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화 빛이 머무는 곳, 유적지 (10)
하다 보면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화살이라고 다 같은 화살이 아니고, 마법이라고 다 같은 마법이 아니다.
지력, 랭크, 마력, 레벨, 마법 종류에 따라서 속도와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챠밍이 이것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지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력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차징을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속도와 공격력이 올라간다고 한다.
몬스터들이 레벨이 오르면서 나날이 빨라지고, 사람들도 레벨을 쌓아 민첩에 투자하면서 계속 빨라지는데 마법이나 화살의 속도가 현 상태로 유지만 된다면 싸움 자체가 안 되니까.
움직임이 빨라지는 만큼 기술도 그만큼 더 빨라진다는 소리다.
이렇게 몬스터나 사람이나 서로서로 레벨에 따른 스탯 수준을 맞춰가면서 서서히 진화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몇 단계 위의 몬스터가 나타나면?
재중이 형이 말했듯 해골 마법사는 지금 시점에 나와야 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일단, 검은 화살의 위력이 현 단계에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유지하는 방어도에 비해 너무 강하다.
마방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 맞으면 HP가 뭉텅이로 빠져나갈 정도로.
거기다가 지금 접해볼 수 있는 다른 마법들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해골 마법사가 쏘아대는 검은 화살이 통산보다 상당히 빠르기에 민첩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만큼 쳐내기가 어렵지만 쳐낼 수만 있다면 현시점에서 이보다 강한 딜을 내는 마법은 없다.
검은 화살들을 블러디아와 카스카라의 검면으로 모두 미끄러지듯이 궤적을 틀어내면서 원하는 몬스터의 정면으로 박아 넣자 순식간에 몹들이 녹아내려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혹시나 해골 마법사를 치면 곤란하기에 일부러 성벽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몹들을 녹이면서 돌파하는데 성벽 쪽에서 계속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많은 사람이 외쳐서 뭐라고 하는지 일일이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슬쩍 눈을 올려 상단에 있는 킬 카운터를 봤다.
엄청난 속도로 내 개인 랭킹이 올라가는 중인 데다가 길드 랭킹도 따라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몬스터 부대의 한 가운데를 그냥 밀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랭킹이 안 올라가면 섭섭하지.
전에 블러디아가 없을 때는 물약 때문에 중도에 포기했었는데 지금은 중간중간 블러디아로 HP를 빨아들이는 데다가 물약 자체도 농축 물약이라 아직은 충분히 버틸 만한 수준이다.
그리고 돌아서 돌파하다 보니 아까 돌아올 때 잡지 못한 트롤도 보이기 시작했다.
크어!
날 보자마자 트롤이 덤벼드는데 해골 마법사의 마법을 모조리 집중시켜주자 순식간에 녹아서 빛으로 변해 버렸다.
이거 중형 아니었던가?
오우거만은 못해도 체력이 엄청날 텐데 왜 이렇게 빨리 녹지?
트롤이 사라진 자리를 어리둥절하게 보다 보니 재중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불멸> 어디쯤이냐?
<주호>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불멸> 무리하지 말고. 지금 오우거 네 마리 끌고 간다.
나보고 무리하지 말라고 해놓고는.
네 마리?
대체 어디서부터 끌고 온 건지…….
우리 성벽에서 제법 먼 곳까지 제대로 원정을 다녀온 모양이다.
<주호> 형, 근데 방금 트롤하고 붙었는데 너무 쉽게 녹는데요?
<불멸> 아까, 그놈?
<주호> 네, 몸에 돌 같은 것 잔뜩 달린.
잠시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재중이 형이 말했다.
<불멸> 보통 트롤하면 회복력이 좋으니까. 체력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었나 본데?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 보니 말이 된다.
해골 마법사의 검은 화살이 회복 불가 디버프가 있으니까.
회복력이 최강인 트롤과는 상극인 몬스터라고 해야 하나?
원래는 이렇게 쉽게 잡으라고 놔둔 몹이 절대 아니다.
전에 한 번 붙어봤을 때는 오우거에게는 못 미쳐도 아주 까다롭고 강한 몹이라고 느꼈었으니까.
해골 마법사와 트롤이 한꺼번에 존재해야 지금 같은 그림이 나온다.
다른 곳에서 해골 마법사와 트롤이 한 자리에 같이 있을 확률?
전혀 없다.
이렇게 트롤을 쉽게 녹일 수 있는 것은 방어전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지금 최대한 꿀을 빨아놔야 한다.
트롤과 오우거의 포인트 차이가 세 배쯤 나기는 하는데 이쪽은 개체 수가 많다.
주변이 온통 트롤이니까.
포인트를 빠르게 벌려면 현재 트롤이 최고다.
<주호> 저 좀 여기서 놀다 갈게요.
<불멸> 너무 늦지 않게 와라. 트롤 많이 잡고.
한마디만 해도 내가 뭘 할지 다 안다.
트롤이 주변에 삼십여 마리가 있는데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녹이면서 들어갔다.
공격 패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멀리서 해골 마법사의 딜로 녹이면 끝이다.
집채만 한 거대한 몬스터들이 하나씩 쿵쿵 쓰러지자 사방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트롤을 10마리 정도 눕혔을 때 전혀 못 보던 형식의 드랍템을 하나 발견했다.
『 +0 트롤 벨트 / 방어력 6 / 체력+5 』
뭐야 이건?
미쳤네.
장갑도 그렇지만.
이건 벨트다.
현재 비어 있는 슬롯을 채워줄.
<주호> 형, 대박.
<불멸> 응? 뭐 좋은 것 나왔냐?
내가 트롤 벨트를 설명해주니 재중이 형이 곧장 빠르게 태도를 바꿨다.
<불멸> 올 때 제 것도 좀 부탁드립니다.
<주호> 알았어요. 최대한 챙겨서 갈게요.
안하던 존댓말을 할 정도로 필요하다는 소리네.
나도 이건 정말이지 필요한 템이다.
현재 체력을 6으로 한 방이 안 나올 정도로 낮춰놨는데 이것만 있으면 체력이 11까지 올라가서 오우거 수준의 완전한 치명타를 최대 두 방까지도 버틸 수가 있다.
방패전사가 이걸 차면?
그때부터는 좀비다.
아니 그냥 누가 차도 좋다.
힘은 경험치에 직결되지만 이건 생존과 직결되니까 값어치를 말해서 뭐하겠는가.
이젠 오우거가 아니라 트롤을 찾아다녀야 할 판이다.
내 입장에서는 트롤을 녹이기가 훨씬 쉬우니까.
트롤을 전부 녹였더니 벨트를 세 개나 건진 것은 물론이고 개인 랭킹이 3위로 수직 상승을 했다.
그 많은 마법사가 광역으로 쓸어대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상승이다.
거기다가 레벨도 바로 두 단계나 올랐고.
혼자 멀리 떨어져서 사냥 중이라 파티원들에게 경험치가 가지 않아 혼자 다 먹으니 아주 폭렙을 해버렸다.
거기다 내가 트롤을 죄다 녹여버리는 덕분에 우리 길드 랭킹까지도 순식간에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지금쯤 순위를 확인한 모든 상위 길드가 뒤집어지지 않았을까?
현재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미쳤네. 지금 최강 길드 랭킹 올라가는 것 봐라.
—대체 뭔 짓을 하는데 랭킹이 이렇게 올라가?
—109위에서 5위면 대체 한 번에 얼마나 잡은 거야?
—주호 이 사람 때문인 것 같다. 개인 랭킹 올라간 것 봐라.
—헐. 3위? 한 번에 100위 안으로 들어온 거야?
—어쩐지 지금껏 잠잠하다 했다.
—역시 최강은 최강이네.
—이대로 가면 전체 1위 뒤집히는 거 아닌가?
—전설 애들 지금 똥줄 타겠는데?
—그 밑에 애들도 지금 똑같음. 비상 걸림.
개인 랭킹이야 어차피 종합 포인트에 속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길드 랭킹이다.
5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근처에 트롤이 안 보인다.
별수 없나?
<주호> 형, 트롤 모여 있는 위치 알아낼 방법 없어요?
<불멸> 너 대체 얼마나 잡은 거냐? 몇 마리 잡고 오는 정도가 아닌데?
<주호> 30마리쯤요? 정확히는 안 세어 봤어요.
<불멸> 참, 넌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주호> 갈 때 선물 가져갈게요.
<불멸> 오! 나왔냐? 사랑한다!
<주호> 됐고요. 트롤 위치 알 수 없어요? 더도 말고 딱 지금 잡은 만큼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바로 랭킹을 뒤집을 수 있다.
<불멸> 사장님한테 말해 놨다. 그리고 일단 와서 오우거 좀 잡고 가. 이거 생각 외로 안 죽네. 너무 끌고 왔다.
<주호> 접수.
트롤이 없으면 오우거지.
바로 우리 길드원들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독을 뿜어내는 가스트 30, 검방과 창을 들고 있는 리자드맨 20. 떼로 몰려 있는 좀비 50마리.
거기다가 우연히 발견한 미믹도 20여 마리를 잡고 열쇠를 2개 정도 얻었다.
안 그래도 미믹을 잡고 싶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열쇠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방어전이 끝나고 혹시나 누군가 열쇠를 팔면 좀 비싸게라도 사들일 생각이다.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성벽 위로 올라간 몹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렇게 내려와서 원하는 몬스터를 골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니까.
지금도 원하는 방향으로 틀어가면서 쓸고 있고.
몹을 정리하면서 지나가자 우리 길드원들이 있던 성벽이 보인다.
그리고 성벽 아래에서 오우거 네 마리가 난동을 부리는 중이다.
네 마리나 되니까 차마 내려가서 상대하지 못하고 성벽 위에서 농성을 하는 중인데 방패전사가 방패로 후려쳐서 오우거를 다시 밀어내는 모습도 보인다.
파워 글러브가 제값을 하는 모양이네.
<주호> 지금 처리할게요. 다들 혹시 비월참 있어요?
<불멸> 마침 쿨 돌아오는 중이다.
<방패전사> 저도 쿨 돌아옵니다.
<이쁜소녀> 저도요!
이미 돌아가면서 싹 썼다가 쿨이 돌아오는 타임인 모양이다.
<주호> 한 번에 가죠. 저 바로 힐 좀 부탁드릴게요.
<챠밍> 네,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원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이상 체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힐을 보내줄 사람들이 넘쳐나니까.
오우거에게 직접 타격을 주려면 이 정도 수준의 공격이 아니면 안 된다.
쿨이 다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외쳤다.
“쏴요!”
【 포이즌 웨폰! 】
【 아이스 월! 】
【 포이즌 클라우드! 】
【 비월참! 】
【 비월참! 】
네 마리의 오우거가 몰려 있는 장소에 아이스 월로 잠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고 독이 깔린 상태에서 총 5발의 비월참이 날아가서 폭발을 일으켰다.
주변 성벽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음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선다.
“한 번 더!”
【 라이트 웨폰! 】
【 비월참! 】
【 비월참! 】
포이즌 웨폰으로 소비한 비월참을 이번에는 라이트 웨폰을 써서 다시 한 번 몰아쳤다.
모두 10발의 비월참이 터져나가자 오우거 주변에 있던 잡몹들은 이미 녹아 사라지고 오우거 네 마리만 여기저기 그을린 채로 무릎을 꿇더니 성벽에 기대고 엎어졌다.
“이래도 안 죽네.”
재중이 형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사실 나도 저 정도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파이어 월 위에서 춤을 춰도 안 죽는 녀석들인데 비월참은 그저 잠시 다운시키기 위해 쓴 것뿐이다.
“챠밍님. 지금!”
【 파이어 월! 】
원래라면 도망갔어야 하는 녀석들이 경직이 걸려 엎어진 상태로 계속 불기둥 위에서 구워졌다.
일어나면 분명히 도망갈 테지만…….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마무리는 우리 애들이.”
비월참을 쓰면서 피하기만 했던 검은 화살들을 모조리 경직된 오우거들을 향해 퍼부었다.
오우거의 등짝을 새까맣게 물들일 정도로 검은 화살들을 터트리니 자체 회복이 막힌 오우거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성벽 위의 우리 길드원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우거 잡은 것이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몹 몇 마리 잡은 것 가지고 하기에는 좀 함성이 커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재중이 형이 검지로 인터페이스 상단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자마자 왜 저렇게 기뻐하는지 알게 됐다.
“전체 1위 먹었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1등입니다!”
“꺄! 해냈어요!”
“유적지는 우리가 간다!”
《 베네아 방어전 길드 랭킹 》
1위 — 최강 길드 / 32541 Point.
2위 — 전설 길드 / 32127 Point.
3위 — 사신 길드 / 29516 Point.
아주 간발의 차이로 1위에 당당하게 우리 길드 이름이 올라왔다.
진짜 역전했구나.
이젠 정말 우리가 1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