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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3화 (83/1,404)
  • # 83

    #83화 지하수로 (2)

    “보물 상자?!”

    내 말에 모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절대 모를 것 같은 그런 벽 틈 사이에 상자가 애매하게 걸쳐져 있다.

    어릴 때 소풍 가서 보물찾기할 때의 기분을 여기서 느낄 줄이야.

    “정말이네.”

    방패전사가 드랍 템들을 줍는 사이 재중이 형이 벽으로 걸어갔다.

    “흠, 진짜 눈도 좋으시네요. 이걸 어떻게 발견했지.”

    얼핏 지나가면서 보면 절대 발견 못 할 그런 틈 사이로 들어가 있다.

    “이쁜소녀님이 운이 정말 좋은 편이죠.”

    이쁜소녀에게 운 스탯이 따로 있다면 아마 999+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 되는 편이다.

    “이거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나?”

    재중이 형이 몇 번 툭툭 쳐보더니 자물쇠를 열지 않고는 열 수 없다는 걸 알고 난감해한다.

    열쇠라…….

    이게 그 열쇠라고 장담은 못 하겠는데 분명히 방어전 때 미믹을 잡으면서 떨어진 것을 좀 주워놓긴 했다.

    “이거 혹시 쓸 수 있을까요?”

    인벤을 열어서 좀 전까진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되어 있던 동색 열쇠들을 꺼냈다.

    “열쇠? 이건 어디서 났냐?”

    “전에 방어전 할 때 몇 개 주웠죠. 이런 곳에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저도 완전히 잊고 있었거든요.”

    “일단 줘봐라.”

    내게 열쇠를 받아간 재중이 형이 자물쇠의 열쇠를 열려고 하자 재중이 형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응? 왜?”

    “이런 건 전문 분야인 사람이 해야죠.”

    내 말에 우리 팀이 모두 고개를 돌려 이쁜소녀를 바라본다.

    “네? 저요?!”

    “그냥 재미 삼아서 하는 거니까 한 번 해보세요.”

    “네……. 좋은 게 안 나와도 실망하시기 없기에요.”

    이쁜소녀가 재중이 형에게 열쇠를 받아들고 철제 상자의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딸칵.

    역시 되네.

    철제 상자가 열리면서 안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엔.

    『 마법서 : 라이트 쉴드 』

    어?

    “와?! 대박!”

    “마법서가 나오네요?”

    “이건……!”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가 모두 철제 상자를 열고 나온 마법서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역시!

    이쁜소녀 손에 들어가면 다 대박이다.

    모두 마법서에 눈이 갔다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눈을 돌려서 방패전사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제가 쓸 물건인가 봅니다.”

    방패전사가 시선이 집중되니 쑥스럽게 웃는다.

    이건 누가 봐도 방패전사가 쓸 물건이다.

    이쁜소녀가 철제 상자에서 은색 테두리로 마감된 하얀 책자를 꺼내니까 마치 신기루처럼 철제 상자가 흘러내려 사라진다.

    “여기요.”

    “정말 잘 쓰겠습니다.”

    이쁜소녀가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곧장 방패전사에게 전달했다.

    이건 애초에 주인이 정해져 있으니까.

    방패전사가 마법서를 받아들고 잠시 기다리자 하얀 책자의 은색 테두리가 풀어지면서 빛으로 변해 방패전사의 방패에 맴돌다가 사라진다.

    “제한은…… 라이트 웨폰하고 동일하네요. 다만 라지 쉴드 장착 시가 좀 다르지만.”

    혹시나 제한이 안 돼서 못 배운다고 했으면 곤란할 뻔했는데 저런 제한이라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 라이트 쉴드! 】

    그와 함께 방패전사의 카이트 쉴드에서 찬란한 빛이 잔뜩 뿜어져 나와 라지 쉴드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와! 엄청 예뻐요.”

    라이트 웨폰도 화려하긴 한데 이건 더 했다.

    광채가 나서 눈부시게 번쩍인다.

    “이건 라이트 대신 써도 되겠는데?”

    재중이 형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소모 마력이 커서 라이트 대신 쓰기엔 좀 무리긴 하겠지만.

    “자! 그럼 실험 좀 부탁드립니다.”

    방패전사가 라이트 쉴드가 있는 방패로 앞을 막자 재중이 형이 이미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아무 말 없이 윙드 스피어를 꺼내서 내려친다.

    “상태는?”

    “좋습니다. HP가 거의 안 답니다.”

    “그럼, 이건.”

    【 라이트 웨폰! 】

    스파크 윙드 스피어에 동일한 빛이 맴돌자 재중이 형이 그대로 방패 위를 내려쳤다.

    빛들이 부딪치면서 잠시 일렁임이 있었는데 불구하고 여전히 카이트 쉴드에 하얀빛이 맴돌고 있다.

    “확실히 라이트 웨폰 정도가 아니면 대미지를 거의 안 입네요. 지금도 폭이 확 줄었습니다.”

    “이건 좀 대박인데. 유지 시간은요?”

    방패전사가 그 말에 유지되는 소모 마력을 살피다가 곧장 답변해준다.

    “라이트 웨폰하고 같습니다. 다만 이걸 쓰면 앞으로 라이트 웨폰을 쓸 시간이 확 줄어들겠네요.”

    “뭐, 둘 다 최대치로 계속 쓸 수 있으면 사기겠죠.”

    둘의 말을 들어보니 적절히 마력을 쓰려면 방어냐 공격이냐 나눠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라이트 웨폰은 공격으로 쓰니까 마력이 있는 동안 어떻게든 달려들어서 써먹을 수는 있다.

    마력의 소모가 곧 경험치가 된다는 말이고.

    반대로 라이트 쉴드는 켜놓고 방어는 월등하나 상대방이 덤벼들지 않으면 그냥 마력만 잔뜩 소모하는 거니까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솔직히 전 이런 마법서가 방패를 든 몹에게서 나올지 알고 한참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방패전사가 그 말을 하면서 이쁜소녀를 본다.

    “이렇게 뽑아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긴, 라이트 웨폰도 라이트 웨폰을 쓰던 엘리트 몹에게서 나왔으니까 방어전에서조차 그런 엘리트 이상의 몬스터를 못 봐서 방패전사가 알게 모르게 좀 실망하기는 했었다.

    오우거야 맨손 싸움을 하니 예외고.

    그래서 던전에 들어올 때 방패전사가 기대를 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전혀 뜬금없는 방식으로 얻긴 했지만.

    이쁜소녀가 방패전사의 감사에 배시시 웃는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웃음이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사냥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저건 무슨 소리지?

    ***

    드랍 된 물품을 모두 루팅하고 바닥에 물이 흐르는 지하수로 통로를 조금 더 지나가니 수로가 조금 넓어지면서 그곳을 지키는 다섯 마리의 프로그맨이 보인다.

    “흠, 그럼 시작해볼까.”

    우리보다 앞서 있는 방패전사에게서 왠지 모르게 박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평소와 느낌이 좀 다른데?

    “제가 라지 쉴드를 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대미지가 너무 들어와서 그간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저 말을 반대로 하면 지금은 할 수 있다는 걸로 들린다.

    “마침 사냥터도 다 우리 것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지하수로엔.

    길드원들은 여기서 사냥할 수준이 아직 못 되니까.

    한참 열심히 필드서 사냥 중일 거다.

    방패전사가 한 명씩 붙잡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챠밍님은…….”

    “이쁜소녀님은…….”

    “나르샤 너야 알아서 잘 할 거고.”

    “이게 하루 이틀이니. 말 안 해도 다 알아.”

    확실히 방패전사와 나르샤는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하니까 눈빛만 봐도 아는 모양이다.

    “불멸님도 뭐…….”

    “알아서 맞춰드리겠습니다.”

    말 안 해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방패전사가 내게도 와서 설명을 했는데 금방 이해가 된다. 방패전사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고.

    “자! 그럼 갑니다.”

    그 말과 함께 방패전사가 5마리의 프로그맨들에게 달려나간다.

    그리고 녀석들의 주변으로 지나가면서 베놈으로 살짝 치고 바로 지나간다.

    “저걸로 되나요?”

    “방패전사는 저게 전문이거든요. 믿고 보셔도 괜찮아요.”

    나르샤가 정말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하니 여차하면 튀어나가려고 준비 중이던 내가 다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방패전사가 한 대씩 툭툭 치고 지나가면서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는 식으로 프로그맨을 모으더니 일자로 쭉 자기를 따라가게 만든다.

    “몹 모으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다소 느린 발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몹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따라오게 만든다.

    “가죠. 너무 떨어지면 제때 못 들어가요.”

    나르샤가 재촉하자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방패전사는 이미 몹들을 싹 모아 구석에 꺾이는 장소로 이동해 구석을 등지고 돌아서더니 카이트 쉴드를 들고 자세를 낮췄다.

    【 라이트 쉴드! 】

    방패전사의 전신을 가린 카이트 쉴드에서 빛이 나오면서 전면을 싹 가려주자 프로그맨들이 방패전사에게 붙어서 주먹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지금!”

    【 아이스 볼! 】

    챠밍의 아이스 볼이 한 자리에 빼곡하게 모여 있는 프로그맨들에게 가서 맞더니 다섯 마리의 움직임을 순식간에 얼려버린다.

    “이쁜소녀님! 불멸님!”

    “가요!”

    먼저 이쁜소녀가 양손검을 크게 휘둘러서 프로그맨들의 뒤를 후려쳐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재중이 형도 윙드 스피어를 강하게 휘둘려서 아직 덜 밀린 프로그맨을 완전히 구석에 박아 버렸다.

    나르샤가 얼음 화살을 계속 날려 프로그맨들이 최대한 안 움직이게 도와주고 나도 역시 다리 관절을 최대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맞춰가면서 경직을 걸었다.

    슬쩍 뒤를 바라보니 챠밍의 캐스팅이 거의 완료되어 간다.

    얼음 마법이 몹을 예쁘게 모으기 위한 것도 있지만 챠밍이 캐스팅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도 있다.

    【 파이어 월! 】

    방패전사 주변으로 5마리의 프로그맨이 아주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자리에 파이어 월이 떨어지자 얼음이 단계적으로 풀리면서 강력한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오른다.

    어느 정도 대미지가 쌓여 타겟이 방패전사에서 챠밍으로 바뀌었는지 프로그맨들이 구석에서 튀어나오려고 하자 이쁜소녀가 양손검을 다시 강하게 휘둘러서 두 마리의 프로그맨을 다시 구석으로 처박아버렸다.

    잘하네.

    양손검은 리치가 길어서 그런지 한 번 휘둘러서 두 마리를 동시에 밀어내 버린다.

    이어서 재중이 형이 다시 처박고, 내가 경직을 거니까 모여 있던 프로그맨이 아무것도 못 해보고 그대로 녹아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 포이즌 큐어! 】

    【 와이드 힐! 】

    잊지 않고 바로 바로 독을 풀고 HP를 채워주는 챠밍에 모두 엄지를 치켜세운다.

    우리가 다 모여 있었기에 광역으로 들어오는 마법의 혜택을 모두 받아서 다시 원래대로 복구가 됐다.

    “캬! 이 맛이지.”

    방패전사가 어느새 라이트 쉴드를 풀고 일어나 엄청나게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한 마리씩 잡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저건 꽉 막혔던 어떤 것들을 풀어냈을 때의 그런 표정이려나.

    “방패전사님 최고!”

    이쁜소녀에게서 자연스럽게 하이톤의 응원이 나온다.

    저 응원에 방패전사의 어깨가 하늘 높이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완전 좋아하네.

    “탱 매니아 같은 면이 좀 있어요. 방패전사가 남들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몰아서 한 번에 싹 쓸어버리는 걸 진짜 좋아해요. 각이 안 나오는 어떤 곳에서라도 완벽하게 모는 걸 늘 연구하고요. 전엔 원거리까지 안 몰아진다고 얼마나 제게 투덜대던지.”

    나르샤가 슬쩍 내게 말해준다.

    꽤 조용한 스타일인데 방패전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말을 술술 하네.

    나르샤 말만 들어보면 방패전사가 그간 이렇게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방패를 이용한 싸움과 전술만 잘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사실 그것도 엄청 대단한 것이긴 한데 진짜 전문 분야는 따로 있었다는 거다.

    떨어져 있던 몹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구석으로 몰고 들어가 격수들이 치기 딱 알맞게 모아준다.

    3세대를 안 해봤던 내게는 정말 신기한 장면이다.

    “대부분 가상현실에서 다 이런 식으로 몰아서 잡습니다. 여긴 어려웠던 것이 어글 스킬이 없는 것도 있고 방패가 워낙 물방패라서요.”

    하긴 방패로 막아도 대미지가 숭숭 들어와 버리니까 물방패가 틀린 말은 아니다.

    카스카라와 블러디아가 내게 날개를 달아줬듯이 이번에 얻은 라이트 쉴드가 방패전사의 소울이나 마찬가지인 몰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는 소리다.

    “어글이야 뭐, 풀리면 잘 처넣어 줄 거라고 믿고 했습니다.”

    이건 뭐 방패전사가 몰아놓고 이쁜소녀와 재중이 형, 그리고 내가 튀어나오는 녀석들을 구석으로 계속 처박아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잡는 시간도 그렇고 들이는 노력도 그렇고.

    한 마리 잡을 때마다 그렇게 공방을 치고받았던 것과는 완전히 느낌 자체가 다르다.

    “가시죠. 오늘 지하수로의 몹은 전부 제가 몰아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물방패로 힘겨웠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바로 앞장서자 우리가 바로 그 뒤를 따라 달렸다.

    그래, 오늘 지하수로를 한 번 거덜 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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