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53화 지금은 준비할 때 (5)
눈부신 빛이 사라지고 눈앞에는 그간 타고 다녔던 케르베로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 회수 》
회수를 선택하자, 케르베로스가 인벤 속으로 바로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인벤에서 다시 바깥으로 꺼내놓았다.
“와! 진짜 됐어요!”
이쁜소녀가 완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뒤따라 우리 팀들도 내게 다가왔다.
“정말 다행이에요.”
챠밍도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배를 타고 오면서도 반반의 확률을 이야기했었으니까.
단순히 올라타는 것으로는 테이밍이 안 될 확률도 굉장히 높았다.
하지만 올라타서 버티는 것의 난이도 자체가 높으니 이것으로 충분히 괜찮은 듯했다.
“이제야 한숨 놓았네.”
방패전사도 역시 안도하는 얼굴이다.
“고생했다.”
사장님도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역시 주호님.”
현역 여대생이 어느새 다가와 내게 안기려고 하자 나르샤가 현역 여대생의 뒷덜미를 잡았다.
“아하하, 잡혀 버렸네요.”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모습에 팀원 전부 못 말린다는 식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주의 인물이네.
틈을 주면 안 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앞에 있는 케르베로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테이밍이 잘 되네요.”
“그러게······ 계획을 수정해야겠는데?”
재중이 형도 이렇게 바로 테이밍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고심하는 눈치다.
“현재 총 5곳이죠.”
로스트 스카이를 시작하는 포인트에서 만나고 만나다 보면 총 5곳의 장소에서 케르베로스가 나타난다.
다른 네임드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수였지만, 그때 당시는 이것이 정답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운영자들이 바빴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유지해놓았다.
“그래, 다섯 곳이지. 그럼 한 번에 빠르게 달리면 다섯 마리를 테이밍 가능하다는 건데······.”
하루에 다섯 마리라.
네임드 테이밍 자체로는 상당히 많은 수다.
방패전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친다.
“하지만 하루에 한 개체를 테이밍하면 그 개체는 다시 테이밍 불가능하지 않았어?”
“아······ 그런 패치가 있었죠.”
하도 오랜만에 테이밍을 해서 그런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낭패다.
재중이 형도 아차 싶은 표정이다.
그리고 급하게 패치를 했던 사항을 검색해서 찾아봤다.
찾아냈는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아, 실수했네. 미안합니다. 이걸 고려했어야 하는 건데.”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다 잊어먹고 있던 판이라 누굴 탓할 것이 못 된다.
“아뇨, 형. 다 까먹고 있어서.”
“할 수 없네. 이걸 테이밍 가능한 녀석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러면서 물끄러미 케르베로스를 바라본다.
“형도 안 되겠어요?”
“아아, 지금은. 내 스탯은 너처럼 극단적이지 않아서. 아마 스탯만 맞추면 가능은 하겠지만 당장은 무리다. 거기다, 오우거 하트도 없고. 역시 게임은 템빨이야.”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다.
“그럼, 원래 계획대로 가자.”
그때 머릿속으로 색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저기, 형.”
“응? 왜?”
“테이밍은······ 누가 해도 상관은 없는 거죠?”
“아마도?”
“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아요.”
***
빠르게 건물을 나와 다른 케르베로스가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나갔다.
“하······ 이거 되면 운영자가 진짜 빡치겠는데.”
“매번 미안할 뿐이죠.”
지금 이 시점에서 케르베로스를 테이밍한 것 자체도 미치고 팔짝 뛸 건데,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를 해버리면 아마 돌아버릴지도 모르겠네.
“우리가 미안할 것까진 없고.”
“전에 보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안지운 팀장이라고 했던가요.”
“아, 좀 해골 같긴 하더라. 제발, 적당히 해달라는 말이 왜 그렇게 와 닿던지.”
“저도 게임하면서 누군가에게 미안해 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빠르게 다음 테이밍 장소로 도착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다 왔다.”
다른 케르베로스가 있는 정문 앞에 도달했다.
“음, 일단 저보다 체구가 많이 작아야 해요.”
“그럼, 여성밖에는 없겠네.”
챠밍, 이쁜소녀, 아이꿍, 체리, 현역여대생, 발키리 정도인가.
내가 계획을 설명하고 의중을 물어보자 챠밍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으······ 그래도 할게요.”
일단 한 명 확보.
이쁜소녀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더니 신청을 했다.
“저도요······.”
두 명 확보.
“저도! 무조건 할래요.”
현역여대생이 급하게 손을 든다.
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냥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형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알아서 하라는 거지.
챠밍을 잠시 바라보니 챠밍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다음으로 발키리 아주머니가 참가하기로 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나······.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면.
바로 앞에서 했던 케르베로스 공략과 같지만 다른 점은 나와 챠밍이 케르베로스의 뒤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케르베로스에 가까워지자 챠밍이 주춤하면서 망설이는 모습이 가득하다.
“가, 가요?”
챠밍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몬스터에 올라탄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예전에 헬하운드를 테이밍 할 때도 챠밍은 보조만 했었으니까.
“오빠 믿지?”
“그게 뭐예요. 정말.”
내가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어버리자 챠밍도 긴장이 풀렸는지 바로 웃었다.
그리고 내 말에 용기를 얻어 그대로 케르베로스의 등을 타고 올라가더니 갈기를 잡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바로 내가 뒤따라 올라가 챠밍의 뒤에서 포개듯이 챠밍을 감싸 안고 양손으로 케르베로스의 갈기를 거칠게 잡았다.
“저기······ 너무 가까워서.”
“오래 안 걸릴 거야. 조금만 참아.”
나나 챠밍이나 굉장히 민망한 포즈가 되었지만 이렇게 안 하면 케르베로스 위에서 버틸 수가 없게 된다.
챠밍의 작은 체구가 내 품에서 딱 고정되자 케르베로스가 날뛰는데도 불구하고 챠밍이 튕겨 나가지 않고 계속 갈기를 잡고 버텼다.
챠밍이 테이밍을 시도하고.
나도 올라타서 챠밍이 튕겨 나가지 않게 버티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이다.
결국 내가 테이밍을 시도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니까.
대신 챠밍이 끝까지 붙어 있을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이건 롤러코스터를 안전장치 없이 내 힘으로만 버티면서 사람 하나를 잡고 있어야 하는 난이도쯤 되려나.
거기다 다른 모든 공격은 우리 팀에게 맡긴다.
오직 내 역할은 챠밍이 튕겨 나가지 않게 하는 것.
그렇게 내 품에서 챠밍이 수도 없이 튕겼다가 내게 등을 부딪쳐 왔다.
“꺅!”
“큭!”
원래는 혼자서 버티는 것도 엄청난 난이도인데 사람 하나를 더 버티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각을 엄청나게 끌어올려서 챠밍이 튕겨 나가지 않게 상체와 하체의 밸런스를 잘 잡아야 겨우 버틸 수 있다.
한순간이라도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둘의 무게에 눌려 한꺼번에 튕겨 나가니까.
“미, 미안해요. 제가 무, 무거워서······.”
“아니, 가벼운데?”
그 말을 하기 무섭게.
“꺅!”
또다시 케르베로스가 거칠게 몸을 흔들자 챠밍이 기절할 것 같은 비명을 계속 질러댄다.
이게 쉬운 것이 아니지.
그러면서도 갈기는 끝까지 잡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챠밍이 손을 놓아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
챠밍도 정말 필사적으로 버티는 중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페이즈 다 넘어갔다.”
재중이 형은 버티라고 외쳤지만, 이미 내 팔다리는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생각 이상의 난이도다.
혼자 타고 있을 때와는 완벽히 다른.
오우거 하트를 쓰고 있음에도 몇 번이나 튕겨 나갈 뻔한 것을 겨우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 화염 페이즈는 아예 모든 사람이 힐을 걸어줘서 겨우 버텨냈다.
약한 힐이긴 해도 인원수가 많으니 버티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케르베로스의 등에 타오르던 불꽃이 나와 챠밍에게서 사라지자 사방으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되, 됐어요!”
난 시스템 음이 보이지 않지만 챠밍에게는 테이밍을 성공한 메시지가 뜬 모양이다.
“정말 고생했다.”
“고생은 오빠가 다 했죠. 진짜 고생하셨어요.”
이건 두 번 하라면 못하겠다.
다소 모자란 스탯으로 과격한 동작을 버텨낸다고 감각이 타오를 것만 같다.
힘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좋았을 것을.
“너 그거 아냐?”
“네?”
재중이 형이 옆으로 오더니 내 어깨를 툭 친다.
“너, 정말 미친놈이야.”
“아아, 칭찬 맞죠?”
그 말에 재중이 형과 내가 마주 웃었다.
“정말 힘드네요.”
“힘든 걸로 끝낼 수 있다는 게 난 더 놀랍다. 사람 하나를 달고 케르베로스 위에서 버텨내다니.”
“그러니까요. 죽을 것 같아요.”
챠밍이 어떻게 생각하든 모르겠다.
가급적이면 힘든 것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일단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웠다.
감각이 끓으며 타는 것 같아서 버티기 힘들었다.
모자란 힘을 보조하면서 충격을 흘려보낸다고 감각을 너무 혹사했으니까.
이래서 스탯이 중요하다.
같은 동작을 해도 힘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여유 있게 했을 텐데.
모자란 스탯이 너무 아쉽다.
“운영팀장 또 졸도하겠네. 테이밍을 한 사람이 많이 하지 말라고 1인당 하루 한 마리로 패치를 해둔 건데. 그걸 이런 식으로 하다니.”
테이밍 시도를 다른 사람이 하고 옆에서 튕겨 나가지 않게 보조한다?
패치의 맹점을 완전히 파고들었다.
“잔머리 하나는 니가 세계 최고겠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칭찬 맞아. 이번엔.”
바닥에 누운 내가 걱정되는지 챠밍이 옆에 와서 앉았다.
“괜찮아요?”
“아, 괜찮아. 너 때문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도······.”
“잠시 쉬면 괜찮아져.”
챠밍이 눈을 감고 있는 내 이마에 부드러운 손을 올려다 대니 청량한 기분이 몸을 감싼다.
“시원하니 좋네.”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내 말에 미소를 짓고 있으려나?
“아주 청춘이구만.”
재중이 형이 옆에 와서 앉자 챠밍이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뗐다.
아, 저 형 진짜.
“연애는 나중에 하고, 케르베로스 어떻게 할 거냐?”
“음, 계획대로 해볼까요?”
“지금 총 세 마리니까 해보자.”
원래는 한참 뒤에 할 생각이었는데, 내 꼼수로 인해 케르베로스 숫자에 여유가 생겼다.
그때, 사장님도 내가 걱정되는지 다가오셨다.
몸은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모습이다.
“이대로 하면 케르베로스 눈물 조각이 많이 모자라겠다. 길드 애들한테 이야기해서 시장에 나온 것을 있는 대로 긁어모으라고 했으니까 기다려보자.”
“아, 우리 가진 것 생각보다 몇 개 없죠?”
실제로 이 정도로 테이밍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눈물 조각을 따로 사 모으지는 않았었다.
눈물 조각은 사려고 마음먹으면 시장에서 살 수는 있다.
케르베로스를 잡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
쓸 곳은 없고, 가지고 있으니 돈이 안 되는 계륵 같은 존재.
케르베로스를 잡는다고 눈물 보석은 절대 안 나온다.
테이밍 시도가 가능한 눈물 조각이 몇 개 나올 뿐.
전에 사장님이 이야기한 것을 들어보니까 처음에 한 개 떨어지고 나중엔 아예 안 나왔다고 하니까.
레서 크라켄도 마찬가지고.
완제로 네임드 탈 것을 주는 것은 처음에 잡은 사람들에게 주는 특혜나 마찬가지다.
그 이후에는 알아서 테이밍하라는 소리고.
그만큼 얻기 힘든 것이 네임드 탈 것이다.
서버에 한 개? 많아야 두세 개?
물론, 우리 서버 외에도 열세 개의 서버가 있으니까 누군가는 처음으로 케르베로스를 잡아서 눈물 보석을 통해서 케르베로스를 얻었겠지.
케르베로스 수정화.
예전에 헬하운드도 수정으로 만들어서 무기에 박아 썼는데 네임드인 케르베로스는 어떨까?
아직까지 그걸로 수정을 만든 간 큰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종의 상징이다.
네임드 탈 것은.
그래서 정보가 하나도 없고.
현재 뭐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다.
“크리티컬 같은 것이 나올까요?”
“글쎄다. 해본 적이 없어서 가늠할 수가 없네.”
“해보죠 뭐,”
케르베로스를 그 자리에서 바로 꺼냈다.
그러자 모두 몰려와서 구경했다.
전 서버에서 처음으로 네임드를 수정으로 만드는 건가.
뭐가 나오든 공성전을 할 때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테이밍 펫 : 케르베로스를 수정화 하겠습니까? 》
Yes를 누르자 케르베로스가 환하게 빛나며 검지 두 개 크기의 각진 보라색 크리스털로 변해서 손에 떨어졌다.
『 케르베로스 바이올렛 봉인 수정 / 마력 +5 』
어?
마력?
그것도 수치가 5나 된다.
재중이 형도 봉인 수정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나를 본다.
“이거 무조건 네가 써라.”
“네?”
“너, 오우거 하트. 이제야 제대로 쓸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