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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7화 (57/1,404)

# 57

#57화 여기가 도시섭? (13)

“와…… 방금 소름 돋았음.”

내가 양팔을 손으로 슥슥 문대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형이 피식 웃는다.

오글거림이 귀에서 떠나가질 않네.

“짜식,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어이가 없으면 말문이 막힌다는 것을 게임을 하면서 겪게 되다니.

내가 차마 그거 병이라고 말을 못 하고 있을 때, 골목길 입구로 한 인영이 블랙 울프를 타고 나타났다.

여긴 외진 지역이라 몹도 없고 굳이 사람이 찾아올 이유는 없으니 아마 저 사람이 사장님일 텐데…….

저건 좀…….

너무 고치신 것 아닌가?

인자함이 넘치던 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살짝 벗겨진 머리 대신 어깨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금발 헤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정도 얼굴형은 남아 있긴 한데 후덕한 인상이 홀쭉한 얼굴로 바뀌어 있어 사장님을 아는 사람이 보면 절대로 못 알아볼 정도.

완전 환골탈태했으면서 시간이 없어서 더 못 고쳤다고 그렇게 아쉬워하시다니.

“저분 사장님 맞죠?”

“어, 그래도 알아보네? 난 처음에 전혀 못 알아봤는데.”

저도 아마 상황이 안 이랬으면 절대 지나가면서는 구분 못 했을 겁니다.

재중이 형과 마주 보면서 그저 실없이 웃기만 했다. 저건 표현할 방법이 없어.

어느새 앞까지 다가와서 블랙 울프를 세우고 사장님이 내렸다.

가까이 오니 아이디가 확실히 보인다.

카이저.

저거 황제 같은 뜻 아니던가?

재중이 형도 그렇고 사장님도 그렇고 아이디를 왜 이렇게 오글거리게 짓는 걸까.

아이디가 카이저라 그런가.

PC방에서 보던 것과 달리 완전히 눈빛이 살아 있다.

게임 속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 같네, 정말.

“우리 복덩이 한 번 안아보자.”

내리자마자 내게 오시더니 양팔을 쫙 벌린다.

저건 모습이 변해도 똑같네. 어쩐지 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근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저기, 사장님 여기서 그러긴 좀.”

“어허! 사장님이라니. 형이라 불러라.”

기어코 거부하는 날 두 팔로 안으면서 귓가로 협박이 가득한 목소리로 사장님이 속삭였다.

형이라니…….

“여기선 형이다, 형. 알았지?”

“네? 진짜 그렇게 불러야 해요?”

이게 문화 충격인가? 정말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머리가 띵한 것이 혼란스럽다.

“어허!”

사장님이 다시 한 번 강조를 하자 차마 마지못해 일단 원하시는 대로 불러봤다.

“어…… 형…… 님.”

차마 형이라고는 못 부르겠고 그래서 님자를 붙였더니 이건 거부감이 좀 덜하다.

“뭐, 그 정도면 괜찮겠네.”

모습을 확 바꾸시더니 이젠 부르는 호칭까지 바꿔야 하네.

내가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형님이라 부른다.”

안 봐도 뻔하다.

협박 당하셨구만.

“그래, 잘 넘어왔다. 오자마자 한 건 했다면서? 첫날부터 내가 좀 챙겨줘야 하는데…….”

“아뇨, 괜찮아요. 재중이 형이 잘 챙겨줬어요.”

“가면서 내가 신신당부했거든. 그래. 뭐 불편한 건 없고?”

“지금까진 괜찮네요.”

확실히 지금까지는 예상 이상으로 잘 풀리고 있다. 재중이 형이 도와준 것도 많고.

“보자, 같이 넘어온 사람들 소개는 해줘야지?”

“아! 잠시만요.”

사장님의 말에 모두를 불렀다.

“아이고, 우리 못난 동생 데리고 다니신다고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사장님하고 재중이 형하고 어떻게 저리 첫 멘트가 똑같을까. 그리고 난 벌써 동생으로 굳혀졌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방패전사를 시작으로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순서대로 인사를 나눴다.

재중이 형이야 장난기가 좀 있어서 걱정했지만, 사장님과 나누는 인사는 편하게 바라보았다.

사장님이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 내게 오더니 슬쩍 들리지 않게 말을 꺼내신다.

“애들이 참 선하네.”

“네?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았잖아요.”

인사하고 그냥 정말 몇 마디 덕담 비슷한 걸 나눴을 뿐이다.

“그냥 척 보면 알지. 너도 내 나이쯤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첫인상하고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는 건가? 묘하네.

사람의 인상은 처음 보는 순간 3초 만에 결정된다던데 그런 것과 비슷한가 싶기도 하고.

좋게 봐주니 내 쪽에선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사장님이 맘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일단 길드 가입부터 하자. 안 그래도 몇 놈이 그거 가지고 트집을 잡던 걸 내가 접속하면 한소리 하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다 했더니 재미난 짓을 했더구나.”

그러면서 사장님이 우리 팀이 소환해놓은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절실해 보이는 눈빛으로 말하신다.

“저거…… 남는 거 한 마리 없냐?”

마치 마음에 든 장난감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빛을 내게 쏘아대는데 이건 거절하기 힘들지.

안 그래도 사장님께 한 마리 넘기려고 했었다. 이왕이면 수정도 같이.

“아! 잠시만요.”

사장님을 두고 재중이 형에게 가서 사장님이 안 들리도록 슬쩍 물어봤다.

“재중이 형, 사장님 무슨 수정 써야 해요?”

“당연한 걸 뭘 물어보기까지 하냐. 당연히 푸른 수정이지.”

재중이 형이 1 더하기 1은 2라고 하듯이 아주 정확하게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 준다.

사장님 컨은 고민할 정도는 안 된다는 거구나.

“근데 이건 값어치가 어느 정도 될까요?”

할 수 있어서 잡긴 했는데 막상 처분하려고 하니 값이 문제다.

“아직 팔지 말고 기다려. 어차피 이거 하루나 이틀 안으로 막힌다.”

“네?”

“내가 말했잖아. 지금 정상적으로 테이밍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당장 건물로 들어가서 어그로 푸는 것부터가 버그성인데 회수는 안 해도 곧 막을 거다. 그때 가서 팔면 돼. 그거 아니면 파티가 몇 배로 더 달라붙어야 하는데 값이 올라가면 올라가지 내려가진 않을 거니까.”

재중이 형은 잡는 순간부터 어떻게 흘러갈 건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던 모양이다.

“사장님한테는요?”

사장님한테는 워낙 빚이 많게 느껴져서인지 되도록 싸게 드리고 싶은데.

사실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VRS를 아직도 사용 못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건 부르는 게 값이라서 알아서 해. 나중에 길드원들 모아놓고 경매 형식으로 할 거니까. 니가 주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재중이 형 말을 그대로 사장님께 했더니 지인 중에 플레임 소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서 그거 구해다 주는 걸로 하고 헬하운드 한 마리와 푸른 수정을 넘겼다.

어차피 돈으로 받기도 애매했는데 잘된 셈이네.

“그럼 길드 가입해야지.”

사장님이 이리저리 인터페이스를 건드리니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띠링!

《 최강 길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

나와 우리 팀 모두가 동시에 예를 눌러서 로스트 스카이에서 두 번째 길드 생활을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

“19분 30초. 또 기록 단축이네요.”

“어, 이거 하면서 컨이 늘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이없어지려고 한다.”

나와 재중이 형이 트윈 헤드 헬하운드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서로 누가 더 못 움직이게 만드는지 경쟁하듯이 아이스 소드를 쓰다 보니 가면 갈수록 시간이 단축되어갔다.

첨에 거의 20분은 가볍게 넘어가던 것이 지금은 20분 안으로 한 마리를 잡는 중이다. 풀링 해오는 시간까지 치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오늘 시간은 적었지만, 실수 없이 잡아서 그런지 어제와 비슷한 수로 헬하운드를 모았다.

< 5분 뒤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 올 것이 왔네.”

재중이 형이 허탈해하면서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모습으로 점검 메시지를 바라본다.

“정말 하네요.”

“지금도 많이 늦은 거지. 이놈들 일 안 하나 싶었는데 모니터링 하긴 하는 모양이다.”

“전에 오크 족장하고 프로텍트 중첩 때는 반나절도 안 지나서 해버리던데요.”

“그건 안 막으면 아주 게임이 난장판이 되니까 빨리한 거고.”

이것도 비슷하지 않나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말해봐야 점검한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더 있으면 하나라도 더 건질 건데 아쉽네요.”

“좋은 시절 다 간 거지. 어차피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하고 끝내려고 했어.”

재중이 형이 거의 이틀을 사냥을 못하고 이러고 있었더니 이제 랭킹이 17위까지 내려가 버렸다.

돈도 중요한데 저렇게 떨어져 버리면 따라잡기 힘들다나. 어차피 오늘 패치를 안 했어도 그만둘 생각이었다고 하니까.

“이틀간 모은 거 길드에 경매로 좀 풀고 스펙 좀 올린 다음에 바로 잊혀진 고성 갈 거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 준비해. 그동안 떨어졌던 거 만회하려면 지금부턴 바싹 땡겨야하니까.”

안 그래도 길드 가입 후에 나에게 플레임 소드를 구해놨으니 언제 헬하운드를 넘겨줄 거냐고 귓말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6자루 외에 멀리 마을에까지 가서 구해온 2자루가 더해져서 처리하기도 난감해졌다.

“8자루라…….”

경매가 어느 정도 나올지 모르겠는데 잘못하면 플레임 소드 값으로 모두 날릴지도 모르겠는데?

“접속 종료해. 이따 보자.”

재중이 형이 접속을 종료하고 우리 팀도 모두 함께 접속을 끊고 나갔다.

나와서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점검 시간이 제법 길다.

단순히 건물 어그로만 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한꺼번에 하는 모양.

역시나 공지사항에 관련 내용은 전혀 적혀 있지 않지만 유추해볼 수 있는 글귀는 쓰여 있다.

* * *

[ 공지사항 ]

* 일부 어그로가 잘못되는 사항을 수정합니다.

* 테이밍 시도 횟수가 일일 한 개체 당 5회로 수정됩니다.

* 테이밍 성공 시 해당 개체를 당일에 더 테이밍 할 수 없습니다.

* 파이어 볼트 마법과 아이스 볼트 마법, 파이어 볼 마법이 추가됩니다.

* * *

어그로가 잘못된 부분은 보나 마나 건물에 들어가면 몬스터 어그로가 풀리는 것이겠고 이걸 수정해 버렸다.

우리가 테이밍 하는 것의 핵심인 건물 어그로가 막히면 적어도 두 파티는 더 추가시켜야 하는데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

거기에 계속 올라타서 1구역을 엉망으로 만들던 사람들 때문에 한 개체의 일일 시도 횟수도 제한한 모양이고.

하루에 한 개체를 성공하면 동일 몹은 더 잡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하긴 무한으로 테이밍이 가능한 것이 문제가 있긴 했지.

재중이 형이 이것도 패치될 거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일부 테이밍 가능한 유저들만 무한으로 테이밍하는 걸 운영자가 안 막을 리가 없다고 했는데 그대로 패치를 해버렸다.

조금 더 해 먹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재중이 형 말로는 이틀도 많이 해 먹은 거라고 하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 호재일 수도 있고.

테이밍을 시도하는 후발 주자들이 당분간 우리를 못 따라잡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지금 가진 수정으로 충분히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마법사 유저들이 공격마법이 너무 적다고 항의가 자주 올라와서 마법도 추가된 모양이고.

아이스 볼트 마법은 아이스볼의 열화판 정도 될 것 같고, 파이어 볼은 비슷한 수준이려나? 이건 구할 수 있으면 구해 줘야 할 것 같다.

식사를 하고,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다가 점검이 끝나는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보니 두 시간 더 연장 점검을 한다는 공지가 떠 있어서 욕을 하면서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이미 삼십 분 전에 점검이 끝나 있었다.

유저들을 위해 빠르게 패치를 했다면서…….

“열었다 닫았다 아주 맘대로구만.”

덕분에 꿀잠을 자서 개운하긴 하다.

다들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미안한데.

접속하니 아니나 다를까 나 빼고는 전부 접속해 있었다.

“알람 맞추고 잠들었는데 점검을 참 아름답게 해버리네요.”

“뭐, 나도 당했다.”

재중이 형도 똑같이 했나 보네.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도 물어보니 비슷한 모양이다.

그리고 간만에 점검이라 길드원들은 접속하자마자 네임드 잡으러 간다고 난리였다고 한다.

“공지 보셨죠?”

“어, 대충 다 예상했던 건데 덕분에 우리만 이득 보겠네. 경쟁자 없이 잊혀진 고성 들어가게 생겼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네요.”

재중이 형이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길드 애들도 다 들어와 있으니 슬슬 경매를 시작해볼까?”

재중이 형이 손을 비비면서 기대가 된다는 눈빛으로 길드창을 띄워서 전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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