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7화 (117/1,404)

# 117

#117화 공개 경매 (4)

솔직히 이 여자와 바로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4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준 여자라는 것만 빼면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찾아갈 일은 절대 없었을 거고.

그래서 더욱 의아하다.

굳이 날 찾아올 이유가 있나?

만약, 있다면 블러디아와 카스카라가 컨트롤 여하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라 그 부분을 도움받기 위해 온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해서 나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실제로 사용해 보고 실망을 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본인의 기량 탓을 내게 따지는 경우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잠시라면 괜찮지만, 너무 길어지면 이쪽도 곤란합니다.”

현재는 꽤 민감한 시기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그런 상황.

화련과 이렇게 한 자리에서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추측성 글이 난무할 정도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좋은 모습이라 되도록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화련이 내 앞을 막아서자 구경하는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래 걸릴 이야기는 아니에요.”

주변의 시선을 피해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그 모습이 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자리를 좀 옮겼으면 좋겠는데…….”

“그냥 여기서 하시죠. 오래 걸릴 이야기가 아니라면요.”

“뭐, 그럼 그렇게 할게요. 사실 무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에요.”

“그럼?”

사실 무기에 대한 이야기 일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예상에서 빗나가 버렸다.

완전히 헛짚었나.

“왜, 귓말과 메일이 닫힌 사람을 찾아왔을 것 같아요? 그것도 일부러 사람까지 풀어서요?”

사람까지 풀었다?

어쩐지 연락도 안 되는 날 어떻게 찾아왔나 했다.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고 보기에는 지금 상황은 설명하기 힘드니까.

“그냥 이야기하시죠. 그렇게 말해도 좀 전까진 전혀 관심이 없었던 터라.”

“충분히 이해해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저도 돌려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내가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화련이 곧장 말을 이었다.

“제가 새로 만드는 길드에 들어올래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거절입니다.”

“원하는 것은 다 해드릴 수가 있어요.”

이건 여자 제우스인가?

재중이 형도 이런 제안을 받았을까.

우리 대화를 주의 깊게 듣던 주변이 웅성거림으로 차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저런 이야기를 태연하게 할 수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보통은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서 조건을 내밀면서 회유를 시작하는데, 이건 뭐, 대놓고 원하는 것을 다 줄 테니 오라고 하다니.

이미 제우스를 봐서 그런지 아주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떻게 보면 제우스보다 윗줄인데?

당당함으로 치면 제우스는 새발의 피다.

“전 주호님 재능을 높게 사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아서 혹은 조금 더 게임을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전 아니에요.”

이 여자 뭐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로스트 스카이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막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새어 나갔다면 벌써 난리가 났어도 백번은 더 났다.

“주호님 위주로 길드를 재편할 생각이에요. 돈, 정보, 인력 모두 주호님께 집중시켜 드릴게요. 그저 원하시는 대로 플레이하시면 확실하게 서포트해드린다는 소리예요. 원하시는 파트너가 있으면 얼마든지 데리고 오셔도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듣던지 말든지 화련은 전혀 관심이 없는 투다.

“제가 당장 이 자리에서 10억을 달라고 하면요?”

10억이라는 말에 예의 웅성거림이 좀 더 커졌다.

“흐음? 생각보다 통이 작으시네요. 10억은 좀 걸리긴 하는데 계좌 불러주시면 오늘 안으로 입금될 거예요.”

이건 정말로 줄 기세다.

“아뇨, 그냥 이야기해 본 겁니다.”

“아쉽네요. 10억이면 싸게 먹히는 건데.”

대체 이 여자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바로 이 자리에서 확답을 받고 싶긴 한데 안 되겠죠?”

“사실,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예전이라면 억 단위의 돈에 영혼까지 팔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장 아이템 몇 개만 팔아도 상상도 못 할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다.

거기다 유혜선 팀장이 말한 것만 몇 가지 들어줘도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눈속임과 같은 계약에 단단히 걸려 구속받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내 위주로 모든 것을 재편해 맞춰도 결국은 계약이란 족쇄에 여러 가지로 휘둘릴 것이 뻔하다.

지금이 베스트다.

저건 족쇄고.

“제가 지금 아쉬운 것이 없어서요.”

내 말에 화련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쉰다.

“될 줄 알았는데 쉽지 않네요. 역시.”

그러면서 여전히 내게 눈을 맞추고 있다.

부담스럽네.

이 여자.

단순히 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날 홀라당 잡아먹을 사람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조만간 지금 했던 이야기가 사방팔방 뻗어 나가게 될 것 같다.

내가 10억을 눈앞에서 걷어찼다고.

앞으로 날 영입하려면 최소 10억은 걸어야 한다고.

이제 귓말과 메일은 열어도 되겠네.

10억 이상 배팅할 간 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이건 고마워해야겠는데?

화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내게 훅, 하고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일단은 지켜보도록 할게요. 너무 기다리게 하면 돌아갈 집을 없애 버릴 수도 있으니까 날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요. 아마 조만간 또 볼 거예요. 그땐 좋은 대답 기대할게요.”

화련이 그 말을 남기고 손을 흔들며 처음 왔던 길로 돌아가 버렸다.

고맙다는 말은 취소다.

저 여자…….

위험한 여자다.

***

“여! 10억을 걷어찼다면서?”

재중이 형이 내가 오자마자 헤드락을 걸면서 크게 웃었다.

이게 무슨…….

내가 화련을 대차게 까고 온 게 채 10분도 안 됐다.

끝나기 무섭게 길드 건물로 왔는데…….

어떻게 소문이 10분도 안 돼서 다 퍼지냐.

“대체 어디서 들은 거예요?

“어디긴.”

그러면서 옆을 바라보는데 이미 우리 팀 모두가 게시판 영상을 보고 있다.

시장에서 우릴 보던 사람 중 누군가 바로 게시판에 올려 버린 모양이다.

“하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요.”

이로써 이번에도 ‘이번 주의 베스트 게시물’에 당첨이다.

그렇지 않아도 악마와 붙었던 영상이 상단에서 매일 노출되고 있는데 또 베스트 영상에 올라가 버렸다.

그것도 아주 눈 깜짝할 새에.

—화련 저 여자 어제 경매에서도 4000이나 한 번에 쓰더니 대체 뭐하는 여자지?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1서버에 부자 엄청 많음.

—화련 하고 결혼하고 싶다.

—잘도 해주겠다. 주호 정도는 돼야 매달리지.

—캬! 10억을 걷어차는 클라스 보소.

—난 10억이면 영혼까지 바칠 것 같은데…….

—영상 보면 고민을 1초도 안 하네.

—랭킹 1위면 10억은 우습지 않나?

—이, 아무리 그래도 10억은 아니다.

—아무튼, 대단하다. 난 저렇게 못 할 것 같음.

다들 영상과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데 특히, 챠밍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하다 못해 만족감을 드러내는 표정이라 차마 말 걸기가 무서울 정도.

거기다.

이쁜소녀는 알아들을 순 없지만 들떠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콧소리를 내며 내가 거절하는 장면을 계속 돌려보고 있었다.

역시, 화련과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지 않은 게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이동했다면 지금쯤 대차게 까이고 있을지도.

“전 그 패기가 부럽습니다. 10억을 까다뇨. 왜 저한테는 그런 제의가 안 오는 걸까요.”

방패전사가 축 처진 채 테이블에 엎어지는데 그냥 웃음이 나온다.

이 사람들이 진짜.

무슨 잔치 분위기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나르샤도 날 잠깐 쳐다보더니 슬쩍 엄지를 치켜세운다.

하아…….

나르샤까지.

“제가 그걸 까고 온 게 그렇게 좋은 겁니까.”

“네!”

“조금……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쁜소녀와 챠밍의 대답에 그냥 웃음이 나온다.

“앞으론 어디 못 가겠네요. 진짜.”

“다른 곳은 괜찮지만, 거기는 안 돼요.”

이쁜소녀가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만 다들 겉으로 보이는 대화만 알고 있지 마지막에 화련이 했던 말은 전혀 알지 못한다.

영상에서는 확인할 수 없으니까.

안다면 이 좋은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형, 잠깐 할 말 있는데요.”

“응? 급한 거?”

“급한 건 아닌데 복잡한 거요.”

“흐음? 담배 한 대 피고 올게요.”

그러면서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낸다.

“하…… 이젠 담배도 팔아요?”

“어, 업데이트되면서 여러 가지 팔던데 아직 못 봤나 보네.”

“이런 걸 팔아도 돼요?”

“뭐, 어때? 어차피 성인이 아니면 이 게임 못하잖아. 그리고 건강 생각한다면 여기서 피고 나가는 것도 좋지. 고맙기만 한데? 아! 그리고 술도 판다. 물론, 취하지는 않지만.”

“안 취하면 그걸 무슨 맛으로 마셔요.”

“음, 그냥 알딸딸하게 된다고는 하던데. 숙취제 먹으면 바로 풀려. 상태 이상처럼.”

“참, 별 걸 다 업데이트했네요.”

이놈의 게임은 현실의 것을 하나둘씩 다 구현할 모양이다.

2층에 따로 마련된 테라스로 나가자 재중이 형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쯤 되면 진짜 현실과 다름이 없네.

“자, 할 이야기가 뭐야?”

“화련 그 여자. 좀 위험해 보이던데요.”

그러면서 아까 내게 속삭인 말을 모두 전해줬다.

“흐음, 그랬나? 뭐, 그래도 제우스보다는 양반이네. 대놓고 깽판 치겠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제우스가 뒤에서 공작을 해서 찾아낸다고 고생을 좀 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 여자, 당당하기는 한데 뭔가 좀 미숙해. 차라리 모른 척하고 뒤를 찔렀으면 제우스보다 몇 배는 귀찮았을 텐데.”

“뭔가 할 말을 참고 그러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어요.”

“재밌는 사람이네.”

재중이 형이 그러면서 피식 웃는다.

“그리고 좀 묘한 말도 했는데…….”

“뭐, 너 RTP 높은 거야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걸?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대충 때려잡은 거겠지만.”

“역시 그런가요.”

“너 하는 짓을 봐라. 그게 정상적으로 가능한지. 나도 깜짝 놀라는구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죠?”

“생각보다 여기 보안 튼튼해. 프로게이머 하는 애들도 지금 서로 말 안 해주면 누가 누군지 몰라. 나 같이 대놓고 쓰면 또 모를까.”

재중이 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정 불안하면 그 팀장한테 물어봐.”

“아뇨, 불안하다기보다는 이슈가 되는 것이 별로라서요.”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흠, 제우스가 가고 나니 부잣집 딸내미라……. 사실 딸인지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모르겠다만.”

로스트 스카이에서 외견으로 나이는 전혀 알아볼 수 없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으로 유추할 뿐.

당장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 제2의 인생이라고 접속해 개인 사재를 쏟아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흠, 재능이 전부인 세계라고는 하지만 돈도 무시를 못 해. 10억을 바로 쏴준다고 할 정도의 재력가를 적으로 돌리면 불편하긴 하겠네.”

“반대로 싹 털어줄 수도 있죠.”

“흐음? 너 작정한 모양이다?”

“돌아갈 집을 없애 버린다고 하니까요.”

“돈 많은 애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 애가 아닐 수도 있겠네. 그 돈을 애들이 쓰긴 좀 그렇지.”

확실히 스케일이 크긴 하다.

“칼춤 한 번 출까?”

“들어오면요. 맞고 사는 건 별로라서.”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 같다?”

“설마요.”

그때 재중이 형이 발로 내 정강이를 차려고 하자 재빠르게 다리를 빼버렸다.

“와, 민첩 낮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제가 한 민첩하죠.”

재중이 형이 내가 웃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형, 새 길드 이름은 정했어요?”

“이미 정했지. 흠, 이건 너한테 의미 있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네.”

내게 그런 이름이 있었나?

기억에 없는데…….

“신화.”

뭐?

“내가 샀다. 그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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