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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9화 (79/1,404)

# 79

#79화 화제의 중심에서 (4)

“포이즌 큐어하고 블러드 큐어는 챠밍 님 받으시고.”

챠밍이 큐어를 받더니 곧장 익혔다.

“아, 큐어가 세분화되어 있네요. 이건 독하고 아까 걸린 피를 빼는 블러드 형 스킬을 막는 용도에요.”

“큐어 하나로 다 해결되는 게 아닌가 보네요.”

“네, 어쩌죠…… 슬롯 창이 모자라요.”

챠밍이 현재 한 번에 세팅할 수 있는 스킬 개수는 지력이 10이라 6개다.

거기에 두 개나 되는 큐어를 넣는 것은 좀 힘들긴 하지.

“일단, 이 녀석을 잡을 때만 넣으세요. 당분간은 다른 곳에 쓸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현재 챠밍이 익힌 마법만 거의 15개 정도 된다.

거기서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제가 필수로 넣어야 하는 마법이 힐, 마나 리커버리, 프로텍트 쉴드거든요. 큐어들을 넣으면 아마 공격 마법은 하나 밖에 못 넣을 것 같아요.”

“난감하네요.”

“딱 하나 넣어야 한다면 당연히 파이어월이겠지만…….”

“레이드에서는 시야를 너무 가리죠. 그건.”

파이어월의 이펙트가 너무 커서 자칫 잘못하다간 네임드의 움직임을 전부 놓치고 만다.

파이어월을 쓴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다.

그나저나 공격마법이 너무 적은데?

발을 묶을 수 있는 아이스볼이나 바인드는 꼭 넣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여러모로 있지만 별수 없으려나.

“민첩 반지들을 빼면 좀 더 올릴 수는 있어요.”

“음, 그건 생각 좀 해보죠.”

지금 챠밍의 민첩에서 민첩 반지들까지 빼버리면 그냥 걸어 다니는 샌드백이 된다.

그건 피해야지.

자, 이제는 문제의 베놈과 블러디아.

“하…… 이게 알려지면 해적선은 씨가 마를 텐데.”

재중이 형이 벌써 미래가 그려지는지 걱정부터 한다.

“확실히 그렇죠?”

마력 흡수만큼이나 체력 흡수도 좋다.

아니 둘 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동급의 무기들이다.

이번엔 진짜 가지고 싶다.

블러디아.

마치 카스카라와 영혼의 투톱이 되어줄 것 같은 그럼 강한 끌림이 있다.

플레임 소드야 미안하다.

내 간절한 시선을 느낀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역시…… 니가 써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처럼 재중이 형이 블러디아를 들고 오더니 내 손에 턱 올려준다.

“나도 진짜 탐나는데 난 쌍검이 별로라.”

그리고 방패전사도 있는데 날 먼저 주다니 이것도 의외다.

탱커 입장에선 이건 억만금을 주고라도 구해야 하는 그런 아이템이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방패전사가 그저 웃는다.

“저야 챠밍 님도 계시고, 해적선이야 매일 털 수 있으니까 금방 다시 나오겠죠. 저도 욕심은 나는데 주호 님이 들면 더 날아다니실 거라고 확신하거든요. 방어전이 언제 열릴지도 모르니 저보단 주호 님이 드는 게 나을 겁니다.”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데도 밀어준다는 거네.

재수가 좋으면 내일도 나올 수 있지만 네임드 드랍이 종잡을 수가 없는데도 날 너무 믿어버리니 어떻게 해줄 말이 없어진다.

이럴 땐 그냥 한마디밖에 못 하겠다.

“잘 쓰겠습니다.”

이걸 들고 원하는 대로 날아다녀 주면 되는 거다.

“그럼 베놈이 문젠데…….”

재중이 형이 이번엔 베놈을 꺼냈다.

블러디아는 마치 처음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내 손에 들어왔는데 베놈은 또 다르다.

중독 효과라…….

새 네임드다 보니 아마 성능 자체는 출중할 거다.

아마 나처럼 중첩을 계속 걸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플레임 소드보다 훨씬 윗줄로 평가될 것은 확실하다.

장검 쓰는 사람이 어차피 방패전사 밖에 없으니 이건 정해진 건가?

이쁜소녀가 9강 양손검을 내려놓고 쓰기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그렇다고 챠밍이나 나르샤가 쓰기엔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와 잠시 대련을 해서 HP가 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좋네. 오래 붙어서 싸우면 딜량은 충분히 나오겠어. 한번 발동됐을 때 누적 딜량이 플레임 소드보다 월등하네.”

때리는 횟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만 공격을 잘 넣으면 딜이 나오는 그런 시스템이다.

재중이 형은 카스카라를 스위칭해서 쓰는 것에 충분히 만족해서인지 베놈에 잠시 관심을 가지다가 바로 방패전사에게 넘겨줬다.

“저도 잘 쓰겠습니다. 안 그래도 딜에서 좀 밀리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거라면 모자란 딜을 채워줄 것 같네요. 스파크 소드의 경직도 좋긴 한데 어차피 저도 딜을 내야 하니까요.”

방패전사도 베놈을 휘둘러보고는 만족스러워하는 눈치다.

“400개짜리는 되네, 확실히 좋아.”

“얻은 게 많네요. 생각지도 못하게.”

“앞으로 해적선하고 크라켄은 리젠 제대로 체크해야겠다. 이건 한 마리도 못 넘겨준다.”

“당분간 잡을 수 있는 사람들도 없을걸요.”

크라켄? 어림도 없다.

해적선? 소수로 올라타서 우리처럼 잡지 않으면 역시 답도 없다.

많은 사람이 올라타면 올라탈수록 힘든 게 해적선이다.

“자! 그럼, 마무리하자.”

크라켄과 해적선을 잡았으니 총 900개의 하르 조각을 수령하기만 하면 된다.

“저기…… 우리 점점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아요.”

이쁜소녀가 가만히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우리 배의 난간을 검지로 가리키는데 확실히 해적선의 난간과 높이 차이가 꽤 난다.

“이런, 빨리 뛰어요.”

내 말에 모두가 재빠르게 달려가 소형 카락으로 옮겨갔다.

“가라앉아요.”

“아깝다.”

“저게 얼마짜린데…….”

이쁜소녀, 챠밍, 방패전사가 깊은 바닷속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해적선을 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저게 나포됐으면 부자 됐을지도 모르겠다.”

재중이 형도 내심 아쉬운지 입맛을 다신다.

“그럼 완전 난리 나게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 하나씩 나포해 봐요.”

“하긴, 말이 안 되긴 하네.”

그렇게 완전히 가라앉은 해적선을 아련한 눈으로 보다가 베네아로 배를 돌렸다.

***

“쭉 생각해오던 게 있는데.”

“네? 뭐가요?”

“사장님한테 여러 정보가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냐?”

앞뒤 다 자르고 이상하다고 물어보면 내가 뭘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뜸 들이지 말고 바로 가시죠?”

“성격 급하기는.”

“누구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죠.”

나와 재중이 형이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방패전사,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가 나란히 앉아서 듣고 있다.

이미 해적선, 크라켄을 격침한 뒤인 데다가 폭풍우도 건너뛰었으니 항해 NPC에게 자동으로 선로를 찍어주고 우리는 앉아서 편하게 가는 중이다.

“이렇게 넓은 본대륙에 도시가 하나도 안 보여.”

재중이 형이 마치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엄청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다 돌아보지 못했다면서요. 발견 못 한 거겠죠.”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일단 지금까진 발견을 못 했지. 거의 이틀을 애들이 내달리고 있는데 말이야.”

“본대륙이 크긴 크네요.”

“어, 그래서 문제야. 중간에 징검다리를 해줄 포탈이 하나도 없어. 죽으면 다시 베네아로 와야 해.”

“그게 말이 돼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팀도 다들 귀를 쫑긋한다.

“그래서 길드원들이 빡쳐 있는 중이지. 실컷 달려갔는데 가다 죽으니까 베네아로 슝…… 여기서 문제. 포탈이 없으면 물약을 어떻게 수급해야 할까?”

재중이 형이 우리 팀을 싹 돌아보면서 질문을 날렸다.

챠밍, 방패전사, 이쁜소녀, 나르샤 모두가 이 문제에 난색을 보였다.

“베네아로 왕복하면서…… 이건 말이 안 되네요. 가까운 곳이야 어떻게든 하겠지만요.”

“사냥터가 멀수록 어렵죠, 그건.”

“전에처럼 보부상이 생기는 거예요?”

“아마 그건 어려울걸? 거리가 너무 머니까.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가 돼야 장사를 하지.”

모두 생각하는 바를 하나씩 말해보는데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해적선, 크라켄잡이요.”

“하르 조각 말이네요.”

“포탈이 없으면 중간에 뭐가 있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적지밖에 없거든.”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생각에 빠져들었다.

유적지라…….

도시도 없고 포탈도 없으니 중간에 그걸 대신하는 역할이라는 건가?

“저희가 할 일은 사냥터의 중간 유적지를 최대한 빨리 먹어서 거점을 만드는 거죠.”

“이야기가 딱딱 맞게 흘러가네요. 방어전에 네임드 사냥에 유적지라.”

“어, 우린 지금 다른 사람들보다 적어도 두세 발은 앞서 나가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어. 거기다 난 단순히 유적지가 연결고리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만큼 중요한 자리인데 거길 먼저 차지한 사람들에게 아무 이득도 없을까?”

재중이 형의 말에 챠밍이 생각나는 것이 있긴 한데 확실한 것이 아닌지 작게 중얼거린다.

“이득이라면…… 포탈비나 세금 아닐까요?”

“챠밍 님 전에도 이런 게임 해본 적 있어요?”

“아뇨, 그냥 이득이라고 하면 그런 종류일 것 같아서요.”

“진짜 감이 좋으시네요.”

저건 맞다는 말이겠지.

“적어도 앞으로 2주 안으로 유저들이 제일 처음 도착할 사냥터의 유적지 중 한두 개는 먹어놔야 해.”

재중이 형이 단언하듯이 강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 유적지당 최소 2만 개인데…… 그걸 언제 다 모아요.”

매일 크라켄과 해적선을 잡아도 하루에 900개가 끝이다.

내 앞으로 1700개가 있고 다른 사람들하고 다 합치면 3000개쯤 되니 거의 4000개.

앞으로 거의 2주간 꼬박 잡아도 모자란다.

“그러니까 우린 다른 네임드도 잡아야 한다는 거지. 방어전이 열리면 베스트고.”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야겠네요.”

“적어도 한두 개체 이상은 더 발견해서 꾸준히 잡아야 해. 지금 사장님이 물색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이건 왠지 하르 조각만 모은다고 다는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베네아에 도착해서 선착장에서 내렸는데 처음 보는 코그선들이 또 도착해 있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넘어오는데?”

“그러게요. 우릴 쳐다보네요.”

코그선에서 내려서 처음 베네아를 접하고 신기하게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소형 카락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시선을 뺏긴 듯 계속 쳐다본다.

어제 하루는 우리가 뱃길을 죄다 틀어막아 버렸으니까 지금부터 넘어오는 사람들이 진짜 섬에서는 날고 긴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섬 선착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 짓밟고 올라온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다.

자세히 보니 길드 마크가 대낫을 들고 있는 검은 사신을 살벌하게 표시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길드 이름도 어디선가 본 거다.

“사신 길드라.”

“전에 랭킹 볼 때 있던 놈들인데.”

방패전사가 슬쩍 랭킹을 다시 확인한다.

사신 길드에서 제일 높은 악마라는 사람이 현재 8위에 랭크되어 있다.

다르게 말하면 어제까지만 해도 필리언 서버 구 랭킹 2위라는 거고.

우리가 방어전으로 레벨을 뒤집지 않고 만났다면 꽤나 피곤할 수 있었던 상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재들 본 적 있어요?”

“우리랑 다른 고성 지역이라 몰라. 이름만 들어봤지.”

재중이 형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구나.

그때 갑자기 사신 길드 사람들이 몰려 있던 곳에서 한 명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뭐, 시작부터 두목이 나오네.”

재중이 형도 팔짱을 끼고 있던 것을 슬쩍 풀고는 걸어오는 사람을 마주 봤다.

랭킹 8위, 악마.

이름을 참…… 오글거리게 지었긴 한데 게임에서는 아주 만들기 힘든 아이디라고 하니까 인정해줘야 하나?

한쪽 헤어만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헤어샵에서나 볼 수 있는 검은 머리를 한 사내가 걸어오더니 우리 앞에 서서는 재중이 형에게 표정을 알 수 없는 묘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반가워 보이는 것처럼 인사하면서 입술은 웃고 있는데 글쎄…….

미묘하게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처음 뵙겠습니다. 사신 길드 길드장 악마라고 합니다.”

“최강 길드 불멸입니다. 길드장은 아니죠.”

“아, 이미 그쪽 길드장 님하고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괜찮은 분이더군요.”

사장님하고?

이제 도착한 사람들이 만날 기회가 있었나?

“이미 그쪽 길드장 님께 말씀드린 거지만 한 번 더 말씀드리죠. 본인 말고 불멸 님과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셔서요. 때마침 이렇게 만나서 다행입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혹시 저희와 연합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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