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47화 (147/1,404)

# 147

#147화 인재를 줍자 (1)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서 오는 거예요?”

“정보의 바다, 인터넷.”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애 같다.

재중이 형의 천진난만한 말에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보자, 누구를 주워야 하나…….”

재중이 형이 테이블 주변을 쭉 둘러봤다.

현재 사회자가 로스트 스카이 향후 일정과 개발 방향 등을 설명하는 중이라 움직이기 어렵지만, 간단한 QnA를 마치면 바로 스카우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좀 늦긴 했어.”

“사전 접촉을 못 하게 막았으니까요.”

재중이 형의 방패전사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8강 경기까지 대부분 대기실에 있어야 하는 바람에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건 우리에겐 큰 손해다.

“뭐, 너무 조바심내지 않아도 돼. 마지막에 쓸어 담는 사람이 승자니까.”

팀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꽤 길었던 설명회와 간단한 QnA가 끝이 났다.

조명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이제부터는 정말 숨겨놓은 비수를 꺼내놓을 때다.

“자, 줍자고.”

“우리도 해요?”

“그럼? 안 하려고?”

“무슨 동아리 모집하는 것도 아니고.”

동아리 모집이라는 말에 이쁜소녀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한쪽에선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이 미리 명단을 적어왔는지 둘이 계속 의논을 하고 있다.

저기에 난 그다지 안 끼고 싶은데…….

챠밍은 돌아다니면 문제가 될 거고.

이쁜소녀도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

나르샤는 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겠고.

이야기하던 재중이 형이 느꼈는지, 우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하아…….”

내가 느낀 것을 재중이 형도 똑같이 느꼈나 보다.

“어째 우리 팀이…… 믿을 건 종훈이 너뿐이다.”

“하하, 맡겨두시죠.”

둘이 의외로 손발이 잘 맞네.

방패전사에게서 왠지 2인자 분위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난 제외.

“근데 굳이 주우러 안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내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방향을 가리키자 이미 우리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참, 영업을 뛰는 게 아니라 번호표를 나눠줬어야 했네.”

재중이 형도 내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

엄청나게 화려한 연회장에서 단 한 곳만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바로 우리 팀이 있는 이 테이블이.

“끙, 이거 사람이 너무 몰립니다.”

방패전사가 재중이 형을 보면서 앓는 소리를 했다.

“난감하네.”

재중이 형도 이 사태에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필요한 사람만 딱 만나고 끝내려고 했더니…… 뭐, 어쩔 수 없네.”

그 말을 시작으로 재중이 형이 가까운 사람부터 한 사람씩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앞의 사람이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 기다려주었다.

먼저 나설 법한데도 매너가 좋다.

“이분은 SBA 게임 TV 마케팅 총괄 디렉터.”

“오늘 좋은 경기 잘 봤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온라인으로는 연락이 안 돼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저희 방송사가 지금 준비 중인 프로가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 쉽지 않겠네요.”

총괄 디렉터도 주변을 보고 이해를 했는지 바로 명함부터 내밀었다.

“꼭 한 번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조건으로 환경을 맞춰드리겠습니다.”

“네, 다음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내게 있어서 다음에 연락을 한다는 것은 안 한다는 말과 동일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충분한지 일단 물러나는 모양새다.

“이쪽은 한국 프로게임단 협회장이시고.”

“오랜만이네. 자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실력은 여전하더군. 어떤가?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이? 지금 모두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요즘 자네 같은 이슈 메이커가 없어. 자네 실력이라면 다시 불을 지필 수도 있어.”

“하하, 지금은 좀 그렇죠. 생각 외로 여기에 적응해서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지나간 물은 흘러가게 두어야죠.”

“그런가. 복귀 의향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를 하게나. 물심양면으로 모두 지원하도록 하지.”

“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중이 형이 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종일관 웃고 있지만, 글쎄.

복귀할 것인지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말해준 적도 없고, 물어본 적도 없으니까.

재중이 형이 혹시 프로로 복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신화?

최강?

형이 없는 길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만큼 사람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으니까.

사장님이야 관리를 잘 하신다고는 하지만, 재중이 형과 롤 자체가 다르다.

모르겠다.

이번 대회에서 물리적인 힘으로는 내가 재중이 형을 넘었다.

재중이 형도 그건 깔끔하게 인정했다.

거기에 덧붙여 언젠가 자신을 완벽하게 뛰어넘는 최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다른 면들.

사람들을 이끈다든지, 경험이라든지 하는 면들은 아직 부족하다.

어쩌면 나도 재중이 형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재중이 형부터 찾으니까.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기도 하고.

아직은 재중이 형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다음에 뵙도록 하죠.”

“그래, 잘 생각해 봐. 아직 젊지 않은가.”

그렇게 이야기한 협회장이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자네가 그 주호 군인가.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한가?”

“아이디로 부르셔도 됩니다.”

어차피 사람들이 다 주호로 알고 있는데 굳이 만날 때마다 힘들게 정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주호 군, 사실 우리는 자네를 프로로 데리고 오고 싶다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프로에 관련된 사람이 상당히 많이 와 있어서 스카우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대회의 우승으로 더욱 관심이 몰렸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팀이 데리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만 원한다면 바로 프로 선수 명단에 등록해 줄 용의가 있다네.”

“절차가 복잡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건 재중이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

“내 힘으로 다 생략해 줄 수 있다네.”

그 말을 하면서 협회장이 눈을 반짝인다.

특례 같은 건가?

안 그래도 연예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에게서 생기는 일이 나한테까지 올 줄은 몰랐네.

이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엔 분명히 문제가 된다.

“뭐, 말씀은 감사하지만 프로엔 아직 관심이 없어서요.”

“허, 자네 같은 사람이 프로를 안 하면 누가 하겠나. 최고의 연봉이 약속되어 있을 걸세. 그리고 자네 실력이라면 우승 상금도 싹쓸이할 수 있을 거고. 다시 생각해 보게나. 지금보다 더한 인기와 돈을 벌 수 있다네.”

이 사람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끈질기네.

저게 다 자기 밥그릇을 키워보겠다고 덤벼드는 걸 누가 모르나.

“일단, 생각은 해보겠습니다만, 확답은 드릴 수가 없네요.”

내가 누차 거절하자 심기를 건드렸는지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자자, 여기까지 하시죠. 제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재중이 형이 말리자 그제야 동승한 관계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꽤 끈질기네요.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텐데.”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재중이 형에게 묻자 재중이 형이 한숨을 쉰다.

“고집이지, 고집. 이 판에서 자기가 말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거든. 나도 한때 상대하기 정말 싫었는데 지금 보니 더 별로네.”

그 말에 나와 재중이 형이 마주 보고 웃었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구나.

한동안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주고 난 뒤에야 정리가 좀 되기 시작했다.

프로팀 감독들부터 다른 방송사 대표들, ZUN 관계자까지.

그리고…….

보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보고 말았다.

“당신입니까? 주호가.”

뭐지 이 사람은?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불쌍하다’였다.

눈 밑에 다크 서클, 창백한 얼굴, 살짝 마른 것 같은 체형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뱀파이어가 걸어 다니는 것 같네…….

“로스트 스카이 안지운 총괄 운영팀장입니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바로 설명을 해줬다.

“아…….”

“사실 저희 팀을 매일 야근 시키는 장본인과 그 팀원들을 꼭, 보고 싶어서 일부러 참가했습니다. 집보다 병원을 더 자주 가는 것이 일상이라…….”

“아…… 하하…….”

이런.

내가 그동안 해온 것을 생각하면 저런 모습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이거 정말 튀어야 하나?

“제발, 사건 좀 그만 터뜨려 주세요. 우리 애들도 사람답게 퇴근 좀 하고 그럽시다. 네? 검은 호수도…… 아놔. 진짜.”

그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모습을 보고도 계속하겠다고 한다면 정말 이곳에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비실비실거리는데.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

“이럴 줄 알았다면 우승을 안 할 걸 그랬어요.”

“하아…… 나도 이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나와 재중이 형은 테이블에 길게 엎어져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뭐 이렇게 많은지.

“꼭 이렇게 다 만나야 해요?”

“아니, 실수다. 오지 말았어야 했어. 뭔 놈의 포섭이냐 포섭은. 다 귀찮아.”

우리 모습을 본 이쁜소녀가 손가락 끝으로 죽었나 살았나 옆에서 꾹꾹 찔러봤다.

챠밍도 옆에서 재밌다는 듯 따라 하는 중이다.

“헉! 아직 살아 있어.”

“헤헤, 장난이에요.”

아이고.

이쁜소녀가 밝게 웃으니 그냥 좋네.

챠밍도 입가가 올라가 있는 것이 재밌는 모양이다.

고글이 좋긴 좋네.

아무도 못 알아보니까.

재중이 형이 슬슬 테이블에서 일어나면서 기지개를 켰다.

“화낼 기운도 없어.”

“이제 제대로 만나봐야죠.”

“일단, 프로 쪽 애들은 내가 따로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쪽은 프로 계약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냥 이야기해서는 안 되니까.”

일단 수호, 최종병기 등 우리가 한 번씩 싸워봤던 사람들 위주로 먼저 포섭하기로 했다.

재중이 형이 프로들을 만나러 떠난 사이, 우리는 형을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내 표정은 난감함으로 가득 찼다.

“저 여자도 포함되어 있죠?”

“네, 재중 형님 목록은요.”

현역여대생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미 한 번 인사를 드렸죠? 또 뵙네요.”

“그렇죠…… 하하.”

“음? 여기 자리가 남네요. 잠시 앉아도 될까요?”

마침 잘 됐나?

재중이 형이 떠난 자리에 현역여대생이 앉자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가 되었다.

슬쩍 챠밍을 보는데 고글 때문에 표정은 안 보여서 모르겠고…….

이쁜소녀는 뚫어져라 현역여대생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으음, 여기는 사람들 안 모아요?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던데.”

“아, 불멸 형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서요.”

“그럼, 혹시 저도 가능할까요? 1서버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저 일부러 다른 사람들 제의 다 거절하고 온 거예요.”

그 말에 내가 방패전사에게 고개를 돌리니 괜찮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불멸 형이 오면 결정하도록 할게요.”

이건 너무 쉬운데?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뭐, 어렵진 않죠.”

“혹시 애인 있어요?”

갑자기 깜빡이도 켜지 않고 너무 훅 들어오네.

그러면서 의자를 내게 바싹 붙이며 앉았다.

이 여자 난감한데.

“아뇨, 아직.”

“그럼, 저 같은 사람은 어때요?”

그 순간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챠밍의 옆 바닥에 유리잔이 깨져서 사방으로 비산해 있었다.

“죄송해요. 손에서 미끄러졌어요.”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보자마자 다가가서 챠밍의 다리부터 살폈다.

“다친 곳 없어요?”

“네, 괜찮은 것 같아요.”

그대로 유리잔을 치우려고 하자 곧 안내 요원이 와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의무실 같은 곳이 있나요?”

“네, 따라오세요.”

“잡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얌전하게 챠밍이 손을 내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챠밍을 의무실로 데리고 와 확인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한참을 더 살피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날 챠밍이 계속 쳐다보다가 작은 입술을 열었다.

“……맘에 안 들어요.”

“네?”

“아, 아뇨, 그냥 해본 소리예요.”

내가 쳐다보자 고개를 돌리고 갑자기 챠밍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 한참 그런 나이고…… 관심도 있을 거고. 여자가 그러면…….”

이런…….

뭔가 잘못 생각한 모양인데.

“저 그렇게 갑자기 누구를 만나거나 하지는 않아요. 재중이 형한테 애늙은이 소리를 들을 정도라. 한참 보고 지냈으면 또 몰라도. 가벼운 여자는 별로기도 하고. 그런 일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 안 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챠밍이 입을 꾹 닫아버렸다.

내 딴엔 최대한 풀어서 잘 이야기한 것 같은데.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흠, 나가보죠. 사람들 기다릴 것 같네요.”

“네, 가요.”

왠지 모르게 챠밍의 목소리가 굉장히 가벼워진 느낌이다.

알 수 없네.

챠밍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가자 우리가 있던 테이블에 누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장미꽃 다발을 들고 있었다.

뭐지? 저 사람은.

“저를 받아주십시오.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 소란에 테이블에 다가가니 모르는 남자를 두 명 데리고 온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패전사도, 나르샤도, 이쁜소녀도.

근데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뭐예요. 저 사람. 멀쩡하게 생겨서.”

“로리콘.”

“네?”

“이쁜소녀한테 반했단다. 제발, 넣어달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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