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1화 (111/1,404)

# 111

#111화 누가 우리의 적인가? (6)

“형, YBS라고 알아요?”

이런 일은 전문가가 따로 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응? 거긴 왜?”

“제가 이번에 귓말하고 메일을 전부 풀어놨더니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네요.”

원래라면 차단으로 인해 전혀 보지 못하고 넘어가야 했던 메일이 지금은 눈처럼 쌓이는 중이다.

“아, 거기? 흠, 뭐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고…….”

재중이 형은 프로 경력이 있으니 아마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음, 무시해.”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하는 말은 무시다.

“그래도 되나요?”

“어, 그래도 돼. 거기, 별로야.”

“그런가요?”

“게임 채널이 여러 개가 있는데 거기는 좀 뭐라고 해야 하나…… 나도 거기랑은 일 안 해. 가끔 거기서 주최하는 대회나 나갈까. 그때도 뭐…… 좋은 꼴은 못 봤지만.”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시간이 얼만데.

저 조언에 얼마나 많은 경험이 녹아 있는지 모른다.

“내가 선수 시절에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안 좋은 기사만 내놓던지. 아주 기삿거리 잡았다고 하면 줄기차게 물고 늘어지는 놈들이야.”

질이 생각보다 안 좋다는 소리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다음 시즌 우승하고 가볍게 비웃어줬지.”

역시 형은 형이네.

실력으로 주둥이를 막아버리다니.

“지금은 집중할 때다. 지금 계약하면 최신 영상 다 달라고 할 건데, 너 그거 감당되겠냐?”

“음…… 솔직히 무리죠.”

우리가 사냥하는 영상이나 네임드를 잡는 영상, 그리고 특별한 아이템의 사용 영상 등을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푼다?

이건 그냥 턱 밑까지 칼을 찔러 넣을 수 있게 내 목을 들이미는 것과 다름이 없다.

로스트 스카이에 무슨 히든 클래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만 할 수 있는 퀘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신 정보가 털리면 뒤를 쫓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거기다 지금 붙고 있는 사신과 제우스를 압박하는 방법까지 모두 드러날 수도 있겠네요.”

“그래, 우리 밑천 다 까놓고 게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방송해서 돈 몇 푼 좀 건져보겠다고, 최악의 상황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길드에 앞서는 것은 사람, 그리고 정보뿐이다.

“길드원들 단속시켜야겠네요.”

“이미 말해놨지. 그리고 어차피 너나 나 정도 수준이 아니면 연락이 오지도 않아.”

그건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돈이 되어야 사람이 몰리니까.

인지도.

이것이 없으면 방송을 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소리다.

랭킹 1위와 2위라면 각 게임 방송사에서 침을 흘릴 만하고.

“형도 오퍼 많이 왔겠네요?”

“뭐, 누구처럼 메일을 꺼둔 게 아니라서. 지금 발에 치이는 게 그런 거지. 혹시, 너 총알 부족하냐?”

“아뇨, 그럴 리가요.”

총알이 부족할 수가 없다.

사신과 제우스 길드가 떨어뜨린 아이템만 처분해도 지폐를 깔아놓고 위에서 춤을 춰도 될 정도다.

지금쯤 얼마나 속이 쓰리려나.

“돈이 궁해서 방송하는 애들은 있겠지만 우린 해당 사항 없다. 그래도 혹시 하고 싶어지면 말하고, 그나마 괜찮은 곳 소개해 줄 테니까.”

“아뇨, 그런 것을 하기에는 상당히 예민해서요. 아마 하고 싶어도 못할 겁니다.”

과몰입 증후군을 유혜선 팀장이 어느 정도 해소해줬다고 해도 그게 사람들을 앞에 두고 플래시를 터뜨려가면서 웃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과민한 신경에 불을 붙이고 싶지 않다면.

거기다 지금 사신하고 제우스 동태를 살피기에도 바쁜데 괜히 다른 곳에 한눈팔다가 오히려 우리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아직 확실하게 누른 것도 아니고.

지금도 저주받은 숲 이곳저곳에서는 치열하게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일종의 대기조로 준비 중이고.

“그리고 내가 방송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네……?”

“이거 봐라.”

상당히 유명한 개인 방송 플랫폼.

나도 예전에 몇 번 시청한 적이 있을 정도로 누구나 다 아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지금 그중 한 영상을 끌어와서 옆에 올려놨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 미친 것 아니에요?”

제우스 길드원 중 한 명이 지금 쟁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좌표나 아이디 등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이 정도쯤 되면 모를 수가 없다.

주변에 몰려다니는 길드원 정보만 모아도 대충 견적이 나온다.

정보가 그야말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제우스가 이걸 알면 진짜 뒤통수 잡겠네.”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는 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한 것도 부족했네요.”

만약, 이 사람이 우리 길드원이라면 내가 먼저 가서 때려잡았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더니…….”

대놓고 배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냥 같은 길드원들을 죄다 팔아넘긴 것과 다름없다.

몰래 보는 방송이 더 재밌는지 풍선 쌓이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이거 들키면 방송 종료한다고 절대 주변에 알리지 말라는 소리까지 한다.

“돈이 좋네, 좋아.”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지 보다가 그저 웃을 뿐이다.

“저기 어딘지 알겠어요?”

“대충 짐작은 가는데…… 이게 역공작일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드네.”

“일부러 쇼를 한다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반반.”

역공작을 했다면 진짜 제우스가 우리 머리 위에서 노는 난 놈이고.

아니라면…….

진짜 저 길드는 개차반 길드다.

“저게 다 무리하게 길드 덩치를 키워서 그런 거다.”

재중이 형의 말에 생각나는 길드가 있다.

예전에 있던 신화 길드.

아무나 막 받아서 덩치만 커졌다가 제대로 망한 케이스다.

왜 그때가 자꾸 생각날까.

“형, 이건 못 먹어도 고 같네요.”

혹시, 진짜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올 힘이 있다.

그리고 함정이 아니라면.

“이놈들 오늘 전부 제삿날이죠.”

***

“아, 진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쪽수가 밀리잖아.”

“그래 봐야 예전에 우리에게 발린 놈들이잖아.”

“그놈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최강 그놈들이 문제지.”

“아, 진짜 어디서 그런 놈들이 나와서는.”

“이거 이번에도 밀리면 우리 돈 못 받는 것 아냐?”

“제우스 이 새끼 그냥 튀면 진짜 현피하러 간다.”

“야, 들린다. 입 닫아.”

“좀 들으면 어때? 애새끼 하나 제대로 못 끌어와서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애초에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길드가 아니다 보니 돈 이야기가 나오자 금방 분위기가 싸해진다.

목적 자체가 돈이었고 그 돈이 지금 눈앞에서 불편한 행보를 보이는 제우스 때문에 날아갈 지경이니 제대로 신경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는 70명 이상.

“지금까지는 맞네요.”

“그래, 준비해라.”

제법 가까운 수풀 속에서 우리 팀과 사장님 팀, 그리고 우리 길드원 전부에 다른 길드에서도 대략 백여 명을 빌려와 언덕을 하나 끼고 보이지 않게 엎어져서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방송에서 한 말이 맞네요.”

저주받은 숲에서 죽으면 보통 하르페에서 부활을 하는데 부활하자마자 사신과 제우스 길드원들은 전부 베네아로 넘어갔다.

그 덕분에 하르페에서부터 행적을 좇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새로 만들어 버렸다.

그걸 개인 방송 덕분에 다시 제대로 잡아냈고.

소수 게릴라로 돌아다녔으면 따라다니기 힘들었을 텐데, 고맙게도 떼로 뭉쳐 다니는 중이다.

각개격파.

확실하게 많은 수로 깨고 다닐 거라고 방송에서 말을 해주긴 했다.

솔직히 나쁘지 않다.

어설프게 소수로 움직이다 깨지는 것보다는 이쪽이 효율은 확실히 좋다.

우리 쪽에 가담한 사람들이 숫자는 많아도 장비나 렙이 높은 것은 아니니까.

비슷한 수로 붙으면 100퍼센트 확률로 깨진다.

“정말 그대로네요.”

“떨려요…….”

챠밍도 다가오는 대인원을 확인하더니 옆에서 속삭인다.

옆에서 이쁜소녀도 조마조마한 숨을 내쉬고 있고.

“사신 애들은 확인됐어요?”

“동쪽으로 완전히 빠졌어. 애들 보내서 겨우 확인했다.”

내 물음에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꺼냈다.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눠서 완전히 숲의 반대편을 치면 우리가 동시에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사이에 치고 빠진다는 생각 같아 보이는데, 나쁘진 않아. 아주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니야.”

동쪽으로 빠졌던 사신은 지금 제우스 길드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오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길어질 수 있는 이 상황이 단 하나의 방송 때문에 완전히 망할 수 있게 됐다.

위치, 시기, 규모, 인원 배치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사신이 따로 빠진 것도 알게 됐고, 멀리 있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함정 걱정도 전혀 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질 수가 없죠.”

사장님이 주변을 돌아보면서 채팅창에 한 마디를 적었다.

< 용돈 두둑하게 챙겨서 다시 봅시다. >

백삼십여 명의 사람을 짓누르던 경직된 분위기가 그 농담 덕분에 확 풀렸다.

역시, 길드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꿀 힘이 있다.

“온다!”

우리가 원하던 장소에 제우스 길드 길드원들의 마지막 꼬리가 확실히 들어오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가자!”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는 우리를 본 제우스 길드원들이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 파이어 월! 】

【 아이스 월! 】

【 파이어 볼! 】

【 아이스 볼! 】

【 비월참! 】

그와 동시에 우리 길드원들 사이에서 강력한 마법이 동시에 쏟아져 나갔다.

길드원들이 쏟아내는 마법과 적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그 찰나에 바로 던켈을 들고 뒤에서부터 빠르게 달려나갔다.

“이쁜소녀님!”

내 신호에 눈빛을 맞춘 이쁜소녀가 파워 글러브를 낀 양손으로 광아를 강하게 휘둘렀다.

그대로 점프를 해 광아를 밟고 휘둘러지는 힘에 몸을 맡긴 채 다시 한 번 강하게 점프를 했다.

그와 동시에 몸이 하늘로 붕 날아올랐다.

내가 허공에 뜬 순간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해 나를 바라본다.

“저 미친놈!”

“저거, 그때 그거다!”

“전부 저놈 공격해.”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화살과 마법을 한꺼번에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학습 효과가 이래서 무섭다.

아마 던켈로 공격하는 것을 못 봤으면 그냥 미친놈 취급만 하지 이렇게 집중 공격을 하지 않을 텐데 지금은 어떻게든 떨어뜨리겠다는 듯 정신없이 공격을 했다.

던켈로 쳐내 지려나?

공중에 떠 있어서 자세 제어도 힘든 데다가 던켈이 무겁기도 진짜 무겁다.

세세하게 쳐내는 것은 포기하고 강하고 빠르게 원을 그리면서 정말 중요한 부위만 방어하듯 쳐냈다.

그렇게 놀이기구를 탈 때 확 올라갔다가 확 내려가면서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며 제우스 길드 한복판에 뛰어내려 하얗게 빛을 머금은 던켈을 내려찍었다.

“피해!”

【 어스 퀘이크! 】

범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억지로 도망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어스 퀘이크를 피해냈다.

광역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니까.

딱 10명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휘말려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아깝네.”

던켈에 내장된 공격 자체가 정말 강하고 좋지만 남들 사이에 들어가서 쓰지 않으면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

지금 다른 사람들 방어력 수준에서 논하기에는 엄청나게 강하기도 하고 내 힘 자체가 지금 비정상에 가깝기도 하다.

또한 방어구 수준이 더 올라가면 절대 원킬이 안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혹은 렙이 더 올라가서 HP량이 조금만 늘어도 마찬가지.

딱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수다.

그래서 일부러 전에 했던 것처럼 하늘로 날아서 써봤는데 생각보다 피해가 적다.

거기다 필살기 개념이라 내 HP도 같이 빠져나간다.

그것도 3/4이 넘게.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필살기들의 최악의 약점.

정말 뒤가 없다.

나중에 장비가 비등해져 1:1 상황에서는 절대로 못 쓸 그런 필살기다.

쓰고 나면 털리는 빛 좋은 개살구.

지금 비월참이나 어스퀘이크를 써보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 HP가 떨어졌는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하는데다가 혹시나 또 어스퀘이크를 터뜨리나 싶어 접근을 못 하는 중이다.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이롭다.

그리고 재중이 형의 이론은 항상 옳고.

방송을 통해 내 HP가 빠지는 것을 미리 보여줬다면 지금 정말 곤란한 상황이 왔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사방이 적인데도 너무 편안하다.

아무도 덤비지 않는다.

“안 들어와? 내가 갈까?”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한 발짝 움직이자 어스퀘이크의 범위를 봤던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그나마 잡혀 있던 진형이 나의 한 걸음 때문에 밀리면서 엉망으로 붕괴했다.

<주호> 이거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이기겠는데요?

<불멸> 그래, 제발 그것만 해라. 그만 잡고. 우리도 좀 먹어야지. 맨날 너 혼자 처먹을 생각이냐?

<주호> 수신 양호.

저번에 많이 먹었으니까 이번엔 좀 양보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광역기 한 방 날리고 아이템을 10개 정도 먹었으니 진짜 크게 남은 장사였다.

지금도 주변에 3개의 아이템이 떨어져 있고.

거기다 전에 우리 팀이 받아간 오우거 템들도 그냥 준 것이 아니다.

전부 시가를 월등히 넘어가는 가격이 책정되어 넘어갔다.

자선 사업할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공은 공, 사는 사.

재료 템이라 당장 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보통 네임드 값의 3배에 달하는 값을 받았다.

어차피 비교할 템이 없어서 부르는 것이 값이긴 하지만.

나중에 그와 동급인 아이템이 나오면 일단 내게 우선권을 주기로 되어 있으니까 템 걱정도 없다.

<주호> 제우스는 제가 잡을게요.

<불멸> 욕심도 많네. 알아서 해라.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제우스가 가진 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에 제우스가 떨어뜨린 아이템이 무려 7강이었다.

또 떨어뜨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노란 압축 물약으로 빠르게 HP를 채우면서 제우스가 있는 곳을 눈으로 훑었다.

한참 사람들을 지휘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패색이 짙어지자 조금은 주춤한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겐 오우거보다 더한 돈줄이다.

어느새 이쁜소녀가 있던 자리까지 편안하게 걸어가 손에 던켈을 쥐여 줬다.

광아가 회복을 막아버리니 주변에 제대로 버티는 사람들이 없다.

던켈을 쓴 나보다 더 많이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에? 이제 더 안 써요?”

“네, 충분히 쓴 것 같아요.”

제우스는 직접 잡아보고 싶으니까.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꺼내 바로 포이즌 웨폰을 입혔다.

그리고 그대로 제우스에게 가는 길을 열기 시작했다.

힘 23.

탱커인 방패전사보다 월등히 높다.

한손검으로 친다고 해도 양손검이 때리는 것보다 더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스몰 쉴드를 든 사내의 방패의 면을 블러디아로 강하게 올려쳤다.

“억!”

당연히 버틸 거라고 생각했던 스몰 쉴드가 튕겨 나가면서 팔이 함께 들려 순식간에 정면이 텅하니 비었다.

그대로 지나가면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사내의 머리와 목을 쳐내니 마치 해머로 때린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사내의 목이 꺾여 날아갔다.

“미친, 저게 뭐야?”

주변에서 날 보고 있던 사람들의 경악이 섞인 얼굴이 보인다.

다시 날 막으려던 다른 사내의 칼질을 숙여서 피하면서 쓸어 올리듯 카스카라로 무릎을 쳐올리자 단 한 방에 무릎이 반대로 튕겨 나가면서 이상한 자세로 사내가 쓰러졌다.

그냥 지나가듯 두 개의 검으로 얼굴을 내려찍으니 그대로 반항조차 못 해보고 부들거리다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원래도 급소만을 노려 크리티컬을 내는데 지금은 그 이상의 폭발적인 힘이 뒷받침해주니 크리티컬 그 이상의 대미지와 충격을 줘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든다.

“……저런 걸 상대하라고?”

“휘두르는 게 보이기는 해? 대체 민첩이 몇이야?”

“광역기 같은 게 없어도 괴물이잖아.”

“게임이 안 돼.”

단지 두 명을 압도적인 힘과 컨트롤로 찍어 눌렀을 뿐인데 주변 공기가 변한다.

내가 한 걸음을 옮기자 주변 사람들이 두 발짝 물러선다.

이건 어디선가 많이 봤던 장면인데.

“내가 저 사람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좀 비키지?”

내 앞에 서게 된 몇 명의 남녀가 내 말이 듣고는 서서히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우스의 옆에 있던 눈빛이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제대로 안 막아? 돈을 그렇게 처먹었으면 일을 해.”

그 말에 사람들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우리가 네 졸인 줄 알아? 어디서 명령이야?”

“돈 좀 줬다고 아주 상전인 줄 아나 보네.”

“그리고 니 돈도 아니잖아.”

그 말에 눈이 찢어진 남자가 곧장 검을 들고 달려들려고 하자 제우스가 옆에서 팔을 들어 말리더니 날 보면서 말했다.

“주호, 다섯 배 주겠다.”

이 아저씨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돈이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건 약으로 치료가 안 될 것 같다.

내가 거절의 뜻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네요.”

“너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까.”

재중이 형을 말하는 거겠지 저건.

“깔끔하게 한 판 붙고 끝내죠.”

날 저렇게나 원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은 적이다.

같이 있으면 서로 불편할 그런 적.

“너, 이 새끼.”

내가 제우스에게 말하는데 오히려 옆에 있던 눈이 찢어진 남자가 더 반응이 심하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충성하는 개인가?

빠르게 들어오는 검을 카스카라를 강하게 휘둘러 반대 방향으로 똑같이 쳐내니 오히려 먼저 휘두른 검이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해 이상한 방향으로 튕겨 올라갔다.

“뭐야?”

“뭐긴, 템빨이지.”

아주 틀린 소리도 아니다.

정말 템빨로 찍어 누른 거니까.

자세가 활짝 열린 녀석의 목에 두 검을 동시에 박아 넣자 온몸이 경직으로 굳어버리자 날 찢어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사람을 못 죽여요.”

그대로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를 양쪽으로 빼내며 목을 긁듯이 가르니 찢어진 눈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시끄럽게 할 사람이 없어서 좋네요.”

내 눈이 헬하운드를 타고 있는 제우스에게 향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제우스가 헬하운드에서 내려와 장비를 꺼냈다.

대검에 라지 쉴드.

방패전사와 같은 탱커형이지만 장비만 좋으면 딜러로도 충분히 싸울 수도 있다.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전 안 그럴 것 같네요. 그럼, 갑니다.”

내가 달려들자 곧장 라지 쉴드를 앞에 내세웠다.

솔직히 가장 꺼리는 타입이 이런 라지 쉴드를 든 탱커형이다.

순수하게 두들겨서 잡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당한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대신 시간이 끌리면 한도 끝도 없이 끌릴 수도 있는 타입이다.

【 라이트 웨폰! 】

비월참으로 갈겨 버리는 것이 제일 좋긴 한데…….

그냥 실력을 보고 싶다.

주변을 돌면서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를 휘두르자 면적이 넓은 라지 쉴드를 옆으로 움직이면서 계속 막아냈다.

물론, 한 방 한 방이 포탄 터진 것처럼 뒤로 들썩들썩 밀려 나가긴 했지만 잘 버티고 있다.

막는 실력도 괜찮은 편인데 방패 강화가 생각 이상이다.

아마 어스 퀘이크를 막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방패전사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계속 방패 위를 두들기자 제우스가 점점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감각을 아무리 죽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 팔이 저릴 때도 됐다.

정말 끈질기게 버틴다는 생각과 함께 눈빛이 전혀 죽지 않고 버티는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대체 뭘 기대하는 거지?

계속 두들기다 카스카라를 강하게 한 번 휘두르고 난 뒤에 잠시 몸의 균형이 무너진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제우스가 드디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 비월참! 】

그리고 터져 나오는 익숙한 기술.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제우스가 시전한 비월참이 허리 부분을 바로 파고 들어왔다.

그걸 보자마자 이미 너무 휘둘러져 몸의 균형을 망치는 카스카라를 놓으면서 바로 어느 정도 균형을 회복했다.

그리고 곧장 몸을 역으로 회전시키면서 블러디아로 허리를 감듯이 돌려 비월참의 공격을 최대한으로 흘렸다.

블러디아의 검면에 긁혀 넘어가는 비월참의 작은 기울임까지 모든 신경을 집중해 눈에 담았다.

아주 미세하게 기울여지는 블러디아의 각도 하나에 터질지 밀려 나갈지가 결정되니까.

비월참이 블러디아의 검면을 아슬아슬하게 밀어내면서 옆으로 빗겨 날아가는 것을 보자 그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하, 이 거리에서 그걸 쳐내?”

말이 안 된다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는 제우스를 보고 나도 놀랐다.

비월참을 배운 것도 몰랐고, 지금까지 숨겨놨다는 것이 더 놀랍다.

재중이 형이 말한 우리만 쓸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 난다.

“보답은 해줘야지.”

【 비월참! 】

블러디아에 사용된 한 방을 날리자마자 들고 있던 라지 쉴드 위에서 터지면서 제우스가 바닥에 형편없이 굴러 버렸다.

그대로 걸어가 쓰러져 있는 제우스의 머리를 향해 남은 한 발을 날렸다.

【 비월참! 】

머리에 비월참이 작렬해 터지면서 그 충격으로 목이 사정없이 꺾이면서 그대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커다란 방패만을 남기고.

제우스가 죽기 전에도 이미 한참 기울어져 있었지만 죽고 난 뒤에는 거의 포기를 하고 다들 살길을 찾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너무 한 번에 집중을 끌어올렸더니 살짝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든다.

“저 없어도 마무리되겠죠?”

“그래, 쉬어라. 고생했다.”

재중이 형이 어느새 다가와 내 주변을 지켜줬다.

그와 함께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까지 모두 내게 와서 가만히 서서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저, 진짜 괜찮아요.”

“아니에요, 쉬세요.”

전에 배를 움직일 때 한 번 드러누운 적이 있어서 그런가.

걱정하게 하고 싶진 않은데.

“옆에 방패는 방패전사님 가지세요. 제우스가 쓰던 겁니다.”

방패전사가 걱정과 함께 이번에는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거 다 빚입니다.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하하,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걸 보고는 곧장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약간의 어지럼증.

내가 이 고생을 하게 만들다니.

그래,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해보자.

제우스.

앞으로 기대해도 좋아.

내가 네 빤스까지 전부 털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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