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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2화 (82/1,404)

# 82

#82화 지하수로 (1)

“저기…… 춥지 않으세요?”

챠밍이 추위를 느끼는지 얇은 로브를 두 손으로 꽉 동여매고 팔짱을 낀다.

이쁜소녀나 나르샤도 추위를 느끼는지 마찬가지로 움츠러든다.

“계단 하나 내려왔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네요.”

나도 몸으로 새어 들어오는 한기에 몸이 좀 굳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닥엔 수로가 파여 있어 물이 흐르고 있고 양옆으로는 흙과 돌이 섞인 벽으로 되어 있다.

수로도 굉장히 넓고 높아서 점프해서 검을 휘둘러도 충분할 정도다.

지하 수로라고 해서 좁은 곳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넓다.

그리고 어디선가 모르게 수로를 타고 찬바람이 계속 불어와 우리의 체온을 계속 갉아먹는 중이다.

“이거 혹시나 해서 사 왔는데.”

방패전사가 인벤에서 묘한 물건을 몇 개 꺼낸다.

확실히 방패전사는 힘이 높아서 여유 무게 자체가 꽤 남는 편이라 그런지 이것저것 많이 챙겨온 모양이다.

“발열석이라고 잡화점에 팔던데 쓸데가 바로 생기네요. 자, 하나씩 받으시죠.”

“준비성 최고 십니다.”

재중이 형도 이번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이걸 표현하자면 핫팩 정도 되려나?

하나둘 발열석을 받아들고 활성화한 뒤 몸에 가져다 대니 후끈한 열기가 올라와 몸을 감싼다.

“베네아 아래에 이런 지하수로라…….”

일단 움직이는 대로 지도가 완성되니까 길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쭉 가다가 보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게 되어 있고 그러다 보면 네임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목표는 빠르게 네임드를 확인하는 것에 있다.

그러다 잡을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고.

그게 안 돼도 최소한 패턴 정도는 알아내야 한다.

“봉인된 지하수로라고 지도에 떠요.”

입구에서 조금 움직이니 바로 지도가 갱신되는 것을 보자마자 챠밍이 말해준다.

“습하고, 춥고, 어둡고. 사람들이 다니기 안 좋은 환경은 다 모아놨네요.”

“흠, 일단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방패전사가 카이트 쉴드를 앞으로 꺼내면서 앞장서기 시작한다.

“좌? 우?”

입구에서부터 길이 두 갈래인데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애매하면 왼쪽이지.”

재중이 형이 곧장 검지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방패전사가 앞장서면서 지하수로의 통로를 쭉 걷다 보니 조금 어둡긴 하지만 기본적인 시야는 던전 벽들에 있는 하얀빛으로 빛나는 형광 물질로 인해 그렇게까지 시야를 방해받는 정도는 아니다.

“저 벽에 붙은 하얀 가루들이 아마 하르 가루일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마법 조합에 있던 NPC들에게 들은 정보인데 이런 식으로 봉인된 장소에 다수 뿌려져 있다고 들었어요.”

챠밍의 설명이 이어지자 모두 이제야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걸 캘 수 있으려나.”

내가 벽을 손으로 쓸어가면서 하얀 가루들을 긁어보려고 하는데 전혀 긁히지 않는다.

“안 돼요?”

“네, 전혀. 긁히지도 않습니다.”

혹시나 해서 카스카라로 긁어내 봤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이건 어떠십니까?”

방패전사가 앞서나가다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자 인벤에서 다시 뭔가를 꺼낸다.

요술 상자네.

계속 뭔가가 나와.

『 +0 채광 곡괭이 / 광석 채굴+1 』

“이런 것도 챙겨오셨나요?”

정말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성이 좋다.

똑같이 게임을 하는데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다르네.

“하하, 전에 피난민 마을에서는 안 팔던데 신기해서 몇 가지 사봤습니다.”

방패전사가 건네주는 곡괭이를 들고 벽을 후려치니 바닥으로 아주 작은 가루 덩어리와 흙덩어리가 떨어진다.

『 하르 가루 1 — 1/1000 하르 조각 』

“천 개의 가루를 캐야지 하르 조각 하나라…….”

연속해서 몇 번 곡괭이로 벽을 쳐봤는데 다 하르 가루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열 번에 한 번 정도.

“이걸로 원하는 만큼 캐려면 365일 캐도 안 되겠는데요?”

“그냥 캐서는 답이 없어 보이긴 하네.”

재중이 형도 좀 캐보다가 그만두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마디 한다.

“이것만 캐는 사람들이 생기면 또 모르겠는데……?”

아예 여기서 자리 잡고 이것만 캔다는 건가?

확실히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길드 단위로 이걸 캐고 있으면 모르긴 해도 상당한 숫자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희는 못 하죠.”

당장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광부처럼 이것만 캐면서 시간을 쏟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단 여기는 우리가 못 먹는 감인 것만은 확실하다.

“불멸 형, 다른 상위 길드도 분명히 저희처럼 NPC를 뒤져보겠죠?”

“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이번엔 우리가 훨씬 빨랐지만.”

“그렇단 말이죠.”

조만간 다른 상위 길드도 빠르든 늦든 얼마 후 여기를 찾아낸다는 소리다.

이를테면 전설이나 사신 같은 길드들이 분명히 하르 가루를 발견하게 될 거고…….

“걔들은 당장 하르를 얻을 방법이 없으니 여기 매달리겠지.”

역시 재중이 형.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다 알아듣는다.

확실히 배가 없는 상위 길드들에게는 여기가 유일한 구명줄이다.

아니면 다른 네임드를 잡아야겠지만 그것도 쉽진 않다.

방어전이 열린다고 해도 마찬가지.

모자란 하르를 채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못할까.

“거의 100% 확률로 정보를 막겠네요.”

“무조건이라고 봐야지.”

이번에 바닷길을 겪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상위 길드가 통제의 유혹에 얼마나 약한지.

힘이 있고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꺼낼 확률이 아주 높은 그런 카드.

상위 길드가 여길 먹으면 정말 빠르게 우리가 네임드를 잡는 것만큼 캐서 따라올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통제.

하르 가루.

광부.

인력.

돈.

대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여러 퍼즐이 줄줄이 엮이면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빅엿.

아주 큰 엿을 먹일 그런 그림이.

“우리가 못 먹는 감이면 아무도 못 먹는 겁니다.”

“또 시작이냐?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재중이 형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슬쩍 미리 언질 해줬다.

“넌 진짜 RTP 없었어도 이 게임 다 해 먹었을 거다. 내가 호랑이를 집에 들여놓았네.”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다 듣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런 놈이 어디서 나왔지 하는 표정으로.

***

“전방에 몹입니다.”

좌측 통로로 방패전사가 카이트 쉴드를 들고 앞장서서 걷다가 갑자기 멈췄다.

“개구리?!”

이쁜소녀가 방패전사 옆으로 고개를 빼서 보고는 깜짝 놀란다.

프로그맨.

서 있는 개구리가 맞긴 한데.

개구리가 그렇게 놀랄 일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살피니 챠밍, 나르샤도 썩 표정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다들 별로 안 좋아하시네요.”

“으…… 전 별로예요.”

“저도요. 미끈거리는 것을 생각만 해도 싫어요.”

“예전에 해부하다가 살아나서 난리 난 적도 있어요.”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 할 것 없이 모두 질색하는 표정이다.

이래서 사냥은 제대로 되려나.

“개구리 구이가 얼마나 맛있는데.”

“진짜 뒷다리가 별미죠.”

“예전에 중국에 경기하러 갔을 때 매운 개구리찜을 먹었는데 시뻘건 국물에 개구리들이…….”

“소주 한잔 같이하면 끝나겠네요.”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주거니 받거니 개구리 먹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보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먹는 이야기를 하다니…….”

“넌 개구리 안 먹어봤지?”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왜 먹어요?”

“쯧쯧, 이래서 애들은 안 된다니까. 얼마나 야들야들한데.”

“이분들 놔두고 저희 따로 사냥할까요?”

내 말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이 두 손을 들고 항복 표시를 한다.

두 발로 서 있는 개구리라서 실제와 좀 다르긴 한데 생긴 건 정말 똑같다.

미끈거리는 피부 하며, 툭 튀어나온 눈알에 입에서 혓바닥이 날름거린다.

챠밍이나 나르샤야 원거리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문제는 이쁜소녀지.

근접전을 해야 하는 이쁜소녀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것 같으니까.

찡그린 얼굴만 봐도 딱 싫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사냥하실 수 있겠어요?”

“……칼로만 찌르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싫은 것은 싫은 거고 사냥은 사냥이다 이거네.

어쩌자고 첫 던전부터 개구리를 넣어놨을까.

나중에 거미나 사마귀나 벌레, 파충류가 나오면 정말 기겁할지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거미나 사마귀 쪽은 나도 싫다.

선천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구조가 다른 종에게 질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싫은 그런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고 하니까.

“가시죠.”

적당히 정리된 것 같으니 방패전사가 곧장 방패를 들고 앞장섰다.

5마리의 프로그맨이 모여 있는 곳에 방패전사가 전진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곧장 입을 벌려 긴 혓바닥으로 방패전사를 공격했다.

쭉 뻗어져 나간 혓바닥이 자로 잰 듯 정확히 방패전사의 카이트 쉴드 위를 치면서 녹색의 침들이 터지더니 방패전사에게 바로 녹색 해골 모양의 디버프가 걸린다.

“아, 진짜……. 이놈들 독 씁니다.”

곧장 챠밍을 바라보니 급하게 마법 세팅을 바꾸고 있다.

“잠시만. 금방 돼요!”

【 포이즌 큐어! 】

옅은 노란빛이 방패전사 주위에 장판처럼 깔리자 방패전사에게 걸린 독 디버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이 마법은 광역으로 큐어가 돼요.”

“역시 네임드를 잡고 나온 거라서 그런지 확실히 다릅니다.”

포이즌 큐어가 진짜 대박이네.

저런 식으로 독을 거는 몹들하고 단체로 싸우다 보면 우르르 독에 걸릴 건데 그걸 일일이 한 명씩 풀어주면 정말 피곤해진다.

아마 이 마법이 없으면 여기서 상당히 고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희도 가죠.”

독 외에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 보여서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동시에 한 마리씩 달려들었다.

【 슬립! 】

남은 한 마리는 챠밍이 슬립을 걸자 zZ 표시가 나더니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린다.

“나이스 챠밍님!”

이제껏 쓸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정말 유용하다.

내 칭찬에 챠밍이 밝게 미소 짓는 것을 보고 다시 프로그맨에게 달려들었다.

카스카라와 블러디아에 라이트 소드를 입히고 날아오는 혓바닥을 연속으로 바닥으로 내려쳐 그대로 카스카라로 바닥에 내쳐진 혓바닥을 찍어버렸다.

이게 되려나?

꾸엑!

카스카라에 찍힌 혓바닥이 그대로 바닥에 고정되면서 프로그맨이 뒤로 빠지지 못하고 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되네.

혓바닥이 찍혀 도망을 가지 못하는 프로그맨의 눈을 블러디아로 연속으로 그으니 프로그맨이 부들부들 떨다가 바로 경직된다.

이어 플레임 소드를 꺼내 목을 연속으로 갈라 중첩을 입히고 블러디아로 머리를 찍었다.

크리티컬에 범벅이 된 대미지의 폭탄을 맞은 프로그맨이 그대로 녹아서 죽음의 빛으로 사라진다.

한손검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대미지를 터트리는 데다가 그걸 두 개나 연속으로 갈겨버리니 어지간한 일반 몹은 그냥 다 녹여버릴 수 있다.

누적 딜량으로 보면 챠밍의 파이어 월에 가만히 서 있지 않은 이상은 절대 낼 수 없는 딜이 나오니까.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는 한 마리씩 잡고 싸우고 있고 방패전사가 잡고 있던 프로그맨은 나르샤의 얼음 화살에 맞고 베놈에 썰려 거의 빈사 상태다.

재중이 형은 알아서 할 것 같고…….

그대로 이쁜소녀가 잡고 있던 프로그맨의 후방으로 돌아가서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를 역으로 잡아 안으로 모으면서 목을 가르고 다시 바깥으로 당기면서 베어내니 순식간에 4연타가 터져 바로 경직이 걸린다.

그렇게 부들거리던 프로그맨을 이쁜소녀가 양손검을 크게 휘둘러 가슴을 갈라 그대로 죽음의 빛으로 만들어버렸다.

“마무리 가죠.”

내 말에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슬립으로 잠들어 있던 프로그맨으로 같이 달려가 목과 머리를 처음부터 찍어 완전히 끝냈다.

슬립이 진짜 좋은데?

그사이 재중이 형, 방패전사, 나르샤가 잡던 프로그맨들이 모두 빛으로 사라졌다.

“모두 모이세요.”

독을 풀어주려고 그러는 건가?

난 걸리지 않았지만, 팀원들 대부분이 독에 걸렸으니까.

【 포이즌 큐어! 】

광역으로 포이즌을 전부 해제시키더니 챠밍의 영창이 바로 이어진다.

【 와이드 힐! 】

이건 처음 보는 마법인데?

우리 주변 바닥에 순백의 빛으로 된 원이 생기면서 그 위에 서 있던 우리들의 HP를 한꺼번에 채워준다.

“와! 언니 최고!”

이쁜소녀가 감탄하자 챠밍이 화답하듯 밝게 웃는다.

“크라켄하고 해적선 잡고 나니까 마법 조합에 새로 등록되어 있었어요.”

전에 배를 살 때 봤던 기여도 같은 문제인가?

진짜 해적선하고 크라켄을 안 잡았으면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확실히 좋네요. 이거라면 HP 소모량이 확 줄어들 겁니다.”

재중이 형도 감탄한다.

“대신 마력을 좀 많이 써서 이왕이면 한 번에 많은 분이 있을 때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정도 범위면…….

네임드와 바싹 붙어서 싸우면 두세 명은 한꺼번에 혜택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 마법사 하나 잘 키우면 열 격수 안 부럽다던데 이건 너무 좋은데?

슬립에 디버프 해제에 광역 힐에 공격마법까지…….

“거의 만능이네.”

재중이 형도 나와 그렇게 생각이 다르지 않은가 보다.

“저기, 이상한 게 있어요.”

그때 이쁜소녀가 어떤 것을 발견했는지 한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하수로의 흙벽의 틈 사이로 자물쇠가 달린 작은 철제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숨겨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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