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3화 (133/1,404)

# 133

#133화 별들의 전장 – 본선 (1)

VRS를 나오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찾았다.

오늘은 갈 곳이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자 귓가에 음악이 들려왔다.

이쪽은 남자 아이돌인가…….

잠시 음악을 듣다 보니 유혜선 팀장이 받았다.

<혜선> 승호 씨, 일찍 연락 주셨네요.

<승호> 생각보다 예선이 빨리 끝나서요. 그럼, 언제 찾아갈까요?

<혜선> 편하실 때 오시면 돼요. 준비는 다 해놨어요. 몸만 오시면 된답니다.

<승호> 몸만 오라는 소리가 더 무서운데요?

<혜선> 이번엔 메디컬 체크 오래 안 하니까 마음 편하게 오세요.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각종 수치를 체크하니 나나 유혜선 팀장이나 꽤 고생을 하는 편이다.

<혜선> 전에 준비했다는 고글에 맞춰 센서가 잘 적용되는지 확인만 하면 되거든요.

<승호> 그런 거라면야.

사실 유혜선 팀장이 직접 방문해서 세팅해 주기로 했는데 연구소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세밀하게 조정이 가능하다고 해서 결국, 다시 들리기로 했다.

<혜선> 조금 있다가 봐요.

<승호> 네, 앞에 가서 연락 다시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후에 샤워를 하고 바로 집에서 나서려는데 재중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재중> 바쁘냐?

<승호>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어디 좀 가는 중이라.

<재중> 어디 가는데?

<승호> DS 본사요.

<재중> 아, 오늘 메디컬 테스트?

<승호> 그거 겸해서 뭐 좀 받으러 가요. 유혜선 팀장이 줄 게 있다고 해서.

<재중> 진짜 돈 한 푼 안 받고 관리 잘 해주네.

<승호> 고객 만족 서비스?

<재중> 바라는 게 있으니 잘 해주는 거겠지. 공짜는 없으니까. 그건 알아서 하고. 나와. 태워다 줄게.

<승호> 형은 어디 가는데요?

<재중> 본선 대비해서 이야기나 하려고 했는데 드라이브나 하지, 뭐.

<승호> 안 그래도 추워서 죽을 뻔했는데 잘됐네요.

요즘 한파가 몰아쳐서 미친 듯이 춥다.

눈도 내리기도 하고.

<재중> 너 돈 있잖아. 이참에 한 대 뽑아. 좋은 곳 추천해 줄까?

<승호> 아뇨, 사봐야 한 달에 한 번 탈까 말까인데요. 나중에 학교 다니게 되면 생각해봐야죠.

<재중> 학교 다시 가려고?

<승호> 아직 잘 모르겠어요. 가긴 가야 하는데…….

<재중> 일단 끊는다. 전화하면 나와.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다 다시 걸려온 전화에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와서 둘러보니 주차장에 있는 차 중 유난히 돋보이는 차가 한 대 있었다.

P사 고급 모델.

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냥 보면 안다.

‘아, 저 차 비싸겠구나.’

유난히 붉고 유선형으로 잘 빠진 스포츠카를 보니 새삼 유명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하냐? 안 타?”

창문이 내려오더니 재중이 형이 날 부른다.

“네네, 가요.”

차에 타니 날 보면서 피식 웃는다.

“추운데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차 구경했죠. 예쁘네요.”

“뭐, 그냥 볼만한 정도지.”

“이 차 비싸지 않아요?”

“생각보다 얼마 안 해.”

그러면서 가격을 말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껌뻑거렸다.

흠, 생각보다 형 수입이 좋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파트 단지를 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물든 주변 풍경에 감탄하기 전에 걱정부터 든다.

“눈 치운다고 개고생하겠네요.”

“군대 갔다 오면 생각하는 게 다 똑같네. 나도 그 생각했거든.”

눈 치운다고 고생한 사람이라면 안다.

치우고 나면 다시 눈이 오는 기적.

“너 근데 용케 군대 다녀왔네. 그 몸으로.”

“빽 없고 힘없으면 다녀와야죠.”

“정신병으로 빠지는 놈도 있는 판에…… 어떤 놈은 일부러 병 치료를 늦춰서 안 가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멀쩡히 할 것 다 하더라. 너도 병이라면 병인데 안 빼줘?”

“공식적인 병명이 아니니까요. 목록에 없다던데요.”

“하여간 정말 빠져야 하는 애들은 가고, 가야 할 놈들은 빠지고…… 문제는 없었고?”

“뭐, 행정병이었어요. 그나마 나았죠. 훈련할 때 빼고는 할 만했죠. 가끔 눈 뒤집고 한 번씩 쓰러져주면 됐거든요.”

“미친놈.”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듣더니 혀를 찬다.

“그런데도 전역 안 시켜주더라고요.”

“니가 연예인이냐. 그런다고 전역시켜주게.”

“별 기대는 안 했어요.”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라.

지금은 그냥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고 만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그냥 넘어갔다.

중요한 이야긴 따로 있는 것 같으니.

“본선에 나온 애들 명단 봤는데, 조심해야 할 놈이 하나 있더라.”

“그래요?”

재중이 형이 안색을 굳히고 이야기할 정도라…….

“실력 좋은 놈이 하나 있어. 나보다 먼저 이 바닥을 떠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그놈이 쓰는 아이디가 보이더라고.”

“잘해요?”

“아아, 실력은 정말 좋은데. 문제가 있는 놈이지.”

“어떤 문제요?”

“돈에 좀 환장한 놈이야. 그래서 손대지 말아야 할 것도 건드렸고.”

“그게 뭔데요?”

“브로커.”

“아…… 누군지 알 것 같네요.”

가상현실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사람들도 알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뉴스에도 나왔지. 아마.

“성격도 좀 더러워. 실력 안 되는 애들이 인사하면 아는 체도 안 했거든. 지나가다 인사해도 무시하고 갈 정도로. 자기하고 급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말도 안 섞는 놈이지. 사람 무안하게 쌩까는 게 일상이야.”

“그래요?”

“웃긴 건 방송에 나오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해. 그렇게 얼굴 두꺼운 놈도 별로 없을 거다. 언플도 잘하고.”

언론 플레이라.

적으로 굉장히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허세도 있지. 수입 대부분을 유흥하고 명품, 스포츠카에 흥청망청 쓰고 다녔으니까. 여자한테 돈도 엄청 쏟아붓고 다니고 장난 아니었지.”

“그런 사람도 있네요.”

“프로게이머도 한 철 장사인데, 평생 그렇게 벌거라고 생각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만……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아지면 그놈처럼 되는 거야.”

“지금은 뭐하는데요?”

“뭐하긴, 개인 방송하면서 코 묻은 돈 떼먹고 있겠지.”

“그 정도면 감을 잃었을 것 같은데…….”

“뭐, 어느 정도는 할 거니까. 그리고 프로 중에 나랑 치고받던 녀석들도 다 들어온 모양이다.”

“으음, 결국 말한 대로 됐네요.”

“아, 그렇게 됐지. 예선 뚫은 걸 보니까 어느 정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사실 걔들이 제일 까다로워.”

“몇 명이나 돼요?”

“서른다섯.”

“네?”

“아이디가 확인된 녀석들만. 아이디를 숨겼다면……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수를 회사에서 용케 허락했네요?”

“홍보가 된다고 생각했겠지. 지금 비시즌이기도 하고. 애초에 팀을 만들어서 스폰서 하는 것도 회사 타이틀을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을 걸?”

128명 중 프로가 35명이라…….

본선에서 만날 네 명 중 한 명은 프로라는 소리다.

“낚시 아니었으면 더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통수도 그런 통수가 없었어. 그거 덕분에 RTP 높은 애들이 점수를 많이 딴 것 같거든.”

“아……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순수하게 순간 집중력, 컨트롤만 보는 거니까. 대회 끝나고 연락하기로 몇 명 약속했다.”

“손이 빠르시네요.”

“누가 채가기 전에 쓸어야지. 이야기 들어보니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장비가 좋지 않은 애들이 많더라고.”

1차와 3차는 어느 정도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했다면 2차만 좀 독특하게 진행이 됐다.

“자, 다 왔네.”

눈 내리는 도로를 한참 달리다 어느새 DS 본사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가 내리자 재중이 형도 차에서 내렸다.

“흐음, 들어가 볼까나.”

“형도요?”

“겸사겸사.”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

***

재중이 형이 유혜선 팀장을 보자마자 아는 체를 한다.

“오랜만. 여전히 예쁘네? 어때? 이따 한잔?”

“또 실없는 소리. 여친은 잘 계시나 몰라.”

“아아, 잘 계시지. 매일 눈 시퍼렇게 뜨고 내 VRS에 망치 올려놓고 기다리거든.”

“안 봐도 알겠네요.”

“서로 아세요?”

내 물음에 둘 다 날 한 번씩 바라보다가 웃는다.

“찐한 사이라고 해야 하나?”

“몰랐으면 하는 사이죠.”

둘 다 동시에 말하는데 말이 다르다.

그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예전에 대쉬하다 까였어.”

“전 가벼운 사람은 별로.”

재중이 형이 고백했다 까였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그걸 유혜선 팀장은 웃으면서 받아치는 모습을 보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려고 한다.

“어쩐 일이세요?”

“아, 이놈이 여기 와야 한다고 해서. 얼굴도 볼 겸?

“보셨으니 이만 가셔도 될 것 같네요.”

“매정하네.”

“고객만 아니었어도 이미 쫓아냈어요.”

“항복!”

재중이 형이 두 손을 들자 그제야 유혜선 팀장이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럼 들어오세요. 마침, 보여드릴 것도 있었어요.”

먼저 연구실로 들어가는 유혜선 팀장의 뒷모습을 보고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혹시, 깊은 사이였어요?”

“아니라니까. 프로 생활할 때 4세대 VRS 개발로 좀 도와줬을 뿐이야. 그때 봤지.”

RTP가 높은 사람이 다수 참여해서 개발했다고 하더니 재중이 형도 했었구나.

“수정이한테 말하면 안 된다?”

“네네, 그러죠.”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연구실로 들어가고 따라서 들어갔다.

“승호 씨는 여기 이거 써 보세요.”

내가 들어오자마자 얼굴 전면을 가리는 투명한 고글을 꺼내 보여줬다.

지금껏 이상한 걸 준 적은 없으니까 아무 의심 없이 고글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감싸는 묘한 그립감에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거 왜 이렇게 흐리죠?”

“주사 비율을 낮춘 거예요. 보통 눈만 감고 있어도 쓰는 에너지의 1/4는 줄어든다는 실험 결과가 있거든요. 그만큼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을 낮추는 장비예요. 무겁진 않죠?”

“네, 생각보다 가볍네요.”

“아, 그리고 옆에 버튼 누르시면.”

유혜선 팀장이 다가와서 내 머리를 감싸듯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쪽이 은근히 와 닿는 자세에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자세가 좀…….”

“아!”

그러더니 급하게 내게서 떨어졌다.

“좋을 때다.”

재중이 형이 옆에서 눈을 반개하고 혀를 찬다.

“아니라니까요.”

유혜선 팀장이 얼굴이 살짝 붉게 변했다가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설명을 했다.

“뒤에 버튼 누르시면 음성 대역폭도 일정 수준으로 거슬리지 않는 수준까지 낮춰줄 거예요.”

“굳이 이런 장비까지 필요한가요?”

“대회 나가시면 정말 사람이 엄청나게 모여 있을 거예요. 방송 장비에서 나오는 빛이나 사람들 응원 소리에 분명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거고, 그럼 제대로 본선을 못 치르게 될 테니까 꼭 필요해요.”

“음, 감사합니다.”

“난 뭐 없어?”

재중이 형이 옆에서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면서 웃고 있다.

“이거요.”

나와는 다르게 팔에 차는 기계를 휙 던져준다.

저거 몇 천 한다고 하지 않았나?

재중이 형이 아슬아슬하게 기계를 받더니 한숨을 쉰다.

“대우가 이리 달라서야.”

“팔에 차 보세요. 그리고 RTP 검사 안 한 지 오래됐죠?”

“아아, 그렇지 뭐. 프로 끝나고 한 번도.”

“이리로 와요.”

재중이 형을 데리고 가서 이리저리 한참 동안 측정을 하더니 유혜선 팀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설마 했는데…… 수치가 꽤 늘었어요.”

“정말?”

“이런 것 가지고 장난치지 않아요. 일이니까요.”

“흐음, 예전엔 점점 줄어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쪽도 PV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원인은?”

“모르겠어요. 지금은.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재밌네.”

재중이 형이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기괴한 표정으로 웃었다.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미묘한 표정에 그저 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앞으로 이 일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

그때 재중이 형이 날 바라보면서 물었다.

“너 내가 프로게이머 왜 그만 뒀는지 알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