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화 화제의 중심에서 (2)
“해적선은 지금 바로?”
“음, 배 내구도도 엉망이고 쟤들 싸우다가 죽기라도 하면 좋은 일 하고 욕만 들어먹을 수 있으니까 일단 내려놓고 다시 오자.”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결과가 중요하다는 거네.
재중이 형의 의견에 따라 일단 베네아로 다시 배를 돌렸다.
좀 오가긴 하겠지만 오늘은 서비스다.
전 서버에 우리를 알릴 그런 서비스.
“카스카라는 어떻게 할까요?”
“분배보다는 다음 템을 넘겨주는 쪽이 낫겠지?”
“뭐, 어차피 우리끼리 잡을 거니까. 그게 속 편하겠네요.”
“다들 괜찮은가요?”
재중이 형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해오던 것과 같은 방식이라 거슬리는 것은 없다.
내가 인벤에서 꺼낸 카스카라를 들고 올려놓자 별다른 고민할 것도 없이 모두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본다.
“전에 방어전에서 하셨던 걸 보면 불멸 님이 먼저 쓰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방패전사가 방어전에서 윙드 스피어를 들고 사방을 커버했던 재중이 형의 활약이 기억나는지 바로 의견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도 딱히 방패전사의 의견에 이의가 없는지 카스카라가 그대로 재중이 형에게 낙찰됐다.
부두에 다다르자 내리기 얼마 전 몇 사람이 각자 원래 코그선의 뱃삯을 주는 것을 시작으로 다들 뱃삯은 물론이고 얼마간의 성의 표시를 하고 내렸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누구 한 명이 그렇게 돈을 내자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내고 내려서 추가 수입을 올렸다.
“알아서 내준 것을 보면 고마운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인맥을 이어나가겠다는 그런 의미도 될 거다.”
“단순히 랭킹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이득 보는 게 많네요.”
“어, 레벨이랑 랭킹이 여기선 힘이니까. 단순히 돈 몇 푼 안 내고 가는 것보다는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게 좋다는 거지. 앞으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우리가 길드원 모집이라도 해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을 그래도 한 번 더 살피지 않겠냐.”
어딜 가나 인맥이군.
그렇게 부두에 우리를 잘 홍보해줄 도우미들을 잔뜩 본대륙에 내려다주고 선박의 내구도를 고친 다음 곧장 다시 바다로 배를 띄웠다.
크라켄에 이어서 해적선까지 완벽하게 클리어해놓아야 이번에 우리가 할 일들이 극적인 효과를 보기도 하고 우리도 해적선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 잡기만 하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우리가 해적선을 잡고 나면 이젠 폭풍우에 걸린 사람들만이 재수가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다.
“이건 다 좋은데 선박 내구가 문제네. 매번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고.”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죠.”
배가 바다 중간쯤 닿았을 때 또다시 레서 크라켄을 타고 혼자 해적선을 찾으려 다녔다.
중간에 폭풍우가 불기 시작하자 잠수를 해서 외곽으로 싹 빠져나오니 거짓말처럼 폭풍우가 사라져 버린다.
―폭풍우는 지나가는 사람만 잡네요.
<불멸> 조심해라. 괜히 휘말리지 말고.
―외곽으로 빼니까 사라지네요.
저번엔 억지로 지나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돌파했지만, 지금은 그냥 피하면 된다.
조금 더 돌아다니자 어두침침한 기운을 풍기는 해적선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표 발견!
<불멸> 좌표 날려.
재중이 형의 답변에 바로 좌표를 날리고 일단 해적선 주변을 맴돌았다.
자…… 저걸 어떻게 요리한다?
갑판 위에 50마리라.
포갑판에 붙어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면 대략 40 정도 되려나.
코그선을 타고 있던 100명이 저걸 감당 못 한다는 것을 보면 섬에서 넘어올 수준으로는 2명이 하나를 못 잡는다는 소리와 같다.
―잠시 간만 좀 볼게요.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계획을 짜죠.
<불멸> 금방 간다.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면 바로 빠져.
이건 레서 크라켄이 있으니 언제든지 배에서 뛰어내려서 타고 튈 수 있다.
정말 효자네.
레서 크라켄이.
케르베로스를 타고 다닌 시간보다 레서 크라켄을 더 오래 타고 다니는 것 같다.
파도를 헤치고 해적선에 바싹 붙어서 베네아 잡화점에서 사 온 갈고리를 위로 던졌다.
철컥.
잘 걸렸네.
그대로 갈고리에 달린 줄을 타고 해적선 위로 올라탔다.
힘이 대폭 늘어났더니 이젠 이런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된다.
해적선을 올라타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해적이 어슬렁어슬렁 거리면서 주변을 배회하다가 내가 보이자 상당수가 나에게 덤벼오기 시작했다.
【 라이트 웨폰! 】
카스카라와 플레임 소드에 빛을 입히고 곧장 제일 앞에 달려든 해적의 장검을 쳐내 봤는데 생각 외로 반동이 적다.
어? 뭐지…….
얘들 정말 센 거 맞아?
거기다 애들의 반응이 너무 느리다.
아니지, 내가 너무 빠른 건가?
무기와 악세 등이 대부분 민첩을 올려주고 레벨 업 할 때마다 민첩만 올렸더니 내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해적들보다 훨씬 빨라져 버렸다.
거기다 파워글러브 덕분에 힘이 잔뜩 늘어나서 힘에서도 절대 안 밀리고 오히려 압도하는 느낌까지 든다.
사실 엄청 세다고 해서 살짝 쫄았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지.”
그대로 장검을 빗겨 치고 목을 플레임 소드로 가르니 바로 크리티컬이 터진다.
한 번 더 목을 쳐내니 이번엔 경직까지 걸렸다.
파워글러브 만세다.
움직이지 못하는 해적의 목을 연속으로 가르니 대미지가 얼마나 잘 터지는지 바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서 쓰러졌다.
다음 해적이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드는데 왠지 될 것 같은 기분에 자세를 한껏 낮췄다가 튕겨 나가듯 팔을 강하게 뻗어 카스카라로 방패를 후려치니까 방패 채로 해적이 뒤로 확 밀려 나가 버렸다.
이래서 힘전사, 힘전사 하는 거네.
손맛이 다르다.
그간 피하면서 크리티컬 빨로 대미지를 냈던 것과 다르게 이건 뭘 해도 대미지가 터진다.
“이거 재밌네. 재밌어.”
손맛이 너무 짜릿해서 중독될 정도다.
이래서 이쁜소녀가 양손검만 고집하는 건가?
한 손 검이지만 장갑 덕에 힘이 더 붙으니까 한 방, 한 방이 양손검으로 후려칠 때 나오는 이펙트가 일어난다.
거의 20마리의 해적들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데 전혀 쫄리지 않는다.
이런 것도 될 거 같은데.
제일 앞에 있던 원형 방패를 들고 있던 해적의 방패 윗부분을 강하게 카스카라로 치니까 윗부분이 기울어지면서 45도 정도 방패가 확 누워버렸다.
그대로 발로 방패를 밟고 점프해서 20마리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가 조타를 보고 있던 해적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두 손으로 조타를 잡고 있어서인지 순간 반응을 못 해 멀뚱히 날 쳐다보는 걸 달려가던 속도를 그대로 살려서 최대한 몸을 비틀어 짜내다가 풀어내면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해적의 머리를 플레임 소드로 찍었다.
퍼억!
엄청난 격타음과 함께 해적의 머리가 뒤로 확 꺾이더니 단 한 방에 전투 불능이 돼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속도를 한 점의 낭비 없이 그대로 전달해 검에 실었더니 딱 한 방이 나온다.
―형.
<불멸> 왜? 힘들어? 다 와 간다 좀만 버텨.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진짜 장난 아니게 센 거 같아요.
<불멸> 뜬금없이 그게 뭔…….
이건 내가 내 힘이 주체가 안 된다.
민첩만 잔뜩 늘어났을 때 느꼈던 뭔가가 비어 있던 가벼운 느낌이 충만하게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잽 한발 한발이 스트레이트가 되는 그런 좋은 느낌에 두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파워글러브 꼭 끼세요. 두 번 끼세요. 초대박임.
<불멸> 놀리냐. 없어서 못 끼는구만.
내가 멀어지자 해적 몇 마리가 활을 꺼내서 날리는데 카스카라와 플레임 소드의 각도만 살짝 기울여 촉만 미세하게 뒤틀어 날려 보냈다.
힘이 늘어나니까 대미지가 들어오는 것도 확 내려간다.
때로 화살의 각도가 안 좋을 때 반동이 걸리면서 한 번씩 HP가 푹 내려갈 때도 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힐을 쓸 필요도 없겠는데?
물약의 회복력만으로도 거의 풀 HP다.
다시 20마리의 해적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플레임 소드를 잠시 집어넣고 갈고리를 꺼내서 사각돛의 기둥을 연결하던 이음새로 던졌다.
팽팽하게 걸리는 갈고리를 확인하고 줄을 당기면서 반원을 그리듯 달려 난간을 발로 밟고 높이 점프했다.
기둥을 축으로 내 몸이 붕 뜨면서 난간 밖으로 몸이 훅 날아갔다가 원심력이 잔뜩 걸려 다시 배 안으로 돌아오면서 20마리의 해적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뒤쪽의 궁수들이 있는 곳으로 착지를 했다.
바로 소드를 꺼내면서 달려들어 제일 앞에 있던 궁수의 목을 그대로 갈랐다.
특유의 갈라지는 느낌을 뒤로한 채 곧장 뒤에 있던 궁수 두 마리의 목을 동시에 플레임 소드와 카스카라로 베어낸 뒤 다시 점프해서 옆에 있던 궁수의 머리를 두 개의 검으로 찍어버렸다.
네 마리가 동시에 경직이 되면서 일대가 조용해진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 번 목을 쳐내자 네 마리의 궁수들이 완전히 쓰러졌다.
―형, 여기 혼자 다 쓸어도 돼요?
<불멸> ……좀 남겨주라.
―어…… 갑자기 안 들리네요.
<불멸> 크크, 아 진짜 알아서 해.
다시 덤벼드는 20마리의 해적들에 다시 난간으로 올라가 갈고리를 위로 걸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줄을 짧게 고쳐 잡고 몸을 앞으로 날리면서 두 다리를 L자로 세워 제일 앞에 달려오던 녀석을 향해 양발로 가슴을 강하게 쳐냈다.
앞에 녀석이 쓰러지면서 뒤에 놈들도 도미노처럼 몇 마리가 쓰러져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쓰러진 해적의 머리를 카스카라와 플레임 소드로 내려찍어서 저 세상으로 보내준 뒤 다시 한 번 다른 녀석의 머리도 찍어냈다.
그사이 달려드는 해적의 검을 옆으로 쳐내 두 마리가 같이 엉키게 만들고 발로 명치를 차내 다시 우르르 쓰러지게 했다.
그렇게 하나를 잡고 하나는 쓰러뜨리고를 반복하니 어느새 해적의 숫자가 20으로 줄어 있다.
조타수를 제거했더니 배가 아예 멈춰 우리 배가 드디어 주변에 도착했다.
―오셨네요.
<불멸> 정말 다 잡은 거 아니지?
―아쉽게도 20마리나 남았네요.
<불멸> 원래 몇 마리였는데?
―50마리쯤?
<불멸> ……혼자 다 해 먹어라.
말은 그렇게 해도 곧장 배를 대서 갈고리를 걸고 우리 팀이 해적선으로 넘어왔다.
“으아. 진짜 다 쓸어버리셨네요.”
“우리 돌아가요?”
“몇 마리 없어…….”
방패전사, 챠밍, 이쁜소녀가 각자 주변을 보면서 살짝 김빠진 투로 한마디씩 한다.
북적북적하던 해적선이 지금은 꽤 널널하거든.
재중이 형을 시작으로 우리 팀이 모두 달려들어서 2차전을 시작했다.
모두 갑옷, 방어구가 다 바뀌고 악세도 싹 갈아놓은 데다가 레벨 업으로 인해 스탯도 엄청 올랐으니 그렇게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예상한 대로 방패전사는 시종일관 방패로 내세워서 모든 공격을 막고 흘려내면서 스파크 소드에 라이트 소드까지 입혀서 두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 중이다.
이쁜소녀도 나와 같은 비스트 경갑을 입었는데 여성용에 분홍색으로 염색을 해서 그런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든다.
전장 속에서 막 꽃이 피어난다고 해야 하나.
분홍색의 잔광이 지나가자 양손검에 쓸려나간 해적들이 대자로 쓰러지는 것을 보면 완전히 광전사가 따로 없다.
재중이 형은 역시나 한 손 검도 기가 막히게 잘 쓴다.
카스카라로 마력을 빨고 다시 스위칭해 윙드 스피어로 마무리를 하는 식으로 깔끔하게 처리 중이다.
챠밍은 움직이지 못하게 묶고 나르샤가 일점사해 하나씩 착실하게 눕혀 버리면서 어느새 20마리가 넘는 해적이 모두 쓰러졌다.
“너무 적어요…….”
이쁜소녀가 만족스러운 전투를 못 했는지 불만스러움을 잔뜩 내비친다.
좀 할 만하니까 몹이 싹 누워 있으니 나라도 감질날 것 같다.
“얘들이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챠밍도 별로 긴장도 안 하고 마무리 지어서 김이 빠진 모양이고.
“이걸 못 잡아서 코그선이 못 넘어온 겁니까?”
방패전사가 새로 구한 V자 형태의 카이트 쉴드를 내려놓으면서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다.
1만 몬스터 부대와 긴장된 전투를 치르면서 다들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다.
이 정도로는 몸풀이도 안 된다는 거네.
“끝인가?”
재중이 형도 창을 바닥에 내리꽂으면서 주변을 보는데 주변엔 몬스터라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그때 갑자기 해적선의 아래 선창이 쿵쿵 울린다.
뭐지?
잠시 기다리니 검은 안개를 넘실넘실 피워대는 해적 선장이 양손에 두 자루의 녹빛과 핏빛 장검을 들고 계단을 올라와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