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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44화 (144/1,404)

# 144

#144화 만남 (1)

화약고와 같은 용오름이 주변에서 휘몰아치면서 좁아지고 있는 동안 다시 수차례 재중이 형과 접전을 펼쳤다.

준비해둔 것은 있지만 솔직히 될지 안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낼 수 있는 RTP와 민첩에서 나오는 미세한 동작까지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있지만 이건 그 상태가 더 완벽에 가까워야지만 쓸 수 있는 기술이니까.

재중이 형과 점점 붙는 횟수를 올려가면서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부족한 포인트를 만회하기 위해 방어를 도외시하고 자세를 전진시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교차로 밀고 들어가면서 오직 빈틈만을 찾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평균적인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힘과 민첩으로 강하게 휘두르는 검과 창이 부딪칠 때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주변 공기가 확 밀려 나갔다.

경합을 할 때마다 검을 잡은 손에서 마찰되는 뜨거운 감각이 나를 더 달아오르게 만든다.

검의 손잡이가 으스러질 것처럼 강하게 쥐고 다시 재중이 형에게 뛰어들었다.

빠르게 찔러오는 창을 위로 쳐내고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빠르게 연계해서 휘두르자 창을 횡으로 강하게 휘면서 두 개의 검을 모두 쳐내 버렸다.

그 상태로 재중이 형이 자세를 낮추고 몸을 반회전 시키더니 하단을 창날로 긁으면서 마찰을 가득 모아 한 번에 내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로 휘어져 들어오는 창대를 그대로 점프해서 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체중을 잔뜩 싣고 창을 길게 잡아 내려치자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교차해서 겨우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몸이 통째로 눌리면서 바닥에 두 개의 고랑이 생겨난다.

그대로 몸을 튕기면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창을 쳐내고 뛰어 들어가 가위질하듯 두 검으로 허리를 가르려고 하자 창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어서 점프하더니 발을 휘둘러 내 얼굴을 쳐냈다.

대미지는 거의 없지만, 얼굴에 공격을 허용하니 순간 시야가 막혔다.

바닥에 내려앉은 재중이 형이 온몸의 탄력을 모아 송곳같이 창을 내지르자 곧장 바닥에 구르면서 창이 지나가자마자 두 다리를 교차하는 탄력으로 몸을 튕겨서 일어났다.

그리고 블러디아로 하단을 쓸고 이어 회전하는 힘으로 카스카라로 중단을 베었다.

하지만 한치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창을 짧게 잡아 창대로 내 검들을 모두 쳐냈다.

그 반동으로 점프해 하늘에서 내려 꽂듯이 두 검을 강하게 내려치자 재중이 형이 무릎을 굽히면서 창대를 들어 올려 내 검들을 겨우 받아냈다.

두 개의 검을 내려찍었음에도 힘에서는 재중이 형이 우위가 있어서 완전히 밀어붙이지 못 했다.

순간 마주친 재중이 형의 눈빛이 야차와 같은 느낌이 든다.

광오하게 갈구하는 그런 눈빛.

내 눈빛은 어떨까…….

지금 이 사람을 정말 이기고 싶다는 마음 밖에는 없다.

아마 재중이 형의 지금의 눈빛과 닮아 있지 않을까.

공격이 통하지 않자 다시 한 번 내려친 뒤 그 반동으로 바로 떨어져 나왔다.

몇 초도 안 된 사이에 수십 합이 오가면서 서로를 쓰러뜨리기 위해 살벌하게 검과 창을 눈앞에 닿기 바로 전까지 휘둘렀다.

마치 머리에서 미리 짜둔 것 같은 연계.

현 최고의 민첩으로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속과 연타로 재중이 형에게 파고들어 끝없이 몰아치고는 있지만 녹록하지가 않다.

재중이 형의 방어율은 지금 수준에서 완벽에 가깝다.

잔상이 따라올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닿는 순간 창을 몸 전체와 함께 돌리면서 바깥으로 튕겨 내거나 마치 끌어들이듯 안쪽으로 힘을 흘렸다.

그리고 공격 일변도라 내 자세가 무너지면 어김없이 몸 전체에서 뻗어 나오는 찌르기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제 내 가속과 공격횟수를 미리 짓누르지 못하니까 아예 내가 휘두르는 힘을 역이용해서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 시작하자 좀처럼 포인트를 따기 어려워졌다.

창이란 무기가 진짜 거슬린다.

이 정도로 날 잡아둘 수 있다니.

접근하면 창을 양손으로 짧게 잡아서 회수를 최대한 빠르게 해 반응하기 좋게 만들고 거리가 벌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길게 뻗어져 나온다.

거기다, 한 번씩 이상한 공격이 들어온다.

창을 내지를 때 분명히 간격 밖으로 빠져나갔는데 마치 창이 쭉 늘어난 것처럼 갑자기 길게 뻗어지는 공격.

몇 번을 당하고 집중을 하고 바라보니 재중이 형이 창을 내지를 때 손목 끝이 미묘하게 뒤틀리면서 창이 쭈욱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칫.

뻗어나가는 길이를 판단하지 못하게 속이는 건가?

단순히 작은 동작이지만 손동작 하나만으로 간격을 좀처럼 재지 못하게 한다.

저건 며칠 연습만 한 프로게이머 수준이 아니라 낮은 수치에서부터 지금의 높은 수치까지 모두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진짜니까.

예전에 재중이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프로게이머들은 기본 컨트롤을 늘리기 위해 현실에서도 프로팀 지원으로 여러 스포츠를 배운다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경력으로 재중이 형이 사용하는 세세한 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힘들다.

공격이면 공격, 방어면 방어.

세세한 기술 차이가 너무 심하다.

단순히 빠르게 휘두르는 정도로는.

역시 힘든가…….

지금 내 앞을 가로막는 저 사람은 괴물이나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기술을 하나하나 쌓아올려서 만들어진 괴물.

그것도 상처가 회복되어가는 괴물이지.

그래서 준비했다.

확실히 이기기 위해서는 착과 같은 전혀 의외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딱 한 방.

완전히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카드가 없으면 질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연습 대련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별 생각이 없이 넘어갔지만.

이번엔 잘 되려나…….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미 크게 한 방을 허용한 탓에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반드시 지게 된다.

재중이 형이 이대로 정타를 허용할리도 없고.

주위의 소용돌이가 점점 압축하듯 줄어들자 멀리 떨어져 있던 재중이 형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현재 지속적인 방어와 회피만 한다면 이길 수 있지만, 재중이 형은 창을 쥔 상태로 자세를 낮췄다.

방어보단 공격이라는 소리다.

그저 버티기만 해서 이기는 것은 사양이라는 소리지.

나 역시 그렇고.

【 라이트닝 애로우! 】

그때 재중이 형이 한 손에 윙드 스피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라이트닝 애로우를 시전을 했다.

라이트닝 애로우?

지금 상황에서 저런 마법이 도움이 되나?

그리고 스킬도 몇 개 등록하지 못할 텐데 굳이 저런 마법을 등록하다니.

그러고는 라이트닝 애로우를 시전한 손으로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잡자 창에서 강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창이 가지고 있던 속성과 흡수한 라이트닝 애로우가 더해져 창 전체가 강한 스파크를 내고 있었다.

대체 기술을 얼마나 숨겨둔 것일까.

분석, 조합.

응용능력.

평소와는 다른 재중이 형의 모습은 낯섦과 동시에 큰 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몇 번 더 라이트닝 애로우를 창에 흡수시켰다.

중첩이라…….

저건 가진 모든 것을 다 꺼내고서라도 날 막아 세우겠다는 각오다.

어차피 이중 가속을 막지 못하면 내 쪽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잔광이 흐르는 창을 든 재중이 형에 맞춰 나도 무기 인챈을 걸었다.

【 아쿠아 웨폰! 】

무기 웨폰이나 비월참 정도로 끝낼 수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강한 스파크가 튀는 창을 든 재중이 형이 내게 뛰어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도 자세를 잡았다.

이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다.

재중이 형도.

나도.

이번 한 방.

거기에 모든 것을 건다.

재중이 형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강한 승부욕.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가 여기까지 짜릿하게 느껴질 정도다.

【 백스탭! 】

【 대쉬! 】

역시 재중이 형은 이중 가속을 통해 나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나도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 대쉬! 】

나 또한, 민첩 수치에 따른 최대의 가속이 붙으면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서로가 가속으로 뛰어들자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충돌하기 바로 전, 재중이 형이 속도를 모두 싣고서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내지르자 나도 블러디아를 최대의 힘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집중을 끌어올리자 세상이 변하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이 생겨나면서 전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감각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내지르는 창의 궤적의 속도, 힘, 스파크가 튀는 세세한 모습까지 모두 한 눈에 들어오고, 내 손에 잡힌 블러디아가 바람을 가르면서 모든 흐름이 세세하게 감각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게 착 감기는 블러디아의 그립감까지 아주 세세하게 느껴질 때, 쏘아지던 창날과 휘둘러진 블러디아가 맞닿을 때,

바로 그 순간.

블러디아를 손에서 살짝 풀어냈다.

창날과 검날이 닿는 그 딱 한 접점.

접점에 닿기 바로 직전 블러디아를 놓았다가 다시 잡으니 마치 검이 잔상을 일으키듯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그러자 스파크 윙드 스피어가 검의 잔영을 스치고 무심하게 허공만 가르고 지나갔다.

“뭐?”

그대로 창을 통과해 버린 블러디아를 휘두르면서 재중이 형 바로 앞에서 기술을 썼다.

【 비월참! 】

공격이 통하는지 재중이 형의 가슴에 강력한 한방이 터져나갔다.

한 번 더!

【 비월참! 】

다시 카스카라를 휘두르면서 비월참을 날려 형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거기에 서로 달려들던 가속까지 합쳐진 충격에 재중이 형의 상체가 확 튕기면서 날아갔다.

튕겨 나가던 재중이 형이 이를 악물더니 그대로 바닥에 창을 내려찍으면서 두 다리와 함께 쭉 밀려 나갔다.

몸이 날아가는 저 상태에서도 창을 내려찍어 자세를 바로 잡다니.

진짜 미친 컨트롤이다.

마상에서 돌격하다가 창으로 찍힌 정도의 충격량을 그 짧은 시간 동안 해소해 버렸다.

다만, 경직이 왔는지 창을 바닥에 찍은 상태로 그대로 멈춰버렸다.

지금 가서 공격을 하면 이대로 끝이 난다.

“아, 젠장. 몸이 꼼짝도 안 하네.”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결국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건넸다.

“축하한다, 챔피언. 여기까지다.”

재중이 형의 챔피언이라는 말에 엄청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이 순간이 되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형.”

“이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날 이기기 위해서 재중이 형이 미리 준비하고 내놓은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속이 시원한 그런 표정.

경력이나 상금 등이 아쉬울 만도 한데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존경심이 든다.

난 절대 저렇게 못할 것 같으니까.

재중이 형이 포기를 선언하자 바람이 불던 지대가 사라지면서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VRS 케이스가 올라가면서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그와 함께 외치는 해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현란한 주호 선수의 연속 공격을 시종일관 완벽한 카운터로 반격하던 불멸 선수가 마지막 격돌에서 결국 주호 선수의 일격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

『 마지막에 마치 검이 사라진 것 같은 잔상이 생겼었죠? 』

『 저희 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해서 다시 돌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아, 지금 VRS 커버가 열립니다. 』

『 대회 최종전 승자는 주호 선수 입니다! 』

『 정말 숨 막히게 치열한 전투 속에 드디어 주호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갑니다. 』

『 다들 이 챔피언을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자 아트리움에 온 수 많은 관객들에게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렸다.

“주호 최고다!”

“난 니가 우승할 줄 알았다.”

“꺄! 오빠 여기 좀 봐줘요!”

“대박! 불멸을 이겼어.”

“오늘부터 네 팬이다!”

사방에서 울리는 환호소리에 귀가 멍해진다.

아…….

이런 건가?

우승을 한다는 것이.

재중이 형이 살던 세계가 이런 세계구나.

“축하해요.”

유혜선 팀장이 옆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우승할 줄 알았어요. 지금 정말 기뻐요. 제가 발견한 사람이 이렇게 환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좀 얼떨떨하네요.”

“이제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걸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까요.”

장담하듯이 말하는데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지금 불멸 선수가 부스에서 나와 주호 선수의 부스로 걸어갑니다. 』

『 같은 길드였었죠. 축하해주기 위해서 가는 모양입니다. 』

『 역시 불멸은 불멸이군요. 매너가 있어요. 』

부스 문이 열리면서 재중이 형이 들어왔다.

“여! 축하해.”

“형, 고마워요.”

그리고 이 말은 해야겠다.

“마지막까지 그냥 버텼으면 형이 이겼을 건데…….”

“차라리 그럴 걸 그랬나?”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는 것을 보니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너하고 그런 식으로 붙어서 이기면 잠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서.”

“있는 방법은 다 쓰라고 가르쳤잖아요.”

“뭐, 잠시 내가 미쳤나 보지. 지금 생각하니 아깝네. 다시 할까?”

미소를 짓고 날 보더니 말을 이었다.

“재밌었다. 모처럼.”

“진짜 감사합니다.”

이번엔 형이 완전 날 봐준 것이나 다름없다.

끝까지 철저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물고 늘어졌으면 절대 그런 카운터를 칠 기회가 날 수가 없었으니까.

“회식비는 네가 쏴라.”

그 말에 마주 보고 웃었다.

재중이 형이 웃다가 옆에 있는 유혜선 팀장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계속 여기 있었어?”

“네, 여기 담당이라서요.”

“와, 난 한 번도 안 봐주더니. 차별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이쪽은 특별하거든요.”

그러면서 유혜선 팀장이 날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래, 난 준우승이다 이거네. 서러워서 살겠나.”

재중이 형 말에 결국 나도 웃어버렸다.

정말, 한결 같은 사람이라니까.

이래서 내가 형을 좋아한다.

“그런데 회식해요?”

유혜선 팀장이 재중이 형에게 갑자기 질문을 했다.

“어, 나중에 우리 팀 애들하고. 상금도 두둑하겠다.”

그 말에 잠시 내가 고민하다가 유혜선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시간 되면 오실래요?”

전에 식사 대접도 한다고 했는데 이왕이면 좋은 것을 먹을 때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유혜선 팀장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 그렇게 눈치 없진 않거든요. 팀들끼리 모여서 즐겨야죠.”

흐음, 그런가?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네.

“나중에 둘이서 따로 먹어요. 그게 더 편할 것 같네요.”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와, 나하고는 밥 한 번 먹으려고 안 하더니. 치사해서 간다. 가.”

“멀리 안 나갈게요.”

유혜선 팀장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어차피 끝나고 호텔에서 대회 마무리가 있으니까 식사하기는 힘들지 않을 거예요.”

“하긴. 바로 봐야 하네. 그럼 난 밖에서 기다린다. 준비 되면 나와.”

재중이 형이 그 말을 끝으로 부스를 빠져나갔다.

『 자! 그럼 우승자를 잠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건…….”

“피해가긴 좀 힘들겠죠?”

“그럼, 잠시만.”

유혜선 팀장이 또 팔을 들어 올려서 내 고글 장치의 몇 가지 사항을 조절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이 어둠에 쌓인 것처럼 어둡게 변하고 주변에 들리는 소리가 멀게 느껴질 정도로 작게 들렸다.

“감도를 최대한으로 낮춘 거예요. 이러면 어지간한 자극에도 끄떡없어요. 아마 잘 보이지는 않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부스를 나가니 재중이 형이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여, 마지막 인사하러 가야지.”

재중이 형을 따라 단상에 올라가니 해설자 세 명이서 금색과 은색의 별 모양 트로피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로 단상에 올라서서 가볍게 악수를 하고 금색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뭐해? 입맞춤 한 번 하고 들어올려.”

재중이 형이 옆에서 이야기 해주는대로 얼떨결에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환호 소리와 함께 축포가 터졌다.

『 우승자 주호 선수를 큰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

***

우승 퍼레이드를 하고 단상을 내려오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 우승 소감을 그렇게 짧게 하는 놈은 처음 봤다.”

“하하……. 별 생각이 안 나던데요.”

“역시 내가 우승했어야 했어.”

“한 판 더 해요?”

“그거 깰 방법 생각나면. 대체 그런 건 언제 생각한 거냐?”

“아마, 이 게임 처음 시작할 때요. 우연찮게 발견했었는데 실제로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며칠 전에야 연습을 시작해서. 솔직히 열 번 시도하면 한두 번 밖에 안 됐거든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확률이 안 나오는 기술을 그 순간에 쓰려고 했냐? 터무니없는 놈이구만.”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저건 무슨 의미일까.

“자, 이제 다들 보러 가야지?”

“으음, 어쩌죠?”

“뭘 어째. 평상시대로 하면 돼. 이거 완전 쑥맥이네. 안에서는 날아다니더니.”

“하하…….”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솔직히 좀 떨린다.

매일 같이 게임 하던 사이라고는 해도 실제로 보게 된다는 것이.

바로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내려오자마자 재중이 형과 취재진에 둘러싸이다 보니 정작 우리 팀과는 만날 수가 없게 됐다.

재중이 형이 간단히 응대를 해주고 난 뒤에야 취재진을 따돌리고 통로로 들어섰다.

“다른 사람들은요?”

“못 봤냐? 아까 단상 아래에 다 있었는데.”

“아, 지금 고글을 엄청 어둡게 해놨거든요. 제대로 보이지가 않아요.”

“너도 참 고생이다.”

“이런 것이 없으면 그런 자리 올라가지도 못할 걸요.”

“어쩐지 바로 옆에서 해설자가 말하는데도 못 알아먹더라니.”

“그럼, 어디서 보죠?”

“일단은 네 대기실에서 보자고 해. 우리가 이동하면 일이다. 취재진 우르르 따라 나설 걸.”

재중이 형의 말에 스마트폰을 들어 앱을 열어서 연락을 했다.

<주호> 다들 어디세요?

<방패전사> 일단 대기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쁜소녀> 저도요.

<챠밍> 단체로 이동하기 전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진행 요원이 부탁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나르샤> 전 전사랑 같이 있어요.

<주호> 저랑 형이 이동하기 힘들어서 그런데 혹시 오실 수 있어요?

<방패전사> 지금 가죠.

<이쁜소녀> 저도 가요.

<챠밍> 갈게요.

다들 대답을 하고 잠시 재중이 형과 대화를 하면서 기다리니 방패전사와 나르샤가 먼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와, 진짜 반갑습니다.”

방패전사는 안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

머리색만 빼면.

완전히.

방패전사가 내게 와서 악수를 청하자 바로 손을 맞잡았다.

재중이 형과도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나르샤도 진짜 똑같긴 한데.

게임 속의 모습과 똑같으면 안 되는 것이…….

정말 외국인이잖아?

“반가워요. 저도.”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방패전사가 설명을 해줬다.

“아, 나르샤 부모님이 외국분이셔서.”

방패전사의 말에 나르샤가 싱긋 웃는다.

진짜 머리에서 피부까지 모든 것이 완전 똑같구나.

그리고…….

한 여성이 대기실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문 너머로 선글라스를 살짝 손가락으로 내리니 누군지 바로 알겠다.

“여기 맞죠?”

고개만 빼꼼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인 걸 확인하더니 바로 대기실로 뛰어 들어왔다.

“와,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쁜소녀도 분홍색 헤어만 빼면 거의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실물과 차이가 거의 없으니.

오히려 실물이 좀 더 어리고 귀여워 보인다.

특히 나르샤가 바로 안고 좋아하는데 게임에서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서로 깜짝 놀라는 시간이라니.

이제 챠밍만 남았나?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 똑똑 소리가 나서 다들 고개를 돌렸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이쁜소녀와 같이 누가 볼까 똑같은 선글라스에 아예 후드까지 꽁꽁 뒤집어 쓴 여인이 고개를 내민다.

“저기……. 여기 맞네요.”

그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문을 닫고 들어왔다.

부스에서도 본 거지만 저렇게 싸매고 다닐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의아하긴 했다.

방문을 닫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더니 우리를 보고 인사를 했다.

“아, 이러고 있으면 실례죠? 제가 사정이 있어서…….”

“편하게 있어도 돼요.”

“아뇨, 잠시만요.”

내 말에 챠밍이 선글라스와 후드를 모두 내리자 찰랑거리는 헤어가 옷 위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재중이 형이 보고 놀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거, 걸 그룹…….”

우리와는 달리 현실과 가상의 모습이 다른 단 한 사람.

재중이 형의 말에 챠밍이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정말 반가워요. 챠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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