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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3화 (63/1,404)
  • # 63

    #63화 케르베로스 레이드 (4)

    “크르르르!”

    케르베로스에게서 가래 끓는 듯한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세 개의 머리 중에 가운데의 머리가 위로 치켜들려 진다.

    재중이 형이 치켜 들려진 머리의 눈동자 색이 노랗게 빛나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옆으로 스탭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케르베로스 사방으로 우리가 전혀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전기 폭풍이 일어났다.

    “전부 다 흩어져요.”

    재중이 형의 말에 잊혀진 고성 지하 제단 안으로 들어온 모든 인원이 서로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페이즈가 변하면 저렇게 사람들을 떨어뜨려 놓으니 바로바로 떨어져.”

    전기 폭풍이 사라진 자리에 케르베르스의 몸체를 타고 스파크가 일어난다.

    “건들기 부담스럽네요.”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뭐, 하다 보면 익숙해져.”

    역시 많이 상대해본 티가 확 난다.

    케르베로스의 노란 눈이 확 빛나더니 곧장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재중이 형이 빠르게 움직이자 원래 서 있었던 자리에 노란 원형의 스파크가 일면서 꽤 넓은 범위로 마법진이 생기더니 곧장 천장에서 눈으로 좇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은 번개가 강하게 내리꽂혔다.

    치치직!

    번개가 내리꽂힌 원형의 마법진 위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이리저리 계속 튀어 오른다.

    저 자리에 있으면 100% 사망.

    번개를 맞고 버텼어도 케르베로스가 그냥 두지 않았을 거다. 저걸 맞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전 효과를 받아서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려진다는 뜻이니까.

    저 번개를 맞고 케르베로스의 공격을 피한다?

    그건 나도 무리다.

    다행히 미리 대비를 해서 그런지 저 번개 스파크에 맞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사람이 적은 게 더 낫네.”

    “확실히…… 그렇네요.”

    영상을 봤을 때 저 번개 하나로 몇 명이 죽어 나갔다.

    사람 수에 따라갈수록 번개가 많이 떨어지는데 사람이 많아서 피할 자리가 점점 없어지면 답도 없다.

    차라리 이렇게 사람이 적게 움직이면서 서로 떨어져 있는 편이 훨씬 낫다.

    마법진이 생기는 시간과 번개가 꽂히는 시간의 차이가 거의 없어서 바닥에 마법진이 생기는 것을 보고 조금만 늦게 벗어나면 그냥 죽는다고 봐야 하니까.

    다른 사람보다 챠밍이 걱정이네.

    격수 계열은 민첩이 어느 정도 높아서 상관없지만 챠밍은 마법 계열이라 민첩을 올리긴 했어도 애초에 발이 느리다.

    네임드인 트라이네의 이속 신발까지 구해다 신고 오긴 했는데…….

    방금 전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2타 옵니다.”

    방패전사가 다시 눈이 노랗게 변하는 케르베로스를 보고 외쳤다.

    또다시 바닥에 깔리는 원형의 마법진.

    우리 팀, 재중이 형네 팀 할 것 없이 사방팔방 달린다고 정신이 없다.

    다행히 2타까지는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갔다.

    “3타부터는 횟수가 늘어나니까 진짜 잘 보고 달려요.”

    슬이아빠가 주변에 알림을 하듯이 말하자마자 역시 케르베로스의 눈이 노란색으로 빛나고 바닥에 마법진이 계속 깔린다.

    아까보다 거의 두 배나 늘어난 수에 결국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챠밍이 움직이던 코스에 연이어 두 개의 마법진이 동시에 생긴 것이 문제.

    한 개라면 그냥 빠져나오겠는데 움직이던 관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차로 생긴 다른 한 개의 마법진에 들어가 버려서 빠져나오는 게 어려워 보인다.

    “아…….”

    챠밍이 죽을 것을 예감한 듯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곧 천장에서 번개가 내려치고 챠밍이 맞으면 죽거나 재수 좋게 살아 있어도 케르베로스가 달려와서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고민할 시간도 없다.

    온몸의 감각을 가빠르게 끌어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딱 한 지점을 내가 바라는 시간대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감각.

    마법진이 생기고 번개가 떨어지기 전, 그 딱 하나밖에 없는 완벽하게 정확한 순간에 번개가 떨어지는 바로 그 지점으로 플레임 소드가 미리 도달해야 하는 그런 감각이 필요하다.

    마치 창을 던질 듯이 플레임 소드의 손잡이를 역으로 잡고는 팔을 최대한 뒤로 뻗어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앞발로 최대한 강하게 내디디면서 마치 빨래를 비틀어내듯이 허리를 뒤틀어 어깨와 팔에 한 올의 낭비 없이 모든 탄력을 전달해 손끝에서 폭발하듯이 플레임 소드를 던졌다.

    딱 한 지점, 한순간이면 된다.

    내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힘을 이어받아 내 손을 떠나는 플레임 소드가 빠르게 뻗어 나가 챠밍의 머리 위로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번개의 궤적에 아슬아슬하게 맞아 들어갔다.

    챠밍 대신 번개를 맞은 플레임 소드가 엄청난 스파크에 휩싸이더니 번개를 소멸시키고 그대로 거칠게 퉁겨져 나왔다.

    번개를 차마 피하지 못하고 죽을 거라 생각했던 챠밍이 깜짝 놀란 눈을 깜빡거리면서 날아간 플레임 소드를 보다가 나를 돌아본다.

    “아…… 정말 고마워요.”

    챠밍이 곧장 고개를 푹 숙인다.

    “감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움직이죠.”

    재중이 형도 멀리서 슬쩍 우리들을 쳐다보더니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케르베로스로 달려들었다.

    HP바를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겠지만, 사람이 당황하거나 다른 심리적인 부분은 또 다른 문제니까.

    챠밍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계속 옆에 머무를 순 없다.

    재중이 형 말에 따르면 최대한 케르베로스의 HP를 깎아야 페이즈가 넘어가니까 내가 쉬면 쉴수록 우리 팀이 죽을 확률이 더 올라간다.

    아까처럼 운이 없는 상황이 안 오길 바랄 수밖에.

    그대로 플레임 소드를 주워서 챠밍을 뒤로 하고 다시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여간…… 희한한 짓은 다 하고 다니네.”

    “저도 될지 몰랐어요. 자주는 못 할 것 같아요. 이번엔 운이 좋았죠, 뭐.”

    “다른 사람은 운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때맞춰서 하진 못 할 거다. 무기를 100개 정도 던지면 하나 걸려들려나? 애초에 번개를 무기로 막다니…… 우리 영상은 절대 공개 못 하겠네, 진짜.”

    재중이 형이 계속 스파크 윙드 스피어로 케르베로스를 푹푹 찌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재중이 형도 만만치 않은데…… 날 보면서 이야기하면서도 할 건 다 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정확도로.

    4타는 다행히 큰 위험 없이 넘어갔다. 아까는 정말로 운이 없었을 뿐이다.

    모두 익숙한 움직임으로 번개를 최대한 외곽에 떨어뜨려 놓고 다시 케르베로스에게 붙는 식으로 딜을 잘 넣어서 그런지 페이즈가 빠르게 넘어갔다.

    이번엔 케르베로스의 가운데 머리의 눈에서 노란빛이 사라지더니 왼쪽의 머리의 눈에서 짙푸른 광채가 일어난다.

    동시에 케르베로스 주변으로 엄청난 얼음 폭풍이 터져 나오자 일단 모두 자리를 피했다.

    “다들 잘 보고 움직여.”

    얼음 폭풍이 사라진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입들에서 파란 구슬들을 주변으로 마구잡이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번엔 개인이 정말 잘 해야 한다.

    구슬이 땅에 닿으면 곧 십자가 형태로 터지는데 랜덤으로 구슬이 막 깔려서 구슬 위치를 잘 보고 움직여야 한다. 제대로 얼음 십자가들 사이의 빈 공간으로 못 들어가면 얼어붙는다.

    미니게임 같다고 해야 하나.

    얼어붙으면 주변에서 깨줘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얼어붙은 사람들 위주로 케르베로스가 브레스 공격을 하기 때문에 깨는 동안 공격을 받으면 죽기 십상이다.

    벌써 바닥에 깔린 개수만 거의 50여 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개수가 늘어난다.

    사방팔방 구슬이 떨어지면 발붙일 곳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 구슬을 딜해서 최대한 깨주는 것이 핵심이다.

    “우린 구슬 깨러 간다.”

    사장님이 재중이 형네 팀을 데리고 곧장 사방으로 퍼져 나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구슬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저희도 갈게요. 손이 모자랄 것 같아요.”

    챠밍이 나서자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 모두 따라나선다.

    우리가 딜하기 편하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저들이 할 임무다.

    “주호야, 넌 나랑 케르베로스 친다. 이거 시간 끌면 우리 다 죽어.”

    “네, 가죠.”

    케르베로스한테 가려면 얼음마다 언제 풀리고 얼마만큼 뻗어 나와서 길을 막는지 눈에 다 들어와야 한다.

    한번 주변을 싹 둘러보니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 본능적으로 정보들이 막 들어와서 머리에 쌓인다.

    “정말 사방에서 터지네요.”

    “발 잘못들이면 갇혀서 오도 가도 못 해. 저쪽!”

    재중이 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둘 다 뛰어갔다.

    눈으로 한 번 보았던 구슬 중에 늦게 터지는 것들 위주로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새 케르베로스의 옆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치자.”

    재중이 형이 먼저 달려가서 창으로 찍으니까 케르베로스가 얼음 구슬을 뱉는 것을 멈추고 그제야 우리를 바라본다.

    나와 재중이 형이 계속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공격하자 처음에는 반격도 하고 신경을 쓰는 것 같더니 다시 허공으로 얼음 구슬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얘 반격을 안 하는데요?”

    “좋네. 지금 최대한 깎아야 해. 가자.”

    케르베로스는 계속 구슬을 뱉어내는 중이라 나와 재중이 형이 바싹 붙어서 치는 대도 불구하고 움찔거릴 뿐 따로 반격을 하지 않는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아주 작정하고 플레임 소드들로 목만 죽어라 쳐대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케르베로스의 푸른 눈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음 속성이 된 케르베로스에게 화염 중첩을 쓰니 그야말로 녹아내려 버린다.

    극상성이니 딜이 폭발적으로 들어간 모양.

    “나이스!”

    주변에서 잘했다고 사라져가는 얼음 기둥들 너머로 환호성이 들려온다.

    “색깔 또 변한다. 튀어.”

    이 주변에 있으면 분명히 폭풍에 휘말리니까 재중이 형과 함께 급하게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페이즈가 빨리 넘어가니까 피해가 훨씬 덜하네. 이건 계산 이상으로 좋아.”

    재중이 형이 이건 정말 승산이 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쥔다.

    화염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나타난 케르베로스의 세 번째 머리가 붉은 눈빛을 하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이제 스파르타 페이즈.”

    이건 재중이 형이 이름 붙인 거다.

    주변 벽에서부터 불기둥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게 점점 좁아진다.

    문제는…….

    “저놈의 케르베로스도 불이 붙는단 말이지.”

    다가가기만 해도 화염 디버프가 붙어서 피가 계속 떨어져 내린다.

    이건 정말 원거리 딜러들이 도망 다니면서 딜을 하거나 근거리가 붙고 마법사들이 전부 힐을 몰아주는 수밖에 없다.

    이 페이즈가 넘어가면 우리가 살고, 반대로 지면 그냥 홀라당 다 타죽는 거다.

    “진짜 게임 만든 놈들 악취미야. 이건 너한테 맡겨야겠지.”

    “그러라고 온 건데요. 갑니다.”

    “챠밍 님 주호한테 힐 몰아줘요. 아이꿍 너도.”

    “네. 잘할게요.”

    “네, 오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은 활을 꺼낸다.

    굳이 같이 달라붙어서 힐을 나눠 받을 필요가 없으니. 재중이 형 말고도 전부 다 활을 꺼냈다.

    주력 무기가 제일 좋긴 한데 아예 다른 무기를 못 쓰는 건 아니니까. 강화가 덜 되어 있어서 아마 딜은 형편없을 거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번에도 역시 화염의 폭풍이 일어나서 주변으로 피했다가 폭풍이 사라진 후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염의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었다.

    근처를 가서 HP를 확인했는데 확실히 피가 계속 깎여 내려간다.

    이제껏 이런 식으로 HP가 내려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보니 이상하게 긴장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약이 계속 HP를 채워주고 뒤에서 챠밍과 아이꿍이 번갈아 가면서 힐을 넣어주니 겨우 일정 수치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브레스만 조심해가면서 계속 플레임 소드로 케르베로스의 목들을 긋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느낌이 안 좋다.

    “역시…….”

    이걸 이대로 가는 게 답이 맞나?

    “왜?”

    “중첩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더?”

    “네, 더요.”

    “미치겠네.”

    재중이 형의 미간이 확 좁아진다.

    둘이 같이 전에 이야기할 때 이 구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화염 중첩이 먹힐 것인지 아닌지.

    지금 보면 아예 안 먹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미묘하다.

    “어차피 우리 방법도 없어. 그냥 쭉 가자.”

    “별수 없네요.”

    정말 딜로 밀어붙여서 넘겨야 하는 페이즈인데 길드 사람들이 여기서 좌절을 많이 했다.

    사방은 불벽으로 좁아지지 케르베로스는 불을 뒤집어쓰고 엄청나게 비벼대니까 물약과 힐 소비가 따라가지를 못해서.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페이즈가 변할 생각을 안 한다.

    뇌전과 얼음 페이즈를 이렇게 쉽게 넘겨놓고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답답한 기분까지 드네.

    상성이 진짜 최악이다.

    “벽이 너무 가까운데…….”

    “피할 곳이 별로 없어요.”

    재중이 형네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불의 벽이 점점 우리를 옥죄듯이 밀고 들어오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길드 사람들과 똑같은 결말이 올 뿐이다.

    “주호 님, 꼭 거기만 공격해야 해요?”

    “네?”

    챠밍이 힐을 계속 주다가 내가 계속 불타오르는 케르베로스의 목만 공격하고 있으니 뭔가 생각이 난 모양이다.

    “혹시 저건 괜찮지 않을까요? 좀 힘들겠지만 주호 님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챠밍의 검지가 케르베로스를 가리키는데 그걸 보고 머리에 망치를 맞은 기분이 든다.

    이거 챠밍의 한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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