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0화 (120/1,404)

# 120

#120화 검은 호수의 여왕 (3)

재중이 형이 드랍템을 정리하고 ‘라미아의 피’를 들어 올렸다.

가운데엔 라미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문양이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동그란 반원형의 물방울이었다.

“흐음, 이런 아이템은 또 처음 보는데?”

“어떤 겁니까?”

이번에도 역시 방패전사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과 달리 방패전사는 아이템에 관심이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음, 쉽게 말하면 재료네요. 아이템 제작 재료.”

그냥 늑대의 혼과 비슷한 건가?

섬에서는 전부 1스탯 급의 아이템이나 악세를 드랍, 제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본 대륙에서는 저주받은 숲에서 2스탯 급의 악세, 아이템이 아주 낮은 확률로 드랍되거나 구 네임드 제작 재료가 떨어진다.

그 때문인지 현재 저주받은 숲이 효율 좋은 사냥터로 유명했다.

드랍템 좋고, 경험치 높고, 몹도 많고.

거기에 비춰본다면 라미아의 피는 아마 2스탯 급 악세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지 않으려나?

궁금함을 풀지 못한 듯 방패전사가 아직 줍지 않은 라미아의 피를 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으음, 이거 일회용으로도 쓸 수 있네요.”

“네, 지금은 그쪽이 더 필요하죠.”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가 하는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라미아의 피 / 제작 재료 / 호수의 저주 해제 』

우리 팀이야 거대 개구리라는 이곳에 특화된 탈 것이 있어 디버프를 상쇄시킨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여긴 사냥하기에 극악의 효율을 자랑하는 환경이다.

만약, 우리처럼 몰이를 시도했다간 탱커부터 순서대로 디버프에 의해 하나씩 빛으로 변해 사라질 것이다.

파티가 아닌 장비가 좋은 개인이 솔플을 할 경우에도 디버프를 달고 살아야 한다.

이곳이 그런 곳이니까.

그런 와중에 이런 디버프 해제 템이라…….

“효율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일회용인데 불구하고 드랍 확률이 너무 낮다.

애초에 제작 재료라고 고려하면 이렇게 안 나오는 것이 맞겠지만.

“이건 돈이 되겠습니다.”

방패전사가 보자마자 하는 소리.

늑대의 혼과 마찬가지로 돈이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지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의 눈빛이 달라진다.

충분히 사냥터로서의 매력이 있다는 소리다.

다른 의미로도 있기야 있겠지만.

“여기 무조건 먹어야겠다. 수입이 장난 아니겠어.”

드랍템 하나가 의욕을 불태우게 하는구나.

“우리만 사냥하는 사냥터는?”

“최고죠.”

재중이 형과 마주 보고 웃었다.

***

《 주호, 불멸 엑소더스? 최강 길드 분열인가? 또 다른 라인의 탄생인가. 》

—개인 랭킹 1위랑 2위가 다 빠져나갔네.

—진짜 무슨 일 있나? 전에도 삐걱거리드만.

—전에 그건 작전이었다던데? 이미 소문 쫙 났음.

—그럼 이건 뭐지?

—카이저가 홀라당 다 해 먹은 것 아닌가?

—한참 길드원 모집하더만, 그냥 길드 나눈 거 아냐?

—최강 길드 인원수가 그 정도는 아닌 걸로 아는데.

—이번에 많이 받았겠지.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1위 길드 걱정이다.

—주호랑 불멸 들어간 길드 이름은 뭔데?

—신화.

—그거 예전에 아르쉴라 서버에서 쫄딱 망한 길드 이름인데.

—주호랑 불멸이 잡았으니 이제 진짜 신화 아니겠냐.

—길드 이름은 돌고 도는 겨.

—그럼, 신화가 최강 길드하고 같은 라인이겠네.

—같은 라인인지 독립한 건지 모르지.

—그럼, 난 신화 들어갈란다. 주호하고 불멸 빠지면 최강도 별 볼 일 없지.

“칼, 최강 길드에 넣는다는 건 어떻게 됐어?”

게시판 화면을 띄워서 보고 있던 스칼렛의 말에 옆에서 한참 사냥 중인 칼이 몹을 잡아내고 난 뒤에 뒤로 빠졌다.

“일단 가입까지는 순조롭게 됐습니다.”

스칼렛이 그 말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칼. 믿을만해.”

“별것 아닙니다.”

정말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 칼을 보면서 스칼렛이 말을 이었다.

“신화. 여기 내부 정보가 필요해.”

“아직 그 정도로 접근할 정도는 아니라 힘들 겁니다. 무리하면 한 번 정도는 캐낼 수 있겠지만.”

“그래? 뭐,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상태에서 그럴 필요는 없으려나.”

스칼렛이 연보랏빛 헤어를 손가락으로 꼬면서 생각에 잠겼다.

“1위부터 6위까지 모조리 빠져나갔다라…….”

보통 길드의 메인이 빠져나가면 휘청거리는 것이 당연한 순서지만, 최강 길드는 오히려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도된 분리라는 소리다.

굳이 이 시점에서 왜?

현재 가장 중요하고 뜨거운 하르페를 지키는 쪽이 훨씬 안정적이지 않나?

혹시…….

“칼, 2티어 지역 정보 지금 누가 가지고 있어?”

“일단, 제가 다 관리를 합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일명 2티어 지역이라고 이름 붙인 곳들이 있다.

바로 저주받은 숲 사냥터에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곳.

하르페에서 도달하는 시간이 비슷하고, 리젠되는 몹들의 레벨까지 비슷한 사냥터들.

거기다 극악의 효율을 자랑하는.

“거기 지금도 가는 사람 있어?”

“아시다시피 극악의 효율이라 당분간 접으라고 하셔서 일단 철수했습니다. 다른 길드에서도 이리저리 시도하다가 결국 철수했던 곳이니까요.”

“흐음……. 어느 쪽이려나.”

스칼렛의 혼잣말에 칼이 알아차렸다는 듯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발 빠른 애들로 몇 명 보내볼까요?”

“역시 칼은 편해. 준비 좀 해줘.”

“알겠습니다.”

신화 길드라…….

“슬슬 접촉을 해봐야겠네.”

손을 잡을지 고삐를 채울지.

***

“이건, 잊혀진 성 1구역하고 비슷하네요.”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수 외곽에서 조금씩 들어가면서 사냥을 하는 중인데 리젠이 한 자리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고정적으로 리젠 되는 애들도 있는 반면에 순찰을 하듯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몹들도 많다.

“패턴은……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똑같은 모습을 한 라미아들이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돌아다니는데 움직이는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곳은 엄청나게 몰려 있고, 어떤 곳은 한 마리도 없이 휑한 곳도 있다.

“앞으로 자리싸움 장난 아니겠네요.”

“뭐, 걔들끼리 싸우겠지. 우리야 그땐 다른 곳에 있을 테니까.”

방패전사의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우리야 남들보다 먼저 사냥을 하고 떠나니 별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는 건가.

“일단, 더 들어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물약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

재중이 형의 관심은 어떻게 해야 더 안으로 들어갈지 연구하는 것뿐이다.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온 이상 외부에서 물약을 보급받기는 어렵다.

물약을 우리에게 보급해 주려면 우리만큼 안으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현재 그것이 가능한 팀은 전무하니까.

그 정도 수준의 팀이라면 그냥 자기들이 사냥하는 편이 더 낫기도 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외곽으로 튀어나와서 물약을 받을 수는 없다.

그건 지금 우리 목적을 생각해 보면 아무 의미도 없다.

시간 낭비, 자원 낭비다.

“몹이 한 방향으로만 오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죠.”

옅은 호수라 중간중간 솟아오른 연꽃이나 나무가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데 막혀 있는 지형이라는 것이 없다.

사방이 뻥 뚫린 지형.

다른 말로 하면 이곳저곳에서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기 딱 좋은 사냥터다.

몰이도 외곽에서만 했지 호수 안으로 들어오니까 무기 인챈트를 소모하기가 까다로워서 지금은 그냥 때려잡고 있다.

“오른쪽은 제가 맡을게요.”

한참 네 마리를 몰아 잡는 도중 오른쪽에서 한 마리가 더 들어와서 내가 바로 빠져 포지션을 잡았다.

지금과 같이 몬스터가 붙는 변수가 생기면 딜탱으로 빠져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재중이 형밖에 없으니까.

이쁜소녀도 맡기면 정말 잘하지만 지금은 물약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라미아와 붙기 전, 곧장 가지고 있던 라미아의 피를 복용했다.

그와 함께 몸에 걸려 있던 검은 호수의 디버프가 바로 사라졌다.

당분간은 이걸로 디버프는 걸리지 않는다.

칼날로 변한 라미아의 긴 팔이 곧장 내려쳐 오자 블러디아를 이용해 옆으로 빗겨 쳤다.

검과 손날이 빗겨 나가는 순간 칼날이 끼기긱, 하고 긁히는 파공음이 귀를 스쳐 지나간다.

새로운 사냥터, 새로운 몬스터였지만 힘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오우거의 벨트와 파워 글러브까지 착용한 상태에선 오우거 형님이 와도 힘으로는 안 밀릴 자신이 있다.

연이어 카스카라로 빗겨 밀려난 팔의 팔꿈치를 라미아 몸의 바깥으로 밀어치면서 반 회전한 몸을 이용하여 라미아의 옆구리를 강하게 찢어냈다.

순간적으로 들어간 큰 충격에 라미아의 몸이 들썩거리며 반대편으로 밀려 넘어갔다.

밀려 넘어간 라미아가 팔을 축으로 삼아 긴 꼬리를 이용해 공격했다.

윈드밀 아냐?

무슨 몬스터가…….

생각도 잠시, 돌아가는 긴 꼬리에 의해 물보라가 내 몸으로 쏟아졌다.

그 물보라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방해를 받았다.

시야가 방해받았다는 불안감이 미세하게 경직을 불렀지만, 이내 다른 감각들이 불안감과 경직을 날려 버리며 새로운 정보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정보들은 물보라가 일기 전 잠시 봤던 꼬리의 궤적과 속도, 그리고 쏟아진 물보라의 세기 등이었다.

정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장대를 뛰어넘듯 몸을 눕혀 점프를 했다.

그러자마자 내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라미아의 꼬리가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한쪽 손으로 그 꼬리를 강하게 잡고 뒤로 넘어가 비월참을 날렸다.

비월참이 무방비 상태인 라미아의 머리와 목 부근에 정확하게 날아가 작렬하자, 몸을 돌리던 라미아가 주저앉았다.

“애먹이네.”

크리티컬을 동반한 완벽한 급소 공격이면 상위 몬스터라도 한동안은 아무것도 못 한다.

바로 달려들어 머리와 목을 찍으면서 계속 공격하니 라미아가 그대로 죽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 발 남은 비월참을 네 마리가 모여서 고전 중인 곳에 날려서 도와주니 우리 팀도 빠르게 정리를 했다.

“벌써 잡았어요?”

이쁜소녀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날 돌아본다.

“운이 좋았어요.”

라미아가 그렇게 뒤집어질 줄은 누가 알았을까.

가면 갈수록 몹의 패턴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섬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동작을 해내는 것을 보니 몹도 유저 패턴에 맞춰서 점점 빨라지면서 다양한 동작을 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라미아의 피가 큰 도움이 되네요.”

방패전사 덕에 우리가 소비할 필요가 없는 라미아의 피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러면 지금처럼 한 번씩 라미아의 피를 빨면서 일대일로 싸워도 된다.

“조금 더 들어가자.”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 목적은 여기서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약이 다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치고 들어가 어떻게든 중앙까지 닿아야 한다.

그렇게 이십여 마리 정도를 더 처리하고 안으로 들어가다가 방패전사가 어느 부분을 밟았는지 모르겠지만 사방에서 검은 물의 장벽들이 바닥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수 전체를 걸쳐서 차례대로 올라오는 물의 장벽에 방패전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갑자기 왜.”

방패전사가 서둘러 발을 떼보지만 이미 늦었다.

발을 떼어냈음에도 물의 장벽들이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닥의 호수가 역류해서 하늘로 치솟는 광경에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장관이라고 해야 하나?

가상현실이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있다.

공원이나 호수에서 쇼를 하면 물을 위로 쏘아 올리긴 하지만 그것들과 다르게 이건 정말로 벽이다.

물로 촘촘히 막혀 있는 벽.

“신기하네요.”

“물이 하늘로 거꾸로 솟아올라요…….”

챠밍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쁜소녀도 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무심코 손을 들어 물의 장벽에 손을 대버렸다.

“꺅!”

물의 장벽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이쁜소녀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모두 깜짝 놀라 이쁜소녀를 바라보는데 일단 외견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아주 잠깐 손을 댔을 뿐인데 HP가 1/3가량 줄었다.

“휴…… 괜찮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이쁜소녀가 얼른 잡더니 울음이 섞인 말을 이었다.

“막 여기저기 고통이 와요. 꼭 공격받은 것처럼.”

이쁜소녀의 말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단순히 건드리기만 해도 이 정도라…….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4, 5m 높이의 물기둥과 물의 장벽들이 사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미로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거 갈수록 태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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