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화 여기가 도시섭? (12)
“붉은 수정은 크리티컬을 낼 줄 모르면 그냥 돌멩이야.”
“확실히 그렇죠.”
재중이 형의 말에 내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 재중이 형 정도가 되니까 약점을 정확하게 찍어가면서 크리티컬을 만들어내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게 잘 안 된다.
“당장은 이 푸른 수정이 문제죠.”
인벤에서 꺼낸 손가락 두 개 크기의 푸른 계열의 투명한 수정.
『 헬하운드의 푸른 봉인 수정 / 크리티컬 확률 +1 』
이것은 챠밍의 스태프에 인챈트해 확인해봤다. 붉은 수정이 특급 숙련자의 대미지를 더욱 터뜨려 주는 용도라면 이건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을 그런 용도다.
붉은 수정은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아주 비싸거나 제값을 못 받거나 둘 중 하나.
반면에 이 푸른 수정은 누구나 일정한 수준으로 쓸 수 있으니 아마 가격이 적당한 수준에서 정해질 확률이 높다.
“둘 다 스탯 수정보다는 확실히 좋은 효율을 내. 엘리트를 고생하면서 테이밍한 보람이 있네.”
하루 종일 재중이 형, 챠밍, 나르샤, 이쁜소녀, 방패전사와 잡은 헬하운드 수정을 앞에 모아놓고 다들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분명 노동 값으로 차고 넘친다.
“이거, 분명히 이런 식으로 테이밍 하라고 놔둔 몹이 아니에요. 당장 내일 패치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 이해하시죠?”
“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그래서 오늘 정말 입에 거품이 날 때까지 테이밍만 했다.
레벨은 전혀 못 올리는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을 알기에.
하루를 통으로 사냥을 못하다 보니 재중이 형의 전체 랭킹이 12위로 떨어져 버렸다.
재중이 형은 그에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라 잠시 랭킹은 잊고 테이밍만 열중했다.
그렇게 잡은 것이 총 30마리.
“생각보다 적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너, 사람들이 더 늘었다고 생각해 봐라. 하루에 한 개라도 얻을 수 있겠냐. 그나마 이 수로 테이밍이 가능하니 이 정도야.”
“하긴, 입이 늘어나면 남는 게 적죠.”
지금 팀이 정말 테이밍 가능한 최소한의 수라고 생각하니까.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세보니 그렇게 많지는 않다. 중간에 대미지 측정을 제대로 못 해서 몇 마리 죽여 버린 것이 뼈아프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분배에 좀 더 여유가 있었을 거다.
일단 한 사람당 돌아가는 마릿수가 5마리인데 다들 나와 재중이 형에게 상당 부분 양보를 했다.
“저희야 이번엔 다른 사람이 해도 될 정도의 난이도지만 두 분은 대체불가니까요. 좀 더 가지셔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방패전사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또 이야기가 다 끝난 모양.
전에 오크족장이나 트윈 헤드 워울프 때도 그러더니 이런 부분에서는 방패전사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다.
팀의 기여도에 따라서 양보할 부분은 파티원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게끔 잘 정리해 준다.
그 모습을 보던 재중이 형이 좀 허탈해하는 얼굴로 날 멀리 데려와서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말했다.
“와, 길드 애들은 한 개라도 더 가져가려고 바득바득 우겨대는데 진짜 대박이네.”
“사람들 좋죠?”
“지금껏 하는 걸 봐선 순진한 건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너 꽤 신뢰받는 모양이다? 보통은 이렇게 분배 안 하지.”
“그런가요?”
“넌 이런 사람들하고 하니까 몰랐겠지만 정말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기를 쓰거든. 사장님이 그거 땜에 얼마나 머리 아파하시는지 알면…… 지금 넌 행복한 거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 말에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다시 모여서 전리품을 나눴다.
내가 총 8개 분량을 받고, 재중이 형이 6개,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가 4개 분량씩을 받아갔다.
내게 많이 준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려다가 전에도 이런 일로 방패전사와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아마 말해봐야 방패전사는 그냥 받으라고 하겠지.
“이 정도면 적당히 괜찮네.”
재중이 형도 만족하는 눈치고.
내가 두 개 더 받은 건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다.
일단 탈 것으로 하나를 빼둔 상태고, 아이스 소드와 플레임 소드에 붉은 수정으로 넣어놓았다.
크리티컬 확률보다는 크리티컬 증폭이 내겐 훨씬 좋은 옵션이니까.
나중에 플레임 소드를 추가로 구할 때를 생각해서 붉은 수정 위주로 챙겼다.
남은 개수는 수정으로 바꾸지 않은 헬하운드 그대로 받았고.
재중이 형도 대부분 붉은 수정으로 받아갔다.
아이스 소드에 박힌 것과 케르베로스 스파크 윙드 스피어에도 붉은 수정을 추가로 박아 넣었다.
“으음, 전 잘 모르겠어요.”
이쁜소녀가 양손검 위에 붉은 수정과 푸른 수정을 번갈아 가져다 대면서 한참 고민 중이다.
이건 나도 좀 어려운데?
파티원 중에서는 그나마 이쁜소녀가 나르샤와 함께 크리티컬을 잘 내는 편이긴 한데 그게 또 엄청 잘 내냐고 하면 이것이 좀 애매하다.
“형, 여기 좀 잠시 봐주시면 안 돼요?”
이런 건 아무래도 나보다는 재중이 형이 훨씬 잘 알 것 같아서 물어봤다.
좀 떨어져서 누군가와 귓말을 하고 있던 재중이 형에게 다가가 부르니 그제야 쳐다본다.
“누구? 이쁜소녀? 흐음, 아직 싸우는 걸 못 봐서. 안 그래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재중이 형이 허락하자 내가 이쁜소녀에게 다가가 먼저 의사를 물어봤다.
“저 불멸 형이 한 번 양손검 휘두르는 걸 보고 싶다는데 괜찮겠어요?”
“네? 저를요?”
이쁜소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깜빡거린다.
“음…… 수정으로 고민하는 것 같아서요. 저보다는 아마 저 형이 더 잘 봐주실 거예요.”
고개를 돌려서 재중이 형을 한번 슥 봤다가 날 다시 슥 본다. 그러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중이 형에게 가서 인사를 꾸벅한다.
“저기, 잘 부탁드립니다.”
“예의 바른 아가씨네.”
제대로 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어색함이 막 넘치는구나.
“이쁜소녀 님이 휘두르는 걸 보고 불멸 형이 조언해줄 거예요. 하시던 대로 한 번 해보세요.”
“음, 네.”
자기 키만한 길다란 양손검을 들어 횡으로 소리 나게 풀 스윙하고 이어 대각선으로 올려치고 스탭을 내밀면서 내려치는 식으로 시범을 몇 번 보이자 재중이 형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흐음…… 잠시 스톱.”
재중이 형의 말에 힘차게 양손검을 휘두르던 이쁜소녀가 양손검을 바닥에 내리면서 어땠냐는 듯이 우리 둘을 흘낏 쳐다봤다.
“일단, 좀 무기에 휘둘리는 느낌이 있네. 잠시만.”
재중이 형이 이쁜소녀에게 다가가서는 손발을 움직이면서 몇 가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던 이쁜소녀가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기만 하더니 재중이 형이 설명을 끝내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다시 봐라.”
재중이 형이 충분히 멀어지자 이쁜소녀가 아까 했던 동작 그대로 다시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횡으로 휘두르고 올려치고 내려치는데…….
“어?”
뭐지? 확실히 변했다.
양손검의 궤적, 힘의 분배, 스피드, 풍압, 자세 모든 것이.
이쁜소녀가 내 눈에 그간 들어오던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으로 양손검을 꽤 편하고 더 강하게 휘두른다.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그냥 어깨만 으쓱해 보인다.
“그냥, 단순한 스탭 밟는 방법하고 파지법 약간, 팔의 각도, 휘두를 때 시선 처리 정도? 인재네, 인재. 그거 좀 가르쳐줬다고 저렇게 변하기 힘들거든. 보통은 한참 가르쳐야 하는데.”
재중이 형의 진지한 눈빛이 강하게 양손검을 휘두르는 이쁜소녀를 계속 쫓고 있었다.
“아…… 이거 참, 욕심날 뻔했네.”
재중이 형이 잠시 지켜보다가 눈빛을 풀어버렸다.
“쟤는 크리티컬 확률 안 써도 돼.”
“그럼?”
“당분간은 푸른 수정인데 나중엔 무조건 붉은 수정. 연습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아직 확신까진 아닌데 쟤 약간 우리 과인데? 혹시 3세대 한 적 있냐?”
“아뇨, 제가 듣기로는 4세대가 처음이라던데.”
“흠, 그렇단 말이지. 일단 접수.”
뭘 접수했다는 건지…….
이왕 시작한 김에 다른 사람도 좀 봐줄 수 있으려나? 잠깐 봐준 것으로 저렇게 변한다면 물어볼 만 한데.
“혹시 다른 사람도 봐줄 수 있어요?”
“누구?”
내가 고개를 돌려서 챠밍을 먼저 봤다.
방패전사와 나르샤야 3세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자들이니 굳이 필요 없겠지만 내가 알기로 챠밍도 이쁜소녀처럼 3세대를 전혀 안 해봤다고 하니까.
“마법사는 내 전문이 아니긴 한데 기본적인 거라도 봐줘?”
“네, 도움이 된다면요.”
“안 그래도 잊혀진 고성 네임드 잡으려면 알려주긴 해야 하니까. 잘됐네. 너도 준비해둬. 사장님 오시고 정비 되는대로 곧장 갈 생각이니까.”
우리가 렙을 빨리 올려서 그런지 예상한 시기보다 훨씬 이르게 시작할 모양이다.
남들보다 빨리 잡는 걸 목표로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이번엔 챠밍에게 다가가서 이쁜소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물어보니 흔쾌히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아까 명중률은 충분히 봤어요. 잘 맞추시던데요? 헬하운드가 이리저리 움직여도 고정된 자리로.”
재중이 형이 칭찬을 하더니 곧장 날 끌고 공터의 가운데로 끌고 갔다.
“어? 전 왜요?”
“니가 좀 필요해. 아까 보니 잘하더라.”
뭘 잘한다는 거지?
“잠시 파티 푼다.”
재중이 형이 파티장이었는데 나와 챠밍을 모두 파티에서 내쫓았다.
“뭘 하시려고요?”
“보면 알아. 자! 챠밍 님 이놈이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공격해 보세요. 다만, 원을 그리면서 달리면서 하셔야 합니다.”
챠밍이 재중이 형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내 주변을 원을 그리며 달리면서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챠밍도 날 공격하라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이 공격한다. 이미 여러 번 해봐서 그런지 거리낌이 없다.
“와, 내 의견은 진짜 하나도 없네.”
내가 날아오는 매직 애로우를 하늘로 쳐내자 재중이 형이 박수를 친다.
“잘하네, 둘 다. 챠밍 님 그런 식으로 좀 더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면서 공격해 봐요.”
챠밍이 그 말을 듣고 조금씩 달리는 궤도를 바꿔가면서 다시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거예요?”
“어, 이거 우리 애들도 많이 하는 건데 보통은 가운데 라지 쉴드 든 사람이 들어가.”
“제가 몸빵 대신이네요.”
챠밍이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처음엔 매직 애로우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 전혀 신경이 안 쓰였는데 점점 내 쪽에 가깝게 매직 애로우의 코스가 변하더니 기어코 직격으로 매직 애로우가 날아왔다.
“하, 센스 좋네. 좋아.”
확실히 오차 범위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는 건가?
“이건 더 안 해도 되겠네. 자! 이제 주호 니가 움직여 봐.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면 나한테 맞는다?”
“네네.”
재중이 형이 요구하는 대로 적당한 공간 안에서 계속 빠르게 움직이니 챠밍의 명중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바로는 안 되나? 꽤 기대했는데.”
재중이 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챠밍의 눈빛이 변하더니 내가 움직이려던 공간으로 매직 애로우가 먼저 날아와 내 움직임을 사전에 막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히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호오…… 이건 기대 이상인데.”
정확히 맞추지는 못하는데 분명히 계속 내가 가려던 방향을 앞질러서 매직 애로우들이 지나갔다.
재중이 형이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만해도 되겠네요.”
그 말에 챠밍과 내가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고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다른 훈련이 더 있긴 한데 이건 니가 못할 것 같으니 내가 해야겠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챠밍의 앞으로 걸어갔다.
“제가 마법 계열이 아니라서 이쪽은 몸으로밖에 못 알려드리겠네요. 지금부터 3분간 절대로 마법 시전이 멈추면 안 됩니다.”
“네?”
재중이 형이 아무 말 없이 곧장 챠밍에게 다가가 아이스 소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형! 지금 뭐하시는?”
챠밍이 놀라서 급하게 뒤로 빠지자 재중이 형이 다시 말을 했다.
“마법 시전 쉬시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요.”
이제 보니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아이스 소드를 휘둘려서 실제로는 타격을 입히지 않고 있다.
챠밍도 알았는지 곧장 달리면서 손에서 매직 애로우를 시전해서 재중이 형에게 쏘아냈다.
재중이 형이 시전 되는 방향을 보자마자 방향을 틀어서 매직 애로우를 피하고는 다시 접근해서 챠밍을 압박했다.
챠밍이 앞에서 계속 날카로운 검이 휘둘려지는데도 계속 주변으로 스탭을 밟으면서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어떻게든 마법시전을 유지해 공격과 회피를 반복했다.
“3분 끝.”
딱 3분이 지나자 재중이 형이 바로 검을 거둬들였다.
재중이 형이 챠밍에게 눈짓을 하자 그제야 챠밍이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뺐다.
“고생하셨어요. 도움이 좀 된 것 같나요?”
“네, 몰랐던 걸 많이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챠밍이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제가 근접이라서 이 이상은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꾸준히 연습하시면 더 좋아질 겁니다. 저기 걸어 다니는 샌드백도 있으니까.”
그러면서 검지로 날 가리키자 챠밍이 밝게 웃는다.
“케르베로스가 불시에 돌진해서 아무나 공격하거든요. 마법사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회피는 하실 줄 알아야 해요.”
“네, 잘 배웠어요.”
“뭐, 이런 건 주호가 가르쳐주긴 힘든 거니까. 저놈도 다른 걸 좀 더 배워야 하는데.”
“전 다음에 하죠.”
“어, 넌 다음에. 형 힘들다.”
움직이는 건 우리가 다 했는데…….
그때 재중이 형이 귓말이 왔다고 잠시 받고 한참 이야기하고선 귓말을 끊었다.
“사장님 들어오셨네.”
게임에서는 처음 뵙네. 어떤 모습이려나.
근데 여기서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되나?
재중이 형이 날 보더니 씨익 웃는다.
“그럼, 세계 최강의 길드에 들어올 준비가 됐냐?”
자뻑은…… 불치병이 확실하다.