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화 별들의 전장 (4)
“이 시점에 새로운 스킬들이라…… 정말 재밌네.”
재중이 형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스킬들이 훅 치고 들어오자 처음에는 생각에 잠겼다가 지금은 웃고 있었다.
“으음, 마냥 재밌을 상황은 아닌거 같다.”
사장님도 이번엔 우려가 섞인 목소리를 내신다.
“제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불가능해 보이네요.”
불가능?
재중이 형 입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솔직히, 케르베로스를 우리가 제일 먼저 앞서 나가는 상태에서 방어전 역시 앞섰어요. 거기다가 네임드는 우리가 다 잡고 다녔고. 아, 물론 숨겨져 있는 다른 네임드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건 저도 장담을 못 합니다.”
“우리가 네임드를 잡고 다니는 중에 다른 사람들이 숨겨진 네임드를 잡고 다녔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챠밍이 핵심을 짚어 질문 했다.
“네, 가능은 한데 불가능해요.”
무슨 대답이 저래?
챠밍도 재중이 형의 답변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소리죠. 다른 서버들은 이제야 케르베로스를 잡고, 아등바등 하르를 모아서 하르페를 먹네 마네 하는 중이니 일단 제외.”
“다른 서버에서 하르페를 무시하고 그 시간 동안 사냥을 했다면요?”
이번엔 방패전사의 질문.
방패전사의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차근차근 설명을 이었다.
“흐음, 저주 받은 숲 근방에 숨겨진 사냥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소문이 났을 거예요. 우리가 어디 동네 구멍 길드도 아니니 그 정도 소문을 잡아냈겠죠. 그쵸? 사장님.”
재중이 형의 말에 사장님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새 사냥터나 숨겨진 네임드가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면 누군가 우리를 앞서서 저 스킬들을 먹었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저기, 그럼 늪지대는요? 그쪽은 우리가 안 갔잖아요.”
이쁜소녀가 그쪽이 걱정됐는지 바로 손을 들고 물어봤다.
“좋은 질문. 그런데 그쪽도 어려울 거예요. 기껏해야 우리 길드 수준에 있는 길드가 연합을 해야 가능할 건데 그런 소식은 없네요. 그리고 그 이상 더 가서 잡아야 하는 사냥터는 거리도 거리겠지만…… 사냥 자체를 못 하겠죠.”
“애초에 늪지대 한곳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스킬 종류가 다양하고 많아.”
사장님이 또 다른 허점을 찌르신다.
그래.
사실 사장님이 방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가장 걸린다.
대쉬나 백스텝은 그렇다 치자.
이건 일반 몹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을만 하다.
대충 설명을 읽어보니 대쉬는 이동기, 백스텝은 탈출기다.
수준이 되는 사냥터에서 떨어질 만하다는 것이다.
징벌의 사슬도 마찬가지.
사슬을 방출하여 몹의 이동이나 어그로를 잡기 위해 쓰는 스킬이다.
그것을 다르게 쓴다면 원거리를 잡는 용도로 탁월하다.
이걸 꼭 엘리트나 네임드가 쓴다는 보장은 없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다만, 문제는 그 이후로 넘어간다.
블링크.
순간이동 탈출기.
혹은 이동기.
또 다르게 접근하면 불리한 상황을 한 방에 뒤집을 일격필살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기술이다.
이걸, 일반 몹이 떨어뜨렸다고 보기는 정말 힘들다.
분명히 엘리트 내지는 네임드 이상.
근데 검은 호수 쪽은 이런 엘리트가 없다.
살짝 네임드의 간을 본 상태지만 블링크?
글쎄…….
마법사 계열의 네임드라 패턴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재 검은 호수의 네임드를 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늪지대에서 드랍되었다고 보기에 좀 너무 계열이 동떨어져 있다.
배리어, 헤이스트, 리플렉션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적어도 늪지대는 아니다.
재중이 형 말대로 시간상 절대 불가능하지.
“그럼, 대체 왜 이런 스킬들이 나온 걸까요?”
방패전사는 물론, 우리도 여전히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는 중이다.
방패전사의 말을 들은 사장님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말을 꺼냈다.
“자, 정리하면 일단, 우리 외에는 저 정도 스킬을 얻을 팀이 전 서버를 통틀어 아무도 없다. 있어도 시간상 절대 불가능. 그럼 답이 나왔네.”
사장님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다.
“애초에 공지에 나온 것처럼 유저들에게 미리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몇 가지 스킬을 추가로 풀었을 가능성이 있지. 보면 스킬 종류가 거의 이동기나 탈출기, 혹은 반격기에 몰려 있어.”
“정말 그렇네요?”
챠밍이 스킬 목록을 다시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저 스킬들이 있으면 1:1에서도 마법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법 계열이다 보니 평소 부족한 부분이 많기는 했다.
특히 이동이나 방어가 너무 취약하다.
아직 제대로 겨뤄본 적은 없지만 나와 챠밍이 진지하게 붙으면 10에 10은 내가 이긴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블링크나 헤이스트, 배리어, 리플렉션 같은 변수가 끼어들면?
무조건 내가 이긴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또, 발이 빠른 나르샤가 이동기나 탈출기를 가진다고 하면 원거리에서 잡아내기가 상당히 불편해진다.
“의도된 스킬이겠네요?”
내 말에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럴 확률이 높을 게다. 내가 운영자라면 지금 밸런스로는 도저히 좋은 그림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 테니까. 당장 전국적으로 시합을 해야 하는데 스킬이나 공격 능력이 너무 근접에게 몰려 있어. 아마, 검은 가시나 멀티 샷은 무조건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어.”
확실히 나나 우리 팀과는 보는 눈이 다르시다.
전체를 관통하는 눈이라고 해야 하나.
전술을 짜고 전략을 짜는 그런 쪽으로는 잔머리가 좋은 나나 재중이 형이 좋을지는 몰라도 돌아가는 현상을 읽는 눈은 사장님이 좋은 편이다.
이것이 운영자의 의도라면 우리가 검은 호수에서 얻은 스킬까지 모조리 풀어놓은 것도 이해가 간다.
굳이 점검 한두 시간 전에 먹은 스킬까지 부랴부랴 공개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나마 한숨 돌렸네요.”
“아아, 그렇지.”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한다.
“우리보다 앞서나가는 팀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로 치고 나가는데도 밀렸다면 게임 접어야지.”
재중이 형의 말에 사장님이 표정을 굳히신다.
“그래도 정말 뜻밖의 팀이 있을 수 있다. 내가 한 번 알아보마. 다른 서버까지는 힘들어도.”
“저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서버라도 조금 찔러볼 만한 곳이 있습니다.”
방패전사가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이쁜소녀가 갑자기 손바닥을 치자 모두의 시선이 이쁜소녀에게 몰렸다.
“어? 아! 아니,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미믹요!”
“으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사장님이 거기까지 미처 생각을 못 했다는 듯 의외의 눈빛을 냈다.
“제 라이트 쉴드도 미믹으로 얻었으니까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패전사도 수긍하는 모습이다.
“경우의 수가 하나 더 늘었네요. 운영자가 개입했거나, 누군가 미믹을 통해 얻었거나.”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아닌 건가?
“그래, 미믹일 수도 있겠지. 스킬 중에 한두 개 정도는 말이야. 하지만 사냥터가 완전히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면 자주 노출되는 편이라 이미 소문이 났을 거다.”
“그런가요.”
확실히 누군가 사용했다면 혼자서 사냥하지 않는 이상은 소문이 났을 확률이 더 높다.
“뭐, 어차피 그렇게 풀려봐야 한두 개야.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보상이지.”
“아! 개인전 보상에 있었어요. 1등부터 3등까지!”
이쁜소녀가 생각난다는 듯 외쳤다.
“네, 아이템이나 스킬들, 싹 쓸어 와야 합니다.”
내가 만약에 입상을 한다면 던켈이나 오우거 벨트 정도를 생각했는데 오히려 블링크나 리플렉션 같은 종류가 훨씬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값으로 따지면 던켈이나 오우거 벨트가 압도적이겠지만.
재중이 형이 박수를 치면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자, 그러려면 연습 또 연습밖에 없어요. 오늘부터 특훈입니다.”
***
길드 건물 지하로 다들 이동했다.
지하에는 허가된 사람만 쓸 수 있는 넓은 연무장이 있다.
내려가 보니 실제 건물 넓이보다 훨씬 넓은 크기지만 가상현실이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실제로 건물이 거꾸로 생겼다고 해도 가능한 것이 가상현실이니까.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연무장에 내려오니 길드원들이 전부 내려와 서로 스킬이나 장비를 맞춰보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
사실 지금 길드 건물 밖의 거리는 1서버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텅텅 비어 있다.
1등 20억.
100등만 해도 천만 원이다.
연습을 안 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죄다 자기들 길드 건물 지하로 들어가서 연습 중이다 보니 거리가 완전 휑하다.
아마, 지금 몇몇 특수하고 인기 있는 사냥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비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무장을 둘러보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기가 넘쳐난다.
“스탯 분배가 문제야.”
재중이 형이 바닥에 앉아서 개인 정보를 띄워놓고 이리저리 손대는 중이다.
“레벨은 50에 고정이라 일단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템 점수 때문에 고를 수 있는 템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보다 스탯이 더 부족할 수도 있겠다.”
레벨 50이면 스탯이 25개다.
지금 내 레벨이 44니까 3개 정도 더 쓸 수 있지만 아이템이 문제다.
“파워 글러브나 오우거 벨트, 둘 다는 못 쓰겠네요. 오우거 하트를 포기하거나.”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집어넣고 계산해 보니 다 착용을 할 수가 없다.
무기를 좀 낮추든지 악세를 좀 낮추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한다.
거기다 새로 생긴 대쉬를 집어넣으려고 보니까 힘 기반 스킬이다.
스킬도 포인트를 먹는다.
아무 스킬이나 막 집어넣을 수도 없다.
“백스텝이 민첩 기반이네요.”
이건 궁수들이 위험 상황에서 거리를 벌리기 위한 탈출기로 쓰이는 모양이다.
【 백스텝! 】
쓰자마자 몸이 쭉 잡아당기듯 중력을 무시하고 뒤쪽으로 순식간에 밀려 나갔다.
몇 미터를 발 하나 꼼짝 안 하고 움직일 수 있다니.
그것도 뒤로.
“이건 컨트롤이 안 되네요.”
“아냐, 쓰는 찰나에 방향을 바꾸거나 뒤로 빠지면서 자세를 뒤틀어 움직일 수 있어.”
이미 다 해본 모양이다.
어차피 대쉬는 못 쓰니 이것으로 결정했는데 컨트롤이 이래서야…….
대쉬와 다른 점은 백스텝은 조건부 무적이다.
백스텝을 사용하는 동안은.
“그것도 문제가 있긴 해.”
“어떤?”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대미지가 들어간다. 그걸 이용하면 허점으로 찌르기 좋을 거다.”
이미 스킬을 분석 중이구나.
【 징벌의 사슬! 】
힘을 올려놓고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동시에 서로에게 거는 데 힘이 높은 쪽이 낮은 쪽을 끌어당기는 모습이다.
“블링크는…….”
이건 배우는데 지력이 너무 높아서 일반 격수들은 절대 불가능하다.
일단 챠밍만 배워서 선보였다.
【 블링크! 】
순간적으로 챠밍이 바라본 방향으로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니 바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쁜소녀가 멍하게 입을 벌리고 감탄을 했다.
몸이 통째로 사라졌다가 생기다니.
저건 가상현실이라 가능한 묘기다.
가장 큰 문제는 리플렉션.
【 비월참! 】
내가 비월참을 쓰자 재중이 형이 리플렉션으로 받아친다.
【 리플렉션! 】
바로 비월참이 튕겨져 내게 날아오자 위로 쳐올렸다.
천장에 맞아 터지면서 흔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슬쩍 쳐다봤다가 다시 자기들 할 것을 시작했다.
흐음.
이건 흡사 검은 호수에서 네임드가 쓰던 물의 방패와 비슷하네.
“그렇지? 이놈이 제일 큰 변수가 될 거야. 큰 기술을 써야 하는데 상대방이 이걸 목록에 넣어놨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눈치 싸움이 되는 건가.
스킬이 늘어나면서 변수가 많아졌다.
특히, 마법사와 궁수가 너무 좋아졌다.
상대하기 껄끄러울 정도로.
정말 쉽지 않겠네.
일단, 사냥은 포기하고 하루 종일 팀원과 대전 연습만 계속했다.
딱 쉬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연습에 매달렸는데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특히, 재중이 형이 날 잡아먹을 듯 괴롭혔다.
때론 마법사 세팅으로, 때론 궁수 세팅으로.
심지어 같은 쌍검을 들어가면서까지.
거기다 우리 팀과도 번갈아 가면서 연습을 해줬다.
“이러다 내가 1등 하면 어쩌려고요.”
“그럼, 한턱 쏘는 거지.”
“형은 1등 욕심 안 나요?”
“너 지금 나 이길 수 있겠어?”
“못할 건 없죠.”
“귀엽진 않네.”
내 대답에 피식 웃더니 다시 우리 팀과 대련을 하러 사라졌다.
솔직히 스킬이 늘어나니 재중이 형이 더 무서워졌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컨트롤의 문제를 넘어 스킬 운용으로 넘어가니 경험의 격차가 확 와 닿는다.
그렇게 연습만 하기를 삼일이 지났다.
***
“정말 지독하게 하시네.”
VRS를 나오자마자 입에서 나온 말이다.
1분 1초를 쪼개가면서 연습시키는데 어지간히 독해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샤워를 하고 게임 채널을 틀어놓으니 온통 대회 이야기 밖에 안 나온다.
현재 로스트 스카이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1서버가 다시 미어터지고 있었다.
한 번 서버가 다운되더니 1서버를 다시 막아야 하나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유혜선 팀장이 VRS가 다시 불티나게 팔린다면서 얼마나 욕을 하던지.
그게 다 일이라던가…….
《 서버 대항전, 1차 예선이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VRS에 연동된 앱으로 연락이 왔다.
이제 시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