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67화 본대륙 (3)
“그나저나 이거 언제 끝나나? 우리 슬슬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게요. 끝날 기미가 안 보이네요.”
일부러 격전지에서부터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다가 거의 30분이 지나가는데도 이 전쟁 아닌 전쟁이 끝날 줄 모르고 오히려 불씨가 더 커져서 사방팔방 튀고 있는 중이다.
“사람이 더 늘었어요. 저기 뒤에서도 계속 와요.”
이쁜소녀도 거의 한 시간 동안 싸움 구경만 했더니 처음엔 놀라워하다가 이제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주변을 관망하듯 살피다가 남쪽 언덕 너머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늑대를 타고 싸움에 참전하는 것을 보니 이 싸움이 정말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서버에 접속한 사람들이 계속 오는가 본데 끝이 안 보이네요.”
재밌는 것도 한두 번이다. 챠밍도 이제는 보다가 질렸는지 그냥 선착창을 피해 멍하니 바다만 바라본 지 오래됐다.
필리언 서버가 현재 총원 150만 명이라는데 동시 접속자가 얼마인지는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접속하면 무조건 선착장으로 내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안 그러면 이 인파가 설명이 안 되니까.
마치 어디 축제라도 열렸나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 같다.
거기다 떨어지는 아이템을 먹고 튀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접속해 있는지 몰랐네요.”
“죽고 다시 와서 싸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내 질린다는 말투에 나르샤가 여전히 전장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챠밍과 이쁜소녀와는 다르게 나르샤는 계속 주의 깊게 보는 중이다.
“재밌어요?”
내 말에 나르샤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 무기나 싸우는 패턴 등을 잘 봐두면 나중에 싸울 때 도움이 돼요. 간격이라든지 마법 발현 시간 같은 것도 잘 봐두면 좋아요.”
나르샤가 어떻게 보면 방패전사보다 더하네.
방패전사가 PVE에 관심이 많다면 나르샤는 PVP에 관심이 많은 편으로 보인다.
몹을 잡을 땐 그냥 열심히 한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광적인 어떤 불타오름이 느껴진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선착장을 보니 어떻게 타고 가는 데 성공했는지 코그선 한 대가 부두에서 떨어져 나간다.
“한 시간이나 싸워서 고작 한 대라. 남은 배가 적어졌으니 더 살벌해지겠네.”
다섯 대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으니 이젠 정말 타오르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균형추가 한 곳이 무너지면서 다른 곳까지 퍼져가는 모양새다.
저렇게 싸워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처럼 멀리서 방관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마냥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네요.”
“뛰어들지 말지 간을 보는 애들일 수도 있고, 정말 구경만 하러 온 사람일 수도 있지.”
재중이 형이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이내 일어섰다.
“재들 빠지는 걸 보고 움직였다간 하루 종일 제자리야. 그냥 가자.”
솔직히 싸움을 붙이긴 했는데 이 정도로 오래 싸울지는 몰랐다.
적당히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선착장에 대기하던 다섯 대의 코그선이 다 떠나고 사람들도 돌아가면 주위 신경 안 쓰면서 편안하게 출발하려고 했던 것이 싸움이 너무 격해져 버려서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엄청 주목받겠네요.”
“아…… 인기인의 비애지.”
또 시작이네.
이젠 모두가 아는지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리가 탈 캐러벨의 위치와 코그선의 위치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어지간하면 싸움에 말려들 일도 없지만 최대한 주의하면서 크게 돌아 캐러벨 앞에 도착했다.
“이봐, 그거 어차피 못 타.”
주위에서 구경 중이던 한 무리가 우리가 캐러벨로 다가가니 헛수고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 온다.
그건 너희들 이야기고.
우린 다르지.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껴서 캐러벨 앞을 지키고 있던 푸른색과 흰색의 정복으로 통일된 선원에게 다가가 케르베로스의 갈기털을 건넸다.
“탑승하십시오.”
선원도 딱히 다른 말도 없다.
승차표를 확인하듯이 갈기털의 종류만 확인한 후 바로 사다리를 내려준다.
그대로 사다리를 타고 캐러벨에 올라타자 주변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야! 저기 캐러벨 타잖아.”
“아까 안 되던데?”
한창 싸우고 있는 선착장 쪽은 모르겠지만 우리 근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리기 시작했다.
“피곤해지겠는데요.”
“뭐, 어때. 헤엄쳐서 따라올 것도 아닌데.”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이걸로 앞으로 얼마나 주목받을지 모르겠다.
각종 공략 사이트에 메인으로 오르지 않을까.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먼저 타고 뒤에 한 명씩 올라탄 뒤 마지막에 재중이 형이 올라탔다.
“전망 좋네. 아까 언덕보다 더 잘 보여.”
재중이 형이 올라타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더니 씨익 웃는다.
캐러벨은 상당히 넓어서 우리 몇 명이 올라타도 적재 공간이 엄청나게 남는다.
반면에 아까 출발한 코그선은 정말 고기잡이 만선이라도 되듯이 사람들 무게 때문에라도 엎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낑겨서 타고 갔고.
“이게 VIP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준비를 마쳤는지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닻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활짝 펴져 올라가는 마스트 돛이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애초에 선적용 범선이다 보니 노를 젓는 사람이 없어서 선원 자체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갑판이 더욱 넓게 보이는 느낌이다.
“출발!”
선원들이 일제히 외치자 캐러벨이 부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야! 저거 올라타!”
케러벨이 움직이자 주위에서 난리가 났다.
심지어 멀리서 코그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던 사람들까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돌아본다.
거기다 몇몇 사람이 점프해서 돛에 매달리고 배에 올라타려는 모습이 보인다.
저거 안 저러는 게 나을 건데.
선원 NPC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전부 떨어뜨려.”
선원들보다 좀 높아 보이는 계급의 사내가 말하자 몇몇 선원이 석궁을 꺼내더니 일제히 배에 붙은 사람들에게 쏘아댔다.
그러자 별 반항도 못 해보고 사람들이 우수수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석궁이네요?”
평소 활을 쓰던 나르샤나 수아가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유저들이 한 발 맞고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니 강력하다는 것은 알겠네.
점점 부두와 멀어지기 시작하자 방패전사가 난간으로 걸어가 부두에서 아등바등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굿바이! 너희들을 잊지 못할 거야!”
방패전사가 한참 손을 흔들더니 배가 멀어지니 웃으면서 돌아본다.
“타이타닉에서 배가 떠날 때 하던 대사인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소원 풀었네요.”
방패전사도 확실히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들 웃음을 지었다.
그래, 굿바이 초보 섬이다.
***
각자 선박 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풍경을 구경한다거나 선실 안을 보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정말 배 안에선 할 게 없네요.”
바다 구경도 몇 분 정도 하니 끝이다.
“낚싯대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바다도 있는데 낚시는 언제 업데이트되려나.”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계속 공지사항만 읽고 있다.
“이거 봐라. 누가 분명히 잠수해서 빠져나가려고 했구만.”
“물 속에 들어가면 HP 깎이는 거 말이죠?”
“어, 깊이 잠수할수록 HP가 많이 떨어지게 해둔 걸 보니 아주 바다 아래를 달렸는가 본데? 진짜 우리나라 애들 못 말린다니까. 게임 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해.”
“덕분에 점검 시간이 잔뜩 늘어났죠. 근데 정말 도착했을까요?”
“도착했으면 그 사람 우리 길드에 넣어야겠다.”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면서 키득거리고 웃는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좋을까.
“그리고 아이템 미리 세팅해둬. 많이 변했더라.”
재중이 형 말대로 아이템들이 정말 많이 변했다.
『 +7 플레임 소드 / 출혈 15 (8+7) 타격 11 (4+7)
민첩 +1, 화염 효과, 크리티컬 대미지 +1
4 아이스 소드 / 출혈 12 (8+4) 타격 8 (4+4)
민첩 +1, 결빙 효과, 크리티컬 대미지 +1 』
예전에 범위로 나타나던 공격력이 여러 가지 분류로 나뉘어 버렸다.
출혈? 타격?
거기다 무기 이름 앞에 붙던 트윈 헤드 워 울프가 사라졌다. 이게 뭘 뜻하는 걸까?
재중이 형 무기도 역시 바뀌었다.
『 +6 스파크 윙드 스피어 / 출혈 16 (10+6) 타격 14 (8+6)
민첩 +1, 감전 효과, 크리티컬 대미지 +1 』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는 잡아봐야 알겠고. 다른 건 별로 바뀐 건 없네. 내구도 생긴 거랑 스킬 온, 오프 기능 정도인가?”
재중이 형 말에 무기를 확인해 보니 온, 오프로 내장된 스킬을 음성이나 수동으로 껐다 켤 수 있게 되어 있다.
“으쌰! 일단 한번 싸워볼까?”
재중이 형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싸워? 뭐하고 싸운다는 거지?
“무기 상태 좀 알아봐야겠네. 세팅 끝났지?”
“저하고 싸우게요?”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없죠. 뭐…… 괜찮겠네요.”
한 번쯤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고. 재중이 형이 사람 상대로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못 봐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바로 플레임 소드와 아이스 소드를 소환해서 손에 들었다.
“공격? 방어? 뭐 해보고 싶어?”
무기 테스트인가? 이왕이면 공격이 낫겠지.
“공격할게요.”
“오케이. 그럼 마음껏 덤벼봐.”
재중이 형이 손에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꺼내서 사선으로 들고 섰다.
창만 슬쩍 기울이며 선 것 같은데 묘하게 균형 잡힌 모습이다.
“갑니다.”
어차피 선상에서 싸우는 거라 서로 죽일 정도만 아니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HP가 허락하는 선에서 치명타만 없으면 상당히 오래 대결할 수도 있다.
일단 가볍게 가볼까?
스탭을 밟으면서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아이스 소드와 플레임 소드를 시간차를 두고 중단과 하단으로 휘둘렀다.
재중이 형이 창을 반 바퀴 돌리더니 소드들을 차례대로 쳐내면서 뒤로 슬쩍 물러난다.
역시 이 정도는 가볍게 쳐낸다.
다시 속도를 올려 달려들어 플레임 소드로 몸을 벨 듯이 횡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동시에 아이스 소드로 창을 잡고 있는 손목을 노렸다.
전과는 속도와 궤적에서 확 차이가 나는 공격인데 창의 날이 플레임 소드를 갉아먹듯이 긁어 밀어내고는 노리고 있던 손을 창에서 때더니 다른 손으로 창을 회전시켜 아이스 소드마저 쳐냈다.
“공격이 너무 뻔히 보이는데? 참신하게 가자.”
애초에 손목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반대 손으로 창을 돌려서 공격을 싹 막아버렸다.
집중을 조금 끌어올려서 이번엔 창대를 타고 들어가듯이 소드들로 밀고 들어갔더니 창을 비틀 듯이 돌려 모두 튕겨냈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에 주변에서 소리를 듣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중된 분위기가 있어 모두 말은 못 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너무 재면서 들어오는데? 마음껏 들어와 봐.”
“그럼, 사양 않고 갑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모든 공격을 다 막아버리니 좀 달아버렸다.
집중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로 자세를 바싹 낮춘 뒤 파고들어 플레임 소드를 빠르게 횡으로 휘두르자 창대가 어김없이 나타나 긁듯이 소드의 궤적을 위로 쳐내면서 반대쪽으로 창대 역시 튕겨 나갔다.
그 반동으로 몸을 반 바퀴 돌리면서 아이스 소드로 튕겨 나간 창대가 돌아오지 못할 한 공간으로 찌르듯이 꽂아 넣었다.
순간 몸을 스치는 공격에 재중이 형이 창을 급하게 끌어당기면서 몸 전체를 회전시키니 완벽한 타격이 되지 않고 아이스 소드가 밀려 나갔다.
“이번 건 진짜 위험했네.”
“생각보다 훨씬 잘 막으시네요.”
솔직히 놀랬다.
상상 이상으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어설프게 마음먹고 들어간 공격은 거의 다 막아내고 집중을 해서야 겨우 유효타 비슷하게 한번 먹인 거니까.
“너, 배울 게 많다고 했지? 방금도 검이 어디로 들어올지 뻔히 아는데 맞아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마지막 건 좀 위험했다만.”
그 뻔한 걸 이제껏 다른 사람들은 다 맞아주던데요?
솔직히 이 정도로 연속으로 방어해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너, 습관적으로 관절이나 급소만 노리는 단점이 있어. 물론 그게 가장 크게 대미지를 줄 수는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것만 알면 막기가 수월해진다는 뜻이야.”
“좀 더 다양하게 공격하라는 건가요?”
“그래, 뻔하게 들어오는 공격만큼 막기 쉬운 것이 없으니까. 센스나 속도, 힘의 배분, 공격하는 능력은 발군인데 그 능력을 아직 백 퍼센트 못 쓰는 중이니까 공격할 때 좀 더 센스를 발휘해.”
그 이후로 재중이 형과의 대련이 계속됐다.
중간에 방패전사까지 끼어서 하는 이상한 대련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러니까 출혈은 피부나 가죽 이런 쪽에 잘 먹힌다는 거네요?”
“생명체면 아마 다 먹히겠지? 돌로 된 골렘 같은 건 진짜 대미지 거의 안 들어갈 거고.”
“반대로 타격은 돌골렘 같은 녀석들에게 잘 먹히는 거고요?”
“방패전사하고 해보니까 갑주 쪽에 대한 대미지더라. 비생명체나 단단한 껍질 같은 거. 워낙 다양해서 어떻게 정의는 못 내리겠네.”
이거 때문에 방패전사까지 끼워서 계속 대련을 했다. 연습하는 용도도 있지만 무기의 정확한 대미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이어진 대련에서 무기를 뒤튼다든지 경로를 확 바꾸거나 속이는 식으로 몇 번 공격해서 재중이 형에게 유효타를 제법 넣었는데 재중이 형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대련을 마쳤다.
“더 가르칠 것이 없도다. 이만 하산하거라.”
“네, 스승님.”
둘이 그렇게 신파극을 하고 있으니 키득거리면서 여자들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선원들 사이로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기 봐요! 아까 그 코그선이에요.”
이쁜소녀가 검지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까 코그선이 보인다. 우리보다 일찍 출발했으니 곧 보일 거라고 생각은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따라잡았다.
“코그선이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챠밍이 쭉 쳐다보다가 우리는 계속 움직이는데 가만히 한 자리에만 있는 코그선이 이상한지 물어본다.
“확실히.”
망원경이라도 있으면 좀 더 정확히 보겠는데 아직은 거리가 좀 있다.
조금 기다리니 거리가 좁혀지면서 자연스럽게 코그선의 상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거 물 새는 거 아냐?”
“그런 것 같아요.”
코그선이 반쯤 기울어서 물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입가가 슥 올라간다.
“우리가 그 고생을 하고 잡아서 타고 가는 건데 똑같이 간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전부터 코그선이 수상하다고 말을 하더니 딱 들어맞았네.
반도 안 온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 배가 가라앉으면 그냥 다 죽는 거다.
허겁지겁 어떻게든 코그선에 들어오는 물을 빼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저 사람들도 진짜 30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을 베어 넘기고 타고 온 건데 지금쯤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우리가 탄 캐러벨이 좀 먼 바다에서 파도를 가르면서 지나가자 코그선에 비좁게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든다.
“손을 흔드는데 어떻게 해요?”
이쁜소녀가 코그선과 함께 시커먼 바닷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긴요.”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들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저 사람들도 어차피 누군가를 밟고 올라탄 건데 딱히 도와줄 마음이 전혀 안 생긴다.
“저렇게 열렬히 인사하는데 받아줘야죠. 똑같이 손 흔들어 주시면 돼요.”
내 말에 모두 어색하게 미소 짓더니 단체로 화답하듯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방패전사가 아까 그랬던가?
굿바이. 너희들을 잊지 못할 거야.
바다 속으로 잘 가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