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61화 케르베로스 레이드 (2)
이왕 1구역 사냥터로 나온 김에 가볍게 사냥을 하면서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중이 형과 사장님은 한번 오시더니 아예 우리 팀에 눌러살려고 가시지도 않고 있고.
“형, 형네 사냥팀 있지 않아요? 매일 여기 와서 놀면 문제 안 생겨요?”
“뭐, 걔들은 나 없어도 사냥 잘 할걸?”
재중이 형의 표정엔 걱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베테랑 같은 건가?
“카이저…… 형님은요?”
정말 입에 안 붙네. 형님이라니.
사장님이 입에 착착 붙는데.
“형님이야 여기저기 많이 같이하시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뭐, 길드장이다 보니까 유동적으로 하시나 보네.
이쪽은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
지나가던 저주받은 워울프 투사를 그야말로 다 같이 녹여 버리고는 다시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너희 팀 정도면 더 안쪽에서 해도 되겠는데? 숫자가 적은 것이 흠이긴 한데 지금 상태면 괜찮지.”
“괜찮은 편이에요?”
“어, 조금 더 가르치긴 해야겠지만 다들 기본적인 센스가 괜찮은 편이네.”
내가 보기엔 괜찮아 보였는데 재중이 형도 비슷한 평가를 해주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사실 너희 팀이 길드에 들어와서 우리 수준에 가깝게 렙이 오르면 잊혀진 고성으로 바로 가려고 했거든. 내 기존 계획에서 딱 너희 팀만 더 들어오면 답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원래는 답이 없었다는 거네요?”
“그래, 답이 안 보이더라. 프로텍트 중첩으로 잡을 때도 진짜 개고생해가면서 깼으니까. 방어가 높으면 뭐하냐. 다들 움직임을 못 따라잡는데. 케르베로스가 진짜 지금쯤 깨라고 놔둔 네임드가 아니야. 강화 더 하고 렙 더 오르고, 컨트롤이 훨씬 익숙해져야지 깰 수 있을걸?”
“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아마 수십 번 넘게 트라이한다고 해도 지금은 장담할 수 없었거든. 근데 널 보고는 생각이 완전 바뀌었지. 왜 내가 그렇게 넘어오라고 했겠냐.”
이거 참. 애초에 내가 합류해야지 그림이 완성되는 거였나? 몸값을 좀 더 세게 부를 걸 그랬네.
소고기 한번 거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너 포함해서 너희 팀 넣고 길드원들 전부 데리고 가면 오늘이라도 케르베로스를 깰 수 있어. 그 플레임 소드 보기 전까진 니가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니까.”
“뭐, 그럴 것 같았어요.”
플레임 소드의 화염 대미지 중첩으로 얼마나 딜을 낼 수 있을까? 레이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마 상상도 못 할 대미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가 포함되면 그 인원으로 가서 못 깬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근데, 넌 그걸 절대 원하지 않겠지.”
말을 꺼내는 재중이 형의 표정이 담담하다. 재중이 형도 이쪽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다.
“그 돈 들여가면서 강화했던 걸 봐선 케르베로스를 통째로 홀라당 먹을 생각이잖아.”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재중이 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날 본다.
재중이 형이 제대로 봤다.
저주받은 워울프 투사는 일종의 가능성을 체크해본 거다. 과연 정말로 원하는 수준으로 대미지가 터져줄 것인지.
그리고 터진다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아갈지 가이드라인을 이미 머릿속에서 모두 정해둔 상태다.
“저도 플레임 소드를 이 정도까지 구해서 강화한다고는 생각도 안 해봤거든요. 테이밍이 터지기 전까진.”
원래는 그냥 4강 플레임 소드를 들고 차근차근 사냥하고 돈을 모으면서 적당히 재중이 형 길드에 묻어가는 형식이 될 예정이었는데 이틀 사이에 모든 계획을 다 뜯어고쳤다.
그렇게 급하게 뜯어고치다 보니 빈틈이 한둘이 아니다. 내 생각을 아는 재중이 형이 그 빈틈을 하나씩 메워줄 것 같고.
“무슨 이야기 중이냐?”
사장님이 은근슬쩍 와서 이야기에 참여하신다.
둘이 중얼거리고 있으니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이건 형님도 아셔야 하는 문제니까…….”
이 문제에 길드장인 사장님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보니 재중이 형이 나와 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여서 전달했다.
“음…… 역시 분배 문제냐?”
사장님도 길드장을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라 그런지 이런 쪽으로는 바로 답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죠. 길드 전체가 레이드에 참여했다고 생각해봐요. 지금 저 고강 플레임 소드를 주호가 쓰면 혼자서 미친 듯이 딜을 낼 겁니다.”
“하지만 딜 미터기가 아직 없지.”
사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매번 분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하더니 질색하는 사장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다.
“분배할 때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지들이 잘한 줄 알고 아이템 나누자고 할 녀석들이죠. 그놈도 있고.”
그놈이 누구지? 물어봐야 하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템은 엉뚱한 놈들이 가지는 거지.”
“지금은 많은 길드 인원이 오히려 주호에게 방해물이죠.”
“그럴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욕심만 많아서는 쯧쯧.”
사장님이 혀를 끌끌 찬다. 사장님이 생각해도 지금 상황이 좀 어이없어 보이니까.
애초에 게임사에서 이벤트 때문인지 버그 때문인지 케르베로스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지 않았다면 그냥 길드 사람들하고 손잡고 편하게 깼을 거다.
아무래도 네임드 아이템들이 걸려 있으니까 이젠 양보할 수 없지.
쓸데없이 여럿이서 밥숟가락 얻는 건 사양이다.
“일단 길드 이벤트로 잊혀진 고성 클리어한 길드에 보상 준다는 건 누가 깨든 길드원 전원 보상해 준다고 하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재중이 형의 말에 잊고 있던 이벤트가 생각났다.
예전에 공지를 한번 보고 당분간 그럴 일이 없다 싶어서 관심 밖이었는데 의외로 이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네.
만약 보상을 클리어한 사람들만 주는 형식이었으면 상당히 곤란할 뻔했는데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줄었다.
“뭐, 아이템 교환권 같은 거라니까 이건 운에 맡기고.”
이 게임을 하다가 보니까 점점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운빨이 엄청나게 캐릭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거다.
막말로 7강, 6강 안 뜨고 다 날렸으면 지금 레이드 고민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
운빨이 제일 무서운 거다.
교환권에서 이상한 거라도 튀어나오면 쌍욕을 할지도 모르겠네.
“자! 쉽게 가자. 솔직히 우리끼리 케르베로스 해 먹고 싶지?”
재중이 형이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니 말이 좀 막히는데?
이렇게 돌직구를 날리네.
“네, 아니면 이렇게 플레임 소드를 긁어모으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래, 그래. 다 좋아. 근데! 플레임 소드의 폭발적인 딜을 감안해도 우리끼리는 절대 무리다.”
아마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이런 면에선 정말 재중이 형을 신뢰하고 있다.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테이밍할 때도 딜이 조금만 넘어가려고 하자 바로 제지를 할 정도로 확실한 안목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 내가 내는 딜량과 네임드에게 통할 딜량 등을 어느 정도 머리에 그려놨을 거다.
이건 몇 년이 지나더라도 난 못할지도 모르겠네. 얼마나 트레이닝이 잘되어 있으면 저런 식으로 하는지 감도 못 잡겠으니까.
“그럼?”
“문제는 아주 간단해. 넌 해 먹고 싶은데 아예 다 해 먹지는 못 하지. 그러려면 어차피 길드에서 몇 명 정도는 함께 해야 해.”
이건 어쩔 수 없을 것 같고.
“내 쪽에서 몇 명 끌어들일 생각이다. 입 무겁고 좀 신용할 수 있는 애들로. 물론, 실력도 있어.”
파벌이 좀 갈리는 것 같던데 아마 재중이 형네 파벌쯤 되려나?
거기까진 문제가 없다.
재중이 형이 내 의중을 잘 알고 있으니 과하게 많은 인원을 참여시킬 리도 없고.
“클리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로 맞춰갈 거다. 진행이 좀 아슬아슬할 정도로. 인원은 가능한 적은 게 좋지.”
역시 재중이 형의 저런 마인드는 마음에 든다. 깔끔하다.
내 컨과 플레임 소드를 믿고 정말 최소한으로 인원을 맞춰준다는 거다.
그럼, 클리어도 하고 재중이 형 입김이 들어갔으니 분배도 문제가 없을 터.
“근데, 이런 식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 길드 애들 전부 잊혀진 고성 레이드를 자기들이 클리어하고 싶어 하는데. 잘못하다간 길드가 반쪽으로 쪼개질지도 모른다.”
사장님이 듣고 있다가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었나 보다.
“다음 지역을 남들보다 빨리 넘어가려면 먼저 깨야 하니까. 메인 퀘도 있고.”
다른 네임드라면 길드원 누가 먼저 깨더라도 신경 안 쓰겠지만 이런 식으로 지역을 넘기는 열쇠인 네임드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 본 무대에 누가 먼저 올라가는가의 싸움인데 거기 뒤처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길드 전체를 관리하는 길드장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고려해야 하니까 사장님 입장에서는 저게 맞는 대응이다.
길드 전체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수가 깨는 것이 좋고, 내 개인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소수가 깨는 것이 좋다.
이게 내가 꽤 고심했던 부분이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산산조각내는 그림이니까.
“형님, 저 잘 아시면서.”
재중이 형이 확고한 얼굴로 사장님을 바라봤다.
“뭐,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이런 걸 신경 쓸 놈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하긴 우리가 친목 길드도 아니고, 철저히 실력으로 가자는 거 아니냐.”
“역시 사장님! 아! 실수. 형님!”
재중이 형이 말실수를 하고는 주변을 보는데 이미 방패전사,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쪼르르 근처에 앉아서 우리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다가 재중이 형이 둘러보니 일부러 못 들은 척 다들 고개를 돌린다.
아주 어색하게.
“하하…… 그냥 사장님으로 통일하죠? 저 이거 못해 먹겠어요.”
재중이 형이 형님 소리가 어지간히 안 하고 싶었던 모양이네. 사실 나도 좀 입에 안 붙어서 불편하긴 하다.
“허허, 이미 들킨 거 그냥 불러.”
“진짜 사장님이세요?”
이쁜소녀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자 귀여운 눈을 깜빡거리면서 슬쩍 물어본다.
“암, 사장님이지.”
갑자기 사장님도 태도를 돌변해서 귀여운 딸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이쁜소녀를 대했다.
확실히 저만한 딸이 있으니.
이왕 들킨 것 확실히 사장님으로 돌아가시네.
대하기 힘든 사람에서 순식간에 동네 아저씨로 돌변해서 우리 팀 사람들과 금세 어울리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연기하면서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힘들지.
저게 맞는 거다.
“이거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네.”
“전 지금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 이전엔 너무 어색했거든요.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저희 아빠 같고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챠밍도 원래대로 돌아오신 사장님이 훨씬 나은 모양이다.
“이거 참, 이야기가 확 새버렸네.”
재중이 형도 머쓱한지 실없이 웃는다.
잠깐 소강상태였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사장님 어차피 그대로 놔둬도 못 깨요. 주호를 포함하면 100% 깨고, 없으면 못 깨는데 사장님 같으면 어디다 배팅하실 건데요?”
“에잉, 당연히 그런 것 없어도 당연히 우리 주호한테 배팅해야지.”
“그럼, 주호 기준에 맞춰주는 게 지금은 맞는 겁니다.”
정말 한번 정하니 앞뒤가 없네.
“그리고 내가 판을 깔아준다고 했지?”
재중이 형이 아까 이야기 한 건데 솔직히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네, 대체 그게 뭐예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이미 일어날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듯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작전명, 네 분수를 알라!”
대체 뭐야 저게.
“길드원들 뜻대로 마음껏 레이드 뛰게 해줄 생각이다. 제한 걸었던 거 다 풀고.”
“그게 무슨?”
“철저히 실력으로 결과를 보이라는 거지. 깰 수 있으면 깨보라고. 물론, 나도 포함해서 레이드를 뛸 거다. 내가 안 들어가면 모양새가 이상해지니까. 그리고 당연히 최선을 다할 거야. 썩은 동태눈만 모여 있는 게 아니니까.”
아주 길드에 손 놓고 그런 건 아니구나. 매번 엎는다고 노래를 부르니까 진짜 신경 안 쓰는지 알았는데.
근데 저러다 진짜 깨버리면?
나 완전 개털 되는데?
“나 믿냐고 물어봤었지? 믿어. 내가 최선을 다해도 절대 못 깨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래서 믿냐고 물어본 건가 싶네.
“그리고 너희 팀은 렙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당분간 빠질 거다. 쓸데없이 휘둘리지 말고 미리 메인 퀘스트 깨 놓고 렙업에 집중해.”
하긴 계속 레이드에 불려갔다가는 답도 없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깨버리면 엄청나게 불만을 표시하겠지. 반대로 충분히 기회를 줬는데도 못 깨고 있는데 우리가 깨면? 변명 거리도 안 돼. 아무 말도 못 할 거다. 자기들보다 소수로 깨버리면 쪽 팔려서라도 더더욱 못하지.”
재중이 형 말대로 먼저 깨는 것과 나중에 깨는 것이 느낌이 아예 다르다.
좀 말이 나올지언정 대놓고는 아무 불만을 표시할 수조차 없다. 오히려 말을 꺼내면 그 사람이 더 초라해질 뿐이다.
이게 재중이 형이 그리는 그림인가?
내게 원하는 바를 다 챙겨주면서도 길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그런 그림.
***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한지 꼬박 닷새 동안 꾸준히 잊혀진 고성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레이드를 돌았다.
결과는?
대참패.
길드 전쳇말을 볼 수 있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그대로 확실히 길드 자체에 날고 기는 사람들을 모아놔서 그런지 매번 색다른 전략, 전술이 튀어나온다. 챗창을 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로 쏟아지는 다양한 방법에 가끔 감탄도 했고.
근데 결국 물약이 부족하거나, 딜이 모자라거나, 패턴이 꼬이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매번 좌절을 했다.
재중이 형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네.
지금 사람들 스펙이나 수준으로는 못 깬다.
결국 대부분의 길드원이 당분간 다시 스펙을 쌓기로 하고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손을 들어 버린 것이다.
성과 없이 계속 꼬라박는 것도 힘이 빠지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꼬라박다가는 다른 길드에 따라잡힐 여지를 줄 수도 있고.
“렙업 잘돼 가냐??”
재중이 형이 우리가 한참 사냥하고 있던 1구역에 나타나서 내 어깨를 툭 쳤다.
“봤어요. 단체로 연기하는 거.”
“어, 결국 이렇게 되는 거지.”
“그럼?”
재중이 형이 내 물음에 씨익 웃는다.
“어, 오래 기다렸네. 오늘 쉬고 내일 들어간다. 이 동네 이제 벗어나자. 우리 너무 오래 있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