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공개 경매 (2)
네임드 템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편안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가격 책정을 한 번쯤은 해놓아야 한다.
샘플로 몇 개만 오픈해서.
“우리도 언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이렇게 템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현재 네임드 템은 대부분 우리가 독식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가격 책정이 전혀 안 되어 있는 이상한 상황이기도 하고,
시장에 어느 정도 풀려야 이게 얼마쯤인지 가늠이 될 텐데 지금 상황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우리 팀이나 재중이 형, 사장님까지야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해도 문제가 없지만, 슬슬 길드원들에게 네임드 템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턱, 하고 막힌다.
그렇다고 구 네임드 템에 비벼 계산하기에는 성능 차이가 좀 많이 난다.
무기에 달린 특수 기능들이 종류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한 번쯤 풀어두는 것이다.
물론, 절대 못 푸는 것도 있다.
포이즌 클라우드, 큐어 포이즌, 광아.
이 세 가지 물품은 앞으로 대규모 쟁이 있을 때, 상대방에게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이거 외에는 괜찮다는 거죠?”
“어차피 단일 무기라 한두 놈이 그걸 들고 있어 봐야 대세에 큰 영향은 없어. 너 정도 되니까 블러디아나 카스카라로 그렇게 흡수하는 거지, 다른 놈들은 절대 못 해.”
“그런가요.”
“특히 그렇게 두 자루를 들고 같이 시너지를 내지 않으면 반쪽짜리이기도 하고. 나도 한 자루만 들고 마력 정도만 흡수하는 정도니까.”
아이템들을 다른 사람 손에 쥐어준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리는 소리다.
“어차피 그거 쓰려면 돈 많은 사람 아니면 사지도 못 해, 당장 구매해서 사용해 보면 기가 막힐 걸? 이게 왜 안 돼! 이러면서 말야. 지금 너 따라 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는 있냐?”
어째 그 상황이 상상이 간다.
“당장 표시가 나는 것은 파워 글러브 같은 스탯이 잔뜩 달린 아이템인데······ 이건 당장 우리 쓸 것도 부족하고.”
그래서 딱 사장님까지만 템을 돌렸다.
“비월참을 악마나 제우스가 쓰는 걸 봐서는 이미 뒤쪽에서 구할 수 있는 모양이니까. 우리가 하나 더 판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뭐, 확실히 그렇겠네요.”
이제는 쟁하다 보면 비월참이 날아오는 것은 감안하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경매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냥 사이트를 통해서 파는 편이 좋지 않아요?”
방패전사 덕분에 나도 이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편하니까.
“어차피 살 수 있는 녀석들은 정해져 있어. 뭐, 그래도 이목을 끌어야 하니까 일단은 공개로 해야지.”
“그런가요?”
“거기에 길드원 모집과 동시에 진행하려고. 알맹이만 쏙쏙 빼 와야지.”
“그게 돼요?”
“스카우트하는 방법은 사신처럼 꼼수를 써서 빼 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거든.”
“조건이 맞으면 바로 옮겨도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상대방 길드장이 보면 어떻게 보이겠냐?”
“아······ 빼 가는 것처럼 보이겠네요.”
“그래, 사실 원하는 애들이 좀 있긴 했는데 지금 다른 길드에 들어가 있어서 솔직히 전부 척 질 생각이 아니면 빼 오기가 난감하거든.”
“그래서 모집을 하는 척한다?”
“뭐, 그렇지. 내가 데리고 오는 것하고 자발적으로 오는 것 하고는 그림 자체가 다르니까.”
“그래서 이렇게 눈에 띄게 이벤트도 하고요? 끌어들일 구실로? 그냥 찾아오면 이상한 그림이 나오니까?”
“뭐, 겸사겸사? 사장님하고 짜둔 명단이 있어. 그 사람들이 오면 땡큐고, 아니면 그냥 템만 비싸게 팔고 숨은 보석 찾기에 나서야지.”
이런 걸 보면 재중이 형은 정말 사람 심리 같은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그걸 이용해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판을 짜고.
“거기다, 사장님이 하르를 사들이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도 있겠네요?”
“오! 많이 컸는데? 이제 하산해라. 더 가르칠 것이 없다.”
더 큰 이슈로 작은 이슈를 덮는다.
흔히들 보는 이야기다.
알고 있지만 속고 마는.
“덮어질지는 모르겠네요.”
“하루나 이틀 정도만 시선을 돌려놓으면 돼. 어차피 조만간 알려져. 자금도 모자라니까 아이템 판 것을 싹 투자해야 하거든.”
말이야 그렇지, 결국, 부족한 자금 채우려고 아이템을 파는 거구나.
대체 이 양반 이번에 얼마나 해 먹으려고 이러지?
“그러다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음, 더 열심히 사냥?”
“못 말리겠네요.”
“어차피 지금 밖에 못 해 먹어. 앞으로 알려질 대로 알려질 거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봐야지. 바싹 땡기자.”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 형이 제우스는 왜 그렇게 매몰차게 버렸을까.
내가 그걸 물었더니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로 대답해줬다.
“이건 내가 내 의지로 하는 거고, 그건 돈에 팔려 그놈 의지대로 하는 거니까.”
“하긴······. 그럼, 저도 좀 처분해야겠네요.”
날리면?
형 말대로 더 열심히 사냥해야지, 뭐.
별수 있나.
일단 못 먹어도 고다.
사장님이 사람을 모으는 것을 기대하며 일단 접속을 종료했다.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43.
> 로딩 중······.
사장님이 하루 전에 게시판에 올려놓은 공개 모집과 더불어 네임드 템을 경매한다는 소식에 전 서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와, 저걸 풀어? 대박.
—무기 스펙 봐라. 쩐다······.
—주호가 들고 다니던 템 드디어 공개되네.
—역시 옵이 피흡, 마흡이었네.
—저 템 들면 나도 무쌍 가능하냐?
—절대 안 됨.
—건들지 마라. 저건 내가 산다.
—장난 노노. 어지간해서는 입찰도 못 해볼 듯.
—우리 길드는 지금 돈 모으고 난리던데.
—쯧쯧, 뭘 모으고 있냐. 형은 일시불로 바로 때린다.
—아르로는 못 사겠지?
—이건 무조건 현금 박치기 각인데?
—활도 뎀지 수치 장난 아니네.
—근데 도대체 어디서 경매하는 거냐?
—사이트 찾아봤는데 없더라.
내가 들고 있는 아이템의 옵션을 공개하기는 했는데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PK 동영상을 분석하는 사람도 많이 생겨서 상대방에게 정보를 얻어 거의 결론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들고 PK를 많이 하다 보니 나에게 당한 사람들이 피나 마력이 빨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올리곤 했으니까.
게시판에도 이미 내 무기 옵션에 대한 소문도 돌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내 정보가 싹 유출된 셈이다.
이번은 그냥 그걸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하다.
이건 이쁜소녀도 마찬가지.
이쁜소녀와 붙으면 회복이 안 된다는 소리가 유령처럼 게시판에 떠돌아다녔었다.
게시판에서는 스킬인지 무기인지 토론이 벌어졌지만, 나나 재중이 형이 안 쓰는 것을 봐서는 무기라고 거의 확정을 내려놓은 상태다.
방패전사도 일반 방패를 쓰는데 방어 기술이 다르니 스킬로 거의 굳어졌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꽁꽁 싸매고 내놓지 않는 무기나 스킬들이 더 이상 비밀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는 것 자체에 큰 거리낌은 없다.
현재 아이템 경매에 대한 글과 함께 길드 가입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는 중이다.
둘을 세트로 한 게시물에 묶었더니 너무 순식간에 퍼져서 다시 귓말과 메일을 막아버렸다.
<주호> 어디에요?
<불멸> 베네아 선착장 위.
<주호> 금방 갈게요.
경매장 위치를 잡기가 애매해 결국, 선착장으로 결정했다.
우리가 배 위에서 경매를 진행하면 사람들이 밑에서 가격을 부르는 것으로.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우리와 관객이 딱 분리되는 곳이 좋다.
입찰되면 배에 올려서 돈을 계좌로 받고 아이템을 주고 끝.
배 위의 갑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천 단위가 넘어가는 사람이 몰리면서 선착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변해 버렸다.
“아씨! 밀치지 마.”
“질서 좀 지킵시다.”
“진짜 살 사람 아니면 좀 빠져라.”
“난 살 건데?”
“산다는 놈 템이 그 꼬라지냐?”
이건 음······ 타이타닉이 떠나가기 전 수많은 사람의 환대를 받는 딱 그 광경이다.
우리 팀이 배 난간 아래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보면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게 진행은 될까요?”
“글쎄다······ 나도 의문이네. 이렇게 모아두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나와 재중이 형이 주고받는 말에 우리 팀원들이 사장님을 봤다.
“슬슬, 나서야겠군.”
사장님도 이제는 꽤 유명하다.
나와 재중이 형을 양옆에 거느리고 다니는 길드장이니까.
자식이 잘나면 부모 어깨가 으쓱한다지 않는가.
우리 서버에서 사장님 말을 무시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나중에 사모님한테 한 번 보여주면 재밌을 것 같은데, 외모가 너무 바뀌어서 알아보시려나.
“자! 다들 주목!”
북적북적하던 선착장이 사장님의 외침에 이야기하던 것을 멈추고 일제히 사장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분들 모셔놓고 길게 끌 생각은 없으니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사람들이 보내주는 환호는 쓸데없이 연설 같은 것을 하지 않아 좋다는 소리다.
“단! 지불할 능력이 있는 분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 허위로 금액을 말씀하시는 분은 현재 동영상 촬영 중이니 나중에 따로 한 번 찾아뵙도록 하죠.”
그 말이 끝나자 잠시 웅성거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나중에 보자는 말은 반드시 찾아가서 죽인다는 소리와 동일하다.
“그럼, 시작은······ 데스 위버입니다. 시작가는 5백만. 단위는 십만입니다.”
5백만이면 구 네임드 가격을 많이 웃도는 가격이다. 거기다 참가하는 사람이 많아 자잘하게 부르면 끝이 없어 10만 단위로 끊은 모양이고.
—510.
—530.
—550.
—······.
—···.
—1000.
10씩 올라가던 가격을 금발 남성이 한 번에 1000까지 올려 버렸다.
그 소리에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하게 변하면서 10단위로 올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번에 들어가 버렸다.
“1200.”
그걸 보고 있던 연두색의 단발 여인이 응수하듯 가격을 더 올렸다.
“1500.”
이번엔 갈색 커트의 사내가 다시 한 번 가격을 끌어올렸다.
단번에 300이 오르자 단발 여인이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진짜 돈 많은 사람 천지입니다.”
방패전사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좋아한다.
많이 올린다는데 안 좋아할 사람은 없다.
저 사람들이 올려주는 만큼 앞으로 기준가가 올라갈 테니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경매에서 이 정도 나왔다라고 하면 협상 자체가 달라진다.
1500이면 구 네임드의 4~5배는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노강을 저 가격에 사다니.
예전에 300~400할 때도 정말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상 이상이다.
더 이상 입찰이 없자 갈색 커트 사내에게 데스 위버가 낙찰됐다.
주변에서 부럽다는 소리와 돈질이라고 욕하는 소리도 들렸다.
데스 위버를 받으러 배에 올라탄 갈색 커트 사내에게 재중이 형이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계좌로 돈을 받고 템을 넘겼다.
“다음에 봅시다.”
그 말과 함께 갈색 커트 사내가 바로 로그아웃을 해서 사라졌다.
“저 사람도 혹시 명단에 있어요?”
“어, 적당히 이야기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기다려봐야지.”
그 뒤로 베놈을 경매했는데 생각 외로 베놈은 그렇게 많은 경매가가 나오지 않았다.
1100.
“같은 독뎀인데도 영 밀리네요.”
“흠, 원래 활이 다른 템에 비해 비싸긴 해. 그래도 비슷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다. 오히려 활을 너무 비싸게 받은 건지 구분이 안 가네.”
재중이 형도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번에 올라온 사내도 재중이 형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사라졌다.
“혹시 부자만 모으는 거예요?”
“설마. 저 사람들은 3세대 때부터 유명했던 사람들이라.”
“아······.”
이제 기준을 좀 알 것 같다.
실력, 신용, 재력을 갖췄으며, 이미 어느 정도 알던 사람들.
게임에 저렇게 큰돈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상을 뽑아낼 자신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곧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이겠지.
일단 나쁘지 않다.
방패전사만 봐도 경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 뒤로 레서 크라켄 이어링 350, 마법 저항이 붙은 매직 플레이트 아머 상‧하의 세트를 900에 넘겼다.
내 생각엔 더 나올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마법 몹이 잘 없다 보니 의외로 낮은 가격이 나왔다.
낙찰되는 가격을 보니 무기나 스탯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다.
그리고 비월참.
경매에 올리기 전, 시연으로 바다를 향해 비월참을 날렸더니 표면에 닿자마자 굉음을 내며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많이 다른가?
비월참에 의해 거대한 물보라가 이는 것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는지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그리고 그 시연 덕분인지 비월참 가격이 끝도 없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230.
—250.
—······.
—310.
아이템이 아니라 사용하면 끝인 스킬인데도 계속 오르다니.
챔피언 개구리를 잡으려고 하면 아주 못 잡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르니까 신기한 마음마저 든다.
“드랍률 때문에 잘 안 나온답니다.”
“그런가요?”
그럼 비쌀 수밖에.
인벤에 비월참이 열 개 넘게 있는 것 같은데······.
“저것만 캐서 팔아도 부자 되겠네요.”
“그건 아마 서버에서 주호님만 가능할 겁니다.”
내 말에 방패전사가 그저 웃어 보인다.
그렇게 비월참도 주인을 찾아가고 준비한 템 중에선 이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만 남았다.
남들이 보기엔 이건 일종의 내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들이다.
블러디아를 먼저 경매에 올리려고 하는데 아래서 곧장 한 여성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둘 다 해서 4000.”
응? 잘못 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