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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1화 (71/1,404)

# 71

#71화 레서 크라켄 레이드 (2)

폭풍우를 지나오니 정말 잔잔한 바다가 나와 그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저 진짜 피곤해요.”

“고생했어요.”

내가 파김치가 되어 그 자리에 누워버리자 챠밍이 옆으로 와서 앉아 미소 지었다.

“이건 정말 힘드네요.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요.”

“덕분에 저희가 다 살았네요.”

“해적선은 못 봐서 모르겠지만 차라리 해적선이 나을 것 같네요. 싸우는 게 낫지.”

내 말에 챠밍이 밝게 웃어 보인다.

나중에 돌아가는 길은 좀 편했으면 좋겠는데 이건 정말 장담을 못 하겠다.

“길드 사람들은요?”

“사장님이 이야기하시던데 아마 선착장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영해서 넘어올 거라고 해요.”

이제 챠밍도 사장님이라고 하는구나.

그나저나 수영이라…….

완전히 먼 거리만 아니면 충분히 가능하긴 하다.

괜히 배를 섬에 너무 가까이 대서 사람들이 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그게 더 곤란하다.

꽤 신경 쓰면서 진행하는 모습에 안심이 된다.

“우리 뱃값을 내줄 귀중한 손님들이니 잘 모셔야죠.”

“정말 그러네요. 저 그럼 사다리 내려주고 올게요. 다 왔나 봐요.”

“전 좀 누워 있을게요.”

사실 이게 상당한 정신노동이라 눈을 감고 조금 쉬어줘야 한다.

뭐, 예의 없게 보이진 않겠지.

예의보단 당장 내 피로를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돌아갈 때 다시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법이 없으니까.

잠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길드원들이 올라타면서 갑판 위가 시끌시끌해진다.

“여! 히어로. 잘 쉬고 있나?”

“네, 아주 푹 쉬고 있어요. 등이 좀 축축하긴 한데.”

재중이 형이 피식 웃고는 옆에 와서 누웠다.

“시원하네.”

“사람들 안 보러 가요?”

“그놈이 그놈인데 보면 뭐하겠냐. 그런 건 사장님이 잘하시니까 넣어둬.”

천하태평이시네.

나도 남 말 할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사람들이 다 탔는지 배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탔나 보네요.”

“일단 쉬고 있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 알아서 해주니 편하긴 하네.

“폭풍우야 그렇다 치고, 크라켄 같은 건 어떻게 해요?”

“운에 맡겨야지. 그건.”

챠밍이 크라켄이 보고 싶다고 했던가?

그나마 해적선이 나을 것 같은데…….

이쁜소녀가 이번엔 이겨주길.

***

“진짜 재수 지지리도 없나 보다. 우린.”

재중이 형이 난간을 있는 힘껏 쥐면서 먼바다를 노려보고 있다.

“챠밍 님이 이겼네요.”

“저건 진짜 답도 없는데…… 사장님, 최대한 밟아 봐요.”

“이게 스포츠카인 줄 알아?! 지금이 최대 속도야.”

“하아. 미치겠네.”

어떻게든 멀어져야 하는데 멀어지기는커녕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저건 공략법 같은 거 없어요?”

“일반적인 거? 특수한 거?”

“쉬운 걸로 부탁해요.”

쉬운 게 있긴 하려나.

“그나마 진짜 크라켄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 레서(lesser) 크라켄 』

“이럴 땐 짝퉁이 고맙네.”

보다 작기는 한데 크라켄은 크라켄이라서 소형 카락 정도는 쩜쩌먹을 크기가 된다.

주변을 보니 모두 부산하게 위치를 잡으면서 움직이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다.

애초에 규격 자체가 다르다.

“너무 큰데…….”

레서 크라켄이 어느 정도 카락에 접근하더니 붉게 변한 빨판이 잔뜩 달린 다리 하나가 갑판 위로 척 올라왔다.

동시에 소형 카락의 내구도가 서서히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떼어내!”

“마력 다 써도 되니까 일단 질러!”

그 말과 동시에 수십 명의 길드원의 무기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장관이네.

라이트 웨폰이 많이 풀렸다지만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수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썰어!”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수십 개의 빛의 향연이 크라켄의 다리로 쏟아져 내리면서 수많은 대미지 잔상을 남겼다.

일단 어떻게든 다리만 떼어내면 코그선과 다르게 내구도가 월등한 소형 카락이 버틸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에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한다.

“저도 가야겠어요.”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팔을 거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내 전문이기도 하고.

『 +7 플레임 소드 / 출혈 15 (8+7) 타격 11 (4+7)

민첩 +1, 화염 효과, 크리티컬 대미지 +1 』

7강 플레임 소드를 들고 길드원들 사이에 한 자리 차지하고 서서 그대로 같은 자리만 냅다 그어대기 시작했다.

크라켄은 생물이라 출혈 대미지로만 치면 동급 무기 중 최강의 대미지가 나온다.

거기다 크리티컬에 더불어 중첩까지 쌓이면 무시 못 할 대미지를 뽑아내니까.

바로 이걸로 케르베로스를 잡았으니 성능은 누구보다 내가 자신한다.

단순히 제자리서 딜만 넣는 거면 날 따라올 사람은 이 게임 안에선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일부러 라이트 웨폰을 쓰지 않는 중이다.

플레임 소드의 특수 효과에 박아 넣을 마력도 부족하니까.

주변에서 라이트 웨폰을 쓰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겠지만 지금은 딜 넣는데 신경을 최대한 써야 한다.

소형 카락의 내구도가 1/5 정도 깎였을 때 커다란 다리가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갑판에서 내려갔다.

“나이스!”

“예스!”

“수고했습니다!”

주변에서 환호성이 바로 터져 나온다.

듣기로 대부분 이 다리 때문에 침몰했다고 하니까. 소형 카락이 버텨준 덕분이기도 하고 길드원들 전체적으로 딜이 좋다.

거기다 내가 있으니.

“이걸로 끝?”

여기까지 페이즈가 넘어간 사람들이 없다 보니까 모두 긴장은 하고 있긴 한데 서로 어리둥절할 뿐 답을 주는 사람이 안 보인다.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으면 폭풍우 때 내가 그 고생을 안 했지.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커다란 다리 두 개가 갑판 위에 올라와 앞뒤로 걸쳐져 배를 뒤흔든다.

거기다가 작은 다리 네 개가 중간에 올라와서 길드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친.”

“이게 뭐야.”

길드원들이 웅성대고 있을 때 곧장 사장님이 고함을 쳐서 길드원들에게 바로 임무를 내려준다.

“2팀, 3팀, 4팀 앞 갑판 다리. 5팀, 6팀, 7팀 뒷 갑판 다리. 1팀은 나와 작은 다리들 맡는다. 빨리빨리 움직여!”

박력 엄청나신데.

주변을 사로잡는 기백이 느껴진다.

매번 우리와 장난치면서 웃던 모습과는 정말 느낌 자체가 다르다.

이게 길드장이구나.

사장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자 맡은 자리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자기 역할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주호, 넌 네 팀 데리고 딜 모자란 곳을 도와주고.”

나도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우리 팀을 데리고 앞 갑판 다리로 달려갔다.

일단 하나라도 떼야 그다음이 보이니까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두 딜 시작해요.”

내 말에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 할 것 없이 모두 최고의 딜을 뽑아내기 위해 마력을 쏟아부었다.

“챠밍 님.”

“네!”

이건 도박인데…….

파이어월이 선박 내구에 영향을 주면 그야말로 망할지도 몰라서 이제껏 봉인했는데 이제 방법이 없다.

산술적으로 이 소형 카락은 지금 페이즈를 못 버틴다.

“파이어월 그냥 써요. 우리가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니까.”

누적 딜량으로 치면 제자리 딜은 파이어월이 최강이다.

“진짜 써요?”

“네. 책임질 테니 쓰세요.”

“그럼 가요!”

챠밍이 풀 차징한 파이어월을 앞 갑판에 깔린 큰 다리에 내리깔자 주변이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웃, 뭐야.”

“누가 썼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과 별개로 내 눈은 소형 카락의 내구도에 가서 움직일 줄 모른다.

10, 9…… 3, 2, 1.

됐다.

“성공.”

선박 내구가 생각보다 덜 깎인다.

아군으로 인식되는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만 좋으면 된다.

이쪽이 파이어월로 대미지를 올리자 반대편에서도 파이어월이 금세 솟구친다.

하긴 챠밍 혼자 이걸 쓴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누군가 해서 봤더니 그간 같이 다녔던 아이꿍이 지팡이를 강하게 잡고 파이어월을 시전하고 있다.

“언제 한번 불꽃놀이를 해봐야겠네.”

최강의 딜러들이 둘이나 있으니.

소모 마력이 최고지만 누적 딜량도 최고다.

파이어월의 딜에 힘입어서 두 개의 다리가 다시 바닷속으로 끌려내려간다.

“이번엔!”

“설마…… 또?”

서로 반신반의하면서 레서 크라켄을 보는데 도저히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카락의 내구도를 보니 겨우 1/5 정도만 남은 상황.

지금 다시 다리가 떨어지면 이번엔 진짜 끝이다.

“함포가 혹시 레서 크라켄에게 닿아요?”

“그건…… 좀 머네요.”

내 물음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젓는다.

“함선을 최대한 붙이면요?”

“다리들에게 방해를 받아서 그래도 좀 모자를 겁니다.”

“일단, 최대한 붙여요.”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방패전사가 조타를 잡고 곧장 배를 크라켄 쪽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다리들 때문에 더 못 들어가요. 이게 최대입니다.”

“제가 신호하면 함포들 1초 간격으로 쏴주세요.”

“네? 어차피 안 닿을 건데.”

“그냥 해주세요.”

내 굳은 얼굴에 방패전사가 몇 명에게 이야기하니 곧장 1층 포갑판으로 가서 사람들이 대기를 한다.

“지금!”

내가 갑판 중앙을 내달리는 것과 동시에 함포 중 하나가 쏘아졌다.

나도 내가 좀 미친 것 같지만.

달리던 속도 그대로 갑판 난간을 밟고 뛰어올라 빠르게 쏘아지는 포탄의 윗부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가져다 댔다.

하늘에서 날아가는 포탄을 타고 간다?

지금 그걸 하고 있다.

바로 내가.

“어어어?!”

뒤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연이어서 포탄들이 날아오자 나를 싣고 간다고 속도가 줄어든 포탄에서 다음으로 날아오는 포탄으로 점프해서 갈아탔다.

온몸의 감각들이 저릿저릿한 것이 오싹한 기분까지 든다.

포탄의 속도, 방향, 내 몸의 균형, 발끝의 도움닫기의 세기, 모두 빠르게 정보가 되어 내게 이건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네 번째 포탄으로 갈아탔을 때 이미 한계선까지 온 건지 더 이상 갈아탈 포탄이 없다.

바로 인벤에서 라지 쉴드를 소환해서 바다로 던졌다.

방패전사에게 받아온 여분의 방패.

포탄의 속도를 받아 최대한의 힘으로 점프를 해 떨어져 내렸다. 그대로 방패를 두 발로 밟아 착지하면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수상 레저를 즐기듯 몸에 실린 힘을 최대한 이용해서 나아가니 레서 크라켄의 코앞까지 미끄러져 왔다.

이제 모양이 빠지지만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어 조금 더 가니 크라켄의 몸체에 도달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큰 다리 두 개가 다시 카락의 갑판에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면 내가 바꾼다.

“케르베로스 소환.”

내 앞에 케르베로스가 소환되자 그대로 케르베로스의 등을 올라타서 밟고는 크라켄의 세로로 찢어진 눈을 향해 아이스 소드를 던졌다.

“가라!”

빠르게 강한 한 궤적을 남기면서 날아간 아이스 소드의 검신이 모두 눈에 박혀 들어가면서 레서 크라켄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거기에 얼음 덩어리들이 맺혀서 완전히 시야를 가리자 소형 카락에 달라붙은 다리들을 일제히 불러들였다.

<불멸> 살아 있냐?

―지금 바로 배를 붙여요. 포탄 계속 쏘고.

<불멸> 벌써 붙이는 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가 떨어진 카락이 그동안 못 움직인 걸 만회라도 하듯이 무서운 속도로 레서 크라켄에게 다가오더니 반전해 다섯 개의 측면 포 갑판을 열었다.

<불멸> 알아서 잘 피해라. 안 맞출 자신 없다.

―쏴요!

그와 동시에 포탄이 날아와 한꺼번에 레서 크라켄의 몸체를 두들긴다.

다시 큰 다리가 소형 카락의 갑판에 올랐지만 너 죽고 나 죽기 식으로 끝까지 포탄을 쏴대자 레서 크라켄이 결국 죽음의 빛을 남기고 소멸해 버렸다.

레서 크라켄이 죽자마자 카락의 갑판에서 여기까지 함성이 들려온다.

미쳤네. 진짜 잡았어.

<불멸> 아직 살아 있지?

―그럼요.

<불멸> 넌 진짜…… 미친놈이야.

―수신 양호.

고개를 돌린 자리엔 레서 크라켄이 죽어 남긴 아이템들이 바다 위에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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