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지금은 준비할 때 (10)
솔직히 이 정도까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애초에 접근 자체가 힘든 상대.
게다가 위험천만한 마법을 수시로 사용하는 상대에게 통할 강력한 한 방은 검은 가시가 유일했다.
가능성은 정말 낮았지만, 지금은 보란 듯이 성공했고.
방패전사를 위시한 탱커들이 앞에서 지속적으로 돌파해 시선을 끌었기에 가능했다고 해야 하나.
그 역할 때문에 라미아 여왕에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라미아 여왕이 바닥에 엎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길드원들의 폭격이 시작됐다.
몰이사냥으로 다들 레벨이 올라가 있어 지금 주는 대미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페이즈가 넘어가 버리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무기를 교체해 딜을 넣는 것은 무언가 아쉬워 활을 이용해 계속 대미지를 쌓았다.
“네임드를 날려 버릴 줄은 몰랐어요.”
옆에서 파이어 월을 시전하던 챠밍이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땡큐, 덕분에 아쿠아 토네이도랑 물의 가시가 깨졌네, 잘했어! 검은 가시로 그 정도의 위력을 내다니……. 완전 사기네.”
나르샤도 화살을 빠르게 날리며 내게 미소 지었다.
미소를 짓긴 했지만, 이해가 힘들다는 표정도 보였다.
“아, 제가 지금 힘이 장사거든요. 마력도 최대치고. 누나도 힘을 더 올리고 마력이 늘어나면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 내 스탯은 검은 가시가 최고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으니까.
내 말에 나르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금도 한계야. 나중에 오우거 벨트라도 하나 주워다 주면 모르겠지만 말야.”
나르샤도 당장은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농담처럼 말을 건넨다.
오우거 벨트라…….
가능하다면 정말 더 구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
이번 공성이 끝난다면 정말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냥 이번 기회에 궁수로 갈아타.”
“하하, 요행이었어요.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사실, 이건 공성전에서 쓰려고 아껴둔 건데 어쩔 수 없이 써버렸다.
재중이 형이 몰래 알려준 꼼수.
무기를 꺼내두면 무기에 달린 스탯이 추가로 오른다.
전에 프로텍트 마법 같이 무한정 중복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이 들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보통은 무기를 많이 꺼내들면 무게 때문에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다.
반면에 난 힘이 워낙 높아서 무기를 하나 정도 더 꺼내도 움직임에 지장을 받지 않으니까.
이게 과연 버그로 인정될지는 모르겠다.
재중이 형이 잠시 뒤로 빠져나와 내 옆에 섰다.
“결국 써버렸냐.”
“뭐, 어쩔 수 없죠. 당장 이 모양이라서.”
“하긴, 접근조차 힘들어서야. 패치 안 되길 빌어야지.”
나중 일은 나중에.
이제 라미아 여왕이 일어나면 내 쪽에 어그로가 바로 붙을 것이다.
이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면 없던 어그로도 생길 판이라.
그러면 지금처럼 공격해서는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라미아 여왕답게 빠른 속도로 경직에서 회복했다.
빠르게 경직이 다 풀려 일어난 여왕의 주위로 아쿠아 토네이도가 다시 생겨났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 고생길 열렸네. 다녀올게요.”
여기 이대로 있으면 챠밍과 나르샤가 휘말린다.
바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스위칭하며 방패전사가 있는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좌우로 방향을 바꿔보는데 그럴 때마다 라미아 여왕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갔다.
완전히 물렸네.
그래도 내게 어그로가 돌아오자 아쿠아 토네이도가 내 쪽으로 밀집되기 시작했다.
차마 발을 떼기도 힘들 정도로 사방에서 토네이도가 몰아치자 바로 뒤로 몸을 빼냈다.
이건 어렵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광역 공격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곳을 밀고 들어갈 수 없다.
실수했을 경우 낮은 체력이 발목을 잡기도 하고.
그리고 그사이에 방패전사와 수호, 슬이아빠가 단번에 빈틈을 타고 라미아 여왕에게 접근했다.
《 아쿠아 웨이브! 》
근접하는 방패전사를 향해 손날을 휘두르니 물의 파장이 부챗살 모양으로 45도 범위로 퍼져 방패전사를 공격했다.
“큭!”
방패전사의 HP를 보니 아쿠아 웨이브를 맞자마자 순식간에 확 떨어져 내렸다.
그나마 저것도 라이트 쉴드와 매직 플레이트라서 버티는 거다.
【 와이드 힐! 】
아이꿍과 챠밍의 힐이 방패전사에게 닿자 다시 HP가 올라갔지만 좀 부족해 보인다.
—방패전사에게 힐 집중.
사장님의 오더가 뜨자 외곽에서 물의 가시를 담당했던 팀에서 몇 명이 빠져 방패전사에게 힐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방패전사가 힐에 힘입어 전방에서 버티자 서서히 진형이 다시 정비됐다.
“아예 방패전사 파티에 힐러를 많이 넣을 것을 그랬나…….”
“지금은 이대로 가죠. 그러면 물의 가시 쪽이 밀립니다.”
사장님과 방패전사가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의견을 정리하고 다시 앞쪽에 집중했다.
—3, 4, 5, 6팀 원거리는 여왕 공격.
—1, 2팀 근거리는 물의 가시 제거 도와주고.
근거리가 접근을 못 하자 바로 오더를 내려 진형을 변경했다.
그러자 한결 HP 관리가 좋아지면서 대미지도 더 들어가게 바뀌었다.
물의 가시가 올라오면 외곽 팀이 달려들어서 그걸 부셨고, 방패전사는 여왕에게 붙어 어글을 착실하게 쌓기 시작했다.
위험한 것은 리플렉션.
물의 방패가 한 번씩 시전 될 때마다 방패전사의 HP가 출렁출렁 흔들렸다.
“딜을 제대로 쌓을 수가...”
“큰 것 말고, 천천히 들어가세요.”
방패전사가 고전하자 수호가 옆에서 자리를 바꿔가면서 조언을 했다.
거기다 라미아 여왕이 원거리 스킬을 상당수 반사해내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고.
재수 없게 방향이 안 좋으면 반사된 공격이 우리 편에게 직격으로 들어가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왕의 시선이 겨우 방패전사에게 돌아갔다.
어글을 풀기 위해 도망을 다녔지만, 쉽게 풀리지 않다니…….
검은 가시가 진짜 강하긴 강하구나.
방패전사가 전방에 버티고 서자 레이드가 훨씬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묘기에 가까운 탱킹도 이어졌다.
라이트 쉴드를 켠 방패전사의 마력이 빠지기 직전, 서브였던 수호와 슬이아빠가 번갈아가며 그 빈자리를 채웠다.
대단하긴 하지만 저건 저것 나름대로 위험하네.
어그로를 넘겨받은 서브 탱커인 수호와 슬이아빠는 방패전사만큼 탱이 되지 않아 HP가 출렁거렸으니까.
방패전사만으로는 힘들어 보인다.
벨트와 마찬가지로 라이트 쉴드도 더 구해 와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근접 딜러에게 힘든 패턴과 대미지를 가진 보스다 보니 어그로가 풀린 나를 비롯해 이쁜소녀는 물의 가시를 제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아슬아슬했지만, 나름 안정적인 탱킹을 하던 중 변수가 생겨 버렸다.
“큭! 물의 가시가.”
아쿠아 토네이도에 밀려 위치를 잘못 잡았는지 물의 가시를 밟은 방패전사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전부 방패전사에게 걸린 물의 가시부터!
사장님이 오더를 내렸지만, 아쿠아 토네이도 덕분에 근접 딜러들은 접근하지 못했고, 원거리 딜러 역시 토네이도에 시야를 방해받고 있었다.
“힐이 못 따라가요!”
챠밍이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방패전사가 죽으면 진형이고 뭐고 바로 끝난다.
어지간하면 안 쓰려고 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 검은 가시! 】
블러디아와 카스카라에 검은 기운이 맺히자 그대로 아쿠아 토네이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기 두 개에 동시에 챠징이 되면서 마력이 빠져나가자 순식간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 백스탭! 】
【 대쉬! 】
아쿠아 토네이도의 범위 때문에 그동안 쓰길 망설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아쿠아 토네이도를 뚫고 들어가자 내 몸에 강력한 물의 폭풍이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사라지자 시야가 확, 트여지면서 바로 앞에 라미아 여왕의 등이 보였다.
잡았다!
토네이도를 뚫고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계산에 없었는지 무방비 상태의 등.
그곳에 검게 변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도박에 가깝긴 했지만, 검은 가시가 제대로 터져주면서 라미아 여왕은 바닥에 형편없이 구겨지면서 뒹굴었다.
그와 함께 모든 스킬이 캔슬되면서 방패전사도 물의 가시에서 빠져나왔다.
완전 도박이었는데…… 되는구나.
이러면 또 어그로가 엉망이 될 테지만, 위기를 넘긴 것이 어딘가.
사실 이 레이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리플렉션이었다.
혹시라도 반사 대미지에 내가 죽어버리는 위험이 있었으니까.
검은 가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죽음에 한 발 올려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 땡큐!”
방패전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이 무너지면 레이드가 끝날 수 있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싸운 모양이었다.
“저도 도박이었어요. 정말 까다롭네요. 마법형은.”
“대미지도 장난 아니야. 힐을 다 받고도 겨우 버티니까.”
체력과 방어는 확실하게 나보다 방패전사가 우위다.
그런데도 저런 소리라니.
방패전사가 없었으면 레이드를 시도조차 못 했겠네.
“가죠.”
경직으로 엎어진 라미아 여왕을 한참 공격하다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바로 떨어졌다.
—모두 뒤로.
사장님도 페이즈가 변하는 것을 확인했는지 바로 인원들을 뒤로 뺐다.
다시 일어선 라미아 여왕의 눈이 붉게 변하며 피부에선 검은 기운이 계속 흘러나왔다.
거기다 두 팔과 꼬리가 검은 가시 같은 형태에 푸른 기운이 감도는 날카로운 긴 날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 블링크! 》
“역시!”
재중이 형이 외치기 무섭게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라미아 여왕이 어느새 뒤쪽에 빠져 있던 길드원들을 덮쳤다.
“크악!”
신기루처럼 나타나 회전을 해 날카롭고 긴 꼬리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공격하자 HP가 적은 마법사가 동시에 세 명이나 죽어 버렸다.
—다들 떨어져! 거리를 벌려!
뭉쳐 있다가 저런 공격에 당하면 단체로 죽는다.
급하게 달려가서 공격을 하려고 하자 또다시 블링크로 사라지더니 반대편에 나타나 길드원들을 하나씩 녹이기 시작했다.
양팔과 꼬리 공격이 마치 검은 가시로 내려치는 것 같은 강력함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양팔을 연속으로 휘젓다가도 회전을 하면서 공격을 하니 막을 방법이 없다.
특히 블링크로 나타나는 순간 두 팔을 모아서 내려치는 공격이 정말 강하다.
“젠장!”
방패전사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어. 저건.”
재중이 형이 심각한 얼굴로 계속 라미아 여왕을 쫓았다.
방법을 찾는 중인가?
예상으로는 블링크를 이용해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사용하는 형태로 생각했는데 저건 그냥 근접 딜러다.
그것도 한 방, 한 방이 엄청나게 강력하고 중거리까지 커버하는.
“체력이 높진 않을 겁니다.”
최종병기가 스치듯 말을 건넸다.
“제가 했던 것과 유사하거든요. 높은 근력, 지력과 마력요. 아무리 네임드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밸런스는 있을 겁니다. 다른 네임드에 비해 방어가 높지도 않을 것 같고요.”
그렇다는 말은 어떻게든 공격만 성공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그 전에 우리 애들 다 죽겠다. 궁수 애들이야 어떻게 피한다지만.”
재중이 형이 고르고 골라서 데리고 오긴 했지만 아직 준비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쩐다.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사이에 이미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이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너, 챠밍 옆에 붙어 있어. 한 번은 간다.”
“네?”
“보니까 체력 낮은 사람들 위주로 먼저 공격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빠르게 서로 떨어져 마법사과 궁수 위주로 근처에서 버티고 섰다.
아니나 다를까.
수호가 맡고 있던 아이꿍을 노리고 블링크로 등장한 라미아 여왕을 빠르게 라지쉴드를 들어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까가강!
연속 꼬리 회전을 막아낸 수호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예쓰! 잡았다.”
잠시 멈춘 라미아 여왕을 향해 원거리들이 공격을 퍼붓자 잠시 공격을 허용하던 라미아가 다시 블링크로 사라졌다.
어디지?
순간 바로 챠밍의 위에서 라미아 여왕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두 팔을 모아 챠밍에게 내리쳤다.
다행히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챠밍이 재빠르게 구르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 아이스 볼! 】
라미아 여왕이 아이스 볼에 맞는 순간 몸이 굳는 것이 보인다.
아주 잠시.
정말 찰나의 틈만 만들어주면 된다.
그걸 챠밍이 완벽하게 해냈다.
“챠밍, 나이스!”
몸이 굳어진 라미아 여왕이 착지한 바닥을 향해 검은 가시가 더해진 던켈을 바로 내려찍었다.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 조합.
【 어스 퀘이크! 】
바로 앞에서 어스 퀘이크가 터지자 몰아치는 폭풍에 수도 없이 얻어맞은 라미아 여왕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금!”
재중이 형, 방패전사 할 것 없이 모든 길드원이 달려와 가진 기술 중 가장 강력한 것을 쏘아 부었다.
언제 다시 이놈을 잡아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말 있는 힘껏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계속 내려찍었다.
그러자 갑자기 블링크를 써서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디?
“꺅!”
멀리서 공격하던 여자 길드원이 또 죽어버렸다.
라지쉴드가 있는 인원이 아니면 막기가 힘드니까.
“쳇, 진짜 까다롭네.”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이어지는 블링크에 다시 길드원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는 숫자가 줄더니 우리 팀에 걸리는 횟수가 많아져 몇 번 더 눕히고 나서야 겨우 페이즈가 넘어갔다.
“끝 아니었어요?”
이쁜소녀가 질린다는 얼굴이다.
“진짜 징그럽네.”
방패전사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세 번째 페이즈로 넘어오면서 벌써 반수가 넘는 길드원을 잃었다.
시커멓게 변한 파티창 색이 그간의 격전의 흔적을 보여줬다.
갑자기 바닥 중 일부의 물색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
그걸 무심코 밟고 있던 길드원 중 다섯 명이 그 자리에서 HP를 전부 빨리고 바로 죽어버렸다.
—검은 물 오랫동안 밟지 마.
사장님이 깜짝 놀라서 바로 외쳤다.
사방이 검은 물인데?
겨우 서로 뭉쳐서 변하지 않은 물 위로 가서 섰는데 서른 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서 있으니 많이 복잡해졌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그런데 멀리 서 있던 라미아 여왕의 모습이 또 변하기 시작했다.
한쪽 팔이 마치 대포 같은 모습으로.
거기다 그곳에서 마치 주변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이펙트가 일어났다.
그리고 도망갈 곳 없는 우리를 향해 대포로 변한 팔을 내밀었다.
미친 게임 같으니라고.
《 블랙 아쿠아 캐논! 》
마치 레이저가 쏘아지는 것처럼 눈으로 쫒지 못할 스피드의 검은 물줄기가 쏘아지자 방패전사가 급하게 소리 질렀다.
“전부 내 뒤로 서요!”
【 라이트 쉴드! 】
방패전사의 뒤로 일자로 아슬아슬하게 뭉쳐서 서는 순간 블랙 아쿠아 캐논이 방패전사의 라지쉴드를 강하게 찢듯이 할퀴기 시작했다.
【 와이드 힐! 】
그나마 남아 있던 마법사들이 안간힘을 다해서 힐을 넣는데 방패전사의 HP가 빠지는 것이 더 빨라 보인다.
그렇게 HP가 2%도 안 남았을 때 겨우 아쿠아 캐논이 사라졌다.
방패전사는 온몸으로 막아낸다고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아쿠아 캐논이야.
“두 번째는 못 막을 것 같은데.”
방패전사가 떨리는 팔을 다잡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다시 방패를 들어올렸다.
이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방패전사 뿐이니까.
아니면 검은 물로 다 뛰어들어야 한다.
지금 패턴을 보면 애초에 지금 시점에서 공략하라고 나둔 네임드가 아닌 것 같다.
피할 곳도 너무 좁고 기댈 곳은 탱커인데 이젠 막기도 힘들다.
라이트 쉴드를 몇 명은 더 들고 있어야 깨는 그런 그림인데.
“모험을 해야겠네요…….”
“방법이 있냐? 이거 여러 번은 못 해.”
방패전사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늘 하던 거요. 딱 한 번만 더 막아주세요.”
“알았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검은 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다가 밝은 물로 돌아왔다가 반복하는 동안 우리도 그걸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왕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데 여왕이 계속 자리를 움직이니 방법이 안 보인다.
차라리 아까처럼 블링크를 해서 덤벼왔으면 좋을 텐데.
원거리 기술을 써서 그나마 한 번씩 공격을 넣고는 있는데 딜이 너무 부족하다.
다시 여왕이 아쿠아 캐논을 쏘려고 하자 내가 이쁜소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에 했던 것 알지?”
내 말에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중이 형에게도.
《 블랙 아쿠아 캐논! 》
밀려드는 압축된 검은 물줄기에 방패전사가 힘겹게 앞을 막는 동안.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뒤로 달려나갔다가 다시 달려오면서 점프를 했다.
그리고 예전에 벽 위로 오를 때 썼던 그 방법 그대로 힘을 최대한 끌어올린 수호와 슬이아빠, 최종병기가 밑에서 배틀 액스를 강하게 휘둘러 우리를 하늘 높이 올려줬다.
“꺅!”
몸이 붕 뜨자 이쁜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쿠아 캐논을 지나 하늘을 쭉 날아가니 아래에 라미아 여왕이 보였다.
“가자!”
셋 다 떨어지면서 바로 던켈을 꺼냈다.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그리고 떨어지는 힘을 가득 싣고서 바닥을 내려찍었다.
사방이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라미아 여왕이 튕겨 나가면서 검은 물도 아쿠아 캐논도 그대로 끊겼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던켈로 라미아 여왕을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이렇게 절실하게 공격한 적이 또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그리고 순식간에 다가온 살아남은 서른 명의 길드원이 다시 오지 못할 기회에 미친 듯 공격을 퍼부어댔다.
이젠 뒤가 없다.
“이번엔 좀 죽어라!”
누군가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외침에 담았다.
간절하면 통한다던가?
라미아 여왕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더니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지면서 처음 보는 아이템들이 바닥에 떨어져 빙글빙글 돌아갔다.
“하…….”
“진짜 죽었다.”
“이예!”
“꺅! 잡았어요.”
“으아!”
“소리 질러!”
그 말에 길드원들이 환호와 고함을 외쳐서 귀가 먹먹해졌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서 더없이 환한 빛기둥이 내려와 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라미아 여왕이 만들어둔 장벽도 그 빛에 무너지고 물의 성에 빛이 반사되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물의 성을 보며 환호하는 길드원들.
힘이 들어 나른하면서도 꿈결 같은 기분이 든다.
드디어 마지막 준비가 끝났네.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