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9화 (89/1,404)

# 89

#89화 수면 아래 파고드는 그림자 (3)

<불멸> 사장님, 무슨 일이죠?

<카이저> 밑에 애들 중에 하나가 사고를 쳤어.

<불멸> 어떤 사고요?

<카이저> 저주받은 숲에서 다른 길드하고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는데 진화가 안 된다. 좀 전에도 한 번 더 붙었고. 근데 이것들이 알고 보니까 한둘이 아니야. 올인, 리멤버, 여명 세 곳에서 동시에 복수하겠다고 치고 들어오는 중이다. 지금 저주받은 숲 쪽에 나간 애들은 비상이야.

<불멸> 다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일단 버틸 수 있어요?

<카이저> 붙어보니까 얼추 전력은 비슷해. 근데 주력 자리 다섯 곳 중에 한 곳은 이미 뺐다. 거긴 도저히 못 지킬 것 같아서. 두 곳은 우리 애들이 지키고 있고, 다른 두 곳은 제우스 애들이 지키고 있는 중이다.

세 개 길드가 합쳐서 치는데도 동률을 유지할 정도였나?

길드 사람들과 같이 사냥할 시간이 거의 없어 몰랐는데 생각 외로 우리 길드의 전력이 상당한 편이다.

<불멸> 일단 알았습니다. 바로 합류하도록 할게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

<카이저> 단순히 버티는 것만 하면 꽤 버틸 수 있긴 하지. 이미 상당히 죽여서 숫자도 줄여놨고. 저쪽도 놀랐는지 지금은 싹 빠졌어. 아마, 다시 모아서 한 번 더 들어오겠지.

길드는 이게 문제다.

한 번 잡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어떤 자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길드가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해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유야 어쨌든 칼질을 안 할 수가 없다.

<불멸> 정 안 되면 자리 포기해도 됩니다. 자리야 다시 뺐으면 되니까. 장비 안 떨어지게 주의하라고 하세요.

<카이저> 알았다.

“시비라……. 참 공교롭네. 다른 때도 아닌 딱 이 시점에서.”

재중이 형이 턱을 쓸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멸> 대체 시비를 왜 걸었다고 해요? 당분간 다른 길드하고 가급적이면 붙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서 다들 조금만 조심하게 운영하라고 한 적이 있긴 했었다.

<카이저> 그게 좀 이상하긴 한데 다른 곳에서 자리 때문에 싸움을 걸었다는 소리가 있어.

<불멸> 우리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궁하게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자리 때문에 싸움을 걸었다고요?

<카이저> 그거 땜에 지금 말이 많아. 우리 애들은 전혀 아니라고 하고, 저쪽에서는 자기들을 건드려놓고 이제 와서 발뺌 하냐고 하니까.

“우리가 굳이 자리 때문에 다른 길드에 시비를 걸 이유가 있어요? 우리 자리 견고하잖아요. 차라리 다른 길드가 시비를 걸면 모를까.”

재중이 형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얼굴이 좀 굳어있다.

<불멸> 시비 건 놈들 지금 어디에 있어요? 연결해 주세요.

<카이저> 그게, 좀 전에 그 몇 명이 아무 말도 없이 길드를 탈퇴했다. 연락도 안 돼.

<불멸> ……이건 정말 재밌네요.

시비를 걸고 싸움까지 부채질하고서는 탈퇴에 잠수라.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걸 우리 팀 모두 바라보는 중이고.

“방패전사님, 혹시 이거 좀 자세하게 알아봐주실 수 있나요? 오프 쪽으로요. 좀 찝찝한 부분이 보이네요.”

재중이 형이 그간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방패전사에게 상대방 길드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바로 문의를 했다.

“뭐, 이 정도는 어렵진 않을 겁니다. 잠시만.”

방패전사가 그렇게 대답하고 다른 곳에 연락을 잠시 주고받다가 다시 우리에게 알려준다.

“좀 알아보니까 오프 쪽으로 도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떤?”

“최근 라인이 하나 꽤 크게 만들어졌는데 이 라인의 목적이 애매모호해서 슬쩍 알아보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전에 방패전사에게 듣기로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길드가 사라졌다 생겼다 하고, 라인도 몇 개가 생겼다가 죽었다가 한다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주목을 할 만한 곳이라고 하면 제법 큰 라인이라고 봐도 된다.

“지금 시비 붙은 곳이 그 라인이다?”

“네, 사실 라인을 만들면 목적이 거의 명확하지 않습니까. 공성이라던가, 반연맹이라던가, 레이드도 있고.”

“보통은 그렇죠.”

“근데 여긴 전혀 상관없어보이던 길드들이 붙어서요. 아무 이해관계나 접점이 없던 길드가 하루아침에 한 라인으로 묶인다?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거기다 제일 처음 생긴 일이 우리 길드와 엮이는 거라…….”

“아시겠죠?”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더니 한 가지 결론을 낸다.

“길드 사냥.”

“아무래도 사냥개들이 붙은 것 같습니다.”

방패전사가 장담을 하듯이 선언한다.

“쁘락치도 심어놓고 재밌네.”

재중이 형이 단지 몇 마디 주고받은 것으로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싹 정리하고 문제점을 찾아낸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짐작 가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방패전사가 문제가 생각 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지 한 둘이 걸고 넘어갈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의심 가는 녀석들이 있지만 단정 짓지 못하는 그런 관계라고 해야 하나요.”

재중이 형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보통 이런 경우 돈이나 거부하지 못할 정도의 조건으로 매수당했을 겁니다. 안 밖으로 동시에 일이 터지는 것 자체가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사실 가상현실이라고 하지만 돈이 돌아가는 규모를 보면 현실과 크게 차이가 없다.

이렇게 큰 건이 걸린 일을 몇 명 매수하는 걸로 퉁 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바뀌니까.

우리가 엎어지면 저주받은 숲에 있는 제 1 유적지가 그냥 무주공산이 된다.

그럼 늦게 본 대륙 들어온 후발 주자들이 달려들 만한 충분한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혹시 그 라인 실세가 어디인지까지 알 수 있습니까?”

“사실 그것도 좀 애매합니다. 아주 큰 길드 하나가 주축이 아니라 엇비슷한 길드들이 연합한 형태라서요. 거기다 그렇게 유명한 길드들도 아닌 것이 더 문제입니다. 현재 숫자만 많다고 보면 됩니다. 중간에 랭킹 높은 애들이 좀 섞여 있긴 한데 주의할 정도는 아니라서.”

“머리가 따로 있다는 소리겠네요.”

재중이 형이 이야기가 끝나자 곧장 사장님에게 연결을 했다.

<불멸> 일단 믿을 수 있는 애들로만 따로 준비 좀 해주세요. 이를테면…… 제우스 쪽 애들 싹 빼고요.

<카이저> 역시 그쪽이냐. 더 끌고 가는 건 무리겠구나.

<불멸> 진작 했어야 했어요. 좀 많이 늦은 감이 있죠. 잘 써먹었으니까 됐어요. 주인을 물려고 하는 개는 빨리 처리해야죠.

<카이저> 뭐, 그렇게 해야겠지.

<불멸> 그리고 저쪽 라인 대표 아이디 좀 알아봐주시고요. 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

<카이저> 알았다.

“어떻게 됐어요?”

“일단 대화 해보고.”

“그러고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안 되면 싹 뒤집어야지.”

확실히 이런 게 형 스타일이지.

맘에 든다.

“이번엔 명분 같은 건 따로 차릴 필요는 없겠네요.”

“뭐, 딱히.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끝날 것 같으니까.”

“대화는 그냥 보여주기 식인가요?”

“아아. 그래. 이 정도로 노력은 했다 정도만 보여주면 되는 거고.”

표면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자리를 뺏고 난 뒤에 저쪽 라인을 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니 적어도 대화는 해봤다라고 보여주기 식의 액션이다.

남들이 보기에 이걸 하고 안하고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재중이 형에게 다시 사장님의 연락이 오고 저쪽 라인의 대표와 대화를 좀 하는 것 같더니 재중이 형의 표정이 알 수 없게 실룩거리면서 웃는 표정으로 변해 간다.

재중이 형이 할 말을 다 했는지 채팅을 끄고는 우리에게 돌아서서 방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오는 한 마디.

“자! 장비들 챙기세요. 협상 결렬입니다. 오늘부터 잔업 좀 할게요.”

***

물약과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챙기고 탈것을 불러내 저주받은 숲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숲으로 향하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역시 탈것을 타고 바쁜 길을 가고 있다.

저 중엔 사냥을 위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물약 배달을 위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쪽과 서쪽으로는 산맥과 바다로 막혀 있어서 현재 제대로 된 사냥터는 저주받은 숲뿐이니까.

힘 11, 민첩 15, 체력 6, 지력 5, 마력 3

아이템을 전부 착용한 현재 내 스탯이다.

경갑 비스트 방어구는 던전에서 꽤 떨어지는 편이라 틈틈이 강화를 해서 거의 5~6강 수준으로 맞춰놓았다.

아이템이 없어서 강화를 못하지 이 정도로 떨어지면 아까워하지 말고 팍팍 강화를 하는 편이 앞으로 싸울 때 편하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는 10일 동안 계속 크라켄과 해적선장을 잡다가 보니 한 두 자루 정도 여분이 생겨서 제물을 좀 만들어서 질렀더니 블러디아 하나를 날리고 모두 5강으로 세팅해놓았다.

강화하고 남은 블러디아, 카스카라, 베놈 한 자루씩은 그냥 창고에 넣어둔 상태다.

앞으로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솔직히 이번에 내가 안 죽는다는 보장을 하기가 힘들다.

실수로라도 템을 떨어뜨리면 이건 다른 것으로 대체를 할 수가 없기에 여분을 남겨두고 시작해야 한다.

준비는 끝.

방패전사는 블러디아와 카이트 쉴드를, 이쁜소녀는 광아, 나르샤는 데스 위버, 챠밍은 아마 포이즌 클라우드가 주력이 될 거다.

재중이 형도 광아를 하나 받아갔다.

회복 불가 옵션이 정말 사기긴 하니까.

“올인, 리멤버, 여명 여기 세 곳은 앞으로 우리와 적대 라인입니다. 여기에 숨겨진 길드가 하나 둘 정도 더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제대로 머리를 내밀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쪽에 수가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닐까요?”

챠밍이 꽤 현실적인 이야기를 끌고 들어온다.

사실 저게 맞는 이야기다.

아무리 우리가 강하다고 해도 쪽수에서 너무 밀리면 게임 자체가 안 되니까.

거기다 우리 길드 안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아마 걱정하시는 것이 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길드 안에 존재하는 문제도요.”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다.

“차라리 미리 쳐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방패전사가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더 좋은 방법도 있습니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다.

“피아식별이 제대로 안되면 불편한 것도 있지만 반대로 혼란을 줄 수 있죠.”

으음…….

저것이 지금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혼란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재중이 형은 대단한 사람이다.

“가짜 정보를 계속 흘릴 겁니다. 우리가 여기로 가면 저기로 간 것으로 흘려도 되고, 얼마나 어떤 수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는지 거짓으로 말해줘도 저쪽 라인은 속을 수밖에 없어요. 정보를 역으로 이용하는 거죠.”

“아! 무조건 속겠네요?”

이쁜소녀도 재중이 형의 말에 깜짝 놀란다.

“네, 무조건. 믿을 수밖엔 없어요. 내부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로 누가 쁘락치인지 제대로 분별할 수 있고요.”

“그런데 몇 번 속으면 더 이상 안 믿을 것 같아요.”

“네, 몇 번 당하면 그 시점부터는 의심을 하고 보겠죠. 저희 쪽 쁘락치들을. 그럼 그때부터는 다시 눈과 귀가 막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속아낼 건 속아내고 정보를 뒤틀어 뒤통수를 치겠다는 생각.

쁘락치 조차 계획의 일부로 넣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프로게이머를 딱지치기로 딴 것은 아니네.

“그럼, 초반에 소수의 인원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어요.”

이것도 좋은 수긴 한데 임시방편일 뿐이긴 하다.

좀 더 끝을 볼 수 있는 한 수가 더 필요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이 저렇게 자신이 있어 보이는 것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거겠지?

<카이저> 어떻게 하기로 했냐?

<불멸> 뭐, 협상 결렬이죠. 애초에 목적이 있는데 협상 같은 걸 하겠습니까.

<카이저> 그럼, 오랜만에 재밌어지겠구나.

<불멸> 네, 그리고 준비한 것 잘 되고 있어요?

<카이저> 몇 명만 더 분류하면 끝날 것 같다.

<불멸> 이번 기회에 거기까지 확실하게 쳐 내고 가죠. 좋은 기회니까요.

<카이저> 애매하게 걸쳐 있던 놈들도 이번엔 못 빠져나갈 거다.

<불멸> 다른 것도 잘 되가나요?

<카이저>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한데 어렵진 않을 거다.

<불멸> 그건 맡길게요. 이제 시작하죠.

<카이저> 알았다.

《 최강 길드와 올인 길드가 적대 관계가 됩니다. 》

《 최강 길드와 리멤버 길드가 적대 관계가 됩니다. 》

《 최강 길드와 여명 길드가 적대 관계가 됩니다. 》

사장님과 재중이 형의 대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시스템 알람이 떴다.

필리언 서버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 알람이.

“주사위는 던졌고 이제 제대로 놀아보자. 감히 누굴 건드렸는지 뼈 속까지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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