릴 수도 있고.

이렇게 단체로 광역 마법과 스킬들을 동시에 써 본 적이 없어서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전열을 녹여 버리는 중이다.

《 주호 님이 이것봐라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3 Kill. 》

《 주호 님이 조엘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4 Kill. 》

《 주호 님이 키라이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5 Kill. 》

《 주호 님이 ……. 》

《 주호……. 》

《 주호 님이 샤오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71 Kill. 》

《 주호 님이 한방두방 님을 죽였습니다! 주호 72 Kill. 》

킬 수가 너무 빨리 올라 누구를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간다.

아마 챠밍이나 아이꿍 같은 마법 계열들은 엄청나게 킬 수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다.

불구덩이와 얼음, 독무 속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으니까.

“하, 이건 생각 이상인데?”

재중이 형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을 했다.

사장님도 마찬가지.

“작전을 바꿔야 하나.”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로 상황이 좋다.

성벽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거리 싸움을 걸자 재미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저 벌써 오십 명 잡았어요!”

이쁜소녀가 흥분했는지 발그레한 얼굴로 열심히 광역기를 썼다.

“음…… 전 이백 명 넘어갔어요.”

확실히 마법사의 광역기는 굉장하네.

전쟁에서 전투 수행능력은 정말 마법사가 압도적이다.

“앗! 언니 벌써.”

음 저건 뭐라고 해야 하나.

90점 받았다고 자랑을 하는데 옆에서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온 그런 풍경인가?

뭐, 이것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고.

서로 더 잡았다고 자랑하는 정도다.

챠밍이 이쁜소녀를 보고 미소 짓자 이쁜소녀도 같이 웃어버렸다.

많이 잡으면 좋은 거지.

사람들이 잘 전진을 못 하는 것이 우리가 광역기를 엄청나게 쏟아붓는 것도 있지만…….

“어? 저 템?”

“야! 그거 내 꺼야!”

“떨어진 물건에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냐?”

비싸 보이는 무기나 방어구, 악세가 떨어지자 달려오다가도 뒤돌아서 아이템을 줍는 사람도 보인다.

하긴 강화가 높으면 저쪽을 먹고 튀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중간에서 방향을 틀었다가 서로 부딪히고 엎어지고 난리도 저런 난리가 없다.

“개판이네요.”

“다 같은 편은 아니니까. 참…… 헛짓거리들 하네.”

재중이 형이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그런 아수라장이 한동안 연출되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참여한 공성전이다 보니 차곡차곡 거리가 좁혀졌다.

“성벽에 거의 다 왔다!”

【 아쿠아 캐논! 】

성벽에 붙으려고 하자 마법사들이 아쿠아 캐논을 써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나도 비월참으로 몇 명을 떼어내긴 했는데 이미 너무 많은 수가 성벽에 닿았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화살도 수십 발씩 날아와 주변에 꽂히고 있었고.

어느 정도 밀리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했는데 수백의 사람이 동시에 밀려드니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쳇, 여기까지인가?”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찬다.

이 이상 재미를 보려고 하면 분명히 피해가 난다.

“형, 빠지죠?”

“그래. 이 이상은 무리겠네. 마법사 애들 먼저 빠지고 발 빠른 애들은 뒤에 커버해.”

재중이 형의 말이 곧바로 전달되자 챠밍과 이쁜소녀가 먼저 케르베로스를 타고 자리를 떴다.

“조금 있다가 봐요.”

“조심해서 오세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성벽을 내려가자 방패전사와 나르샤, 사장님도 따라서 내려갔다.

“애들 잘 챙겨서 내려와.”

“걱정 마시고 가세요.”

사장님이 재중이 형에게 말을 하고 바로 내려가면서 길드말로 각 팀에 지시를 다시 내렸다.

—2, 3, 4팀 상황은?

<수호> 2팀은 다 빠졌습니다. 성문 뚫렸고 우르르 밀려오네요.

<슬이아빠> 3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종병기> 4팀도 동일.

우리보다 한발 먼저 다 빠진 건가?

“우리가 막차네. 가드들 앞에 세우고 그만 빠지자.”

“네.”

재중이 형이 먼저 케르베로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성벽 위로 누군가 점프해서 올라왔다.

벌써 도착한 놈이 있나?

가드만으로는 힘들겠지.

나도 그냥 무시하고 계단으로 가려는데 그놈이 순식간에 내 앞을 막아서면서 버티고 섰다.

“이대로 가면 섭하지. 이쪽 길드에 쌓인 게 많아서 말이야. 널 지금 박살을 내버려야 이쁜소녀도 거기서 빼 올 수 있겠지.”

음?

누군가 했더니…….

로리콘이네.

길드 이름을 보니까 제법 상위권 길드에 들어간 모양이다.

기억에 있다.

랭킹 9위인 혈검이 있던 무적 길드.

우리가 거절했더니 저기로 들어갔는가 보네.

거기다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지금 너랑 놀아줄 시간이 없거든.”

“큭, 잘났다 이거군. 어쨌든 너만 부숴 버리면 돼.”

……이건 완전 또라이인데?

아니면 스토커라도 되나.

미묘하게 내려가는 길을 막고 있어서 시간이 끌리기 시작했다.

더 시간이 끌리면 난감하다.

“내가 널!”

“됐고!”

오우거 하트는 아직 유지 중이니 충분하고.

【 아쿠아 웨폰! 】

아쿠아 블레이드에 아쿠아 웨폰이 추가되자 마치 물결이 치는 것처럼 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 백스탭! 】

【 대쉬! 】

이중 가속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힌 뒤 속도를 그대로 싣고서 물의 잔영이 일렁이는 아쿠아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이 정도로 빠를지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대회 때의 스탯과 지금의 스탯은 완전히 다르니까.

깜짝 놀란 로리콘이 급하게 양손검을 앞으로 내려쳤다.

보통은 한손검과 양손검이 부딪히면 한손검이 밀려나겠지만.

두 검이 부딪치자 찢어지는 쇳소리가 들리면서 양손검이 하늘 높게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로리콘의 양팔이 완전히 벌어졌다.

“무슨 힘이!”

단 한 방.

단순히 휘둘러서 부딪치는 것만으로 양손검을 하늘 높이 날려 버렸다.

바로 아쿠아 블레이드로 머리를 내려치자 물의 잔영이 로리콘의 머리를 헤집듯이 쓸어버렸다.

아쿠아 웨폰과 아쿠아 블레이드를 같이 써보고야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광역기처럼 물의 잔영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식으로 몸을 훑고 지나가면 엄청난 대미지가 누적된다.

연이어 카스카라로 머리를 내려찍었다.

그렇게 치명타를 연이어 맞은 로리콘이 그대로 자세를 잃고 엎어져서 날 노려봤다.

“9번 남았다. 약속은 지키지.”

“큭, 젠장!”

악을 쓰던 로리콘이 바로 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넌 이쁜소녀 근처에 두면 안 되겠네.”

차라리 내게 눈을 돌리게 하는 편이 낫겠다.

져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사방을 둘러보니 성벽 위로 하나둘 사람들이 뛰어 올라와 가드들과 부딪혔다.

너무 시간을 끌었나.

뒤돌아보지 않고 케르베로스를 타고 빠르게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더 늦으면 정말 곤란하지.

“왜 이렇게 늦었어?”

“아, 로리콘이 앞을 막아서요.”

그 이후의 일은 말 안 해도 알겠다는 듯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다들 기다린다.”

“네, 가죠.”

마지막 남은 동쪽 성문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뒤로하며 다음 지점을 향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최후에 웃기 위한 한 수를 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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