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75화 베네아 방어전 (3)
『 +0 파워글러브 / 방어력 6 / 근력+5 』
이걸 당장 값으로 매길 수는 있을까?
근력이 무려 5나 붙었다.
레벨로 치면 10이 더 올라가는 거고 힘이 2.1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힘이 대폭 늘어나서 굳이 크리티컬에 의존하지 않고 아무 곳이나 막 내리쳐도 평균 이상의 딜을 뽑아낼 수 있는 그런 템이 지금 내 손에 있다.
<불멸> 야, 아이템 어때? 좋아?
―근력+5 요.
심플하게 스탯을 말해줬더니 반대편 보이스에서 바람 켜는 소리가 들린다.
<방패전사> 미쳤네요. 근력이 5나…….
<이쁜소녀> 우와! 대박!
챠밍과 나르샤도 놀라긴 하는 데 주력 스탯이 좀 다르다 보니까 놀람의 강도가 좀 약하긴 하다.
<불멸> 돌았네.
―그쵸?
일단 착용했다.
너무 아이템을 토글하면 무게가 나가서 대부분 버리고 다녔는데 이건 무거워서 죽더라도 먹어야지.
힘이 5가 늘어나자 온몸이 밸런스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 난다.
더할 나위 없이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에 손을 가볍게 쥐었더니 힘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이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정돈데?
―장난 아닌데요.
<불멸> 좋겠다. 나쁜 새끼. 좋은 거 혼자 다 먹고.
부러움이 듬뿍 담긴 재중이 형의 투덜거림에 그저 웃는다.
그와는 별개로 이제 슬슬 끝을 볼 시간이 다가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멀리 있는 성벽을 치는 몹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합쳐서 1천 정도 잡았으니 대략 9천 정도 남았나?
―형, 물약 관리는 어때요?
<불멸> 거의 없지, 이제.
<이쁜소녀> 저도 거의 다 썼어요.
<챠밍> 제 것도 다 드렸는데.
<나르샤> 저도 다 줬어요.
<방패전사> 2, 3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는데 한계죠.
확실히 여기까지인가?
―저도 물약이 이제 없네요.
마법을 반사하면서 마력을 빨아 힐을 써도 기본 힐로는 한계가 보여서 물약을 아주 안 쓸 수는 없었다.
처음에 자리를 잡으면서 썼던 물약도 상당했고 꾸준히 물약을 들이켜면서 했으니까.
<이쁜소녀> 아쉽다.
<챠밍> 정말 그러네요.
<불멸> 어쩔 수 있나. 준비가 모자랐어.
다들 아쉬워하네.
진짜 물약만 더 있으면 어떻게든 끝까지 비벼보겠는데 이젠 죽어서 경험치 떨어질 일만 남았으니 여기까지가 끝이다.
―마무리 짓죠.
별수 없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좋아 보이는 아이템만 눈대중으로 보고 집어서 성벽 위로 던졌다.
그대로 놔두면 사라지니까 얼른 넘겨줘야 한다.
내 인벤은 가득 차서 더 넣을 수도 없다.
힘이 늘어나니 이건 좋네.
잡히는 대로 대충 던져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간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알아서 확인 요망.
<불멸> 복덩이네, 복덩이.
무거워서 바닥에 그냥 뒀던 아이템을 대부분 집어던지고 나니 주변 성벽에서 어슬렁거리던 몹들이 다시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다시 올라가요?”
“사다리 있어. 방패전사 님.”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를 부르자 곧장 사다리가 성벽에서 내려온다.
“올라와.”
사다리를 올라 성벽 위로 돌아오니 내가 있던 자리로 다시 몬스터 웨이브가 몰려들어 필드를 가득 채웠다.
“휴, 좀만 늦었음 털렸겠네요.”
“딱 좋을 때 빠지는 거지.”
“이거 끝낼 수는 있어요?”
“어, 아까 뒤에 있던 병사 NPC에게 말하면 중간에 나갈 수 있어.”
“다행이네요.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지 알았는데. 근데 중간에 나가면 완료 보상은 다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뭐 한만큼 받아가는 거지. 이건 참가 보상이랑 개인 보상만 나오겠네.”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는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우리가 방어전 퀘스트를 마무리하자 퀘스트가 끝난다는 시스템 음과 함께 계단을 통해 여러 전투 관련 NPC들이 올라왔다.
금과 은으로 장식된 엄청나게 화려한 로브 복장을 한 마법사 NPC들이 은색 갑주를 걸친 수행 기사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대동하고 계단을 올라와 성벽에 섰다.
그리고 화려한 로브에서 정말 비싸 보이는 불타오르는 문양을 박혀 있는 수정 지팡이를 꺼내 정면으로 들자 발아래로 엄청나게 복잡한 각양각색의 빛의 마법진이 생성되어 회전을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가던 거대한 마법진이 회전하는 속도가 임계점에 다다르자 바로 이어지는 마법사 NPC들의 영창.
【 파이어 스톰! 】
【 아이스 스톰! 】
【 일렉트릭 스톰! 】
수십 개의 다양하고 강력한 마법들이 만들어낸 이글거리는 화염의 불구덩이, 살벌하게 얼어붙은 대지, 온통 튀겨지는 허공의 스파크의 향연으로 9천에 달하는 그 많던 대군들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그리고 성벽에 올라온 몬스터들은 은색 갑주를 입은 수행 NPC들이 돌아다니면서 싹 쓸어버리는 중이고.
서비스가 확실하네.
저런 게 있었으면 처음부터 쓸 것이지.
아니 그러면 애초에 퀘스트 자체가 안 되는 건가?
“대박.”
“정말 굉장하네요. 그 많던 몹이 거의 사라졌어요.”
“뭐, 저 정도 위력이면 도시가 함락되고 할 일은 없어 보이네요.”
드래곤 같은 것이 오지 않는 이상은 안전할 것 같다.
이쁜소녀, 챠밍, 방패전사의 놀란 감상을 마지막으로 장장 세 시간에 걸친 방어전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을 기약하죠.”
아쉬움에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이끌고 성벽을 내려갔다.
***
성벽을 내려와서 성과부터 확인했다.
우리가 잡은 것이 전부 1127마리.
개인 랭킹은 당연히 내가 1등이고, 길드 랭킹도 당연히 1등이다.
2등은 챠밍, 파이어월의 화력에 힘입어 당당하게 2등을 차지했다.
3등은 끝까지 화살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나르샤가.
4등은 챠밍과 함께 옆에서 광역 마법을 쓰다가 죽었던 아이꿍이 차지했다.
평범하게 사냥했으면 며칠을 꼬박 잡아야 할 것들을 카스카라, 케르베로스, 마법사 부대와 파이어월의 몰이 덕분에 몇 시간 만에 해결했다.
그 덕에 지금 레벨이 상당히 올라와 있는 상태다.
재중이 형은 5렙이 오르고 우리는 모두 6렙씩 올라 형은 31렙이 됐고, 나는 정확히 30렙을 찍었다.
“거의 폭렙이네요.”
가면 갈수록 필경이 올라가 렙을 올리기 힘들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거의 노다지나 마찬가지다.
“내일 랭킹 갱신되면 난리가 나겠네.”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랭킹 1위에서부터 쭉 우리 이름이 나열될 거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벌써 궁금해지네.
“진짜 엄청 주목받을 것 같아요.”
챠밍의 놀라는 말에 재중이 형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저희가 해온 것에 비해 렙이 좀 후달렸던 건 사실이죠. 제 위로도 랭커들이 엄청 있었으니까요.”
1서버 지갑 전사들 말하는 거다.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컨트롤로 치면 최상급인 재중이 형이 6강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가지고도 랭킹을 뒤집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뒤집은 셈이다.
“다행히 출발선을 맞췄네요. 이거 하나만으로 케르베로스를 잡고 먼저 건너와 방어전에 참여한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재중이 형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본다.
경위야 어쨌든 선점해서 먼저 본대륙으로 왔고 그 과실을 살짝 구경한 셈이다.
“일단 가볍게 꿀을 빨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생각보다 시작이 좋네요.”
가볍게 빨았다는 건 앞으로 빨 게 많다는 소리겠네.
“일단 아이템 정리부터 하죠.”
워낙 급하게 주워서인지 모두 인벤 창이 엉망일 게 분명하다.
“이 악세는 챠밍 님 쓰면 될 것 같고. 플레이트는 방패전사 님…….”
서로 아이템을 꺼내서 비교해 보고 쓸 사람들에게 먼저 넘겨줬다.
한참을 분배하고 난 뒤에야 겨우 목록이 정리됐다.
이제 남은 건 강화를 하고 컨셉에 맞게 장비를 구성하는 일뿐이다.
“파워글러브가 아쉽네. 하나 더 구했으면 좋겠는데.”
재중이 형이 아쉬워할 만도 한 게 달린 스탯이 엄청나니까.
“방어전 열리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요. 오우거부터 무조건 잡고 시작하죠. 아니면 오우거가 리젠 되는 곳을 반드시 찾던가요.”
이제까지 그렇게 아이템 욕심이 없어 보이던 방패전사도 파워글러브는 상당히 욕심이 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몸으로 직접 부대끼는 스타일이라 힘과 체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은 정말 도움이 되니까.
아마, 오우거가 나오는 장소가 핫 플레이스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미리 찾아내서 꾸준히 잡아야지. 이런 게 선점하는 이유니까.”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오면 피 튀기겠습니다.”
재중이 형의 말에 방패전사가 앞으로의 일을 예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정도 아이템이 나올 정도면 누구도 쉽게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오크 마법사 나올 때랑 비슷한 거죠?”
이쁜소녀가 물어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못하면 진짜 근처만 지나가도 칼질을 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기대와 설렘이 내 마음속 한구석을 스치는 기분이다.
***
성벽 아래서 좀 기다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고생했다.”
“진짜 개고생했어요.”
“정말 그 정도로 잡을 줄은 몰랐네. 어이구. 레벨들 봐라. 난리 나겠다.”
사장님의 호들갑에 힘겹게 사지를 헤치고 나온 전우의 웃음으로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뭐, 그동안 이쪽은 다른 NPC들에게 정보를 좀 캐봤지.”
그렇게 사장님이 먼저 내려와서 얻은 정보와 우리가 얻은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이동해 다닌다라…… 굉장히 특이하네요.”
“여기 광장에 있는 빛기둥을 유지하는 하르라는 원석 때문에 한 번씩 몰려든다고 하던데? 방어전은 그걸 막는 거고.”
너무 급하게 방어전에 참여해서 그런지 상세한 사항은 하나도 몰랐네.
주변 NPC들하고 대화를 해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을 이제야 알게 됐다.
베네아 주변 몬스터가 몰려드는 거라면 다음에도 비슷한 숫자로 몰려오는 것이 정상일까?
아니면 한 번 싹 쓸어버렸으니 소수만 오는 것이 정상일까?
이건 지나봐야 알겠네.
일단, 이번 한 번의 경험.
시행착오를 거친 이 경험이 다음에 참가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거다.
“보상받으러 가 보죠.”
내 말을 시작으로 다들 퀘스트가 표시해 주는 길드 관리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쪽 지구에 주변 건물보다 크게 지어진 3층으로 된 길드 관리소 건물에 도착해서 보상을 확인했다.
길드 기여도는 당연하게도 1위다.
애초에 우리밖에 없으니까.
원래라면 최강 길드 이름으로 하르 조각 1000개가 나와야 하는데 퀘스트를 중간에 나와서 그런지 완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참가 보상 약간과 개인 보상만이 나왔다.
개인으로는 몹을 잡는 것에 따라 정산을 추가로 받는 모양인데 나 혼자 잡은 것만 500마리가 넘어간다.
거기다 단순히 마릿수가 아닌 몬스터들 사이에도 등급이 있는 모양이고.
오우거 포함 굵직한 몹을 다수 잡아서인지 1700개가 넘는 하르 조각을 1등 보상으로 받았다.
“혼자서 길드 보상 보다 많이 받다니…… 확실히 많이 잡긴 잡았네.”
사장님이 내 킬 수를 보고 깜짝 놀라시더니 보상이 나오는 걸 보고는 더 놀라신다.
당장 우리만 참여했으니 좋은 꿀은 다 빨아 먹은 셈이다.
받긴 받았는데 이걸로 뭘 하는 거지?
사장님이 관리관과 대화를 해보더니 용도를 알아내셨다.
“제일 작은 원석이 2만 개의 조각으로 하르 원석을 제작하는 거군.”
우리끼리 이번에 잡은 걸 다 모아 봐도 3000개가 안 되는데…….
이걸 언제 다 모으지?
근데 하르를 언제 들어봤더라?
“아! 아까 광장.”
이쁜소녀가 제일 먼저 생각해냈다.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이유가 되는 광석.
“이걸 모아서 원석을 만들고 유적지에 세우면 방어 타워가 된다라…… 거기다 유지하는데도 소모되고. 이거 생각보다 많이 중요한 물건인데?”
사장님이 말씀하는 걸 들어보면 유적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을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중이다.
“원석으로 바꾸는 것도 방어전과 토벌 퀘스트 같은 걸로 일정 이상 횟수를 채워야 해주는 것 같고.”
“무조건 방어전에 참여해야 하네요. 조각을 모으려면요.”
챠밍이 방어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다음 방어전이 언제인지 알 수 있나요?”
“음, 무작위 같은데.”
이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네.
최대한 우리끼리 있을 때 더 해 먹어야 하는데 주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일일이 체크하기가 힘들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토벌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데 이것도 괜찮은 방법이네.”
관리관에게 확인해 보니 토벌 목록이 주르륵 나온다.
처음 보는 네임드인 것 같은 몬스터 이름이 잔뜩 나열되어 있다.
이름을 아니까 어떻게든 길드원들을 통해서 본대륙에 있는 네임드들을 다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강하고 약하고는 나중 문제다.
일단 네임드 이름들을 모두 머리속에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몇 개 보인다.
“레서 크라켄 500개, 해적선 400개인가?”
이게 토벌 목록에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
잘하면 꿩 먹고 알 먹고 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깝네요. 토벌 퀘스트 받고 가서 죽였으면 500개를 추가로 받는 건데.”
방패전사가 내심 아쉬워한다.
“정말 아쉽네요.”
“아까워.”
챠밍과 이쁜소녀도 같은 마음인가 보네.
“그럼, 그 아쉬움을 달래러 가볼까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모두가 날 쳐다본다.
“그러니까 네임드란 네임드는 다 쓸어버리자는 겁니다.”
그래, 이젠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유적지를 남들보다 빨리해 먹으려면 이젠 잡을 수 있는 네임드를 리젠마다 족족 다 먹어치워야 하니까.
본대륙의 네임드들을 모두 잡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