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1화 (121/1,404)

# 121

#121화 검은 호수의 여왕 (4)

“뒤가 막혔네요.”

검은 물의 장벽이 올라오고 난 뒤부터 뒤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흐음, 어쩐다. 이런 변수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재중이 형이 고민이 되는 듯 팔짱을 끼고 물의 장벽을 계속 바라봤다.

외곽은 모르겠지만, 이 지점까지 도달한 사람이 없어, 이런 변화에 대한 정보가 자체가 없다.

“흠, 일단 주변에 몹은 보이지 않네요.”

방패전사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상황에서도 주변을 먼저 살피는 것을 보면 정말 믿음직스럽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적어도 이곳을 살펴볼 시간은 있으니까.”

또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의 장벽을 살피던 방패전사가 다시 말을 꺼냈다.

“흠, 전체가 트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살펴본 결과 나아갈 수 있는 길은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물의 벽으로 막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미로처럼요.”

“외곽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던전형 필드일까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면 거대한 트랩이라고 보면 됩니다.”

“돌아가기 위해 물의 벽을 억지로 뚫으려다가는…….”

“순식간에 죽겠죠.”

내 말에 방패전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쁜소녀가 잠시 손을 댔을 뿐인데 전체 HP의 1/3이 날아갔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벽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다는 소리다.

“물의 장벽이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물의 장벽이 조금씩 밀려 들어오면…….

내 말에 방패전사 뿐만 아니라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까지도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상황이 오면 사냥이든 탐사든 무시하고 무조건 텔을 타고 돌아가야 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시야입니다. 당장은 벽 너머를 살필 수가 없으니까요.”

물이 투명하다면 모를까.

불투명한 검은색이라 반대편을 살필 수도 없다.

일단, 파악한 바로는 장벽과 장벽 사이는 여러 사람이 전투를 해도 무난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다.

평범한 던전의 외벽에 즉사를 요하는 함정이 설치된 정도려나?

“다만, 싸우다가 벽에 밀리기라도 하면…….”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동의하듯 끄덕이며 답했다.

“즉사지, 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이대로 진행? 아님, 다시?”

“어차피 다시 와봐야 똑같겠지.”

방패전사로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만약, 어느 선 이상의 경계를 넘어갔을 경우 즉시 발동하는 거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어차피 같은 상황이 된다.

두 번, 세 번째는 없다.

“가죠. 결론은 나온 것 같으니까.”

내 말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이 상황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해. 언제 후방으로 몹이 돌아 들어올지 모르니까. 갈림길에서 우리가 가지 않았던 길을 통해 순찰 몹이 따라 붙을 수도 있고.”

“그럼?”

“방패전사가 선두. 그 뒤를 내가, 가운데는 챠밍님하고 나르샤님이 들어가시고 후방은 이쁜소녀님 하고 네가 맡아.”

벽이 세워진 좌우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이편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방에 문제가 생겨 내가 앞으로 튀어나가더라도 후방엔 딜탱이 가능한 이쁜소녀가 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약이 부족할 수도 있겠어. 원래라면 직진으로 쭉 돌파할 생각이었는데…….”

재중이 형이 들어가기 전에 내게 와서 작게 말을 꺼냈다.

“확실히 그렇네요.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요.”

우선 호수는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다.

얼핏 살펴본 바로는 저주 받은 숲의 절반?

시간은 걸리겠지만 탈것을 이용해 중앙 지역으로 내달리면 빠르게 도착할 크기다.

이곳은 막힌 곳 없이 뻥 뚫린 지역이니까.

반대로 장벽에 의해 미로 형식으로 변해 버리면 시간이 한참은 걸린다.

같은 거리지만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수배는 드니까.

거기다 몹까지 만나면 시간은 수배에 수배까지 더 걸린다.

물약을 더 아껴야 하나.

“챠밍님은 공격보다는 힐 위주로 부탁드릴게요. 진행이 엄청 늦어지더라도 물약을 최대한 아껴야겠어요.”

“네, 맡겨주세요.”

챠밍에게 말을 했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난 블러디아로 최대한 회복하면서 카스카라로 빼앗은 마력을 힐로 돌리면 되고.

방패전사도 블러디아와 제우스에게 얻은 +7짜리 방패까지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체력을 잃을 일이 없다.

거기다 이곳에 특화된 거대 개구리까지 있으니 든든할 것이다.

“챠밍님. 이거 받아요.”

“네?”

케르베로스를 꺼내서 바로 챠밍에게 넘겨줬다.

“아! 고마워요.”

체력은 몰라도 마력을 계속 채워준다면 힐량도 대폭 늘어난다.

케르베로스에 올라탄 챠밍은 만전을 기하듯 몇 가지 주문을 더 외웠다.

【 마나 리커버리! 】

개인적으로 굉장히 탐나는 마법이지만 지능이 높아야 쓸 수 있는 마법사 전용 마법이다.

“준비 끝났어요.”

출발하려는데 이쁜소녀가 옆으로 와 내 팔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네? 무슨 일이라도?”

“옅긴 하지만 호수잖아요. 혹시 레서 크라켄 소환은 안 될까요?

레서 크라켄?

지금 서 있는 곳이 옅은 호수이기는 한데 바다가 아니라서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레서 크라켄은 바다에서 호흡을 도와줘 HP를 깎이지 않게 하는 용도로 생각했으니까.

“잠시만요.”

그 말에 소환을 해보니 된다.

이러면 레서 크라켄을 이용할 곳이 많아지겠는데?

“으음, 이건. 감사합니다.”

“그냥 될 것 같아서 말해봤는데 다행이네요.”

내 인사에 이쁜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칭찬을 받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처럼.

이쁜소녀 덕분에 체력과 마력을 채워줄 탈것이 하나 더 생겼다.

이로써 물약 수십 개는 아끼겠네.

일단 나와 이쁜소녀는 발로 뛰는 것이 훨씬 편해 사냥시 어지간하면 탈것을 꺼내지 않는다.

그럼…….

재중이 형이나 나르샤님이 좋아하겠네.

형에게 레서 크라켄을 보여주자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그걸 꺼내다니 대단한데?”

“이쁜소녀님이 알려줘서요.”

재중이 형이 이쁜소녀를 향해 바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모습에 이쁜소녀가 부끄러운 듯 살짝 미소 지었다.

“음, 나르샤님 드려. 크라켄은 익숙하지 않아서.”

아무 탈것이나 타고 잘 싸우기에 혹시나 했는데,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곧장 나르샤님에게 레서 크라켄을 넘기니 그대로 올라타 자세를 잡는다.

“고마워요. 이제 마음대로 마력을 써보겠네요.”

그대로 거대 개구리가 앞장서고 머리 세 개인 늑대가 어슬렁거리면서 뒤를 따른다.

그리고 문어발이 흐느적거리며 뒤를 따라갔다.

옅은 호수라서 가능한 보기 드문 그림이다.

이건 완전 동물원인데?

“왼쪽, 오른쪽?”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이다.

재중이 형이 미로로 진입하면서 곧장 내게 물었다.

애매하면 왼쪽이었지.

“왼쪽요.”

미로의 첫 번째 갈림길에 들어서자 곧장 왼쪽 길로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이 먼저 들어갔다.

코스 선택이 나쁘진 않았는지 바로 몹이 보이진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 들어갔을까.

“스톱.”

두세 번 정도 코스를 꺾고 난 뒤에 재중이 형 입에서 멈추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내게 앞으로 오라고 손을 까닥거린다.

잠시 이쁜소녀에게 자리를 맡기고 대열의 앞으로 가서 코너 너머로 보이는 녀석들을 봤다.

“라미아도 궁수가 있네요.”

예전에 늑대 굴에서도 궁수는 꽤 까다로웠다.

좁은 통로에 서서 화살을 쏴대기 시작하면 지나가기가 난해하니까.

“궁수 여섯에 방패병 셋이라…….”

일반 라미아보다 더 커 보이는 방패와 단창을 들고 있는 라미아가 앞에서 가려주니 궁수를 바로 공격하기에도 힘들어 보인다.

“어때? 돌아갈까?”

“돌아가도 똑같을걸요.”

이건 경험.

늑대 굴에서도 이런 적이 있다.

반대로 돌아가 보면 훨씬 많은 궁수가 있던 기억이.

“돌파하죠.”

내 말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전과는 다르게 방패전사에겐 라이트 쉴드가 있다.

파워 글러브 착용으로 힘에서도 밀리지 않고.

“그럼, 갑니다.”

【 라이트 쉴드! 】

인챈트를 먹인 방패를 들고 전진하는 방패전사가 라미아 무리의 사거리에 들어가자 통로 끝에서 화살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퉁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튕겨 나가긴 했지만, 인챈트의 빛이 흐려지면서 방패전사의 HP 역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버틸 만합니다.”

템빨은 역시 어딜 가도 통하는구나.

제우스에게 감사를.

7강 방패의 위엄이 느껴진다.

아이템을 먹기 전이었다면 벌써 방패전사가 녹다운되었을 텐데, 지금은 굳건하게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나르샤님. 저격.”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르샤가 풀 차징한 데스 위버를 당겼다 놓으며 강력한 한 방을 쏘아냈다.

공기가 매섭게 갈리는 파공음과 함께 한 대의 화살이 그대로 라미아 궁수의 머리에 적중했다.

적중당한 라미아 궁수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나이스!”

라미아 무리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방패전사의 뒤로 나와 재중이 형, 그리고 이쁜소녀가 일자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리와 근접하자 한 번에 좌우로 튀어나갔다.

곧장 좌우로 갈라지는 화살 줄기를 재중이 형은 날의 면적이 넓은 광아를 이용해 막으며 전진하고 난 빠르게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전부 하늘로 쳐내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힘이 받쳐주는 지금은 강력한 화살을 쳐내도 반동이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그 덕분인지 엇나가지 않고 더 정확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쳐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튀어나간 나와 재중이 형이 화살을 분담하니 방패전사가 방패를 아예 내리고 몹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타이밍을 맞추는 센스가 확실히 좋다.

그렇게 거리를 확실하게 좁히자 재빠르게 방패를 들어 어그로를 확실하게 끌기 시작했다.

“뛰어요!”

그 틈에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다시 방패전사의 뒤로 따라붙었다.

거기다 나르샤는 뒤에서 풀 차징한 화살을 이용하여 궁수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 와이드 힐! 】

또한, 말하지 않아도 방패전사의 HP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챠밍이 있었다.

방패전사와 조금 떨어져 몹에게 붙던 재중이 형은 와이드 힐의 범위에 팔을 넣어 HP를 회복했다.

“땡큐!”

정말 센스 하나는 발군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그렇게 거리가 꽤 좁혀지자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 비월참! 】

반월의 빛이 몹들의 방패를 쳤는데 북 터지는 소리만 날 뿐 의외로 라미아 방패병은 제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텨냈다.

역시 상위 사냥터인가?

쉽게는 안 되네.

그때, 방패전사 역시 방패를 바닥에 박고 자세를 낮췄다.

“이쁜소녀님!”

“핫! 지금 가요!”

긴장감을 떨쳐내려는 당찬 외침과 함께 이쁜소녀가 방패전사의 낮아진 어깨와 방패의 상단 부분을 연달아 밟으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저건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그대로 라미아 방패병들의 키를 훌쩍 넘어 날아가더니 방패병과 궁수들 사이에 던켈을 강하게 내려꽂았다.

【 어스 퀘이크! 】

낭랑하고 당찬 하이톤의 음성이 나오면서 통로는 순식간에 물보라와 돌 폭풍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뒤를 잡힌 방패병들은 전혀 방어하지 못한 채 물보라와 돌에 맞아 쓰러지거나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건 궁수도 마찬가지.

단 한 번의 재치로 진형을 완벽히 부숴놓았다.

그때, 물의 장벽에 닿은 라미아 궁수가 몸을 꼬더니 비명을 지르며 발광을 시작했다.

캬아악!

응?

갑자기 쟤가 왜 저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