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화 빛이 머무는 곳, 유적지 (11)
—랭킹 1위 뒤집혔다.
—대박······! 결국 바뀌네.
—역시 올라올 길드는 올라오는구만.
—주호도 개인 랭킹 1위로 치고 올라옴.
—캬, 그럼 저걸 혼자 캐리한 부분임?
—그런 듯. 랭킹이 둘 다 한꺼번에 오른 걸 봐서는 100퍼.
—히든 클래스라도 있음? 어떻게 가능함?
—노노, 그런 것 없음. 전에 운영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그런 것 없다고 말했잖아.
—비슷한 스탯을 가지고 저렇게 한다고?
—맞네, 렙 차이 좀 나도 스탯 차이는 많아야 대여섯 갠데······.
—그냥, 그놈이 괴물임. 니들이 해골 마법사 우르르 데리고 다니는 걸 봤어야 했다.
—그게 되나?
—됨. 보면 기가 찰걸? 영상 미친 듯이 올라오는 중이니까 꼭 봐라. 두 번 봐라.
—주소 링크 좀······.
—난 이미 봤는데 같은 인간 맞냐?
“전설 형, 이거 봤어요? 정말 신기한 사람이네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에 붉은 머리를 귀밑까지 길게 늘어뜨린 소년이 영상을 띄워놓고 연신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
짧게 쳐올린 황금빛 머리칼, 짙은 눈썹, 그리고 굳게 다물린 입매의 사내가 이야기가 들린 곳이 아닌 성벽 아래를 바라보면서 굵은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무기 컨트롤, 밸런스, 거기다 움직임까지······. 쩝, 그래도 군더더기가 좀 많긴 한데, 전부 센스로 커버하는 모양이고. 반응 속도도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네요.”
계속 영상만 확인하던 붉은 머리 소년이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듯 영상을 종료했다.
“악마, 그 사람도 참 재밌어요. 우리에게 장난칠 줄도 알고. 역시 전에 한 번 눌러놨어야 했는데······.”
“흠······.”
“형이 그때 불멸을 조건으로 걸었을 때 조용히 넘어가는 것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은 건들지 말라면서. 딱 견적 나오네요. 영상에 나온 이 사람. 사신이 원하는 그 사람 맞죠?”
“아마도.”
“이 정도면 눈이 돌아갈 만하네요. 불멸도 불멸이지만 이 사람은 그냥 느낌 자체가 다르니까.”
“너, 잡을 수 있겠냐?”
밑도 끝도 없이 잡을 수 있겠냐는 말 한마디.
전설의 말에 붉은 머리 소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바라봤다.
눈에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그런 얼굴로.
“저 혼자요?”
붉은 머리 소년이 마치 듣지 말았어야 할 것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래.”
“형, 제가 요즘 뭐 잘못 한 거 있어요?”
“농담 말고 대답.”
전설의 말에 졌다는 표정으로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뭔가를 떠올리다 결국 고개를 젓는다.
“이 사람 진짜 장난 아닌데······. 수당 좀 올려주면 생각해 볼게요. 완벽하게 구석으로 몰아놓고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전설은 그냥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관심을 꺼버린다.
“어? 지금 저 무시한 거예요?”
“아니.”
붉은 머리 소년은 그 대답에 좀 전까지 얼굴에 어렸던 장난기 대신 상기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전설을 바라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저 고개를 돌려 성벽 아래를 같이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랭킹 1위는 물 건너갔네요.”
“흠······.”
계획이 상상하지도 못한 변수에 깨진다면 그것에 오는 충격이 있을 텐데도 전설은 그저 무덤덤하게 몬스터와 길드원들의 전투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도 저렇게 몰아주고 있는데, 이 이상 했다가는 무리에요. 더 몰면 버티기 힘들어져요.”
앞으로 나올 사냥터를 생각해 이번 방어전에서 최대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몰아주며 덤으로 랭킹까지 획득하려고 했는데, 주호라는 사람이 있는 이상 무리라는 소리다.
“그럼, 접촉할 거예요?”
“아니, 일단 두고 본다.”
“악마가 눈독 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먼저 채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두고 본다.”
“참, 속을 알 수 없는 형이라니까.”
붉은 머리 소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가 있다.”
“네······?”
“그럼, 들여보내야지. 누구라도.”
“아아, 미끼?”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도 악마가 주호라는 사람을 탐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차피 처리해야 하는 악마를 이용해 간을 보겠다는 소리다.
건드려도 되는 사이즈인지 아닌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까지.
“형도 참 무서운 사람이네요.”
단순히 치고받는 것으로 사신을 잡으려면 이쪽도 제법 출혈을 봐야 하는데 그걸 손도 안 대고 코를 풀겠다는 말이네.
이쪽을 이용했으니 괘씸죄까지 추가해 다시 반대로 이용해 먹겠다는 소리고.
남들은 쉽게 걷지 못하는 두세 수 앞을 미리 걷는 사람.
그런 전설이 바라보는 전장을 붉은 머리 소년이 같이 바라보면서 밝게 웃었다.
곧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라 믿으면서.
***
“이대로 끝나면 베스트인데.”
전체 1위를 먹었다지만 꽤 불안한 1위다.
우리 길드원들이 합심해서 오우거를 잡고, 내가 트롤을 싹 잡으면서 일시적으로 기존 1위의 포인트를 넘긴 상태니까.
여기서 다시 트롤이나 오우거를 발견하지 못해 시간을 한참 끈다면 포인트는 다시 역전된다.
무조건.
그것이 우리에게 약점이라고 봐도 될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길드의 인원이 적은 것.
그것은 곧 마법사 인원도 적다는 소리.
동일한 시간을 놓고 잡는다면 화력이 밀려도 너무 밀린다.
다른 길드는 광역으로 계속 몹을 잡겠지만, 우리는 뒤집기 위해 강한 개체를 찾고 있을 테고······.
“어쩔 수 없죠. 또 찾아야.”
방금 오우거 네 마리를 빠르게 잡고 떨어진 한 개의 파워 글러브는 재중이 형이 받아갔다.
이쁜소녀도 하나 구해줘야 하는데.
이대로 방어전이 끝나면 정말 아쉽게 될 수도 있다.
이걸 언제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형, 오우거를 끌고 오려면 시간 많이 걸리겠죠?”
“아무래도 발견하고 데려오는 게 시간이 더 걸리니까.”
“그럼, 전부 제 뒤에 붙으세요.”
“뭐?”
“솔직히 혼자는 부담이라 성벽에서 멀리 안 나갔는데 그냥 돌파하죠.”
“뒤를 봐달라는 소리냐?”
“네, 제가 걱정 없이 돌파할 수 있게요.”
안 그래도 혼자 돌아다니면 생각보다 눈먼 공격이 많아 알게 모르게 스쳤는데 그걸 전부 커버할 수 있다.
거기다 잡는 속도도 훨씬 올라갈 테고.
무리해서 자리를 만들 이유도 없어진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이면 할 수 있지.”
파워 글러브를 착용한 재중이 형이 윙드 스피어를 돌리는데 전과 다르게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간다.
“확실히 달라졌네요.”
“어, 나도 조절이 힘들 정도지.”
방패전사가 몰리는 곳을 라이트 쉴드로 막아주고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중심을 잡아주면 어느 정도 라인이 만들어진다.
챠밍하고 나르샤가 중앙으로 들어가서 딜을 하고.
“크, 아예 대놓고 중형만 찾아다니겠다는 소리네.”
“빙고.”
솔직히 사장님도 데려가고 싶지만, 성벽 위 전체 라인을 지휘해야 하니까 이런 돌격대에 넣긴 힘든 면이 있다.
“다녀올게요.”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니 다녀오라는 듯 손만 흔드신다.
지금 라인 유지한다고 바쁘시니까.
내가 해골 마법사들을 데리고 앞을 뚫자 조금 옆에서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전진을 시작했다.
그 뒤로 챠밍과 나르샤가 들어가고 후방은 이쁜소녀가 광아를 어깨에 들쳐 메고 따라붙었다.
방패전사가 앞을 막는 몹들을 라지 쉴드로 크게 스윙을 하니 방패에 맞은 소형 몹들이 전부 뒤로 날아가면서 밀려났다.
거기다 재중이 형이 윙드 스피어를 크게 돌리자 거기에 맞은 여러 마리의 몹이 한 곳으로 예쁘게 모여서 날아갔다.
그 위로 챠밍의 마법과 나르샤의 공격, 그리고 해골 마법사의 마법이 쏟아지니 순식간에 몹들이 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이 몹이 아예 붙지 못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몹 자체를 한 곳으로 모아주니까 처리 속도가 확실히 올라간다.
이쁜소녀도 뒤로 파고 들어와 챠밍과 나르샤를 노리는 몹들을 광아를 크게 휘둘러 멀리 쳐내 버리는 중이고.
혼자 사방을 신경 쓰면서 힘겹게 뚫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100만 배는 좋다.
거기다 일부러 파고들어 블러디아로 몹을 찔렀던 때를 생각하면 더욱더.
【 와이드 힐! 】
챠밍이 움직이면서도 꾸준히 와이드 힐을 넣어주니 HP 관리도 너무 수월하다.
그러다 비월참의 쿨이 돌아오면 몰린 몹들에게 날려도 된다.
좀 공백이 생겨도 우리 팀이 뒤를 다 봐주니까.
멀리 중형이 보이면 나르샤가 재중이 형이 탄 케르베로스를 밟고 도약해 아주 먼 거리의 중형을 화살로 풀링했다.
굳이 중형이 있는 곳까지 무리하면서 파고들지 않아도 한 마리씩 편안하게 잡아 물약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정말 나르샤가 이번 원정의 1등 공신이다.
그렇게 오우거를 몇 마리 잡은 후에 떨어진 파워 글러브를 곧장 이쁜소녀에게 넘겨줬더니 광아를 휘두르는 소리가 달라졌다.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을 정도로.
트롤 벨트는 각자 하나씩 챙기면서 팀에서 체력이 가장 약했던 챠밍이 벨트를 차기 전 방패전사 수준까지 올라오게 됐다.
몸으로 버티며 마법을 써도 상당히 오래 버틸 정도로.
거기다 중간에 미믹까지 나르샤가 풀링해, 열쇠도 상당수 챙겼다.
“좋아. 아주 좋아.”
재중이 형은 정신없이 윙드 스피어를 휘두르면서도 좋다는 말을 계속 반복 중이다.
말 그대로 경험치, 아이템, 포인트 모두 쓸어 담고 있다.
레벨도 각자 2개씩 더 올린 상태고.
혼자는 힘들어도 여섯이 모이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어느새 포인트도 2위인 전설과 엄청나게 벌렸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격차를 주자, 그제야 모두 돌파하는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제 쉬엄쉬엄해도 되겠습니다.”
방패전사가 라이트 쉴드로 주변 몹을 밀어내면서 타이밍을 조절했다.
“이거 완전히 몹들 사이를 횡단했네.”
재중이 형도 지도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무 신을 냈더니 아예 몬스터 군단을 대각선으로 통과해 버렸다.
이미 성벽이 보이지 않는 위치까지 온 상태다.
“우리 어떻게 돌아가요?”
이쁜소녀도 이제 슬슬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묻는다.
“슬슬 다른 쪽으로 해서 돌아가죠.”
대각선으로 뚫었으니까 다시 성벽을 향해 뚫으면 좀 더 중형을 찾을 수 있지 않으려나?
“그럼 돌아가······.”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려다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게 뭐야?”
재중이 형이 한 방향을 보고 놀라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오우거······?”
방패전사가 먼저 발견하고 물어보는데 좀 이상하다.
머리에 뿔이 크게 나 있는데 피부색이 붉은색이다.
거기다 머리 두 개는 차이 날 정도로 덩치 자체가 다르다.
“오우거가 아닌 것 같아요.”
챠밍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좀 더 가까이 가야지 이름이 보이겠는데.”
주변 몹을 정리하면서 좀 더 가까이 가자 이름이 바로 뜬다.
“오우거 로드.”
재중이 형이 누가 듣는 듯 낮게 말을 한다.
“아무래도 네임드 같은데요?”
보통 오우거가 맨손으로 싸우는 것에 비해 이 오우거는 무기까지 들고 있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배틀 액스들을.
이쁜소녀만큼 큰 광아가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로 크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없었죠.”
나르샤의 말에 재중이 형이 대답한다.
흐음, 어쩐다.
“형, 잡을 거예요?”
“글쎄다. 엘리트 오우거라고 생각하면 대충 각은 나오는데······.”
보통은 일단 잡고 보자 하던 형이 망설인다?
“원래라면 일단, 부딪치겠는데 우리가 지금 죽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만약, 죽으면 우리 포인트는 여기서 멈춘다.
경쟁자들은 계속 달리고.
이 방어전이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저거 잡으면 포인트 엄청나겠죠?”
“말을 하면 뭐하냐. 엄청나겠지.”
고민된다.
싸울 것이냐 말 것이냐.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내 입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도 우리가 1등이죠?”
“그래, 어지간하면 뒤집힐 일 없지.”
“그럼, 저건 다음에 상대하죠.”
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말에 다들 아쉬움 반, 안도 반의 숨을 내쉰다.
그런 내 결정을 우습게 여기는 듯.
멀리 있던 오우거 로드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괴성을 지르자 충격파처럼 울려 퍼지는 괴성에 주변의 모든 몹이 경직되어 멈췄다.
수백에 달하는 몹이 모두.
거기에 두 개의 거대한 배틀 액스가 주변을 휩쓸자 수십의 몹이 동시에 하늘 위로 떠올랐다.
다시 한 번, 액스를 바닥으로 내려치자 강력한 후폭풍이 일면서 남아 있던 주변 몹들이 순식간에 녹아 빛으로 변해 버렸다.
미쳤네.
저건······ 못 잡는다.
“다들 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