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64화 케르베로스 레이드 (5)
“이거, 의도한 걸까요?”
“부위별로 타격치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챠밍의 말을 듣고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당연히 불타오르는 케르베로스가 전부 화염속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있다.
유일하게 불타오르지 않는 곳이.
“확실히…… 저긴 안 변했네요.”
“개발자가 너무 디테일하게 만들어놓은 게 우릴 살릴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일부러 저런 식으로 만들어놨나?”
브레스를 쏠 때 뇌전이 지직거리는 벌어진 입속, 그리고 얼음을 쏘아대던 입속도 마찬가지다.
잘 살피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유독 저 부분만 타오르지 않고 있다.
“챠밍 님 눈썰미가 장난 아니네요.”
재중이 형의 칭찬에 챠밍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거 잘되면 챠밍이 일등공신인데?
다 죽어가는 판을 살릴 기회가 생겼다.
“근데 저게 보이는 것만 저렇지. 진짜 속성이 다를지는 모르겠네. 일단 확인부터.”
재중이 형이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꺼내서 뇌전을 쏘기 위해 벌어진 케르베로스의 입가를 창극으로 가르고 빠져나왔다.
진짜 재주도 좋네.
저렇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케르베로스가 브레스를 쓰기 전 그 한 순간 밖에 없는 타이밍에 치고 들어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빠져나온다.
쏘아지는 브레스를 여유롭게 피하는 건 덤.
타이밍, 컨트롤, 눈썰미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뭐, 내가 똑같이 못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잘한다.
“으음, 스파크가 확 줄어드네. 맞는 것 같다.”
재중이 형이 공격과 관찰을 동시에 해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 말도 아니고 재중이 형이 말한 것이면 거의 100%에 수렴한다.
통한다는 거네.
“그럼 이왕이면 얼음쪽이 좋겠네요.”
극상성으로 가야지 지금 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다.
“아무래도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 더 시간을 끌면 우리도 위험해.”
지금도 주변에 불벽이 시시각각 우리를 죄어오는 중이다. 이곳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문제는…… 저걸 어떻게 계속 공격하죠?”
브레스를 한 번 쏘고 나면 이빨로 무는 공격을 할 때 빼고는 거의 입을 닫고 있다.
저걸 계속 열게 만들 방법이 필요한데 딱히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재중이 형이 한참을 케르베로스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쉰다.
“아…… 오늘 고생 좀 하겠네. 몸으로 뛰는 거 별론데.”
“좋은 방법 있어요?”
“있는데 할 사람이 나 밖에 없어 보이네.”
역시.
없으면 방법을 만들어올 사람이다.
재중이 형이 팀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가더니 뭔가를 계속 설명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 다 됐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이젠 시간도 없어 보이네.”
재중이 형이 타이밍을 재는 것처럼 케르베로스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왼쪽 머리가 얼음 브레스를 준비할 때 뛰쳐나가더니 곧장 불타오르는 케르베로스의 갈기를 잡고 옆에서 점프해서 올라탔다.
테이밍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저게 무슨?
스파크 윙드 스피어의 창대를 얼음 브레스가 나가고 난 뒤에 닫히려는 케르베로스의 입가에 그대로 걸어버렸다.
확실히 저렇게 창대로 입을 못 닫게 만들면 되는데 저거 버틸 수 있는 건가?
“오래 못 버텨. 그 안에 끝내.”
케르베로스에 올라탄 재중이 형의 HP가 화염 디버프 때문에 물약이 채워주는 대도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나도 챠밍과 아이꿍에게 힐을 받아서 버티는데 저건 무리수 같은데.
그때 재중이 형의 몸에 힐 마법 특유의 밝고 하얀 이펙트가 잔뜩 걸리기 시작했다.
“저건…….”
돌아보니 재중이 형네 팀 전부가 손에서 마법을 시전 중이다. 확실히 힐이 약하다뿐이지 못 쓰는 건 아니니까.
급하면 저렇게 물량으로 때워도 된다.
심지어 우리 팀도 챠밍을 제외한 전부가 재중이 형에게 돌아가면서 힐을 걸 준비를 하고 있다.
힐을 배워둔 것이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팀의 역량을 전부 짜내서 작전을 만들다니, 참 대단하네.
이제 남은 건 전부 내 몫이다.
플레임 소드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컨트롤하면서 재중이 형이 억지로 벌여 놓은 얼음 속성의 입가를 긁으니 바로 반응이 왔다.
이건 된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케르베로스의 입만을 정확하게 찍어내면서 중첩을 쌓기 시작하니 케르베로스가 내 공격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머리를 틀기 시작했다.
“옳지, 반응 온다.”
“챠밍 님이 저희를 살렸네요.”
사장님이 좋아서 펄쩍 뛰시고 이제는 거의 다 이긴 거라고 생각한 건지 긴장이 많이 풀린 방패전사가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재중이 형네 팀도 아까의 침울했던 순간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분위기가 살아났다.
반면 케르베로스가 엄청나게 날뛰기 시작하니 올라탄 재중이 형만 개고생 중이다.
“이거 다시는 안 할 거야!”
“다 돼가요. 좀만 참아요.”
화염 중첩에 계속 입속을 공격당한 케르베로스가 어느 순간 구슬픈 울음을 흘리더니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쓰러져 버렸다.
“나이스!”
“됐다!”
불벽이 진짜 조금만 더 밀고 들어왔으면 파이어월에 계속 서 있는 것처럼 HP가 줄줄 달았을 텐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재중이 형이 죽은 케르베로스에서 내리면서 씨익 웃어 보인다.
확실히 난 사람은 난 사람이네.
빠른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제 곧 사라지면서 아이템을 잔뜩 뿌려줄…….
“뭐지?”
“저거 왜 안 사라져?”
재중이 형네가 전부 웅성웅성거린다.
“……끝난 거 아니에요?”
이쁜소녀가 지켜보다가 이상한지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글쎄, 날 쳐다본다고 딱히 답이 생기는 건 아니라서 해줄 말이 없네.
“형. 이거 왜 이래요?
“으음? 나도 모르겠는데…… 전에는 여기까지 깨면 끝이었는데. 잠수함 패치를 했나?”
재중이 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르베로스에서 검붉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뒤로.”
일단 뭔지 모르니 안 맞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모두를 뒤로 물러서게 했다.
넘실거리던 검붉은 기운들이 케르베로스 위에 하나로 뭉치더니 케르베로스의 몸체를 모두 감싸 안았다.
“으음, 일단 기다려야 하나.”
재중이 형의 중얼거림을 한 귀로 들으면서 지켜보니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몸을 감싼 거대한 검붉은 구 아래로 핏빛의 알아볼 수 없는 원형 마법진이 생성되면서 검붉은 구를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의 검은 형체가 조금씩 몸을 드러냈다.
“사람?”
“아냐, 머리를 봐.”
이쁜소녀가 착각하는 것도 맞는 것이 거의 인간의 형체가 드러난다. 다만, 챠밍이 말한 대로 머리가 검은 늑대라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머리가 세 개인 것도 아니다. 양쪽 주먹 대신 거대한 늑대 머리들이 각각 달려 있다.
온몸을 덮은 털도 온통 검붉다. 온몸도 보디빌더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근육질로 꽉 채워져 불끈거리고 있고.
마법진이 구의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자 피에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은 검붉은 광택의 거대한 라이칸스로프가 깊고 깊은 어둠을 간직한 것 같은 새까만 눈을 떴다.
<< 나의 잠을 깨운 것이 너희냐. >>
낮고 굵은 음성인데도 제단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울림이 느껴진다.
<< 이 얼마 만에 보는 제물들인가.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마. 이리 와서 내 피와 살이 되거라. >>
케르베로스였던 라이칸스로프가 우리를 향해 한발씩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잡고 보자.”
사장님도 이 특수한 상황이 기꺼운 모양이다. 어쩌면 다른 보상이 있을 수도 있고.
“조심해야 할 건…… 저 특이한 팔인가.”
양팔에 마치 늑대를 한 마리씩 달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모양이 맘에 걸린다.
손 자체도 거대한 늑대의 입이 대신하고 있고.
어쩌면 저게 진짜 악마형인지도 모르겠다.
슬이아빠와 방패전사가 일단 정면에 섰다. 상대를 모를 땐 방어가 높은 사람이 최전방에 서는 것이 맞다.
나와 재중이 형도 좀 사선으로 서서 혹시나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 지저의 세계로 너희들을 보내주마. 감사히 여기거라. >>
시스템 음이 끝나자 케르베로스가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마치 늑대의 뒷다리 같은 굵은 허벅지가 팽창하더니 엄청난 빠르기로 마법진 중앙에서 박차고 나왔다.
“빨라.”
대체 민첩이 몇이지?
이거 밸런스가 맞긴 한 건가?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10여 미터를 격하고 방패전사의 앞에 도달한 케르베로스가 거대한 늑대 이빨이 달린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큭!”
방패전사가 어떻게 반응을 해서 라지 쉴드로 케르베로스의 공격을 막긴 했는데 힘을 이기지 못한 듯 방패와 함께 통째로 밀려 날아가더니 한참이나 떨어진 벽에 가서 그대로 처박혔다.
“한 방에?”
“말도 안 돼.”
방패전사의 능력은 누구보다도 우리 팀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저렇게 한 방에 떨어져 나가는 그림은 나와서는 안 된다.
슬이아빠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일단 앞을 막아섰다.
본인이 비켜서면 뒤의 궁수와 마법사들이 전부 한 번에 노출되니까.
다시 흑색의 케르베로스가 공격하니 슬이아빠도 별다른 대응도 못 해보고 그대로 밀려서 옆으로 날아갔다.
“이건 좀 심한데.”
재중이 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
확실히 움직임도 엄청나게 빠른데 힘은 그보다 더한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든 발을 묶기 위해서 챠밍과 아이꿍이 바인드와 아이스볼을 계속 날리는데 전혀 맞출 수가 없어 보인다.
“너무 빨라요.”
솔직히 맞더라도 늦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방패를 들고 있던 사장님이 챠밍과 아이꿍의 보호를 위해 뒤로 빠지고 배틀 액스를 든 천둥과 양손검을 든 해신이 케르베로스의 양옆으로 벌리면서 최대한 빠르게 무기들을 휘둘렀다.
저건 통하려나?
재중이 형이 직접 모아둔 사람들이다 보니 공격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저런 식으로 피하기 까다롭게 들어가는 합격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배틀 액스와 양손검의 날이 아주 깔끔하게 양손의 늑대 이빨에 잡혀버렸다.
“끄응.”
천둥이 배틀 액스를 빼보려고 용을 쓰는데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해신도 마찬가지고.
그와 동시에 양손의 늑대 머리에서 각각 뇌전과 화염이 강하게 터져 나와 배틀 액스와 양손검을 타고 흘러 천둥과 해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염과 뇌전에 당한 천둥과 해신의 HP가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간다. 물약의 회복력이 차마 따라가지도 못한다.
“빠져나와!”
재중이 형과 나, 이쁜소녀가 함께 천둥과 해신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드니 그제야 천둥과 해신을 놓아주고 흑색의 케르베로스가 뒤로 빠졌다.
“이거 꺼지지도 않네.”
화끈한 상남자 스타일인 천둥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선이 진한 얼굴의 해신도 별달리 할 말이 없는지 계속 내려가는 HP만을 보고 있고.
그래도 케르베로스에게서 떨어져 시간이 지나니 점점 HP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살긴 하겠네.
멀리 날아갔던 방패전사와 슬이아빠도 겨우 살긴 했는지 HP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정면은 너랑 나만 들어간다. 이쁜소녀 님, 해신, 천둥은 우리가 위험해지면 바로 들어오고 일단 대기.”
이쁜소녀, 해신, 천둥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한번 부딪쳐 보니 답이 안 나오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실력으로 붙어보겠다고 억지를 부릴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팀 중 한 명도 없으니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가자! 절대 정면에서 붙지 마. 최대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재중이 형이 먼저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내가 사선에서 플레임 소드들을 들고 재중이 형이 만들어준 공간을 노릴 생각이고.
재중이 형이 창극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 휘두르니 케르베로스가 이번에도 창을 잡기 위해 늑대 이빨을 들이미는 순간 교묘하게 창을 틀어 궤적을 바꾸더니 빠르게 휘두르면서 팔 끝을 베어냈다.
역시…….
컨이 굉장하다.
스펙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도 기어코 공격에 성공했다.
팔이 긁히자 열이 잔뜩 올랐는지 케르베로스가 재중이 형만 바라보고 공격을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뒤로 빠지며 창의 리치를 최대한 이용해서 간격을 유지하는 틈을 타 뒤로 슬쩍 돌아 들어가서 플레임 소드들로 케르베로스의 목을 빠르게 그었는데 마치 뒤에도 눈이 있는 것처럼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서 내 공격을 피해 버렸다.
“평범한 공격은 아예 안 맞아주겠다 이거네.”
팔에 달린 늑대 머리들이 시야도 확보해 주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이면 몰래 뒤로 들어가 봐야 답도 없다.
내 공격이 경고를 확실히 준 건지 뒤돌아선 케르베로스가 곧장 늑대 팔을 뻗어 내게 쇄도해왔다.
모자란 스펙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상대가 불가능하다.
그대로 집중을 끌어올리자 케르베로스가 공격하는 궤적이 감각에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더 강하게 들어오는 공격을 라이트 소드를 입힌 플레임 소드의 날로 미끄러지듯이 밀어 올려 힘의 방향만 틀어지게 만드니 팔의 궤적이 미묘하게 뒤틀린다.
그 잠시의 마찰에 HP가 무식할 정도로 깎여 내려가고 있다.
고작 밀어내는 정도인데…….
그래도 HP를 소모한 보람은 있는지 팔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밀어내자 케르베로스의 굳건했던 하체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지금!”
재중이 형이 라이트 소드를 잔뜩 입힌 스파크 윙드 스피어로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리는 케르베로스의 등판에 강력한 찌르기를 넣었다.
크어어!
흑색의 케르베로스가 재중이 형의 강한 공격을 등을 맞고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간 공격 때문인지 고함을 질렀다.
아주 안 통하는 건 아니구나.
근력과 민첩만 보고 완전 괴물인지 알았는데 의외로 방어는 그렇게 강하지 않은 모양이다.
더불어 챠밍과 아이꿍의 아이스볼이 다리에 맞으면서 몸 전체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제한되자 때를 기다리고 있던 나르샤와 수아가 풀 차징한 강력한 화살을 쏘아냈다.
텅텅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옆구리와 등에 맞은 화살 때문인지 다시 케르베로스가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틈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쁜소녀, 천둥, 해신도 라이트 소드를 켜고 그대로 한 번씩 강한 타격을 입히고 뒤로 빠졌다.
재중이 형과 내가 정면에서 분전하고 방패전사와 슬이아빠가 이번엔 날아가지 않도록 자세를 충분히 낮춰서 막으니 겨우겨우 버티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쁜소녀, 천둥, 해신이 우리들 사이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조금씩 대미지를 입히고 챠밍, 아이꿍, 나르샤, 수아가 계속해서 원거리 딜을 입혔다.
다행이 중간에 막 튀어나가서 공격하는 경우가 없어서 오히려 동물형 케르베로스보다 돌발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스펙이 너무 차이 나서 물약이 미친 듯이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다.
“물약이 간당하네.”
앞에 페이즈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진행했는데 지금 와서는 독이 됐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넘기지도 못했겠지만.
잠시 떨어져 급하게 물약을 몇 개씩 넘겨받고 다시 전투에 들어가다 보니 흑색의 케르베로스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크윽, 이 몸이 이렇게 밀리다니. 죽어라! >>
흑색의 케르베로스의 눈에서 금색 빛이 터져 나오고 입가에 뇌전이 잔뜩 모이더니 곧바로 강력한 뇌전 브레스가 정면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피해!”
동물형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훨씬 넓은 범위로 브레스가 터져 나와 정면에 있던 이쁜소녀, 천둥, 해신이 그대로 휘말려서 HP가 순식간에 0으로 떨어졌다.
거기다 케르베로스의 뇌전 브레스가 180도로 돌아가면서 제단의 절반을 전기 공격으로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건…….”
재중이 형, 사장님, 챠밍, 아이꿍이 전부 반원으로 퍼져 나가는 브레스에 직격당해서 역시 HP가 0으로 변했다.
가까스로 균형을 이루고 공격을 성공해 승산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나.
이제 남은 건 나와 나르샤, 수아뿐.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양팔에 달린 늑대 머리에서도 화염과 얼음 브레스가 뻗어져 나와 남은 구역을 모두 쓸어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나르샤, 수아 역시 거대한 브레스 웨이브에 휘말려서 HP가 0으로 떨어졌다.
“이걸 어떻게 잡아…….”
전멸.
나조차 민첩이 떨어져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라 답도 안 보인다.
몇 번 트라이 하더라도 이건 무리다.
근데 이상한 점이 전부 HP가 0이 됐는데도 파티 창에 보이는 아이디가 회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뭐지?”
재중이 형이 바닥에 쓰러져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나도 전혀 모르겠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케르베로스를 쳐다보는데 브레스를 난사하고 난 케르베로스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온몸이 굳어가면서 조금씩 부스러져 내려가면서 케르베로스가 일그러진 얼굴로 우릴 보면서 말을 남겼다.
<< 이따위 육체로는 이게 끝인가…… 운이 좋구나. 제물들아. 검게 물들인 세상에서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흑색의 케르베로스가 힘겹게 말을 마친 뒤 몸이 회색의 돌처럼 굳어 조각조각 부서지더니 바닥에 쏟아졌다.
강렬했던 등장에 비하면 초라한 말로라고 해야 하나.
그와 동시에 메인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제단 천장의 일부분이 부서져 내렸다.
부서진 천장으로 보이는 하늘의 먹구름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그 사이로 새하얀 빛이 장렬하게 내려와 제단에 누워 있는 우리들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