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6화 (116/1,404)

# 116

#116화 공개 경매 (3)

블러디아, 카스카라 두 자루에 4000.

한 자루당 2000을 지른다는 건데 이전에 경매했던 베놈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경매가다.

무기 하나에 천도 깜짝 놀랄 가격인데, 한 자루당 2천으로 부르다니…….

경매가 채 시작하기 전, 4천이 나오자 웅성거리던 주변이 싸늘해졌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경쟁이 가능해야 입찰이라도 던지지 이건 해보나 마나다.

솔직한 마음으로 던켈 한 자루에 2천이 나왔다면 이해는 하겠는데…….

워낙 보여준 것이 많으니까.

한 방에 수십 명씩 녹여 버리는 무기라면 현재 시점에서는 끝판왕이 맞다.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대미지가 펑펑 터진다.

그 정도면 저 돈을 써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실제 성과로 떨어지니까.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는 내가 쓰니까 이 정도 효율이 나오는 거지, 잘 쓸 줄 모르면 이건 그냥 좀 잘 드는 칼일 뿐인데…….

왠지 사기 치고 있는 기분까지 든다.

“나중에 환불해 달라는 것 아니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는다.

“그럴 리가. 너 사람들이 가상현실에 쓰는 돈을 보면 깜짝 놀라겠다. 3세대에서 몇백씩 쓰는 사람도 많았어. 좀 무리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고.”

방패전사도 재중이 형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많은 사람이 하니까요. 집에서 적적하게 지내느니 요즘은 VRS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분이 적지 않아요. 그중 돈에 여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제우스만 봐도 뭐. 솔직히 전 더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가요.”

놀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이렇게 돈의 규모가 달라지면 예전 습관이 그대로 나온다.

“경매니까 더 비싼 편입니다. 현재 한 자루도 풀리지 않았다는 프리미엄이 붙어 더 그렇죠. 점점 풀리기 시작하면 가격이 서서히 내려가다 구 네임드 가격대로 맞춰질 겁니다.”

역시 경험자가 있으니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때, 다시 예의 그 여성이 말을 꺼냈다.

“결정됐으면 이제 올라가도 될까요?”

진한 붉은색 헤어에 컬이 굵은 롱 웨이브로 스타일을 낸 여성이 우리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가운데 유난히 눈에 확 띄는.

“올라오시죠.”

재중이 형의 말에 그 여자가 사람들이 양보한 틈을 지나 자연스럽게 배에 올라왔다.

내려다볼 때는 몰랐지만, 올라와서 보니 갸름한 얼굴에 화려하지만 조금 진한 눈매에 당당함과 기품 같은 것이 느껴졌다.

화련.

재중이 형의 표정을 보니 일단 목록에는 없는 여자다.

만약, 3세대에서 이 정도 돈을 쓸 정도였다면, 목록에 있었을 텐데, 없는 것을 보니 4세대부터 시작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올라오자마자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이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내게서 시선이 잠시 멈췄다.

그렇게 날 한 번 힐끗 보는 것 같더니 곧장 경매 물품을 들고 있던 재중이 형에게 갔다.

“일정을 제 마음대로 변경시켜서 미안해요.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은 참을 수 없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날 한 번 또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왜 또 날 보는 건지.

그런데 의외로 외모와 달리 말투가 공손하다.

막 여왕처럼 굴면 어쩌나 했는데.

가지고 싶은 걸 못 참는다니 어디 부잣집 딸이라도 되려나?

집안 사정이 어지간해서는 나오기 힘든 말이다.

재중이 형과 거래를 마친 화련이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데 생각보다 자세가 좋게 나온다.

그냥 무턱대고 잡아서는 저렇게 휘두르기 힘든데 혼자 연습이라도 한 건가?

요즘 쌍검을 들고 나를 따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괜찮네요.”

담담한 한 마디.

4천이나 하는데 안 괜찮으면 이쪽이 곤란하다.

꽤 마음에 드는 듯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린다.

값비싼 장난감을 손에 쥔 애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거래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배에서 내려가기 전, 화련이 날 또 쳐다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곧장 배에서 뛰어내렸다.

화련이 내려가자마자 챠밍과 이쁜소녀가 바로 날 힐끗 쳐다보는데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든다.

잘못한 것은 없는데 잘못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에 안 드네요.”

챠밍의 한 마디.

“별로예요. 저 여자.”

이쁜소녀도 거든다.

으음, 왠지 자리가 불편하네.

그대로 도망가듯 방패전사 옆에 옮겨 섰더니 방패전사가 내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웃었다.

“쌍검을 꽤 잘 쓰네요. 진짜 팬인 것 같던데 악수라도 한 번 해주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제 손목이 부러졌을지 모르겠네요.”

챠밍은 어느새 고개를 돌렸는데 이쁜소녀는 아직도 날 바라보면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하, 그냥 자기 영역에 들어온 사람을 경계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요. 부럽네요.”

자기 영역에 부럽다는 표현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앞으로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

7강 플레임 소드.

내가 쓰면 최강의 무기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쓰면 글쎄?

무기가 가진 포텐셜을 모두 끌어내기가 정말 힘든 템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서 상당히 저평가 받는 아이템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오네요.”

“뭐, 그래도 지금 안 팔면 나중에 더 제 값 받기 힘들 거다. 정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구하면 돼.”

3900.

예상가보다 낮은 금액에 이걸 굳이 팔아야 하나 했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나중에 다시 구해도 된다.

이미 이걸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팀원들도 안 쓰는 고강 무기를 하나 둘 처분하고 경매를 끝냈다.

사장님이 경매가 끝났음을 알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면서 점점 원래의 부둣가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길드 모집에 대한 건이 남아 있기도 하고, 이렇게 공식 석상에 사장님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꽤 많은 사람이 사장님과 면담을 하는 중이다.

사실 경매가 메인이 아니라 이쪽이 메인이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자리.

핵심 인원을 우리가 빼 오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넘어오게 만드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재중이 형이 이 공개 경매를 꾸몄다.

먼저 연락한 사람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사람이 넘어오게 되면 해당 길드는 우리에게 불편한 마음은 가져도 대놓고 따지지는 못한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분류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 분류가 끝나고 나면 길드 전력이 말도 못 하게 올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할 것을 하죠.”

사장님과 재중이 형은 한동안 저 일에 매달려야 한다.

사장님은 당연하고 재중이 형만큼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 없으니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할 일은 경매에서 얻은 자금으로 하르를 사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진 조심스럽게 사들였지만 이젠 눈치 볼 것도 없다.

“돌아다니면서 막 사세요.”

우리 팀은 각자 베네아와 하르페 시장으로 흩어져 자금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대한 하르를 사 모았다.

그리고 길드원들에게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사라고 했다.

이건 개인 선택이지 강요는 아니니까.

우리도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사들이는 중이라 반드시라고 장담은 못 한다.

그렇게 우리 길드 사람들이 흩어져 하르페와 베네아의 시장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거래 사이트에 있던 가장 싼 하르부터 사들이자 결국,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최강 길드 애들 왜 저렇게 하르를 사?

—싸게 올려놓은 거 다 사 갔는데?

—이거 뭐 있는 거 아냐?

—진짜 뭐지?

—최강 이놈들이 이유 없이 움직이는 놈들이 아니잖아.

—주호도 사고 다니던데?

—일단 따라가야 하나?

우리의 행동에 눈치 빠른 사람 몇몇이 하르를 사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미 늦었다.

이미 최저가로 올라온 하르는 우리가 대부분 쓸어버려 시장에서 값싼 매물을 찾기 힘들게 됐으니까.

***

<스칼렛> 어머, 웬일이세요?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

<전설> 최강 애들이 이상한 짓을 하던데……. 혹시 아는 것 있나?

<스칼렛>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상한 짓이라뇨?

<전설> 하르.

<스칼렛> 아! 당연히 저도 모르죠. 제우스가 나가떨어지면서 쁘락치 꺾인 거 다 알면서 그래요. 오히려 우리가 더 알고 싶네요.

<전설> 그런가? 대가는 지급할 테니 아는 게 있으면 연락하도록.

<스칼렛> 그러죠. 뭐.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던 스칼렛이 흐트러진 긴 보랏빛 헤어를 쓸어 올리며 연락을 끊고는 쇼파 위에 누워 있는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전설은 여전히 마음대로네. 악마가 그나마 놀리는 맛은 있었는데…….”

“……거슬리면 그냥 죽여줄까?”

“아냐, 아냐. 너까지 나설 필요도 없는 사람이야.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건방지게 굴지만 조만간 정리될 거야.”

스칼렛이 거절하자 소녀는 관심이 사리진 듯 누워 있던 쇼파에서 약간의 몸짓을 보이며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칼.”

“네, 말씀하세요.”

소녀의 반대편에 있는 짙은 청색 커트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청년이 마시던 주스를 내려놓고 바로 대답했다.

“일단 자금 전부 모아서 하르부터 사들여. 가능한 전부.”

“지금 가격이 꽤 올랐는데 괜찮겠습니까?”

“좋은 정보가 들어와서.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최강 길드에 완전히 깨끗한 애로 하나 집어넣어 봐. 마침 길드원을 모집하고 있으니까 큰 의심 없이 넣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칼이 곧장 일어나서 집무실을 나갔다.

“흐음, 재밌네. 최강 길드. 이목을 싹 끌어놓고 이렇게 했다는 거지?”

“내가 갈까?”

“네가?”

“응.”

“으음, 안 돼. 너 너무 강하니까 금방 의심할 거야.”

“흐음…… 재밌을 것 같은데.”

“다음에 더 재밌는 일 만들어줄게.”

“알았어, 그럼.”

다시 뒹굴거리는 소녀를 보고 스칼렛이 머리를 매무새했다.

통제할 수 없는 아이.

우연찮게 데리고 와 지금 밑에 붙잡고 있는 것이 고작인데 최강 길드에 넣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특히 주호나 불멸 같은 사람과 만나면 바로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고.

“일단 눈앞의 눈먼 돈부터 최대한 땡겨 볼까?”

***

우리가 그동안 가격이 폭락한 하르를 싹 쓸어 담은 후, 후발 주자들이 하르를 매입하려는 시점부터 하르 가격은 다시 급등하기 시작했다.

급등하는 하르를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려던 후발 주자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정. 기. 점. 검.

정기점검으로 서버의 문이 완전히 닫히면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하는 공지가 떴다.

[ 공지사항 ]

▷ 격주 일요일마다 테슬라 지역의 모든 유적지에서 유적지 방어전이 열립니다.

▷ 유적지를 활성화한 하르 원석은 2주가 지나면 모두 소진 됩니다.

▷ 성벽과 방어 NPC 고용 등급에 따라 하르와 돈이 차등 소모됩니다.

▷ 2주 안에도 여러 사항에 의해 하르 원석이 소진 될 수 있습니다.

▷ 2주 안에 하르 원석을 모두 소진한 길드는 유적지에서 퇴출 됩니다.

이때는 남은 날 동안 세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유적지 방어전에 참여할 길드는 반드시 하르 원석을 최소 1개 이상 소지해야 합니다.

▷ 기존 유적지를 차지하고 있던 길드도 하르 원석을 소지해야 방어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유적지마다 고유 보스들이 배치됩니다.

▷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확인해 주세요.

서버가 그대로 닫히자 마치 주식 시장의 장이 닫힌 것처럼 게시판에 곡소리가 쏟아졌다.

하르를 사야 하는데 살 수가 없으니까.

<승호> 진짜 들어맞았네요.

<재중> 크크, 우리 이제 부자냐?

형과 나는 아이템을 판매한 돈과 세금으로 충분히 많이 끌어 모았다.

통장에 있는 돈은 전혀 건들지 않은 채.

이제 남은 일은 점검이 끝나자마자 접속해 쓸 만큼만 두고 팔면 된다.

점검이 진행되는 동안 거래 사이트에서는 가격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치솟는 중이다.

하르 대란.

이제 시작되는 건가?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43.

> 로딩 중……

점검을 마치자마자 접속해 바로 시장을 돌면서 하르 시세부터 확인을 했다.

<주호> 생각보다 확 뛰지는 않았네요.

<불멸> 좀 실망이긴 한데, 뭐 이 정도면 훌륭하지.

거래 사이트만 보고 미친 듯이 오를 것이라 생각했던 하르 가격이 생각만큼 폭등하지는 않았다.

의외로 하르를 미리 사둔 길드가 많은 모양이다.

<불멸> 이번에 새 차 한 대 뽑나 했더니, 아쉽게 됐네.

재중이 형도 이번에 상당히 많이 벌었을 텐데, 아쉽다니.

대체 무슨 차를 뽑으려고……

<주호> 저축해요. 돈 들어왔다고 막 쓰면 나중에 혹독한 겨울이 옵니다.

<불멸> 내가 형인지, 니가 형인지 모르겠다. 알았으니까 일단 정리하고 길드 건물에서 보자.

<주호> 네, 조금 있다가 봐요.

확인을 마쳤으니 길드 건물로 돌아가려는데 내 앞에 붉은 빛의 머릿결을 날리면서 다가온 한 여성이 길을 가로 막았다.

두 손에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든 여인.

화련…… 이었지?

“제가 잘 참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네? 그게 무슨?”

갑자기 앞에 나타나서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지?

“저랑 이야기 좀 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