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화 지금은 준비할 때 (3)
선두에는 방패전사가 바로 그 뒤에는 슬이아빠가 뒤를 단단하게 받치며 나아가는 중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지만, 통로는 몰이사냥으로 인해 깨끗하게 정리된 상황.
“다른 사람들은 검은 가시 라미아를 봤을까요? 잡긴 했을까요?”
이쁜소녀가 내 옆을 걸어가면서 물어본다.
“글세…… 발견은 했겠지만, 사냥은 잘 모르겠다.”
우리도 정말 고생고생해서 잡았는데…… 만약, 잡았다면 어떻게 잡았을지 정말 궁금하다.
퇴로를 막고 어스퀘이크, 아쿠아 캐논, 비월참으로 계속 밀어붙여 물의 장벽에 처박지 않는 이상 잡을 방법은 없다.
숫자로 해결될 녀석이면 아마 상인촌에서 아이템들이 거래되고 있었을 것이다.
“당분간은 힘들지.”
재중이 형이 슬쩍 말을 건네며 나를 바라본다.
“너, 방법이 있어서 잡으러 가자는 거냐? 전처럼 한 마리 잡을 때마다 그 고생이면 시간당 경험치가 너무 적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뭐, 검은 가시나 멀티 샷이 드랍되면 좋겠지만 시간에 비해 얼마 안 될 텐데?”
“네, 아마 될 거예요. 실전에 들어가야 알 수 있는 문제라.”
“대쉬 말이냐?”
“네, 쓰면 쓸수록 맘에 드네요. 생각보다 응용할 방법이 많이 보여요.”
“어휴, 내 밑천을 다 털어먹더니 이젠 주력기로 만들어가는구나. 뭔가 쪽쪽 빨리는 기분이야.”
“형도 그냥은 안 있을 거잖아요.”
“뭐, 그런데 스킬 자체를 쓸 방법이 없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형 좀 가르쳐 줘라. 스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
나와 재중이 형의 말에 이쁜소녀는 키득거리며 웃었고, 그 옆에선 챠밍이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스킬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작게 미소 짓던 챠밍이 스치듯 말을 꺼냈다.
이번 대회에서 사용했던 블링크나 리플렉션 같은 기술들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아, 진짜 블링크는 쇼크였지.”
재중이 형도 블링크를 사용하는 마법사들을 잡아낸다고 개고생을 했었다.
“마법사는 블링크를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야.”
나도 챠밍에게 블링크를 줄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었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챠밍이 블링크를 쓰면 나도 피곤해. 어찌나 잘 쓰는지.”
그 말에 챠밍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재중이 형이 피곤하다는 말은 정말 까다롭다는 말과 동급이다.
“……난 검은 호수의 여왕에게 기대를 거는 중이다. 분명히 마법형 보스였으니까.”
재중이 형의 말에 챠밍이 모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거기다 나에게까지 기대가 잔뜩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조만간…… 잡으러 가죠. 빚진 것도 있고.”
“자신 있냐?”
“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앞으로 몇 번 더 시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경험을 잘 살린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나도 제대로 한 번 붙어보고 싶네. 여왕하고.”
그때는 검은 가시 라미아들을 유인한다고 여왕과 붙지 못했으니까.
만약, 재중이 형이 남아 있었더라면 정보를 훨씬 많이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선두에 있던 방패전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몹입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수의 방패병, 궁수, 창병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저 블록을 뚫기 정말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녀올게요.”
내가 앞으로 나서자 모두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많이 몰아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날 바라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갔다 와라. 조심하고. 처박히면 구해주지도 못해.”
“네네, 그래도 구하러 올 거죠?”
“이쁜 짓 한 번 하면.”
“그냥 죽죠, 뭐.”
나와 재중이 형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분위기 좋네.
이대로 검은 가시까지 무난하게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며 바로 백스텝과 대쉬를 연이어 사용하자 몸이 쭉, 하고 밀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속이 50에서 갑자기 100이 되었다가 바로 150까지 올라가는 부스터 같은 그런 느낌.
민첩을 두 배 정도 더 올린다면 평소에도 이렇게 달릴 수 있으려나?
그렇게 된다면 몸을 제대로 제어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최대의 숙제다.
가속의 짜릿함을 만끽하며 몰이를 진행 중일 때,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읏, 이게 뭐야!”
“꺄악!”
“대체 몇 마리야!”
“튀어!”
돌아가는 중간지점에서 다른 길드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가 오십여 마리의 라미아가 우르르 달려오는 모습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미안요. 좀 지나갈게요.”
내가 몹을 몰고 지나가자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 주호……!”
“여기서 사냥 중이야?”
“대박.”
다행스럽게 욕과 같은 이야긴 없었다.
방패전사가 이야기하기로 사냥터에서 몰이를 하면 욕먹을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방패전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 몹을 싹 넘겨주고 바로 몰이에 가담했다.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세 발의 어스 퀘이크, 광역 마법 지원, 물의 장벽을 이용하여 몹들을 싹 녹이자 경험치가 확 차오르면서 대부분의 팀원이 레벨업을 했다.
빛기둥이 십여 개가 올라가니 주변이 환해진다.
“업 했어요!”
“저도 했어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서로 바라보면서 하이톤의 비명을 지른다.
이게 얼마만의 레벨 업인지.
“몰이를 두 번 밖에 안 했는데…… 진심 대박.”
“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현역 여대생과 발키리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본다.
“어렵게 데리고 왔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 말에 발키리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꿈만 같네요…… 전에는 레벨 올리려면 정말 온종일 사냥해야 오를까 말까였거든요.”
이런 사람이 발키리뿐일까.
심지어, 그간 같은 길드였던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사장님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사냥을 하니까 랭킹이 그랬지. 진작 따라다닐 걸 그랬나?”
“사장님이라면 언제든지요.”
그러고 보니 사장님하고 제대로 사냥에 나서는 것은 처음인가?
대부분 레이드를 할 때만 같이 다녔으니까.
사장님은 길드 업무 때문에 레벨이 상당히 낮은 상태라 언제 한 번 사냥을 같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겠네.
“아, 아까 지나오면서 다른 길드 사람들을 봤는데 괜찮을까요?”
내 질문에 재중이 형이 바로 대답을 해줬다.
“우리만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방해만 안 된다면.”
저 말은 방해가 된다면 처리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려서 섬뜩하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굳이 덤벼들지 않는 상대에게 손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후, 몇 번의 몰이를 하면서 통로를 탈탈 털어버리자 결국 1레벨이 더 올랐다.
현재 46.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기보다 좋은 사냥터는 없어 보인다.
통로로 나뉘어 있고, 거기다 물의 장벽도 수시로 변하니 가는 곳마다 몹이 넘쳐났다.
몰이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을 봤지만, 딱히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따라다니는 경우도 없었다.
거기다 자리라고 유세 떠는 사람도 없어서 더 좋았고.
“전에 봤던 마법사들입니다.”
벌써?
“재수 좋은데?”
재중이 형의 뜻밖의 소식에 얼굴에 화색이 든다.
“상당히 들어가야지 나오는 것 아니었어요?”
“미로가 변하면서 운 좋게 들어온 모양이다. 나쁘지 않아.”
이대로 조금 더 들어가면 목표에 가까워진다.
마법사들은 나르샤가 전에 했던 어글을 끌어서 빠지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그간 패치가 된 모양인지 통하지 않았다.
“잠수함 패치했네…….”
“어쩔 수 없죠. 다녀올게요. 이것도 패치하진 않았겠죠?”
“설마, 갔다 와라.”
라미아 마법사 일곱 마리가 연속으로 아쿠아 캐논보다 굵은 물기둥을 쏘아내는데 그걸 잘 보고 있다가 바로 통로 안으로 달려나갔다.
빠르게 달려가다 물기둥이 내게로 집중되는 순간.
【 백스텝! 】
【 대쉬! 】
백스텝과 대쉬 콤보를 쓰면서 물기둥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꺅!”
“안돼요!”
이쁜소녀와 챠밍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린다.
사실 이건 재중이 형이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안 해봤을 뿐이지만.
내 몸이 신기루처럼 물기둥과 겹치자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몸속 곳곳을 차가운 물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미묘한 감각 속에서 어느 순간 물이 몸을 싹 빠져나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라미아 마법사들.
멀뚱멀뚱 날 쳐다보는 것을 보고 지체 없이 던켈로 스위칭 후 바닥에 내려찍었다.
【 어스 퀘이크! 】
물리 대미지에 약한 마법사들이 어스 퀘이크에 맞아 양옆 벽으로 튕기면서 날아가 감전이라도 된 듯 뻗어버렸다.
그리고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어느새 달려와 양옆에서 다시 한 번 어스퀘이크를 썼다.
【 어스 퀘이크! 】
【 어스 퀘이크! 】
이 정도라면 마법사들은 아무것도 못 하지.
속속 도착하는 팀원들에게 마법사들이 하나씩 녹아 바로 정리가 되었다.
“수고했다. 이러니 운영팀장이 학을 떼지…….”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친다.
“하하…….”
괜히 또 미안하잖아.
일단, 검은 가시에게 가는 큰 고비는 다 넘긴 건가?
이대로면 빠르게 돌파가 가능하다.
몇 번 더 마법사 통로를 정리하고 더 나아가다 막다른 길에 도달하자 전에 했던 점프를 다시 시도해 봤다.
“어? 이건 안 막혔네요.”
“할 수 있는 플레이라고 여겼나 보네……. 이거 운영팀장 속이 쓰리겠는데.”
점프를 해서 확인하니 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또한, 통로 곳곳에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냥 중인 것까지 확인이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
“검은 가시도 잘하면 잡고 있을지도…….”
불편해지네.
우리만 잡는 사냥터가 아니라는 것이 계속 실감이 난다.
그렇게 길을 확보하고 미로를 바로 통과했다.
“전에 여길 돌파하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재중이 형이 최단 시간에 돌파한 지금이 꽤 만족스러운지 계속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1시 방향. 그쯤에 있었어요. 검은 가시 라미아가.”
“방법이 있다고 했지?”
“네,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어요.”
내가 몇 가지를 팀원에게 전달하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키엑!!
호수 안개 사이로 검은 가시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갑니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분명히…….
이쪽 방향이었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검은 가시가 호수 안개를 뚫고 파공성을 일으키면서 쏘아져 날아왔다.
【 백스텝! 】
【 대쉬! 】
이단 가속으로 검은 가시를 그대로 잔상처럼 뚫고 지나가면서 순식간에 검은 가시 라미아의 지척까지 대쉬해 들어갔다.
이렇게 빨리 자신에게 도달할 것이라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아직도 검은 가시를 날렸던 팔을 들어 올린 상태다.
기존의 회피 과정을 콤보로 생략하자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 나왔다.
그대로 벽을 타듯이 검은 가시 라이마의 몸체 정면을 밟고 점프해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얼굴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 비월참! 】
【 비월참! 】
그리고 블리디아와 카스카라에서 터지는 비월참.
두 발의 비월참이 동시에 눈앞에서 터지자 검은 가시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가면서 비명을 질렀다.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자 뛰어내리면서 던켈로 스위칭 후 하강하는 무게를 싣고 바닥을 내려쳤다.
【 어스 퀘이크! 】
비월참과 어스 퀘이크로 치명타를 연달아 맞은 검은 가시 라미아가 경직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도망?
아예 못 가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어느새 다가온 팀원들이 엎어진 검은 가시에 일점사를 하기 시작했다.
일어나려고 하면 어스퀘이크로 다시 다운시키고 나르샤가 검은 가시를 풀 차징한 상태로 머리에 박아 넣어 다시 다운 시켰다.
그렇게 몇 번 반복을 하자 검은 가시가 아무것도 못 하고 아이템만 헌납한 채 빛으로 사라졌다.
“하…… 진짜 할 말이 없네. 정말 붙들어놓다니.”
애초에 도망을 가기 시작하면 다시 잡는 건 거의 불가능.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사실 던켈이 지금 시점에서 세 자루가 있는 것 자체가 완전 언밸런스 한 아이템이니까.
아니, 그냥 지금 있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이 나 때문에 한 자루가 늘어났고, 대회 때문에 두 자루가 더 늘어난 거다.
극도의 언밸런스 덕분에 이런 사냥이 가능하다.
다른 길드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사냥법.
바로 드랍템을 확인하니 필요한 것들이 나왔다.
『 아쿠아 웨폰 』
『 멀티 샷 』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것 맞죠?”
“잘 키웠네. 진짜.”
검은 가시 라미아를 영상으로 확인했던 기존 길드원들은 좀 덜 하지만 발키리와 현역 여대생은 완전 경악한 표정이었다.
“이런 몹은 처음 봐요. 진짜…… 다른 세계에서 게임하고 계셨네요.”
“여기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그 말에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뿌듯한 얼굴이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대로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우리 팀들이 따라다니면서 검은 가시 라미아를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다.
도중에 경직에서 회복한 탓에 몇 번은 물약을 뭉텅이로 사용했지만, 확실하게 템을 수확했다.
“돌아가자. 생각 이상이야.”
검은 가시 4개.
멀티 샷 7개.
아쿠아 웨폰 11개.
잡은 족족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하루 종일 사냥에 매달려서 그 정도를 확보했다.
레벨도 하나 더 올린 상황.
47.
이런 페이스라면 다시 예전처럼 격차를 벌려버릴 수도 있겠는데.
상위 렙으로 가면 갈수록 격차를 벌리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금 페이스는 충분히 좋다.
“다음은 케르베로스죠?”
“아아, 그렇지.”
지금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재중이 형과 미리 짜둔 계획들이 있다.
이젠 그것을 하나씩 벗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