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화 화제의 중심에서 (6)
『 드디어 바닷길이 열리다. 크라켄 퇴치 영상. 』
―진짜 크라켄을 잡네.
―대박. 저거 건들지도 못하겠던데.
―우린 어제 걸려서 바로 침몰했다. 미쳤네.
―어제 크라켄이 없던 게 저 사람들이 잡아서였나? 장난 아닌데?
―와, 또 최강 길드야?
―이번에 개인 랭킹 싹 뒤집은 애들이네. 저 길드는 길원 모집 안 하나?
―어차피 모집해도 넌 안 뽑아줌.
―최강 길드 벌써 배도 가지고 있네. 배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저 배 정기선하고 똑같이 생기지 않음? 카락이었던가?
―우리도 어제 넘어갔는데 본대륙 넘어가면 베네아라고 해양 도시 있다. 근데 배는 절대 안 팔아주던데…… 사람 차별하나.
―얘들만 다른 게임하네, 진짜.
―함포 쏘는 거봐라. 간지 작살. 크라켄이 녹네, 녹아.
―크라켄은 저런 식으로 잡아야 하는 거구나. 완전 뻘짓 했네. 지금까지.
―근데 배 없으면 어차피 못 잡는 건 똑같음. 우린 못함 저렇게. 진짜 부럽네.
―근데 저건 대체 뭐임? 작은 크라켄 타고 다리 사이로 막 지나다니는데? 수상 스키하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 덕분에 배가 접근하잖아. 크라켄 어글을 다 끌어줘서.
―탈 것 같은데 개 부럽다.
―저 탈 것은 어떻게 얻나요?
―모름. 알면 이러고 있겠냐.
―쟤들 덕분에 우리가 바다를 지나갔구나. 어쩐지 크라켄 안 나오더라. 최강 길드 복 받을 거다.
―글 올린 사람인데 코그선 침몰당할 때 와서 크라켄 잡고 우리 다 살려줌. 본대륙까지 태워다 주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천운이었음.
―최강 길드가 열일하네.
―진짜 바닷길 열어줘서 여럿 살리네.
―대인배 길드구만. 경쟁자들 넘어올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잡아주고. 진짜 상위 랭커면 저렇게 놀아야지. 우리 고성 지역엔 던전 못 들어오게 통제하고 아주 지랄을 하던데. 진짜 비교된다.
―전설 길드였나? 거기 진짜 드럽게 놈. 예전에 오크 마법사 때부터 칼질 장난 아니게 하더라. 좀 돈 된다 싶은 곳은 계속 통제하고.
―사신 길드도 비슷할걸? 둘이 연합 아니었나?
―거기 전설 길드 따까리라는 말 있던데…….
―노노, 요즘 둘이 사이 별로 안 좋음. 네임드 가지고 좀 싸웠다더라.
―전설, 사신 이런 양아치 놈들 보다가 최강 길드 보니 눈 정화되네.
“이거 댓글이 장난이 아닌데요?”
방패전사의 말에 모두 방패전사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영상 게시판을 보기 시작했다.
“우와, 댓글이 벌써 만개가 넘었어요.”
이쁜소녀가 댓글 숫자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글이 올라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 정도 화력이라니.
효과가 장난 아닌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건 예상 범위를 좀 뛰어넘는 결과다.
폭발적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화제의 영상으로 올라갔네요.”
챠밍도 역시 놀랍다는 표정으로 게시판을 본다.
“다 좋은데…… 이러니 편지와 귓말이 빗발치죠.”
방패전사가 가리키는 곳에 버젓이 우리 아이디가 올라와 있다.
다들 편지와 귓말을 차단해서 현재는 조용하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알림음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바로 우리 아이디가 올라가는 바람에.
“이건 감수해야죠. 우리 길드 사람이 올렸으면 조절해서 올렸을 텐데 이건 어쩔 수 없죠.”
재중이 형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라고 사람들을 살려주긴 했는데 너무 일을 잘해줘서 문제다.
“진짜 이대론 길드원이나 친구하고 밖에 귓말 못하겠다.”
재중이 형이 귓말을 잠시 풀었다가 또다시 빗발치는 글들에 바로 차단을 해버린다.
“장난 아닌데? 이건 테러도 아니고 참.”
기분 좋은 관심이긴 한데 이 정도면 민폐다.
유명 연예인 SNS에 가서 엄청나게 글 투척 중인 그런 상황.
우린 아직 이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그런 상황이기도 하다.
“배로 크라켄 잡는 영상도 이 정도인데 전에 주호 님 포탄 타고 날아간 걸 올리기라도 하면…….”
방패전사가 그렇게 말하는데 오싹한 기분이 든다.
정말 그 영상이 풀리면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상상도 안 간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귓말을 못 풀지도 모르겠는데.
전에 영상을 다시 한 번 돌려본 적이 있는데 이건 사람이 할 만한 플레이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해놓은 걸 보고 내가 놀라는 웃기는 일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건 참아주시죠.”
“사실 저 말고도 그때 길드원들 대부분 녹화 중이어서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아…… 벌써 머리가 아프네요.”
내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니 방패전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풀 수 있는 영상이 더 있습니다. 케르베로스 잡은 것도 있고, 해적선 레이드도 있고.”
정말 그동안 다양하게도 잡았네.
저걸 다 풀면 진짜 그때부터는 게시판 좀 뒤집히는 걸로는 안 끝난다.
“케르베로스는 아직 안 됩니다. 잡는 방법도 문제긴 한데 정보를 넘겨주긴 좀 그렇죠.”
재중이 형이 우리 대화를 듣다가 딱 못을 박는다.
사실 내 플레임 소드가 아니면 알아도 똑같이 못 따라 하니까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뭔가 힌트라도 얻어서 케르베로스를 깨고 본대륙으로 넘어와 배라도 사면 그때부터는 골치 아파진다.
아직은 우리 말고 배를 가진 팀이 있어선 안 된다.
크라켄과 해적선을 독점해서 얻을 것을 다 얻기 전까진.
“해적선은 당연히 안 되고요. 아직 풀 때가 아닙니다.”
영상을 풀어서 주목을 받는 것은 이미 충분히 했다.
당분간 저 영상 하나만으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할 테니까.
“다음엔 다른 곳에 풀어야지.”
“네?”
재중이 형이 검지를 살짝 들더니 우리에게 모르던 사실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번엔 동시다발적으로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영상 하나만으로도 돈이 되거든. 단순히 사람들이 클릭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 스트리밍요?”
챠밍이 아는 것이 있는지 바로 물어본다.
“네, 사설 영상 사이트에 올려서 조회수에 따라 적립 받는 방식이 있고, 게임 채널 방송사에 단독으로 넣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럴 땐 보통 건당 계약을 하는 편이고. 개인 방송으로 틀어서 사람들한테 서비스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다양하네요. 영상 하나가 돈이 될 줄은.”
난 단순히 이걸 이용해서 우리 이미지를 굳히려고만 생각했는데.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뻔했네요.”
“아니, 이번 건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을 구해줬다고 영상을 올려줘야 효과가 극대화되니까. 우리가 올리면 시점 자체가 달라서 안 돼.”
“흠, 확실히 그렇네요.”
히든 영상이야 앞으로 많으니까 아쉬울 것은 없다.
이건 이것대로 최대의 효과를 봤으니까.
좋은 이미지를 돈으로 사려면 정말 얼마가 들지 모르는데 그걸 영상 하나로 퉁 쳤으니까.
그때 갑자기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카이저> 게시판 봤냐?
―네, 덕분에 우리 귓말 다 막아놨어요.
<카이저> 왜 이렇게 편지함에 편지들이 쌓이나 했더니 사고를 제대로 쳤더구나. 여기도 난리다.
―그게 그쪽으로 갔어요?
우리가 아예 차단해 버리니까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몰라도 길마인 사장님한테 부분적으로 간 모양이다.
<카이저> 무슨 연합 하자고 편지가 이렇게 많이 오는지 답장해 주는 것도 일이다. 아마 100위 안에 들어가는 상위 길드는 다 보내온 것 같은데.
아주 서버 전체가 난리가 났네.
<불멸> 안 그래도 사신 길드 길마가 아까 연합하자고 하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카이저> 음? 안 그래도 연락주려고 했는데 벌써 만났나? 당시엔 대답해 주기 좀 애매해서 연락해 보라고 했더니.
<불멸> 빨대 꽂으려고 하기에 깔끔하게 거절했죠.
<카이저> 잘했다. 다른 것들도 거절할까?
<불멸> 네, 지금 우리가 그거 받아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카이저> 알았다. 이제 던전 들어가냐?
<불멸> 네,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카이저> 올 때 메로나.
그 말에 바로 채팅을 꺼버렸다.
단체 채팅이라서 우리 팀이 보고는 큭큭 거리면서 웃는다.
부끄러움은 다 우리 몫인가.
나와 재중이 형도 마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자! 가시죠.”
내 말에 모두 던전이 있다는 곳을 향해 하나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좀 더 기다리자. 밤에만 들어갈 수 있다니까.”
“신기하네요.”
로스트 스카이에도 밤과 낮은 존재한다.
6시간 간격으로 서서히 변하는데 현실 시간으로 밤과 낮이 두 번 정도 바뀌는 셈이다.
우리가 지금 와 있는 곳은 중앙 광장에서부터 북남쪽의 한 커다란 중세풍으로 지어진 3층짜리 저택의 응접실이다.
챠밍과 이쁜소녀가 금이 입혀진 고풍스러운 장식들로 잔뜩 꾸며져 있는 응접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구경하고 있고.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잠시 기다리니 검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늙은 집사 NPC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왔다.”
아주 비싸 보이는 푹신푹신한 소파에서 반쯤 누워 있던 재중이 형이 일어나 NPC에게 다가간다.
“대체 저런 건 어떻게 알아낸 거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곳에 던전이 있다고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저도 잘 모르는데 전에 들어보니까 길드 내에서 일일이 NPC만 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요?”
방패전사가 길드 채팅을 보다가 알아낸 모양이다.
대단하네.
밤에만 열리는 던전에 일정 NPC를 만나야 하는 것까지 알아내려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걸까?
난 그런 건 귀찮아서 진짜 못할 것 같은데.
이러니 최강 소리를 듣는 건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차피 제한이라는 것이 없어서 나중에 공략이 나와 전부 알게 되긴 하겠지만 초반에 이렇게 독점할 수 있으면 정말 큰 이득이다.
잠시 집사 NPC와 퀘스트를 진행하던 재중이 형이 집사 NPC에게서 어떤 물건들을 받는 것이 보인다.
거울인가?
아니…… 유리 조각 같은데?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반대편이 비치는 손바닥 크기의 투명한 조각을 여러 개 받은 재중이 형이 그걸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뭐에요? 이건?”
이쁜소녀가 반짝이는 유리 조각을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보다가 재중이 형에게 곧장 물어본다.
“밤에 달빛에 비치면 유리 조각 너머로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린 그걸 찾아야 해요. 자! 다시 밖으로 나갑시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집사 NPC를 그대로 놔두고 3층 저택 뒤편의 정원으로 걸어 나갔다.
저택을 나오니 주변이 어두워져 완전히 밤으로 변해 있다.
【 라이트! 】
챠밍이 나오자마자 곧장 마법을 쓴다.
“이제 뭐하면 되는 건가요?”
밤이 돼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한 나르샤의 질문에 재중이 형이 손에 든 유리 조각을 들어 보인다.
“이걸로 저택 주변을 다 훑으세요. 그럼, 어딘가 이상한 장소가 있을 건데 보시면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매번 장소가 바뀌어서 이렇게 안 하면 못 찾는다고 합니다.”
“진짜 그 사람 대단하네요…….”
챠밍이 이런 것을 이틀도 안 되어 찾아낸 누군지 모를 그 길드원에게 감탄을 내비친다.
“있어요, 좀 무시무시한 사람이. 나도 가끔 무섭다니까요. 아주 집요합니다.”
재중이 형이 우리 대화를 들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재네. 인재.
일단 준비한 유리 조각을 들고 다들 저택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손바닥 크기의 유리 조각으로 저택 주변의 잔디들을 뒤지는데 정말 잔디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찾았어요?”
“아니요. 계속 찾아볼게요.”
내 말에 챠밍이 옆을 지나가면서 찾다가 다시 방향을 꺾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거 정말 되긴 하는 건가.”
그때 이쁜소녀에게서 하이톤의 외침이 들려 온다.
“찾았어요!”
이쁜소녀의 말을 듣자마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모두 이쁜소녀에게 달려갔다.
“여기! 후문 옆에 벽 아래요.”
이쁜소녀가 저택의 뒤쪽에 수풀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벽 밑으로 유리 조각을 가져다 대 비추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가 보인다.
“고생하셨습니다.”
“진짜네요.”
다들 신기한 듯 유리 조각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보다가 다시 눈을 떼서 그냥 바라보는데 계단이 안 보인다.
“정말 신기해요.”
챠밍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유리 조각과 그냥 허공을 번갈아 보면서 재밌어한다.
아마 저런 거 좋아했었지.
어떻게 보면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정말 만족시켜주기 힘든 사람이다.
마술쇼 같은 걸 보여주면 아마 엄청 좋아할지도…….
“들어가지.”
재중이 형이 먼저 수풀 위로 발을 들여놓았다.
원래라면 당연히 발이 수풀을 밟고 바닥에 닿아야 하지만 그대로 수풀을 통과하면서 재중이 형이 점점 바닥 속으로 사라진다.
“먼저 들어갑니다.”
방패전사는 이런 것들이 익숙한지 이어서 사라지고 그 뒤로 내가 따라 내려갔다.
흙 속으로 몸이 사라지는 기분이란…….
정말 묘하다고 해야 하나.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면서 머리까지 완전히 흙 속으로 들어가자 시야가 갑자기 확 변한다.
“여긴…….”
그리고 그곳엔 주변이 온통 흙벽으로 둘러싸여 습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지하수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