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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0화 (70/1,404)

# 70

#70화 레서 크라켄 레이드 (1)

“사실 코그선을 터뜨릴 생각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 적어도 본대륙에 넘어오기 전까지는.

근데 막상 넘어와 보니 배를 파네?

그것도 함포까지 달 수 있는.

“함포가 있는 배를 팔면 용도가 뭐겠어요. 하나뿐이죠.”

“하긴, 정기선이나 코그선도 주어진 시스템이라면 이것도 하나의 주어진 시스템이지.”

재중이 형이 이걸 보고 대박 냄새를 맡은 것도 본대륙과 섬을 오가면서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선점할 수 있다는 것에 느낌이 온 거다.

그 과정에서 아이템을 싣고 나르는 무역도 좋고, 사람을 태우고 오가는 방법도 좋다.

둘 다 돈이 된다.

다만 재중이 형이나 나는 그거보다는 함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우리는 케르베로스를 잡기 위해 그 고생을 했는데 돈을 좀 낸다고 똑같이 본대륙으로 넘어오는 것이 좀 보기 싫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건 나도 동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기선은 우리 입장에선 선점 기간을 주는 시스템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반대로 운영자가 코그선으로 우리 뒤통수를 때렸으니까 있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우리가 받아야 했던 선점 기간을 알아서 챙기는 수밖에는 없다.

코그선을 타는 사람들도 운영자가 준비한 시스템을 이용한 거니까 따지고 보면 욕할 건 없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함포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거니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서로가 원하는 바가 겹치면 더 큰 수를 낸 사람이 이기는 거다.

지금 더 큰 수를 가진 건 우리고.

다만 이건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

언제 넘어올지 모르는 코그선 때문에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에 계속 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거든.

본대륙의 정보를 선점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인데 막상 우리가 묶여 있는 건 본말이 전도한 상황이 된다.

“적어도 우리는 프리로 본대륙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이야기가 맞는 거지.”

“그래서 지금 방랑하는 섬으로 길드원들을 데리러 가는 중이잖아요. 우리가 프리하게 움직이려면 누군가는 대신해 줘야 하니까.”

이렇게 데리고 와주는 것만 해도 길드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니까.

다만 본대륙으로 불러주는 대가로 소형 카락 값 정도는 뽑아낼 생각이다.

섬으로 자주 오갈 생각도 아닌데 이번 기회에 뱃값 정도는 뽑아야 앞으로의 일이 수월해진다.

그러면 일단 배 한 척이 통째로 남는 셈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보는 셈이다.

“뭐, 그 이유도 있겠지만 본대륙이 너무 넓어. 도저히 우리끼리 돌아다녀선 절대 2주 안에 원하는 만큼 정보를 얻을 수 없기도 하고. 사실 이게 메인이지.”

길드원들을 데리고 오는 본 이유는 바로 저거다.

보다 앞선 정보를 얻기 위한 인력.

“까짓것 코그선 몇 대 본대륙에 들어와도 큰 상관은 없긴 해. 코그선 몇 개 끊어먹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서. 그걸로 통제다 뭐다 욕먹을 상황이 오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고. 메인은 그게 아니라 빠르게 본대륙을 살펴보는 거야.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보가 이제부턴 힘이 된다.”

정기선이 넘어오기 전 딱 2주.

그 안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

정보의 선점.

이게 재중이 형과 내가 원하는 그림이다.

좀 걱정되는 것이 챠밍과 이쁜소녀가 지금까지는 내 말에 아무 의심 없이 쭉 따라왔었는데 이번은 개인 성향에 따라서 충분히 반대 의견이 나와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방패전사나 나르샤야 뭐 전에 게임 자체를 많이 해봤었으니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내가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재중이 형이 곧장 내 어깨를 잡더니 대신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어떤 식이냐면…….”

재중이 형이 관련된 문제들을 둘을 앉혀놓고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끄덕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서 앞으로의 일들이 바뀌게 될 것이다.

“전 괜찮은 것 같아요.”

먼저 챠밍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묘하게 빨려드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랑 다시 만났을 때 나눴던 이야기 기억나요?”

“음.”

글쎄. 내가 기억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모든 말을 다 기억할 정도는 아니라서…… RTP가 높다고 만능은 아니다.

“그때 재밌게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랬던 것 같네요.”

분명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충분히 재밌었거든요. 전 그거면 됐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만약에 제가 정말 아니라고 느낄 때는 따로 말씀드릴 거예요.”

왠지 긴장하고 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단순명료한 답변이다.

“앞으로 정말 노력해야겠네요.”

내 말에 챠밍이 가볍게 미소 짓는다.

“음…… 저도 괜찮아요. 사실 코그선 타는 사람들도 딱히 좋아 보이진 않았어요.”

이쁜소녀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표정과 말투다.

방패전사처럼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물약을 챙겨줄 정도로 착한데 이런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다행히 잘 넘어간 건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면서 챠밍과 이쁜소녀가 살짝 미소 짓는다.

그냥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은 미소에 마음 한구석이 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이거, 우리 배가 먼저 넘어가겠는데?”

재중이 형이 심각해진 표정을 짓는다.

“확실히 저희가 먼저 죽겠네요.”

방패전사도 어이없는 눈빛을 가득한 채 주변을 바라보았다. 뿐만 아니라 나와 챠밍, 이쁜소녀를 포함한 모두가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좀 전까진 맑았는데…….”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네요.”

이쁜소녀와 챠밍의 말대로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퍼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중이다.

거기에 더해 주변의 파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급격하게 커진 파도가 밀려와 선체가 한쪽으로 심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꺅!”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난간을 두 손으로 강하게 잡으면서 흔들리는 몸을 겨우 멈춰 세웠다.

“코그선만 겪는 것 아니었어요?”

우리가 타고 왔던 소형 캐러벨은 아무 문제 없이 바다를 지나와서 이벤트 형식으로 돈을 내고 타는 코그선만 그런 줄 알았다.

“그냥 지나가는 배들 랜덤으로 다 걸리는 것 같은데? 우리 때가 운이 좋았던 건가.”

뭐 딱히 대답을 원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하도 어이가 없고 답답하니까 물어본 것뿐이다.

거기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이대로 소형 카락이 침몰이라도 하면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개털이 될 수도 있거든.

“저 이거 침몰하면 게임 접을 거예요!”

목소리까지 잠겨 버릴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쳐서 고함을 쳐야 겨우 의사가 전달된다.

사람은 죽으면 부활하면 되는데 배는 침몰하면 끝이다. 그냥 돈을 전부 바다에 꼬라박는 거다.

“전부 난간에서 떨어져! 난간 말고 다른 걸 잡아. 빠지면 죽는다.”

난간에서 흔들려서 떨어지면 지금은 답도 없다. 누구도 이런 폭풍우 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구해주지 못하니까.

사장님이 급하게 고함을 치자 바닷물과 빗물로 엉망이 된 갑판 위로 다들 힘겹게 몸을 옮겨서 밧줄이나 기둥을 잡는 모습이 보인다.

비바람을 머금은 파도가 성난 군마처럼 달려와 카락의 옆 부분을 쳐대자 카락 전체가 들썩이면서 다시 반대로 기운다.

NPC 선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면서 밧줄 풀고 당기며 애를 써보지만 애초에 기본적으로 가라앉는 것을 전제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렇게 효과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싼 배인데 버티지 않을까요?”

“나도 이건 모르겠다.”

이 정도로 강력한 폭풍우를 경험해볼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

재중이 형도 이건 답이 없는지 고개를 젓는다.

힘 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주변을 계속 살피면서 선원들과 밧줄도 같이 당겨보고 하지만 애초에 선박 운용에 대한 기본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난감하다.

그나마 게임이니까 빠져도 살아날 수 있어 현실과 다르게 패닉은 오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중이지만 답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잘못하면 정말 배를 버려야겠는데?”

“안 돼요. 이거 침몰하면 정말 개털 됩니다.”

거기다가 계획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테고.

“이익! 이게 잘 돌아가지도 않아.”

사장님이 조타를 하면서 억지로 버텨보려고 하지만 그야말로 억지로 버티는 수준이다.

평상시에 얌전한 바다와 지금의 성난 바다는 난이도 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재중이 형이 사장님과 바톤 터치를 해서 조타를 잡고 나니 미친 듯이 흔들리던 배가 조금 안정되긴 했는데 그래도 답이 안 보인다.

“나도 이건 안 되겠다. 주호! 니가 잡아!”

배가 멋대로 돌아가려고 하자 겨우 버티면서 재중이 형이 고함을 친다.

“저 한 번도 배를 몰아본 적이 없는데요.”

“누군 몰아본 적이 있어서 그러냐. 얼른.”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치는 비바람을 뚫고 재중이 형에게서 조타를 넘겨받았다.

“강하게 들어오면 풀어주고 풀리면 당기고, 파도가 옆을 들이받지 않게 최대한 뱃머리를 기울이고. 잘못하면 뒤집힌다.”

재중이 형이 크게 외치면서 요령을 알려준다.

“침몰하면 망한다…… 침몰하면 망한다…… 침몰하면 망한다…….”

마치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감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발끝을 타고 느껴지는 카락의 기울기, 시야로 보이는 갑판의 기울임, 피부로 느껴지는 비바람의 세기, 돛이 바람을 타고 배를 밀어내는 느낌, 파도가 사방에서 몰아치면서 배를 때릴 때의 감각 등이 모두 빨려들 듯이 내게 모여든다.

길드원과 선원 NPC들이 배가 휘청이면서 흔들리는 하나하나의 세세한 모습까지 모두.

세상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감싸면서 빗줄기가 정지된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사고가 급격하게 가속된다.

손바닥에 거칠게 잡히는 손잡이에서 울리는 진동을 달래면서 조타를 감아올리자 이제껏 미친 듯이 진동하던 조타가 거짓말처럼 돌아가면서 옆면을 강하게 치던 파도를 타듯이 배가 부드럽게 밀려 나간다.

마치 육중한 카락선이 나와 한 몸이 된 듯 내가 기울이는 방향대로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를 타넘으면서 배의 옆면을 치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선회를 하고 약한 파도들을 상쇄해가면서 바람의 힘을 이용해 배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니 폭풍우 속에서 휘청거리던 배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미친…….”

재중이 형도 기대는 한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바로 될지는 상상도 못 했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형네 팀들도 배의 흔들림이 급격하게 줄어드니 주변을 잡고 있던 것을 자신들도 모르게 놓아버리고 날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가능한 건가?”

“정말 괴물이네요.”

커다랗고 육중한 배가 마치 개발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살벌한 폭풍우와 거친 파도 사이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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