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6화 (136/1,404)

# 136

#136화 별들의 전장 – 본선 (4)

『 D조 첫 승자는 이쁜소녀입니다. 』

『 A조에서 먼저 64강에 진출한 주호와 같은 팀 메이트죠. 항상 같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핑크색 경갑만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고요. 』

『 흠흠, 확실히 귀엽죠. 』

한 캐스터의 사심 가득한 말투에 장내가 떠나갈 듯 웃음바다가 됐다.

『 주호나 불멸에 비해서 주목을 못 받아서 그렇지 배틀 액스를 휘두르면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습니다. 』

『 기본적으로 체구가 작을수록 힘에 보너스가 적어 배틀 액스와 같은 중병기는 다루기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

『 그것은 컨트롤이 더 뛰어나다는 소리입니다. 무게에 휘둘리기 쉬운 몸을 가지고 저 정도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니까요. 이 장면 한 번 보실까요? 』

해설자가 화면을 돌려보면서 설명을 하나씩 하면서 포인트를 집어준다.

『 이 부분, 배틀 액스의 무게 때문에 몸이 전체적으로 쏠리자 바로 발목을 이용해 무게 중심을 맞추는 게 보이십니까? 또 작은 스텝 하나로 바로 균형을 맞추고 무게가 실린 것을 이용해서 온몸을 비틀어 강력한 한 방을 만들어 냅니다. 』

『 호오, 느린 화면으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네요. 스텝 하나하나가 그때마다 무게 중심을 계속 맞춰주네요. 』

『 단순하게 배틀 액스만 휘두르는 것을 신경 쓴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잘 활용하는 것이겠죠. 이런 스탠스는 초보 유저에게는 보기 힘듭니다. 프로 게이머에게 볼 수 있는 기술이죠. 』

『 제가 알기로는 이쁜소녀는 4세대에서 처음 가상현실을 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 아무래도 팀에 불멸이 있으니까 배우는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명실상부한 국내 최상위 프로게이머니까요. 』

『 자, 해설을 하는 사이 B조와 C조의 승자도 나왔습니다. B조 승자는 자주 보던 분이군요. 』

『 네. 현직 프로게이머죠. 저번 달에도 중계한 적이 있습니다. 북미 대회였는데 참여했었죠. 』

『 국내 프로게임단에서는 로스트 스카이를 정식 대회로 인정하지 않아 국내 프로가 연습을 거의 못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

『 하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바뀌었죠. 사람이 많이 하지 않습니까. 흥행이 되니까 앞 다퉈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자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

『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정식 대회로 거듭나는 겁니까? 』

『 그럼, 저희야 중계할 일이 많아져서 좋긴 하겠죠. 더 많은 시청자분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은 논의 중인 단계라고 합니다. 』

『 조만간 프로게임단이 로스트 스카이에 들어간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

『 아마 그건 무리일 겁니다. 대회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일정상 로스트 스카이를 계속 플레이하기에는 어렵겠죠. 다만, 기업 후원으로 이름을 달고 몇몇 길드가 활동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

『 그렇군요. 눈이 오는 와중에도 이렇게 많은 분이 아트리움에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해설진의 열정 넘치는 해설을 듣다보니 퇴장할 시간이 됐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뵐게요.”

“네, 아마, 오늘 내일은 계속 여기 상주할 것 같아요. 불편한 점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

“그래요?”

바쁘지 않나?

잠잘 시간도 모자란다고 했는데…….

“이번 대회가 우리 DS사 모델이랑 PV사 모델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어버려서요. 그래서 성능 테스트를 겸해서 인력이 대거 나와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요. 4세대 VRS로는 처음 열리는 큰 대회다 보니까 지금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아, 이번이 처음입니까?”

“네, 그러다 보니까 DS랑 PV 사장진하고 임원까지 지금 다 나와 있는 걸요. 그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이 전부요. 저기 서로 노려보는 것 보세요.”

유혜선 팀장의 시선을 따라 VIP석을 한번 슥 둘러보니 유난히 분위기가 안 좋은 테이블이 보인다.

“저기 있는 것보다는 여기가 백배 좋아요. 에휴.”

“그렇겠네요. 여러 가지로 고생하십니다.”

돌리던 시선에 전에 내게 PV로 오라고 이야기했던 남자도 보인다.

내 시선을 봤는지 곧장 살짝 고개를 숙이다 내 옆에 있는 유혜선 팀장을 보곤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딱 봐도 서로 사이가 안 좋구만.

대충 분위기는 알겠네.

그러고 보니 나와 재중이 형은 DS사 제품을 쓰는데 다른 사람들은 뭘 쓰는지 모르겠네.

로스트 스카이 안에서는 그걸 따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언제 시간이 있으면 한 번 물어볼까.

“그건 그렇고 예전 게이머들은 PV사를 많이 썼다고 하더니 지금은 꽤 다르네요.”

얼핏 봐도 지금 시합에 쓰인 8대 중 절반이 DS 제품이다.

내가 알기로 쓰던 기종을 기준으로 세팅을 한다고 들었으니까.

예전엔 전부 PV를 썼던 것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인가?

“다 승호 씨 덕분이에요. 아마 우리 사장은 승호 씨 보면 안아보자고 할걸요? 한동안 입이 귀에 걸려 있었으니까.”

“하하, 그건 안 했으면 좋겠네요.”

내 말에 유혜선 팀장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죠.”

“네, 승호 씨 타임은 제가 다 챙길게요.”

이건 확실히 고맙다.

VRS룸을 열고 나가니 팬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D조 부스를 보니 거리가 좀 있어서 이쁜소녀를 따로 보거나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들어오는 통로까지 완전히 다르니까.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환호하는 사람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 바로 회장을 빠져나왔다.

***

<불멸> 넌 손도 안 흔들어 주냐?

<주호> 뭘요?

<불멸> 팬서비스.

<주호> 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소리를 지르기에 빨리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만 했을 뿐.

<불멸> 아이고. 다 너 보러 온 사람들인데.

<주호> 설마요.

<불멸> 뭐, 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이 보러왔을 거야. 다음엔 손이라도 흔들어줘. 지금부터 팬 관리 해야지. 사인 연습도 좀 해놓고.

<주호> 제가 무슨 연예인이에요? 사인 연습을 하다니.

<불멸> 할 일 많아질 거다. 장담하지.

불편할 것 같은데.

재중이 형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조만간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쪽으로는 틀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주호> 형은 시합 안 해요?

<불멸> 난 D조 마지막.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다 이기고 끝까지 올라가면 8강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같은 D조라서.

나와 방패전사가 A조, 나르샤가 B조, 챠밍이 C조,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D조다.

다행히 우리 팀 전부 어느 정도 흩어진 상황이라 8강 이상 올라가지 않으면 따로 만날 일은 없다.

대진 운은 제법 잘 나온 것 같다.

시작부터 팀킬 하는 것이 제일 안 좋은 그림인데 그것은 다 피했다.

<주호> 어때요? 할 만했어요?

<이쁜소녀> 처음에 막 떨려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주호> 전 마지막 밖에 못 봤지만 잘 하셨어요.

<이쁜소녀> 헤헷. 다행이다. 정말 정신없이 했거든요.

정말 잘했다.

연습한 것 이상으로.

<주호> 이제 다른 사람 경기 보면서 좀 쉬세요. 오후에 두 경기만 더하면 되니까.

일정 상 오전에 경기가 128강 경기만 쭉 하는데 그것만 해도 시간이 다 간다.

<이쁜소녀> 네! 근데 점심은 어떻게 해요?

<주호> 아, 돌아오면서 물어봤는데 각자 방에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도시락 준다던가.

<이쁜소녀> 심하다…….

<주호> 하하, 어쩔 수 없죠.

나와 이쁜소녀가 조금 손쉽게 이기고 올라와 푹 쉬는 동안 방패전사는 아주 정말 죽을힘을 다해 경기 종료 시간까지 다 쓰고 난 뒤에야 겨우 이겼다.

<방패전사> 와, 진짜 장난 아닙니다.

<불멸> 솔직히 전 못 이길 줄 알았는데. 대단하시네요.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방패전사의 대진 운은 엉망이었다.

<불멸> 방금 붙은 사람, 프로 쪽에서도 제법 실력 있는 축에 속하거든요. 상위 몇 프로에 들어요. 지금 그쪽도 깜짝 놀랐을 겁니다.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하고 붙었을 텐데…….

<방패전사> 1회전 하고 힘들어서 못 하겠습니다.

어지간해선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방패전사가 저러는 것을 보면 정말 고생한 모양이다.

반면에 챠밍, 나르샤는 무난하게 이기고 올라왔다.

<주호> 고생했어요.

<챠밍> 아니에요. 방패전사님에 비하면…… 엄청 쉽게 했어요.

아까의 처절한 경기를 챠밍도 봤지.

두들겨 맞아가면서 사슬로 당기고 도망가면 대쉬로 따라붙고 같이 엎어져 마운트 하고 아주 개판이었다.

그래도 일단 64강은 전부 안착이네.

간단하게 배달된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오후부터 다시 64강이 시작됐다.

《 64강 첫 번째 경기가 곧 열립니다. 참가자분들은 안내 요원을 따라 VRS룸으로 이동해주세요. 》

이번에도 첫 번째인가?

안내 요원을 따라 VRS룸으로 가보니 여전히 유혜선 팀장이 세팅 중이다.

“다 됐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전용기라서 매번 들고 나르고 세팅하고 고생이 많다.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야겠는데.

유혜선 팀장이 세팅이 끝났다고 하자 바로 VRS 안으로 들어갔다.

“봐주시거나 그러면 안 돼요.”

“네?”

“아뇨, 그냥요. 잘 하고 오세요.”

무슨 소리지?

VRS커버가 내려오자 의식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1차전에서 봤지만, 대전마다 배경이 변한다.

배경은 저주 받은 숲.

128강을 거치면서 나온 이야기로 장병기를 든 사람들이 불리하다고 하고, 지나치게 어두운 느낌이 있어서 궁수들이 숨기 좋아 꽤 인기 있다고 한다.

《 64강 1경기 시작합니다. 》

《 주호 VS 현역여대생 》

아…….

유혜선 팀장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숲 반대편에 들어선 연녹색의 긴 웨이브 헤어를 한 소녀가 거대한 장궁을 들고 날 보면서 방긋 웃었다.

장궁은 역시나 현재 최고 무기인 데스 위버다.

어차피 게임의 정보라는 것은 본인이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업로드하거나 주변 혹은 다른 사람이 업로드하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렵다.

대전 상대의 아이디를 보고 난 뒤에 검색이 되지 않자 그냥 손 놓고 있었다.

재중이 형도 프로가 아닐 거라고 이야기했고.

뭐, 전혀 봐주고 할 생각은 없다만.

《 시작! 》

【 라이트 웨폰! 】

시야를 밝히기 위해 라이트 웨폰을 켜고 난 뒤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늘어뜨리며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내가 달려들자 곧장 현역여대생이 주변의 어두운 숲으로 바로 모습을 감췄다.

궁수 상대로 꽤 까다로운 맵이네.

저쪽은 맵이 잘 골라졌다고 생각하고 있겠는데.

모습이 사라지고 기척을 내지 않자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 힘들어졌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니 이내 바람을 가볍고 약하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그것을 블러디아로 쳐내자 독 대미지가 약하게 몸에 붙었다.

【 라이트 웨폰 오프! 】

이렇게 라이트 웨폰을 사용한 채 다니면 위치만 알려줄 뿐이라 바로 꺼버렸다.

주변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찼다.

무식하게 화살이 날아왔던 곳으로 가봤자 이미 자리를 옮겼을 테니 굳이 갈 필요는 없다.

적막과 어둠이 흐르는 숲속에서 오롯이 서서 귀를 기울이며 주변의 소리를 차분히 기다렸다.

현재는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뒤편의 숲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적으로 그곳으로 달려가려다 순간 스치는 생각에 바닥의 돌멩이를 주워 그곳으로 던져보았다.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풀차징된 검은 가시가 강하게 시전되었다.

미리 준비한 함정.

내가 함정으로 달려들면 검은 가시로 끝을 볼 생각이었구나.

참, 재밌는 아가씨네.

주변의 소리와 검은 가시가 날아왔던 방향을 체크하고는 빠르게 달려가 나무 위를 향해 기술을 사용했다.

【 징벌의 사슬! 】

나무 위로 날아간 사슬에 무엇인가 걸리며 사슬이 팽팽해지자 그대로 확 끌어당겼다.

아니나 다를까.

현역여대생이 사슬에 그대로 끌려 내려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꺅!”

보통 궁수는 힘을 많이 올리지는 않으니 내가 당기면 그대로 딸려올 수밖에 없다.

【 아쿠아 웨폰! 】

낙차로 인한 대미지로 경직이 생겨 못 움직이는 것 같은데?

떨어진 현역 여대생은 놀란 상태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버둥거렸다.

끝이네.

사정 볼 것 없이 곧장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목을 내려찍었다.

【 백스텝! 】

순식간에 현역여대생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뒤로 쭉 밀려 나가고 애꿎은 바닥에 두 자루의 검만 허무하게 박혔다.

빠져나가는 순간 이동한 방향으로 바닥에서 검을 뽑아 비월참을 강하게 날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

비월참이 정확하게 백스텝이 끝나는 곳으로 날아가 폭발하자 현역여대생의 몸이 폭발에 튕겨 바닥에 나뒹굴었다.

낙차에 의한 경직을 가볍게 웃어주듯 큰 대미지에 의한 경직에 쓰러진 현역여대생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째서……?”

백스텝이 무적 회피기로 알고 있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무적이 풀리는 구간이 있다.

딱히 가르쳐 줄 생각은 없고.

다시 잡아놓은 상태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내려찍자 이번엔 확실히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대전이 종료되면서 VRS커버가 올라갔다.

“역시, 믿고 있었어요. 사정없이 내동댕이를!”

커버가 열리자마자 유혜선 팀장의 신나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혹시라도 봐줬다가 진짜 욕먹을 뻔했을지도.

“제가 좀 승부엔 강한 남자거든요.”

차가운 도시의 남자지.

그때, 반대편 부스에서 누군가가 막 뛰어왔다.

현역여대생?

내 부스로 달려오더니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날 쳐다봤다.

일단 탈락했으니 서로 접촉해도 상관은 없기는 한데 왜?

“저기! 저 주호님 팬이에요! 사인 좀 해주세요!”

입고 있던 하얀색 티셔츠를 쭉 늘이면서 그곳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

유혜선 팀장의 어이없다는 표정과,

“음?”

그리고 나의 얼빠진 표정이 이어졌다.

“진짜 사인받고 싶었어요!”

방금 전 나뒹군 건 이미 다 잊은 모양이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내가 오히려 굳어버렸다.

“저…… 사인을 할 줄 모르는데 어쩌죠?”

뜻하지 않은 최대의 위기가 그렇게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