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7화 (137/1,404)

# 137

#137화 별들의 전장 – 본선 (5)

『 이거, A조에 문제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

『 현역여대생 선수가 주호 선수가 있는 부스로 뛰어가는군요. 』

『 네, 지금 부스를 열고 들어갔습니다. 』

『 제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 진행 요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특별히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

『 이미 승패가 갈렸으니까 딱히 제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

『 대체 무슨 이유로 달려갔을까요. 흥미롭군요. 』

『 엇, 지금 부스에 들어간 현역여대생 선수가 주호 선수에게 사인을 부탁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부럽네요! 저건. 』

해설자의 해설이 부스까지 다 들렸다.

아트리움에 들어와 있는 관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원래도 큰 해설 소리가 지금은 흥분을 했는지 더욱 크게 들렸다.

그와 함께 관중의 함성도 더욱 커졌다.

“우와! 부럽다.”

“크, 진짜 현역여대생일 줄이야.”

“사인 받는 게 부러운 거냐. 사인하는 게 부러운 거냐.”

“둘 다 아냐?”

“나도 사인 잘해줄 수 있는데…….”

“사인해! 사인해!”

미치겠네.

들리는 목소리를 잘 들어보면 다들 다른 조의 경기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내 부스만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유혜선 팀장도 해설과 함성을 듣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해설자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계속 부추기는 모양새고.

여기서 사인을 안 해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이 안 된다.

재중이 형이 옆에 있었으면 속 시원히 해결했을 텐데…….

진짜 난감하다.

재중이 형이 이야기한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역시 사람은 모든 순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네.

돌아가면 진짜 사인 연습을 해야겠는데?

“제가 사인이 아직 없습니다. 따로 연습한 적도 없고.”

양손으로 하얀 티셔츠를 쭉 늘리던 현역여대생이 날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해맑게 웃었다.

“괜찮아요. 아무렇게나 해주셔도 돼요.”

“하지만, 정말 이상할지도 모르는데.”

“받는 데 의의가 있죠. 모양은 아무래도 괜찮아요.”

지금도 시선이 좀 부담스러운데 사인까지 하라니.

이대로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서 기다릴 것 같아서 말을 꺼냈다.

“저기, 펜도 없…….”

“미리 준비했어요!”

현역여대생이 한 손으로 청바지 주머니에서 바로 펜을 꺼냈다.

진퇴양난이네.

펜을 건네주고는 다시 양손으로 티셔츠를 늘렸다.

빨리하라는 눈빛을 가득 주면서.

“이상해도 어쩔 수 없어요. 해본 적이 없어서…….”

“네! 감사합니다.”

펜으로 티셔츠를 누르자 팽팽해진 티셔츠 위로 보이지 말아야 할 윤곽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건 차라리 그냥 대전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좋겠다.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

보지 말자.

시선을 내리고 빠르게 아이디인 주호를 휘갈기듯 티셔츠에 쓰는데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니다 보니 쓰기가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밑에 날짜도 좀 적어주시면 안 될까요?”

날짜를 다 쓰기 무섭게 다른 글귀를 말했다.

“‘현역여대생에게!’ 부탁해요.”

그렇게 마지막 글자까지 어렵게 다 쓰고 나자 현역여대생이 만족한 표정으로 두 손을 놓았다.

그러자 늘어난 티셔츠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갔다.

사인이 끝나자 부스 밖은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부럽다는 소리다.

누가 부럽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오늘 한 일 중 제일 힘든 일이다.

“뭘요. 덕분에 사인도 다 해보네요.”

“그럼, 이게 1호 사인이에요?”

“그렇게 되겠네요. 좀 이상하게 했지만.”

“꺄! 진짜 감사합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더니 연이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부스를 나갔다.

그렇게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내밀고는 한마디 했다.

“아! 이거 말 안 했네요. 저 1서버에서 해요! 꼭 찾아뵐게요!”

그 말을 남기곤 바로 자신의 부스로 돌아갔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일어나려는데 유혜선 팀장이 말을 꺼냈다.

“아주…… 좋으시겠어요?”

“네?”

돌아보니 유혜선 팀장이 팔짱을 끼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좋아하셨던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정말 억지로 한 겁니다. 사인할 줄도 모르고요. 혹시 티셔츠에 사인한 것 때문에 그런 거라면 오해예요.”

“그게 아니라 팬은 제가 먼저 했는데 사인은 다른 사람해주고…….”

혹시 먼저 해서?

“아니에요. 못들은 걸로 하세요.”

“지금 해드릴까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가 버렸다.

실수했네.

내 말에 유혜선 팀장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한참 말이 없이 뭔가를 고민하던 유혜선 팀장이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티셔츠를 살짝 잡아당겼다.

“……해요.”

너무 작게 말해서 잘 안 들리는데.

“네?”

“하라고요.”

고개를 돌리고 내 쪽으로 티셔츠를 내밀었다.

근데 저렇게 살짝 잡아당겨서는 안 써질 텐데…….

아까 해보니 티셔츠의 특성 때문에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겨우 써졌었다.

“저기, 조금만 세게 당겨주시면…… 아마 안 써질 겁니다.”

내 말에 유혜선 팀장이 더 빨개지더니 양손으로 티셔츠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둔덕한 굴곡이 바로 티셔츠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잘 몰랐는데…….

상당한…….

“고개 돌려요!”

“네! 돌렸습니다.”

“진짜…… 빨리 써요!”

그 말에 후다닥 펜을 들고 빠르게 사인을 써 내려갔다.

한 번 해봤다고 이번엔 훨씬 수월하게 했다.

늦게 했다간 유혜선 팀장의 얼굴이 붉어져서 터질 것 같으니까.

“다 됐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티셔츠를 내리더니 사인을 보고는 좋아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잘 나온 것 같아요.”

정말 감정 변화가 확 바뀌는구나.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과가 좋으니.

“고마워요. 사인.”

“네, 나중에 잘 하게 되면 다시 제대로 해드릴게요.”

내 말에 유혜선 팀장의 얼굴이 또 빨개진다.

“아! 지금처럼 말고요.”

***

<불멸> 아주 인기가 철철 넘치네.

<주호> 죽겠네요.

<불멸> 좋아서?

<주호> 형까지 진짜 왜 그래요…….

<불멸> 부러워서 그러지. 미녀들한테 계속 사인해 주고. 그것도 옷에다가. 현역여대생은 그렇다 치고, 혜선이까지 그럴지는 몰랐네.

<주호> 전에 팬이라고 하긴 했었는데…….

<불멸> 이거 질투 나네. 난 대차게 까였는데 말이야.

<주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마 관리하는 사람 중에 제 RTP가 제일 높아서 그럴걸요.

<불멸> 그렇다고 해두자.

재중이 형이 어중간하게 말을 끊었다.

저건 나중에 또 놀려먹겠다는 것 같은데, 제대로 물렸네.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근데 왠지 불길한 기운이 든다.

<챠밍> ……그럴 줄 몰랐어요.

<이쁜소녀> 저도 실망이에요.

<주호> 으음, 저도 부탁받은 거라서.

<챠밍> 사인을 꼭 옷에만 해야 했어요?

<이쁜소녀> 맞아!

할 말이 없다.

사실 다른 곳에 해준다고 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긴 했는데.

그때 당시엔 전혀 생각도 못 했다고 해야 하나.

방송에 전부 나갔으니 당연히 다 봤겠지.

뭔가 억울하긴 한데 괜히 잘못 대답했다가는 앞으로 곤란해질 것 같은 예감이 확 들어서 일단 말을 아꼈다.

<방패전사> 부럽습니다. 전 언제쯤 그런 사인을 해볼까요.

그때 방패전사의 연락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졌다.

고맙네. 정말.

다만 그와 동시에 나르샤의 연락도 이어졌다.

<나르샤> 저게 부러워? 진짜?

<방패전사> 아니요…….

나르샤에게 아예 꼼짝도 못 하는구나.

좀 안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챠밍> 사인…… 해주세요.

<주호> 네?

<챠밍> 내일 만나면 해줘요.

<이쁜소녀> 제 것도요……. 우리는 안 해주고.

<주호> 밤새 연습해야겠네요.

일단, 어떻게 넘어가긴 했나.

방패전사 덕에 살았네.

사인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방패전사> 그럼, 저도 나중에 사인 좀 부탁합니다.

<주호> 방패전사님은 왜?

<방패전사> 제 조카가 팬이라서요.

<주호> 연습 좀 해보고요.

<불멸> 그러게 연습 해두라고 했잖아.

<주호> 뭐, 그렇네요.

사인 하나로 이렇게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불멸> 나중에 내가 좀 알려줄게. 왕년에 연습하던 거 몇 개 있다.

<주호> 진짜 별걸 다 하셨네요.

그렇게 사인을 몇 가지 연습하다가 그냥 펜을 놓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하나…….

연예인도 아닌데 이런 걸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봐도 어이없어서 그저 피식 웃었다.

종이들을 치우고 그냥 이어지는 경기들에 집중했다.

사실 사인 연습할 때는 아니지.

이후에 진행된 64강전은 다행스럽게 모두 별문제 없이 잘 넘어갔다.

1차전에 프로와 붙었던 방패전사가 운이 좀 없었을 뿐.

대진 운이 좋은지 이번엔 프로를 다 피해갔다.

<주호>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네요.

<불멸> 운이 좋긴 해. 완벽한 대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

그렇게 64강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바로 32강전으로 들어갔다.

A조 선두라서 첫 경기를 가졌는데 이번엔 프로게이머가 걸렸다.

이번은 전과 다르게 상대방이 민첩을 잔뜩 올리고 스피드로 덤비기에 그냥 정말 순수하게 실력으로 눌렀다.

앞선 경기에서 역습도 안 되고, 원거리도 안 되니까 정공법을 들고나온 것 같은데.

해설자들 말로는 무모한 시도였다고.

뭐, 같은 스타일이면 솔직히 말해 그냥 압살해 버릴 자신도 있으니까.

대전이 끝난 뒤 내 쪽 부스를 보면서 부들거리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그리고 챠밍과 이쁜소녀도 다음 시합에 프로들을 만나서 정말 힘겹게 이기고 돌아왔다.

이쁜소녀는 한 대만 더 맞았으면 먼저 쓰러졌을 거고, 챠밍은 탈출기로 겨우 위기를 빠져나온 뒤부터는 조심스럽게 운영을 해서 간발의 차로 이겼다.

<챠밍> 이번엔 지는 줄 알았어요. 끝까지 노리면서 공격하는데 한 발만 잘못 움직였어도 졌을 것 같아요.

<이쁜소녀> 너무 힘들어요…….

대기실에 돌아온 챠밍과 이쁜소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파김치가 된 것 같다.

아마 대기실에 축 처져서 쓰러져 있지 않으려나.

누가 봐도 박빙.

대전 상대들이 처음 상대하는 프로여서 그런지 둘 다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불멸>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큰 난관은 지나갔네요. 방금 상대한 애들만 지나면 뒤는 좀 나을 겁니다.

<이쁜소녀> 진짜요?

<챠밍> 정말 다행이네요.

재중이 형이 시합하기 전에 이쁜소녀와 챠밍에게 상대방의 습관이나 특성 같은 것을 전부 알려줬다.

아주 세세하게.

마치 하나의 공략처럼 어떤 부분이 약하고 어떤 부분이 강한지, 어떤 식으로 하면 기술 유도가 가능하고,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까지 모두.

<챠밍> 불멸님 없었으면 졌을 거예요.

<이쁜소녀> 진짜 최고! 알려주신 대로 하니까 거의 다 먹혔어요.

<불멸> 그러려고 제가 있는 거니까요.

진짜 프로게이머를 딱지치기로 딴 것이 절대 아니다.

저런 식으로 분석을 했으니 상대방이 꼼짝도 못 하지.

방패전사와 나르샤는 일반인 상대로 대전을 해서 이번엔 편하게 올라갔다.

재중이 형은 뭐…….

그냥 상대를 압살하고 올라가서 해설자들이 역시를 남발하게 했고.

벌써부터 전설의 부활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중이다.

전설이라.

이 형…….

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

32강전이 끝나자 해설진들의 클로즈 인사말과 함께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불멸> 고생했습니다.

<방패전사> 전략 짜주신다고 감사합니다. 본인 것도 바쁠 건데.

<불멸> 전 뭐, 익숙합니다. 솔직히 다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16강에 무려 6명이 모두 살아남았다.

일반인들은 어떻게든 실력으로 밀고, 프로들은 재중이 형이 짜준 전략으로 박빙으로 붙어서 겨우 이겼다.

잘하면 1위부터 줄 세울 수 있을지도.

<나르샤> 근데 해신 그분은 탈락하셨네요.

<불멸> 아, 해신은…… 뭐라고 해야 하나. 내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라서.

<이쁜소녀> 네? 정말요?

이쁜소녀의 물음에 괜히 제우스가 생각난다.

재중이 형과 맞먹으려고 했던.

<불멸> 아, 내 말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도움 없이 실력으로 해보겠다고 해서요. 원래 좀 그런 녀석입니다. 집이 검도 쪽 계통인데 스킬 자체도 잘 안 쓰고 아무튼 단순하면서 복잡해요. 제일 다루기 힘든 녀석이기도 하고.

<나르샤> 스킬도 게임의 일부 아니에요? 가진 것을 다 써도 힘든데…….

<불멸> 그러니까 대단한 거죠. 이번에 회피 스킬이나 반격기가 새로 안 생겼으면 결과가 확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전에 같이 몇 번 활동을 해서 기억에는 있지만 그런 성향인지는 전혀 몰랐다.

하긴, 그때는 스킬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

<주호> 가시밭길을 걷고 있네요.

<불멸> 좀 해보다 못하겠으면 알아서 변하겠지. 그게 안 된다면 나도 모르겠다.

가진 것이 있으면 다 써야지.

내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다.

<불멸> 우직하니까. 믿을 수 있지. 보고 있으면 진짜 칼 같은 사람이라.

재중이 형이 어지간히 좋게 본 모양이다.

저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16강부터는 내일 열려서 일단 모두 근처 호텔로 이동했다.

<이쁜소녀> 진짜, 이건 너무해요.

<챠밍> 혹시나 했는데.

불만이 나올 만도 하지.

이동도 따로.

심지어 호텔에 가서도 식사까지 방에서 따로 해야 한다.

<나르샤> 이러려면 왜 호텔을 잡은 건지 모르겠네요.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불멸> 마지막까지 접촉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죠, 뭐. 스마트폰이 되는 게 어딥니까.

직접적인 접촉만 아니면 다 허락되는 이상한 방침이다.

대회 규칙이니 지켜야 하겠지만.

지금 안 지켜서 떨어지면 정말 웃긴 그림이 나오니까.

내일 대진표를 살펴보다가 어이없는 사람을 발견했다.

<주호> 하…… 이 사람 끝까지 올라왔네요.

<이쁜소녀> 누구요?

<주호> 로리콘이요. 설마 했는데 기어코 이겼나 보네.

<이쁜소녀> 으, 싫다.

<주호> 싫어도 만나야 할 겁니다. 이쁜소녀님 다음 대전 상대거든요.

<이쁜소녀> 네?

『 16강 대진 』

주호 VS 최종병기

방패전사 VS 아로하

나르샤 VS 아랑

미스샷 VS 전설

일검 VS 사탕주면따라가요

챠밍 VS 수호

불멸 VS 발키리

이쁜소녀 VS 로리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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