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5화 (65/1,404)

# 65

#65화 본대륙 (1)

멍하니 누워서 부서진 천장 사이로 어둠이 물러가면서 밝게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오크 족장 때 이미 겪어본 일이라 특별할 것은 없지만 고생 끝에 내리쬐는 따스한 빛은 충분히 좋은 느낌이다.

빛이 우리 몸에 닿으면서 바닥으로 내려갔던 HP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죽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레벨이 올라 버렸다.

경험치 바를 확인하니 소수로 네임드를 잡은 것 때문인지 꽤 많은 경험치가 올라있었다.

“이거…… 속은 기분인데요? 잡으라고 놔둔 것 아니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단 전체를 뒤엎는 광역기에 전멸이라고 생각했는데 케르베로스는 제 혼자서 녹아버렸으니 제대로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물론 이런 뒤통수는 환영이고.

케르베로스가 깔끔하게 죽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깼으니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속담도 있고.

“아마도? 그냥 이벤트나 메인 퀘스트이려나. 우리 때는 안 나오던데 그사이에 잠수 패치 했나 보지. 어쩌면 케르베로스를 프로텍트 중첩으로 죽여 버려서 뭔가 오류가 생겼을 수도 있고. 제대로 뒤통수지만 뭐 어때. 깼으면 됐지.”

“마지막 광역 공격만 아니었으면 잡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내 아쉬운 한숨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는다.

“개발자들 진짜 졸도했을 걸? 이거 잡아버렸으면.”

재중이 형은 이미 털고 일어나 케르베로스가 죽은 자리로 걸어가는 중이다.

게임 경험이 많으니까 이런 경우도 많이 봐서 그런지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는 것을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다.

“다들 모여요.”

재중이 형이 케르베로스가 죽은 자리에 드랍 템들을 확인하기 위해 모두를 불러모았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정말 깼네요. 저희끼리.”

드랍 템들이 바닥에 둥실 떠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본 후에야 모두들 케르베로스를 깬 것이 실감이 나는지 환호를 하면서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우리도 계획이 너무 많이 어긋나서 마지막까지 정말 마음 졸여가면서 했으니까.

중간에 챠밍의 재치가 없었으면 거의 망한 레이드였다.

“덕분에 살았네요.”

“뭘요. 전 그냥 의견 하나 낸 것뿐인걸요. 주호 님이 잘 잡아주셔서 깬 거예요.”

서로 얼굴에 금칠하는 것도 지금은 즐겁다.

그간 했던 고생이 모두 보답받는 기분이다.

“이건 꽤 난감한 걸…….”

사장님이 둥둥 떠다니는 드랍 템을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신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드랍 템 구성품이 싹 바뀐 것 같은데?”

사장님이 그러면서 드랍 템을 보라고 살짝 비켜주셨다.

* * *

케르베로스의 눈물 보석

케르베로스의 눈물 조각 (x2)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눈물 보석 (x20)

케르베로스 플레임 윙드 스피어

케르베로스 플레임 라지 액스

케르베로스 아이스 롱보우

케르베로스 아이스 대거

케르베로스 스파크 소드

케르베로스 스파크 투핸드 소드

아이스 월

마나 리커버리

슬립

* * *

확실히 네임드 템의 무기 종류는 똑같은데 속성이 조금씩 다르다.

전에 잡았을 때는 재중이 형이 가진 스파크 윙드 스피어가 나왔는데 지금은 플레임 스피어니까.

그리고 원래는 한 개 빼고 다 우리가 먹기로 했는데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 보석들 덕분에 분배 자체를 싹 바꿔야 한다.

재중이 형이 케르베로스가 그려져 있고 검은 광택에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타원형 보석을 들고 옵션을 살핀다.

“눈물 보석은 케르베로스 소환 보석이고 조각은 테이밍 시도를 할 수 있는 템이네.”

“네임드 보스를 테이밍 해요?”

“그래, 어쩐지…… 아까 올라탔을 때 테이밍 시도하는 문구가 안 뜨더라니. 이런 템이 있었으니 될 리가 있나.”

재중이 형도 올라타면서 내심 테이밍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헬하운드 눈물 보석은 안 읽어봐도 뻔하고.

“다시 이야기를 좀 해보자꾸나.”

사장님이 모두를 앉혀놓고 다시 조율을 시작하셨다. 템 구성이 이 정도로 바뀌면 어쩔 수 없다.

한참을 앉아서 의견을 나누다가 서로 원하는 템을 최대한 반영해서 결정을 내렸다.

일단 우리 쪽에서 케르베로스 눈물 보석, 눈물 조각 한 개, 네임드 무기 세 개, 마나 리커버리, 슬립, 헬하운드 눈물 보석 15개를 받았다.

헬하운드 눈물 보석도 현재 거의 네임드 값 못지않기 때문에 서로 엄청난 이득을 본 셈이다.

나가는 대로 싹 팔아버릴 생각이다.

물론, 길드 내에서.

아이스 롱보우는 나르샤에게, 스파크 소드는 방패전사, 스파크 투핸드 소드는 이쁜소녀가 받아갔다.

사실 모두 네임드 템이 필요하긴 했으니까 이번 기회에 싹 갈아치울 기회가 생겨서 그런지 템을 받아간 모두의 표정이 좋아 보인다.

방패전사에게 빌려준 아이스 소드는 돌려받았다. 솔직히 방패전사가 사용하기엔 효율이 정말 꽝이었으니까.

방패로 방어는 진짜 맛깔나게 잘하는데 공격하는 능력으로 국한하자면 상위 클래스라고 보기엔 힘들다.

방패전사가 더 끌어올려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스파크 소드가 오히려 아이스 소드보단 나을 것이다.

나르샤와 이쁜소녀도 네임드 무기가 생긴 이상 날개를 달 것 같고.

마나 리커버리는 챠밍에게 꼭 필요해서 아이스월을 포기하고 받아냈다.

슬립은 여러모로 당분간 쓸 곳이 많을 것 같아서 받았고.

물론 내 몫이 제일 중요하다.

바로 케르베로스 눈물 보석.

이건 사실 좀 로또 같은 느낌이긴 한데 지금 나온 템들 중에 유일하게 내 관심을 끄는 물건이니까.

헬하운드 눈물 보석 10개를 추가로 받는 것으로 내 배분을 끝냈다.

“한번 소환해 봐.”

재중이 형이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네.

“케르베로스 소환.”

눈물 보석을 손바닥에 올리고 소환을 하자 보석이 손 위에서 녹아내리면서 내 앞쪽 공간에 하얀 광채를 뿌리면서 마법진을 생성했다.

광채가 폭발하듯 마법진 위를 맴돌다가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미니어처 케르베로스가 떡 하니 서서 날 보며 하울링을 한다.

미니어처라지만 아주 작은 건 아니고 헬하운드 보다 약간 큰 정도다. 원판이 좀 커서 기대를 했는데 그 정도 크기는 확실히 안 나오니까.

적일 땐 그렇게 압도적이더니 막상 탈것으로 변하니 귀여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시승식.”

새 차도 나오면 타봐야 알지 않겠는가.

속도가 어느 정도일지 체력이나 밸런스 등도 궁금해서 그냥 바로 갈기를 잡고 점프하듯 올라탔다.

“흠, 이거…… 좀 사기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왜?”

“왜요?”

“뭔가 달라요?”

재중이 형, 이쁜소녀, 챠밍이 연달아서 질문을 날렸다.

“체력 회복 버프하고 마력 회복 버프가 걸려요.”

내 말에 근처에 있던 모두가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 전은 그저 궁금함에 보고 있었다면 이번엔 진짜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내 입에서 나온 마력 회복 버프 때문에.

딱히 마력 회복 물약 같은 것이 없는 마당에 마력 회복은 모든 사람에게 큰 숙제나 마찬가지다.

챠밍 같은 경우엔 마나 리커버리를 아이스월을 포기하고 받을 정도로 마력 회복에 목말라 있는 중이기도 하고.

인벤에서 플레임 소드를 꺼내서 라이트 웨폰을 시전해 가만히 들고 있으니 마력이 내려갔다가 차오르다가를 반복한다.

“효율이 괜찮네요. 이 정도면 꽤 오랫동안 유지할 것 같네요. 물론 타고 있을 때 이야기지만.”

전투 시엔 빠르게 기동해야 하는 내 특성상 쓰기는 힘들겠지만 마력이 부족할 때 타고 채우는 식으로 해도 충분히 효율이 나올 것 같다.

“이거 타고 기마병 같은 걸로 운영해도 좋을 것 같은데?”

재중이 형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케르베로스를 바라본다.

확실히 창을 주로 쓰는 재중이 형의 입장에선 케르베로스는 엄청난 명마나 다름없을 것 같다.

라이트 웨폰을 유지하면서 창을 몸에 붙이고 차징 돌격을 하면 대미지가 엄청나게 오를 것이다.

제단 안에서 살짝 달려보니 헬하운드보다 속도가 훨씬 좋다. 전체 체력도 높고 방어도 높아서 어지간해서는 죽지도 않을 것 같고.

“이거 진짜 좋네요.”

이래서 사람들이 명차를 타려고 하는구나.

눈물 조각은 나중에 다시 와서 테이밍을 해보기로 했다.

“리젠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일단 지금부터는 시간이 금이야. 될지 안 될지 확실하지 않은 테이밍에 시간을 쓰는 건 좀 있다가 해도 될 거다.”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부터는 얼마나 알뜰하게 시간을 잘 쓰느냐가 문제다.

한 번 앞서 나가봤던 재중이 형이라면 새 지역에 가더라도 확실히 가이드라인을 내어줄 것이다.

“길드 사람들한테는 알릴 건가요?”

“글쎄다. 어차피 헬하운드 눈물 보석 팔려면 알려야지, 별수 있나. 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 팀 이상은 없다는 것도 알 거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겠네요.”

반발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판을 깔고 기다렸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튀어나갈지 남아 있을지는 걔들 선택이고.”

재중이 형이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한다. 남아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나가도 나가는 대로 좋다는 자신감의 표시다.

언제쯤 저렇게 자신감으로 똘똘 뭉칠 수 있으려나.

그렇게 강화석이나 부활석 등등 기타 잡템들은 적절히 나누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다.

“다들 정리하고 마을로 귀환해서 촌장 만나서 보상받고 바로 넘어가자.”

사장님이 길드원들을 둘러보면서 잘 마무리가 됐는지 확인하고 곧장 마을로 귀환을 했다.

“우리도 가죠.”

우리 팀도 하나둘 귀환을 해서 마을로 떠나가자 아무도 없는 제단만이 남아 새로 찾아올 방문자를 기다리듯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

『 케르베로스 네클라스 / 올 스탯 +1 / 거래불가 』

말로만 듣던 올 스탯 +1짜리 액세서리다.

각기 다른 세 개의 색으로 된 케르베로스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 보석이 메인이고 옅은 은빛이 나는 실이 연결되어 있는 질이 좋아 보이는 목걸이다.

피난민 마을로 돌아와 촌장에게 말을 거니 메인 퀘스트 보상으로 바로 넘겨받았다.

“우와.”

이쁜소녀와 챠밍 방패전사 할 것 없이 그저 이 보상품을 손에 쥔 채 감탄만 하고 있을 뿐이다.

스탯 1 올릴려고 그 노력을 했는데 이건 스탯이 5개짜리다.

레벨로 치면 10레벨.

“이거 하나만으로 케르베로스를 깬 보상은 충분할 정도네요.”

방패전사가 누가 보기라도 한다는 듯 순식간에 악세 슬롯에 케르베로스 네클라스를 넣어버렸다.

“이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격차가 엄청날 것 같아요. 스탯이 5개나 차이 나다니.”

챠밍도 얼른 슬롯에 넣으면서 기뻐한다. 이쁜소녀도 잠시 쳐다보다가 챠밍을 따라서 장착했다.

“메인 퀘니까 곧 국민 템이 되겠네요.”

“글쎄요. 케르베로스를 그렇게 쉽게 깰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이 안 되네요.”

방패전사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플레임 소드의 중첩이 있으니까 남들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깬 것이고, 다른 길드가 깨려면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 템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지.

“재중이 형네는 다 나갔으니 저희도 좀 있다가 뵙죠.”

“점검 오래 할까요?”

내 말에 이쁜소녀가 궁금한지 물어온다.

우리가 케르베로스를 깨서 잊혀진 고성에 빛을 내린 것 때문인지 촌장에게 보상을 받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전체 업데이트 공지가 떴다.

전처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글쎄요. 저도 이런 건 처음이라.”

“아마 꽤 할 것 같네요. 새 지역 업데이트면 상당히 걸릴 것 같으니 푹 쉬다가 오죠.”

방패전사는 경험이 많은지 곧장 대답해 준다.

“그럼, 다들 이따가 봬요. 오늘 다들 고생하셨어요.”

챠밍의 인사를 시작으로 모두가 인사를 마치고 로그아웃을 했다.

정신이 사라졌다가 돌아오면서 VRS 커버를 올리고 나와 냉수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긴장감이 육체에도 깃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냉수가 들어가니 몸의 열기를 좀 식혀주는 기분이 든다.

정말 레이드 하나 뛴 것만으로 하루가 스펙타클하네.

바로 스마트폰을 켜서 업데이트 현황을 살펴봤다.

* * *

[ 공지사항 ]

*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 필리언 서버에 본대륙 <테슬라> 이 개방됩니다.

* 방랑하는 섬 북쪽에 생기는 선착장에서 조건부로 테슬라로 향하는 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테슬라 지역의 몬스터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마을과 유적지 등이 업데이트됩니다.

* 테이밍 가능한 지상 몬스터가 대폭 늘어납니다.

* 제작 시스템이 업데이트됩니다.

* 채집과 채굴 시스템이 업데이트됩니다.

* 모든 무기 스탯과 설명 표기 형식이 변경됩니다.

* 특수 옵션 발동 시 마력이 소모됩니다. 마력이 모자라면 발동하지 않습니다.

* 일부 스킬들의 습득 조건이 변경됩니다.

* 모든 아이템에 내구도가 생깁니다.

* 내구도 일정 이상 하락할 시 아이템 성능이 저하하며, 파괴 시 마을에서만 수리할 수 있습니다.

* 내구도 복구 아이템이 업데이트됩니다.

* 강화 시도 시 강화 수치에 비례해 다량의 아르가 소모됩니다.

* 네임드에게서 드랍되는 물품 일부가 다른 품목으로 바뀝니다.

* 유저 선공 시 전투 완료까지 귀환 불가, 공격당할 시 10초 이내에만 귀환 가능으로 변경됩니다.

* * *

이게 대체 뭐야?

업데이트 내용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단순히 새 지역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고 아주 대대적으로 바뀌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껏 우리가 있던 곳이 섬이었어?

본대륙이라는 곳의 대략적인 설명을 보니까 이제껏 우리가 있던 섬이 정말 조그맣게 느껴질 정도다.

그동안 꽤 넓게 느껴지던 지역들이 고작 섬 안이었다니.

정말 이제까진 튜토리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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